2021년 새해가 시작 된지 3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주향교회 성도님 가정과 개인위에 하나님의 평강과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1년 첫 주일 설교제목을 이렇게 기도하며 정했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주 들었던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기도제목으로 삼고 주님께 맡기며 살겠습니다. 다짐하는 성도님들도 계십니다. 무엇보다 2021년 새해 시작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생활 되시기를 서원합니다.
세상의 질서를 보면 맡기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돈을 맡기기 위해 사람들은 은행을 찾습니다...... 우편물을 맡기기 위해서 우체국을 찾습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도 그렇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서로 서로가 맡기며 질서속에 살아가는 가족공동체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맡기는 중요한 관계로부터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맡기는 것에 있어서 3절 말씀에....."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라고 했습니다. 너의 행사... 김승권 목사의 행사 주향교회 한해 행사 우리주향가가족들의 한해 행사를 누구에게 맡기라고 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 잠언서 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벧전 5:7 .....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55:22..."너의 짐을 여호와께 다 맡기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는 신앙생활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맡기라” 라는 말은 “믿으라”라는 말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으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세요 믿음을 가지세요 믿으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실제적인 표현이 .... 바로 “맡기라”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믿으라”!, “맡기라”! 라는 말은 똑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어야 그 사람에게 일을 맡길 수 있지 않습니까? 전혀 알지 못한 사람인데 무엇을 믿고 내 자동차 알지 못한 사람에게 키를 맡기겠습니까?
우리는 영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의 행사를 맡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여러분!! '맡긴다'라는 히브리어에 원래의 뜻이 있습니다. 맡긴다는 것은 “내어 던져 버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맡긴다”라는 말이 신기하게 우리나라 말과 뜻이 반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맡긴다”라는 말을 할 때 던져 버리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맡긴다고 말할 때 이해를 어떻게 합니까? “소중한 것을 보관 한다”라고 생각하고 이해합니다.
예를 들어 은행에 보관된 돈을 미리 찾아 주일예배 때 헌금해야하기에 10만원을 찾았습니다. 이것은 보관해 놓은 것 찾는다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적 사고는 내어 던져 버린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정 반대의 의미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예를 들어 쓰레기를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다시는 찾아올 생각 없이 쓰레기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쓰레기를 집어 던져 버립니다. 절대로 쓰레기를 다시 찾을 생각으로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맡긴다 라는 뜻은 쓰레기를 집어 던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코로나시대에 두려움이나 염려나 걱정과 근심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했다면 나의 두려움 염려 걱정 근심을 다시 꺼내서 다시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다 맡겼습니다”라고 다짐해 놓고 다시 두려움 염려 걱정 근심를 끄집어 내는 것은 버린 쓰레기를 다시 집으로 가져오는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겼다면 쓰레기 버리듯 그냥 버리십시오..... 두려움도 염려도 걱정도 근심도 다 버리십시오...... 더 이상 내 마음에 가지고 오지 마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중요한 키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문제를 맡기더라도 우리의 기준으로 맡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2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이 말씀은 자기가 정한 기준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잘못된 자기 평가를 붙잡고 자기 판단 대로 고정된 틀에서 다람쥐 체 밖기 돌 듯 습관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했던대로 올해도 그대로 자기의지대로 합니다. 자기 평가 자기기준대로 하지요
척추를 다쳐서 지팡이 없이는 걸어 다닐 수 없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의사가 지팡이 없이 걸어 다니는 연습을 하라고 하였지만 그녀는 감히 실천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이 부인이 위층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그대로 아래까지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부인은 의지하던 지팡이를 잃어버렸습니다. 땅바닥에 누워서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이 여인은 온 힘을 다해서 난간을 짚고 몸부림치며 지팡이 없이 걸어보았습니다. 그 뒤로 이 여인은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걸려 넘어져서 지팡이를 잃어버린 것이 오히려 유익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기가 의지했던 자기 판단 자기 생각의 지팡이를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걸 붙잡고 놓지 못하는 자기 의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 할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붙잡았던 자기 생각! 자기 습관인 내 손에 내 지팡이를 버릴 때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성도님 앞에 솔직한 고백 한 가지가 있습니다. 2017년부터 제 중보기도 카드가 성경책표지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기도제목을 보니 삼사일언의 삶을 살게 하소서(세 번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말해야하겠다는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기도제목을 정했습니다. 기도제목은 뻔지르르한 기도 제목 같아요 그런데 삶 가운데 체크해보면 누구와 말하든 제 말 속에는 육신의 습관대로 하다가 실수 한 것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돌아보는 2020년 하나님께서 영적 현미경으로 김승권 나를 살펴볼 때 “아직도 무엇을 그렇게 너! 생각대로 붙잡고 살아가느냐!~~~ 하실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보기에는 바로 맡기는 것 같고, 믿는 것 같지만 여호와께서 내 마음을 훤히 들어다 보시는데 모자이크처럼 희미하게 아시는 것이 아니라 현미경처럼 자세히 꾀 뚫어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자신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타인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을 꽤뚫어 보시고 너! 김승권 깨끗하지 않다고 하면 깨끗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신년감사예배를 드리는데 주향성도들을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치장 페션을 보시고 옷 잘 입었네 물으실까요? 어디에 앉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주향성도 예배자의 마음이 지금 어떤 상태인가? 네가 정말 내 앞에서 정직하게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자세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생각을 버렸으면 이제는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볼 수 있는 영적 성숙함이 있어야 합니다.
9절 말씀을 보세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말씀합니다.
성도여러분!! 2021년 시작 어떤 계획을 세웠습니다. 남이 나를 향하여 이런 계획을 세우면 좋겠네 부모가 자식이 잘되라고 이런 계획을 세우면 어떻까? 이런 계획 저런 계획을 세워 시작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계획을 세워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말씀 9절까지 8절만 빼고 각 절마다 여호와하나님에 대해 각 절마다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개입하시며 나의 걸음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인도하심을 볼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웟은 시편송 중에 시23편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23:1-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하나님께서 100% 나를 인도하셨다는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성도여러분!! 목자와 양의 관계를 아십니까? 양은 참 무지합니다. 어느 정도 무지한가하면 어리석을 정도로 무지합니다...... 양은 길을 잃으면 돌아오지 못합니다. 개는 길을 찾아옵니다. 연어도 고향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양은 못 찾아옵니다..... 양은 자기 앞에 가는 양을 따라갑니다...... 요령을 피울 줄도 모릅니다. 앞의 양이 낭 떨어지에 떨어지면 함께 떨어집니다. 그 정도로 무지합니다.
이런 모습이 양인데 하나님께서는 양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가 있습니다. 자기 목자 음성 만큼은 잘 알아 듣습니다. 자기 목자 음성 외에는 어떤 짐승의 아름다운 소리도, 어떤 사람의 낯선 소리도 다 구별합니다. 자기 목자 음성의 휘파람 소리, 말소리를 그대로 알아듣고 따라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요10:4.... 자기양을 다 내 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오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만큼 양은 목자음성을 잘 듣습니다.
이 사실을 너무나 체험한 다윗이기에 시편23편을 노래 한 것입니다.
시23:2-3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스탠리 존스 목사님(1884-1972 88세 별세)은 감리교 목사님으로 평생을 인도 오지에서 선교사로 사역 하셨습니다. 지금은 천국에 계시지만 목사님의 이런 선교 일화가 있습니다.
한번은 울창한 밀림 지역에서 선교하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절망감과 두려움에 숲속을 헤매던 중 마침 한 원주민을 만났습니다. 존스 선교사는 그에게 다가가서 말하기를 “내가 지금 길을 잃었습니다. 나에게 길 좀 가르쳐 주십시요” 원주민은 길을 알려줄 생각은 하지 않고 ‘앉아 기다리시오’하더니 자기 일만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존스 선교사는 무려 8시간을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해가 진 뒤에야 비로소 원주민은 선교사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습니다. 따라갔지만 주위는 점점 깜깜해지고 길이라고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존스 선교사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물었지만 원주민은 “길은 없습니다.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입니다”고 대답했답니다. 존스 선교사는 마침내 원주민을 따라 걸어서 마을로 돌아왔는데 살아 돌아온 존스선교사는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너무나 실감이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 했다고 합니다.
스탠리 선교사가 원주민을 무시했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겠습니까?
주향성도여러분!! 2021년 스타트 했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먼저 계획된 일을 100% 맡기십시오...... 마치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보지 않듯 100% 하나님께 맡겼으면 하나님이 100% 인도 하신다~~ 확신가지고 나의 삶의 일터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이런 고백으로 살아가면 좋겠어요
하나님!!......정말! 나를 통하여 일 하셨네요~~~ 하나님이 인도하셨네요~~ 이런 고백이 2021년 체험적인 간증이 고백될 때 우리 주향성도 서로 서로 바라보며 박수치며 은혜의 기쁨을 나누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런 영적 기대와 설램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