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과 매점 아저씨
사라진 매점
10월말이면 새롭게 구성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매점이 설치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유를 알아보니 현재까지 학교로 들어오려는 적임자가 없어 계속 찾고 있다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기도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하지만 여름방학 이후 매점이 없어 교문을 뛰쳐 나가는 아이들, 매점으로 인해 불편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목실에서 간식을 더 많이 준비해 무료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8월말부터 근 두 달 가까이 계속해서 교목실을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해 간식이 없다고 하기가 왠지 미안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기도하며 더욱 준비하고자 했다.
먼저 예산으로 책정된 기독활동비에서 아이들 간식을 준비했다. 하지만, 오예스, 마이쮸 등등 아무리 많은 간식을 준비해도, 매일 전교생 1,200여명을 감당하는 데는 무리가 따랐다. 간식을 최대한 많이 준비해도 이틀을 넘기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전 8시 아이들은 학교에 오기가 무섭게 교목실을 찾았다. 아침 밥을 안 먹고 온 아이들이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교목실을 찾았다. 다음 시간 온 아이가 또 오고, 한 바퀴 돌아 금방 또 오는 아이도 있다. 이렇게 하루 일곱 번을 오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구하라 주실 것이요”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아이들이 찾아올 때마다 웃음을 머금고 아이들에게 간식을 공급했다.
아침 기도로 시작하며
교목실 문을 열고 가장 먼저 온 아이들과 아침 기도를 한다.
“하나님, 오늘 새로운 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목실에서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축복하시고, 인도하시고, 영광 받으소서. 사랑하는 우리 영훈고 제자들이 이 학교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사람으로 성장토록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렇게 기도를 하고, 아이들은 간식을 받아 간다.
“자~ 오예스 한 개, 마이쮸 두 개씩.”
아이들은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간식을 받아 간다.
가끔씩 이런 아이가 있다.
“선생님, 저는 마이쮸만 세 개요.”
그럼 나는 웃으며 말한다.
“좋아, 마이쮸만 세 개!”
또한 간식 앞에 놓여져 있는 성구서표 말씀 갈피도 뽑아간다. 적은 간식, 10분이라는 짧은 쉬는 시간이지만,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이 시간이 참 좋다. 행복하다.
이렇게 쉬는 시간마다 100명에서 200여명의 아이들이 줄을 서서 다녀가는 것을 보게 된다.
채우시는 하나님
간식이 떨어질 만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 사람을 붙여주시며 공급해주셨다.
북부아버지학교 지부장을 통해 아버지학교 형제님들이, 기도하시는 영훈고 학부모님들이, 그리고 선생님들이, 학교 안 영훈오륜교회의 성도님들이 이 사실을 알고 간식을 사서 보내주었다.
한 번은 채플 때 간식을 놓고 아이들과 함께 기도한 적이 있다. 그 때 간식이 다 고갈되어 당장 다음 날 간식이 없을 상황이었기 때문에 매우 갈급했다. 기도를 마치고, 교목실로 돌아와 카톡을 확인하는데, 우리가 기도할 즈음 어떤 분이 오예스 1,200개를 사서 보냈다고 했다. ‘할렐루야~!’
이런 때 살 떨린다고 해야 하나. 간식이 부족하다 싶으면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간식을 보내주셨다.
간식을 채우는 것도 일이지만, 사실 나눠주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왜냐하면 쉬는 시간 10분 동안 100여명 이상의 아이들을 만나야 하고, 또 쉬는 시간인데 서서 아이들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이들에게 간식만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얼굴도 살피고 격려해야 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간식이 들어오면 박스를 뜯고 포장지를 뜯고 분류 작업을 해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가능케 하고 계셨다. 기독교사 선생님들이 수업 빈 시간이면 오셔서, 분류 작업을 하셨다. 또한 나눠주는 일도 함께 섬기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묶어주시고,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셨다.
대상포진이래요
그러던 중, 나의 몸에 피로가 쉽게 오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집에 돌아와 왼쪽 배를 보니 붉은 물집 같은 것이 생겨 있었다. 전날 밤에 가려워서 긁었나보다 생각했는데, 분명 모기에게 물렸거나 가려워서 긁은 것과는 좀 다른 모양이었다. 뱃속으로 ‘찌리리~’ 하는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내가 내 배를 살피더니 놀라며 말했다.
“여보, 대상포진 아냐?”
대상포진. 참 오랜만에 들어본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에 나는 대상포진을 앓았었다. 그때는 오른쪽 가슴과 등 쪽 꽤 넓은 자리로 붉게 피어올라 있었다. 그 시절 나의 모습은, 밤과 새벽을 잊어버릴 정도로 술에 취해 세상으로 달리던 때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 몸의 이상을 사용하시며 나를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하시고, 회심케 역사하셨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어떤 의미에서의 대상포진일까?
단순히 피곤해서, 몸 관리를 잘못해서, 면역력이 떨어져서 걸렸다라는 일반적인 것 말고,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지 않을까가 궁금했다. 하나님께서는 건강한 우리를 통해서도 일하시지만, 기도하는 사람에게 병이 생겼거나 어려운 일이 생겼을 경우, 그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심을 알기 때문이다.
병원에 갔더니 역시 대상포진이라 하였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고등학교 선배다. 선배는 피곤하고 면역력이 떨어지면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라고 했다. 일주일 약을 지어주었다.
합력하시는 선생님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에 통증이 심해 하루를 결근했다. 결근을 하면서도 하루 종일 아이들이 눈에 선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오늘 간식은 어떡하지? 아이들이 기다릴텐데~.’
다음 날 학교에 출근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아이들을 맞이했다.
“선생님, 어제 교목실 문 앞에서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미안해. 어제 일이 좀 있었어. 내가 학급 선교부장 통해서 학교 못 온다고 연락했었는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또 간식을 나누어주었다. 다음 시간도 다음 쉬는 시간도 그랬다.
새로운 간식이 들어와 어김없이 방송을 했다.
“여러분, 교목실에서 여러분들에게 방송합니다. 지금 새로운 간식이 들어와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이 달리는 소리가 난다. 나도 교목실로 달려 내려왔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미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
이선생님, 성선생님, 그리고 김선생님, 나선생님이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분도 있는데, 그리고 교목실에 온 적도 없고, 한 번도 이렇게 섬기는 일이 없던 분들인데~.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활짝 웃으며 선생님들께 다가갔다.
“우와, 이샘, 성샘, 김샘, 나샘 감사해요. 내가 주는 것보다 선생님들이 나눠주니까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데~.”
선생님들도 활짝 웃으며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누어주었다. 쉬는 시간 간식 배부를 마치고 선생님들도 자기의 교무실로 돌아갈 즈음, 이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애들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시는지 알아요. 이렇게 매 시간 수고하시니까 대상포진 걸린 거지요. 저도 이제 시간 되는대로 달려와서 도울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분의 계획을 갖고 계신다.
사람인 우리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그 계획을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기도하며 나아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때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이 어떤 형편에 있든지 쓰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세상의 일반인들이 상황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어떤 것이든 우연은 없고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대상포진에 걸린 나를 사용하셔서, 우리 선생님들을 보내주시고 합력토록 하셨다. 나의 연약함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매점이 설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근 두 달 이상을, 아이들이 교목실을 매점처럼 사용하게 하시는 하나님, 한 번도 교목실에 오지 않던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발걸음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섬기게 하시고 베풀도록 공급하시는 하나님.
그야말로 간증의 연속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배 고파서 왔어요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녁 8시, 교목실 문이 열렸다.
두 명의 여학생이 내 등 뒤로 걸어왔다.
“누구니?”
부드럽게 물어보는 내 목소리에 아이들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선생님, 야자 쉬는 시간인데, 배가 너무 고파서 왔어요.”
“에구, 그랬어? 저녁은 먹었니?”
“네, 먹었는데, 백 고파서요.”
나는 웃으며 간식을 챙겨주었다.
“자, 컵라면이 하나 있네, 오예스도, 마이쮸, 그리고 너희들 복 받았다. 음료수도 있어.”
아이들은 간식이 한 개씩 추가될 때마다 “우와, 우와~.”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이 이렇게 행복해하면 나도 기쁘다.
이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고 기도하게 하시며 축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그 사랑에 무척 감사하다.
나는 이제 영훈고의 매점 아저씨가 된 듯하다.
‘기도하는 매점 아저씨!’
대상포진은 점점 아물고 있다.
20년 전의 대상포진은 술독에 빠져살던 나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이번에 대상포진은 무엇인가, 바로 나의 연약함을 통해 선생님들 한 분 한 분들을 합력토록 만들어가고 계시니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욱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간증을 허락하실 줄 믿으며,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2018. 10.29
영훈고에서 울보선생 최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