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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2 옛친구와 만나 선학당(善學堂) 방문 함라 다은 야외 나들이
자유인 조동화는 옛친구 신원철회장님과 박창해친구 3인이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어 박창해친구가 운영하는 선학당(원룸)을 방문하자고 의견이 합치되여 원대외곽에 있는 善學堂을 방문하게 되었지요.
신원철회장님과 박창해친구는 나의 소개로 오늘 처음 만나 동행하였다.
이동수단은 박창해친구의 봉고차로 이동하였다.
박창해친구가 운영하는 善學堂(원룸)은 방이 30여개로 주로 향학열에 불타는 원광대생들에게 싼 가격으로 임대해 주었으나, 요즈음은 학생들도 신축원룸을 선호하여 건물이 오래된 선학당을 이용하지 않음으로 생활이 어려운 일반인에 임대해 주고 있는데 현재 공실이 한 개가 남아있다 하는구먼.
박창해친구는 선학당을 운영하며 여행에 취미가 있어 세계여행 5대양6대주 않가본 나라가 없을정도로 여행가이다.
대한민국도 봉고차 뒷간을 개조하여 침구류와 식사도구를 겸비하여 경치좋고 공기좋은 섬여행을 최소의 비용으로 장기간 여행도 즐긴다.
박창해친구는 자수성가하여 선학당을 운영하며 임대사업을 하고 있으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싸게 임대해주는것도 좋은일하는거여.
창해친구의 선학당을 두루 두루 살피고,
함라 다은에 소재한 신원철회장님의 가족묘역을 답사하고자 의견이 합치되여 바깥나들이를 하였지.
500여평의 묘역을 잔디로 조성하여 조부모, 부모, 장형님 묘를 봉분으로 잘 단장해 놓았다.
햇볕이 잘들도록 부근의 나무도 베어 정리한 흔적이 있었으며 잔디관리를 잘하여 잔디가 잡초가 없이 깔끔히 가꾸어져 있었다.
함라에는 1900년대 만석군의 부호 3부자집이 함라산을 감싸고 있는데, 신원철회장님 가족묘역도 함라산이 감싸고 있어 명당이라고 할만하구먼.
함라 다은은 평산신씨들이 대대로 씨족을 이루어 살아온 삶의 터전으로 경관도 아름답구나.
귀로길에는 신원철회장이 500여평의 밭에 심은 창이자(일명 도꼬마리)라고 불리는 곳을 답사하였다.
도꼬마리는 뾰쪽한 가시에 독성이 있으며, 무좀과 가려움증 피부병 비염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동의보감에 나와 있다.
도꼬마리는 마을의 빈터, 밭머리, 낮은 지대의 길가에서 흔히 볼수 있는데 신원철회장님은 500여평의 밭에다가 씨를 뿌려 가꾸었네요.
신원철회장님은 도꼬마리를 재배하여 시장에 팔려고 하지는 않았을텐데 많이도 재배하였네요.
신원철회장님 재배한 도꼬마리는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날이면 날마다 바쁘지 않은 날이 없는 조동화는 옛친구 신원철회장님과 박창해친구가 만나 하루 나들이 즐거운시간이었네요.
조동화의 벗님들!
인생살이가 거기서 거기로서니, 그려려니 긍정적으로 살아야지요.
지나고 나면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었다고 그러지요.
황혼의 시절에 좋은일 많이 하고, 사소한일에 감사를 느끼며, 건강관리 잘 하시고 행운이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박창해친구가 운영하는 선학당(善學堂)은 30대의 어려웠던 시절 이곳에 돼지 100여마리를 사육하던 장소로 생활의 기반을 잡은곳인디, 방으로 개조하여 선학당을 운영하고 있다.
창해친구가 손수 벽돌은 쌓아 만든 선학당(善學堂)의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창해친구가 작명한 善學堂 글자의 뜻데로 착한 학생들이 입사하여 잘된 학생들도 많겠구먼. >
<平山申氏 후손 신원철회장님은 한국철도에서 기관사로서 조동화와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젊은시절을 보내었지요.
이곳이 좌청룡우백호의 기를 받아 조성한 신원철회장님의 가족묘역이다.
신원철회장님의 부친은 현(鉉)자 규(圭)자이고 모친은 해주(海州)최(崔)씨이시며, 1995년4월 풍수가 좋은 다은에 이장하여 왔네요.
풍수지리가 좋아 신원철회장님은 자식들이 잘되고, 아직껏 아프지 않고 세파를 풍미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짚니다.
함라산의 기운이 다은의 신원철회장님 가족묘원에 뻗쳐 있어 좌청룡우백호 명당중의 명당 아무쪼록 묘역을 잘 단장하여 보기좋게 해 놓으면 조상님들이 보살펴 줄것이라 확신합니다.>
김병주 국회의원 프로필
1962/2/7 경북 예천 출생
강릉고등학교 졸업
육군사관학교 41기 졸업(1984년)
제3군단장 (2015.10. ~ 2017.08.)
육군대장 2017년 8월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2017.08. ~ 2019.04.)
제21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서해공무원피격사건 조작으로 드러나다.
2022년11월8일 국회운영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김병주국회의원이 밝혀내다.
-검찰 감사원 조직적인 개입하여 사건 조작
-윤석열 2021/7/10 서해공무원 유가족 면담
-그당시 윤석열 유세차에 서해공무원 형 이대진씨 탑승 윤석열지지연설, 자기동생이 억울하게 피살 당했다고 주장하며 윤석열이 집권하면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구하였다.
윤석열은 서해공무원피격사건을 명쾌하게 바로 잡겠다고 약속하였다.
-2022/5/2 안철수 인수위원장 이대진씨 면담
-2022/5/10 윤석열대통령 취임, 첫 번째 프로젝트 안보몰이
-2022/10/13 감사원감사 중간발표 내용을 뒤집으며 20명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발표
-2022/10/22 감사원과 검사가 조직적으로 조작하여 당시 서욱국방부장관과 김홍희해양청장을 구속시키다.
-2022/11/8 다행이 법원의 구속적부심에서 서욱국방부장관 석방
-2022/11/11 김홍희 해양청장 구속적부심에서 석방
윤석열은 사건 조작의 선수여.
있는죄는 덮고 없는죄는 만드는 악당들이여.
서해공무원피살사건의 내용이 뭔디 윤석열정권이 사건을 뒤집었단 말이여
서해 연평도 해상 선원(공무원) 2020.9.21실종되여
북한경비정에 발견되여 불에 태워 사망한 사건이 뭐여.
일명 "서해공무원사망사건"
당시 언론들을 종합해 보니
- 도박빛으로 3억여원의 빛을 지고 있었음
- 직장동료들한테도 돈을 빌렸음
- 월급 가압류 법원 통지 가압류.
- 사채사용등
- 아들 둘이 있으며 이혼중으로 알려짐
그 선원(공무원) 이**는 소연평도 해상 북서쪽 38km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에 발견되여 북한군에 의해 불태워져 죽은 사건임.
하기 좋은말로 공무원이지 노름쟁이가 맞아.
이정도로 도박으로 정신적 공황상태를 받았다면 어찌되겋는가.
아마도 이세상에서 살아갈수 없겠지.
여러정황으로 현실도피 목적으로 해양경비정 무궁화10호에서 하선하여 월북으로 결론지여진 것인디 윤석열정부는 결론을 되집어, 배에서 하산하여 북한군에 발견되여 불 태워져 죽은 이**을 살리지 못했다고
2년이 지난 2022/10/22 당시 서욱 육군참모총장 출신 국방부장관과 김홍희 해양경찰청장이 검찰에 의해 구속되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않되야, 보통일이 아니여
없는죄는 만들고 있는죄는 덮고 무소불위의 대한민국 검찰의 현주소 이로다.
용산 삼각지 전쟁기념관 부근 대통령관저 앞에서는 11/10 부터 서울의소리 백은종대표와 정대택회장이 용산참사희생자 책임자 처벌과 원인규명을 위하여 단식농성을 하고 있지요.
정대택회장은 김제 청하사람으로
2003년 윤석열검찰총장의 장모 최은순과 동업, 52억원의 이익이 발생하여 50%씩 나누기로 중학교동창생 백윤복입회 약정서를 작성하였으나 수익을 최순실이 혼자 독식한후 최은순으로 억울한 누명으로 돈도 사기 당하고 2006년-2008년 2년의 억울한 징역을 살고 나온후 누명을 벗기는커녕 또다시 2017년 1년의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였으니 천인공노할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정대택회장은 2022/11/10 삼각지 용산참사 단식농성장에서 억울한 사연을 이야기하며, 윤석열일당을 고발하였다.
윤석열장모 최은순은 천문학적인 재산 축적과정에서 4명이 억울한 죽음에 이르고 8명이상이 억울한 옥살이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혀.
이런 악녀가 윤석열의 뒷배로 떵떵거리고 사는 세상 개같은 세상이여.
윤석열 개세끼는 동네 이장자격도 없는놈이 대통령자리에 있으니 나라가 어떻게 되겋는가, 김건희 요년 짐승이나 다름없다고 외쳤다.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된 이 세끼가 그놈 윤석열이지.
용산참사 157명이 죽었는디 책임지는 놈 한놈 없고 이게 나라여.
책임질놈이 없으니 애굿은 하급공무원 용산경찰서 정보계장과 서울시청 안전담당공무원이 11/11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되얐구먼.
11/12 용산 삼각지 촛불시민이 윤석열의 죄상을 나열한 죄상
1. 10.29참사 방관하고 조작한 죄
2. 안보위기 초래한 죄
3. 물가폭등 손 놓은 죄
4. 언론탄압 저지른 죄
5. 동맹관계 훼손한 죄
6. 국민기만 거짓말한 죄
7. 삼권분립 무시한 죄
8. 가족비리 외면한 죄
9. 국민세금 낭비한 죄
10. 권력, 의전 탐한 죄
11. 국민 쪽 팔리게 한 죄
윤석열 대통령 되얐으면 나라를 잘 이끌려고 노력해야지 검찰공화국에만 몰두하다가 나라를 이지경으로 만들었는가.
장모의 사기죄, 처의 주가조작, 윤석열의 죄없는 사람 감옥에 보낸죄 삼척동자도 다 알아.
죄있는 사람 봐주고 죄 없는 사람 감옥 보내고 검찰이 해 왔지.
대통령목표로 되얐으면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지 157명의 새파란 꿈많은 청춘을 꿈도 펼치지 못하게 방치한 죄는 천벌 받아 마땅하다 이세끼야.
세계의 모든나라에서 무능한 지도자로 낙인찍혔지.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어떻게 되얐는가.
국민의 손에 잡혀 총살당했지.
네 이놈 빨리 내려 오너라.
이것이 최소한의 도리이니라.
왜 사는가 ?
참 웃기는 이야기다.
왜 살다니 ?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 나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왜 태어 났나” 는 더 더욱 의미가 없다.
어느 날 인가 내가 나를 인식한 순간 난 이미 태어나 있었고
목숨을 끊지 않는 한 살아 있을 뿐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한세상 살고져 제 맘대로 태어나지 않았으며
잘 났으나 못 났으나 주어진 한번뿐인 삶을 꾸려간다.
그렇다 우리는 하루 하루를 살아 있는 것이지 “살아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 많은 철학자들이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
아마도 단하나 우리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 즉 “어떻게 살 것인가”가 생각의 여유를 두는 것이리라.
어떻게 사느냐는 매우 중요하며 각자 지향하는 바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불교에서는 윤회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종교에서 내세(來世)를 이야기한다.
영생불멸도 끔찍하겠지만 유한한 삶을 산다는 것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죽음은 분명 두려운 일이고 그에 대한 도피처로 생긴 것이 종교다.
어떻게 살다 가는 것이 잘 살다 가는 것일까 ?
난 한마디로 정의하고 싶다
진실하게그리고나눔에생활로 살라는 것이다.
그리고하고 싶은 일은 꼭하고 살기를 바란다.
세상을 둘러보라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
하늘에 피어나는 뭉개구름, 일곱빛갈 무지개와 찬란한 일출, 타는 저녁놀이 늘 우릴 설레게 하질 않던가.
바람 부는 날 느티나무 언덕에 서 보았는가 ?
눈 내리는 날 옷깃을 세우고 아무도 걷지 않은 순백의 땅을 밟아 보았는가 ?
천둥 번개 심지어 벼락이 을러대는 칠흑 같은 밤에 공동 묘지를 거닐어 보았는가 ?
아무도 심지 않고 거두지 않으나 홀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많은 들풀과 산꽃을 그대는 아는가 ?
하얀 포말을 날리며 천지를 호령하듯 포효하는 파도며, 산간 이름 모를 새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걸어 보았는가 ?
온갖 음악이며 춤은 어느 정도 경험했으며, 가슴 조이게 하는 명작을 얼마만큼 읽었으며,
영화 연극 오페라 판소리는 얼마나 보았으며
인도네시아의 발리, 태국의 푸캣은 가 보았는가 ?
목숨을 주고 싶을 정도로 격렬한 사랑을 해 보았는가 ?
사랑하는 이의 그림자라도 보면 좋고 발자국 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어 애태워 봤는가 ?
네 자신을 사랑하라
네 행복할 권리를 반드시 찾으라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이 생을 찬미 하며 음미하고 즐기라
많은 서론이 필요하지 않다. 죽어지지 않아 사는 것이다.
살고 싶어도 죽으면 살수가 없다. 그러나 사는 동안많큼
은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재물을 잃으면 조금 잃고, 명예를 잃으면 조금 더
큰 것을 잃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만큼 남녀노소 관계없이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다!
===좋은글에서===
☞죽음 직전 사람들의 ‘이것이 인생’ 5가지☜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는가? 아침의 냄새를 맡아 본 것은 언제였는가? 아기의 머리를 만져 본 것은? 정말로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 본 것은? 파란 하늘을 본 것은 또 언제였는가?
많은 사람들이 바다 가까이 살지만 바다를 볼 시간이 없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한 번만 더 별을 보고 싶다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지금 그들을 보러 가라.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
우리 모두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무심히 살아가지만, 어느 누구에게나 인생의 끝은 온다. 단 한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이 진리를 직시하는 순간 또 누구나 묻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한번뿐인 인생’이라는 말을 자주, 쉽게 하면서도 언젠가 정말 나에게도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오리라는 것은 대부분 망각하고 있다. 어쨌든 죽음은 삶의 다른 경험들처럼 여러 번 해볼 수도, 미리 느껴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죽음의 순간에 스스로 직면해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가르침보다 우리에게 큰 울림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인생과의 작별을 앞둔 사람들은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배웠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을 더 원했을까?
1 당신의 임무는 사랑의 방해물을 찾아내는 일
“삶의 이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의 임무는 사랑을 찾는 일이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사랑의 방해물을 찾아내는 일이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은 사랑에서, 삶에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도 가장 중요한 일이다.”
몇 해 전 한 병원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목격되었다. 그 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던 환자들의 얼굴이 몰라보게 밝아진 것이다. 한 의사가 자세히 관찰해 보니 그것은 어느 청소부 아주머니 때문이었다. 그 아주머니가 중환자실에 들어왔다가 나갈 때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그 의사는 아주머니의 비결을 알 수만 있다면 백만 달러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느 날 복도에서 그 아주머니를 마주친 의사는 다소 무뚝뚝하게 물었다. “도대체 내 환자들에게 어떻게 하는 거죠?”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그냥 병실을 청소할 뿐이에요.” 그녀가 어떻게 환자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지 알고 싶어서 의사는 그 뒤로도 눈에 안 띄게 아주머니를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녀가 별달리 특별한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런 식으로 뒤를 밟은 지 2,3주가 지났을 때, 아주머니가 의사를 붙잡아 간호사실 뒤켠에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여러 해 전 겨울에 자신의 여섯 아이 중 하나가 몹시 아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주머니는 한밤중에 세 살 난 아들과 함께 응급실에 가서 아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몇 시간 동안이나 의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그녀는 품 안에서 어린 아들이 폐렴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과거의 고통과 아픔을 어떤 증오나 원한, 분노도 담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의사가 물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것이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무슨 관계가 있죠?”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죽음은 내게 더 이상 낯설지 않아요.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 같아요. 가끔 중환자실에 들어가 보면 환자들은 몹시 겁에 질려 있어요. 그러면 나도 모르게 그들을 쓰다듬게 돼요. 나는 그들에게, 나도 죽음을 보았는데 죽음이 다가와도 무섭지 않을 거라고 말해 줍니다. 그리고 그냥 함께 있어 줍니다.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요. 나는 다른 사람들 곁에 있어 주려고 노력해요. 그것이 사랑이지요.”
심리학도 의학도 공부하지 않았지만 아주머니는 삶의 가장 큰 비밀 하나를 알고 있었다. 사랑은 바로 곁에 있어 주는 것이며 돌봐 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2 당신 속에 다른 사람이 지나다니게 하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때로 텅 빈 공간이 되라. 다른 사람이 지나다니게 하라. 그것이 진정한 관게이다. 삶은 거울과 같다. 삶에 미소 지으라. 그러면 삶이 당신에게 미소 지을 테니까.”
건설 노동자 잭슨은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에도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리고 곧 앤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앤은 생의 마지막 해가 되리라 여겨지는 날들 동안 잭슨을 정성껏 보살펴 주었다. 앤은 잭슨과 함께 보낸 두 해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깊이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사랑에 나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걸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잭슨을 만나기 전까지는 어떤 사람과도 1년 이상 관계를 지속해 본 적이 없었어요. 잭슨이 아팠기 때문에 나는 나를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모두 이겨 낼 수 있었어요. 잭슨을 사랑하면서 마침내 제대로 된 인간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바로 그때 최고의,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수많은 치료법을 시도한 끝에 잭슨은 마침내 골수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가 살아난 잭슨은 눈에 띄게 건강을 회복해 갔다.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누구도 그가 백혈병을 앓던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는 전과 같지 않았다. 앤은 무엇엔가 갇힌 듯한,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열정이 식었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한쪽이 심각한 병을 앓으며 죽음을 향해 치달아 가는 상황에서 맺어진 관계의 경우, 이런 일이 흔히 발생한다. 앤의 변화를 눈치 챈 잭슨은 그녀와 얼굴을 맞대고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은 날 사랑하고 존중했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내 아내로 남겠다고 했어. 하지만 그건 내가 6개월 뒤에 죽을 경우의 이야기였지. 난 죽지 않았고, 실질적인 관계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이것은 평생토록 이어갈 결혼 생활의 시작이기도 해. 나를 옥죄고 있던 죽음의 굴레가 벗겨졌으니, 우리에겐 일상적인 일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겪는 일반적인 문제들만이 남은 셈이야. 난 다시 한 번 삶을 살아갈 기회가 주어져서 기쁜데, 당신은 마치 종신형이라도 선고 받은 사람처럼 보이는군. 난 결국 살아남게 되었지만, 결혼 생활을 지속시켜 줄 마법 같은 해결책은 없는 것 같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가 앞으로도 50년이나 남아 있으니 일상적인 일들에 잘 대처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
감정에 대한 혼란스런 고민 끝에, 앤은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심리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절박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걸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 깨달았다.
“잭슨의 말이 옳았어요. 내가 어리석었어요. 지키지도 못할 근시안적인 약속을 한 거죠.
잭슨의 삶이 끝나가는 시점에 나타나 그의 곁을 지키는 영웅적인 여인이 되는 것과, 그가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깨닫게 되었어요.
잭슨이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해 준 덕분에, 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삶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하면서 일상적으로 겪는 경험들 속에 숨어 있다는 걸 터득했어요.
잭슨의 병 덕분에 헌신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하면서 그를 정말로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죽음이라는 극적인 요소의 도움 없이도 다시 그에게 열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잭슨과의 관계를 통해 앤은 자신의 내부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대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더 나를 화나게 할 때가 많다. 그들의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바로 그들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종종 나에게는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인간관계가 가져다주는 상황들은 삶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 준다.
때로 우리는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에서 어떤 부분이 달라진다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바라는 이유는 관계를 통해서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바꾸거나 관계를 변화시키면 완벽해지고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실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의 행복은 상대방을 ‘더 좋게’ 바꾸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 우리가 진정한 자신이기를 원한다면, 그들도 진정한 그들로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3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을 발견하라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이다.”
죽음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행동에서는 놀라운 상징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처음엔 마치 “나는 한때 이곳에 존재했었다.”고 말하려는 듯이 열심히 자신의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가 병세가 차츰 악화되고 감정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면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는다.
사진조차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기껏해야 그것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 자신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후손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 결코 사라지지 않을 자기 자신의 진정한 부분이라고.
죽어가는 한 여성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누구입니까?” 그녀가 말했다.
“지금껏 내게 맡겨진 역할들 속에서 내 삶은 너무나 평범했어요. 다른 이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온 것 같았어요. 도대체 내 삶이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뭐가 다를까 싶었어요. 하지만 병을 앓게 되면서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어요.
난 아주 특별한 사람인 거예요.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거나 삶을 경험하지 못했을 거예요.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이 세상이 시작된 이후부터 끝나는 날까지, 나와 똑같은 사람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이것은 누구에게나 진실이다. 아무도 내가 겪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 내가 겪은 특별한 역사와 사건들로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다. 진정한 ‘나’는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특별한 존재이다. 자신만이 느끼고 자신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시간 동안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하라.
4 고통을 선물로 여긴다면 당신은 성장한다
“당신이 아름다운 정원에 앉아 있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고통 속에 있다면, 상실을 경험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그 고통을 아주 특별한 목적으로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로 여긴다면 당신은 성장할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로부터는 상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흥미로운 점들은 다음과 같다.
의학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둘째, 그들은 죽음이란 필요 없어진 옷을 벗는 것처럼 육체를 떠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셋째, 그들은 죽음 속에서 온전한 자신을 느꼈고, 자신이 모든 사물,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더불어 어떤 상실감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절대 외롭지 않았으며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늘 고통스러워한다. 상실을 겪었기 때문이 아니라 상실을 겪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힘겨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결국 언젠가는 잃게 될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삶이 곧 상실이고 상실이 곧 삶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평생 상실과 싸우고 그것을 거부한다. 옛 유대 격언에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춤을 추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는 말이 있다.
당신이 많은 시작의 순간에 있었다면, 그것들이 끝나는 순간에도 있게 된다는 뜻이다. 만일 당신에게 친구가 많다면, 그만큼의 이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이 하나의 학교라면 상실과 이별은 그 학교의 주요과목이다.
집과 자동차, 직장, 돈과 젊음, 사랑하는 사람, 그 어떤 것도 영원히 붙들어둘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사실 때문에 슬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자각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 누리고 있는 경험들의 소중함과 사물들의 가치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상실이 주는 고통과 배움을 통해 삶에서 하찮게 여기던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도 깨닫게 된다.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잃게 되었을 때 느끼는 슬픔의 감정은 당신이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이다. 상실의 아픔을 겪으면서 당신이 잃어버렸다고 슬퍼한 사람이나 사물이 사실은 한 번도 당신에게 소유된 적이 없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그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영원히 소유하게 되리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상실 없이는 성장도 없다. 상실로 인해 고통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결국 더 강해지고, 더 온전한 존재가 된다.
5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라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별의 순례자이며, 단 한 번의 즐거운 놀이를 위해 이곳에 왔다. 우리의 눈이 찬란하지 않다면, 어떻게 이 아름다운 세계를 반영할 수 있는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시골길에서 자전거를 타던 거 기억나니?” “그때 바닷가에 간 일 기억나?” 삶의 마지막에 이르면 가장 즐거웠던 놀이의 순간들을 회상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단 한 사람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더 일했어야 하는데”라거나 “근무시간이 8시간이 아니라 9시간이었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텐데” 하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삶을 누리고 놀이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것도 일평생 동안. 그런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항상 생산적이고 성공적이어야 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느라 존재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어느 성공한 사업가는 암과 한판 승부를 벌인 후에 말했다.
“난 곧바로 암 전문의를 찾아갔고 그 즉시 부어오른 부위를 제거했어요. 그리고 화학 치료를 받았죠. 난 부지런한 사업가에서 부지런한 환자로 변해 갔어요. 검사 결과를 꼼꼼히 확인하고, 약을 먹고, 의사의 진찰을 받았습니다. 병을 앓는다는 게 그렇게 큰일인 줄 몰랐어요.
화학 치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복직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암 때문에 이제는 내 삶도 너무 심각해졌어요. 모든 게 살아남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었고, 어쨌든 내가 살아 있음을 신에게 감사드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궁금해지더군요. ‘왜? 무엇 때문에 내가 살아남았을까? 일을 더 많이 하려고? 더 생산적으로 살기 위해서?’ 난 그때 비로소 깨달았어요.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공허한 삶을 살아왔는지.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은 삶의 의미를 성공에 두었고, 난 성공이라는 이름의 벽을 구성하는 하나의 벽돌에 불과했어요. 난 그런 삶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나는 삶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었어요. 지금은 그것들을 되찾을 시간이에요.”
삶의 종착점에 있는 환자들은 곧잘, 자신들이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뒤 무한한 행복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아니다. 두려움 속에서 살 때 당신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헬렌 켈러가 말했듯이 “삶은 하나의 모험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도서출판 이레 <인생 수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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