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를 아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
아모스 3: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서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찬송가 92장(위에 계신 나의 친구)
오늘 본문 말씀인 아모스 3:2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만민 중에서 구별하여 알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을 아신다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머리로 안다는 차원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안다’라는 이 단어의 원어적 의미를 좀 살펴야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안다’라는 단어 히브리어 ‘야다’는 본래 남녀가 결혼하여 함께 살게 됨으로써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가 쓰인 용례를 보면 창세기 4:1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여기서 아담이 하와와 ‘동침하다’는 말을 할 때에 ‘야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동침하는 것을 ‘야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의 앎은 단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교제와 체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알고 체험으로 알고 사랑함으로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남편으로서 아내 된 자기의 택한 백성을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서 너희만을 알았나니”
라는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족속 중에서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특별히 자기의 택한 백성으로 선택하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을 종종 하나님은 자기를 이스라엘의 남편이라고 표현하곤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을 특별히 자기의 아내로서 아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남편으로서 부양하고 지키고 먹이고 인도하셨습니다. 애굽에서 그 백성을 크신 팔로 구출해내시고 광야 40년 동안에도 그 아내 된 이스라엘 보호하시고 돌보셨으며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들이셨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이신 후에도 하나님은 세상 만민들을 다 알고 계시지만 특별히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중심으로 세상 역사를 펼쳐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시기에 곧 깊이 사랑하여 결혼한 바 되셨기에 책임도 지시고 보호 인도 부양 교제를 하시므로, 누군가 까닭없이 하나님의 아내 된 이스라엘을 건들면 하나님께서 가만 두지 아니하셨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건들면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서 그들을 치시어 감히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알고 계시며, 그는 자기가 아는 백성을 끝까지 책임져주십니다. 지켜주시고 돌보아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르신 말씀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14,15 말씀에 이르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고 하였습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은 자기의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면서 사랑하십니다. 그렇게 목숨까지 버리면서 사랑하는 것을 ‘나는 내 양을 안다’라고 표헌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참된 양은 그가 자기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 선한 목자이심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를 따릅니다. 요한복음 10:27 이하의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10:27~29)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도 주님께서 친히 이르신 말씀대로 주님은 자기 양들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가 아시는 자기 양들은 그 손으로 끝까지 지키고 보호하여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결코 그의 손에서 양들을 빼앗을 수 없도록 끝까지 지켜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안다는 것은 그 외아들의 목숨까지 내주면서 사랑하는 것이요 깊이 연합하여 돌보며 그의 나라까지 인도해들이는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그를 아는 것에 응답하여 그들도 하나님을 아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들도 여호와를 깊이 아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체험적으로 알아가는 사랑, 정절을 다하여 뜨겁게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앎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내 된 백성들에게 깊은 사랑과 정절을 담은 언약을 나눈 앎, 남녀가 결혼하여 아는 깊은 결속의 앎을 원하십니다. 자기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그의 아내로서의 사랑과 순결과 헌신과 신뢰, 믿음의 정조를 당연스럽게 기대하는 것입니다.
호세아 6:6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이르기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고 하셨습니다. 그의 백성들로부터 번제보다, 제사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 원하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단지 머리로 아는 것을 말하거나 지식적인 앎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아내가 남편을 온 몸과 마음으로 알며 사랑하며 깊이 교제하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아는 것을 여기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알고 사랑하여 그를 가까이 함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기뻐하며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래서 많은 재물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마음 중심에는 진정한 사랑이 없고 감사함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적으로, 지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잘 안다 해도, 마음은 냉랭하고 차갑고 사랑의 마음이 식어져 있고 형제에 대한 비판 정신만 가득해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신약 시대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에베소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편지 속에서 담긴 책망이 그러한 뜻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요한계시록 2:2~5)
이처럼 주님에 대한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이 없는 종교적 열심은 주님께서 싫어하십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만일 하나님을 등지고 버리고 죄악을 범하면 그에 대하여 매우 거룩한 질투심으로 자기 백성을 근실하게 징계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인 아모스 3:2 말씀에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서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고 말씀하신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깊이 알고 질투심 가득히 사랑하기에 그런 만큼 더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지나치게 사랑하거나 헛된 세상 우상을 마음에 들이거나 그의 계명을 어기고 거역하여 죄를 범할 때 그냥 두지 않고 반드시 근실하게 징계하십니다. 질투함으로 반드시 보응하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12 말씀에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고 하였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신분상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전혀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라고 평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전쟁터로 이끌고 가서 적군 블레셋에 의하여 칼에 맞아 죽도록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 중에서 이적을 행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두고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나님을 두려워함도 없고 하나님의 계명을 우습게 여기면서 이적과 표적을 행하여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몰려들 때에 교만하게 행한 그들을 향하여 주님은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평가하시면서 그들을 주님이 계신 천국이 아닌 바깥 어두운 데 지옥으로 가라고 명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됩시다. 그의 모든 계명을 듣기를 즐거워하고 그 모든 계명을 즐거이 순종하는 자가 됩시다. 또 무엇인가 좀 안다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자기의 부족함을 깊이 인식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를 열망해야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8:1~3 말씀에 이르기를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리적으로 우리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식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아는 것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요 그 진리를 진심으로 마음으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자는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피 흘리심에 대한 뜨거운 감격과 감사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피 흘리신 주님의 십자가를 감격하며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아는 자요 그가 구원받은 자요 하나님께 알아주는 자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지식은 머리로 연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요 무릎 꿇고 기도함으로 얻어지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자기를 치고 또 쳐서 주의 계명에 순종하여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 살아 있는 지극히 복스러운 지식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 지식이 없으면 결국은 무너집니다. 시험에 넘어집니다. 세상에 끌려갑니다. 마귀의 공격을 당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교적으로는 성전 제단에 많은 제물을 쌓여 있었을지라도 이 지극히 복된 지식이 없었기에 그들은 망했습니다. 호세아 4:6 말씀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므로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를 알되 힘써 여호와를 알아갑시다. 머리로 교리적으로만 알지 말고, 가슴으로부터,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그의 모든 계명을 즐거움으로 순종하며, 세월이 갈수록 주님에 대하여, 우리 하나님에 대하여 더욱 뜨거운 연심을 품고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며 그를 더욱 가까이 하는 자가 됩시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내로서 우리가 그를 뜨겁게 사랑함으로 더욱 더 그를 알아갈진대, 우리가 신랑이신 구주 예수님을 뜨겁게 흠모하여 늘 사랑하여 그를 더욱 깊이 알아갈진대, 이 땅에 거하는 동안 주님의 성령께서도 우리를 더욱 가까이 하며 은밀한 교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필요할 때마다 감추인 비밀들을 드러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부터 깊은 사랑의 연합을 체험하게 해주실 것이며 범사에 동행하여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날에는 하늘에 예비하신 영원한 그의 집으로 우리를 인도해들이시어 그와 더불어 영원한 행복과 교제를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