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폭포
하희경
문득 폭포를 생각한다. 저 높은 곳에서 세상을 향해, 작은 물방울들이 한데 모여 땅으로 쏟아져 내린다. 폭포가 목이 터져라 외친다.
떨어질 곳 찾아 두리번거리는 물줄기에 남은 생을 맡길 수 있다면, 죽지 않으려고 살아온 날들이 새 힘을 얻을지 모르겠다. 산다는 것의 그 치열함을 다시 맛보고 싶다.
물 만난 고기처럼 팔딱거리는 순간 언제였는지 어쩌면 웅장하지 않아도, 이름 하나 남기지 않아도, 잘 살았다고 폭포가 알려줄지도 모른다. 폭포를 보러 가야겠다.
- 폭포」, 자작시
여긴 천성산 홍룡사라는 절이야. 천성산은 예전에 도롱뇽을 예로 들며, 환경문제로 소란스러웠던 곳이지. 이곳에 폭포가 있어. 웅장하진 않지만 제법 운치가 있어서 한번쯤 볼만해. 친구가 절 경내를 이리저리 안내하면서 설명한다.
지난 월요일이었다. 모임에서 폭포를 주제로 시를 써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핸드폰 메모장에 “폭포”라는 두 글자를 써 놓고 여러 날을 들여다보았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대개의 경우 주제를 받으면 그림이 대충 그려지는데 이번에는 영 생각이 나질 않았다. 며칠을 끙끙거리다 모임 있는 날 아침에야 간신히 몇 줄 적었다.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상상해가며 썼지만 내가 봐도 형편없었다. 폭포를 보러가야겠다고 쓴 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폭포를 직접 본 느낌을 잘 표현했다.
수업 시작하면서 교수님이 예전에 나이아가라 폭포를 본 경험을 말씀하신다. 보는 지역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며 폭포에 대해 표면적인 것만 그리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나이아가라 폭포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내가 너무 조용했나보다. 갑자기 내게 언제 어디서 폭포를 봤냐고 물으셨다. ‘폭포요? 본 적이 없는데요.’ 교수님 눈이 동그래진다. “설마, 폭포를 본 적이 없다고, 진짜로? 그동안 지하에서만 살았나, 어째 폭포를 못 봤을까?” 하신다. ‘그러게요, 진짜 지하에서만 살았나 봐요.’ 했더니 갑자기 웃음바다가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엉뚱한 대답이라 따라 웃고 말았다. 무심코 질문했다가 엉뚱한 답변에 당황하는 교수님을 보면서 역시 폭포는 보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게 폭포는 사진이나 텔레비전에서 본 게 전부다. 공원 같은 곳에 만들어진 인공폭포는 본 적 있지만 저들이 말하는 자연 폭포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폭포를 본 적이 없는 시가 대략 80점 수준은 되는지, 조금만 손보면 대표 시로 삼아도 될 것 같다는 평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집에 오는데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친구도 웃으면서 제법 운치 있는 폭포를 알고 있으니 부산까지 오면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다음 날 만사 제치고 열차에 올랐다. 폭포라는 시를 쓴 다음에야 폭포를 보러 가는 내가 우습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기차 안에서 코로나 이전에 기차 타고 경주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만사에 느린 내가 처음 경주에 갔던 날이 생각난다. SNS에 올라온 연꽃 사진이 어찌나 예쁘던지 직접 보고 싶었다. 사진 올린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이구동성으로 부여 궁남지로 가라 한다. 하지만 시내버스도 간신히 타던 때라 장거리버스를 탈 수 없었다. 내가 버스는 좀 낯설고 대신에 기차는 탈 수 있다고 하자 경주로 가라고 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라 경주에 갔다. 내 또래 연배들은 수학여행으로 다들 가봤다는 경주를 오십 후반에야 가게 된 것이다. 시기가 일러 연꽃은 겨우 한 송이 보고 왔지만, 어찌나 기쁘던지 지금도 그 감동이 사라지질 않는다.
마침내 기차가 부산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오니 친구가 손을 흔든다. 친구가 이끄는 대로 폭포 있는 곳으로 갔다. 제법 한적한 곳에 절이 있었다. 대웅전에서 불교 신자인 친구를 따라 절했다. 절 마당을 지나, 큰 폭포는 아니지만 제법 볼만하다는 폭포를 향해 친구와 함께 산길로 접어들었다. 굽이진 오솔길을 돌아 드디어 폭포를 만났다.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졸졸졸 마치 시골 마당에 있는 펌프에 마중물을 부으면 처음 나오는 물줄기처럼 앙증맞은 폭포가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애써 안내한 친구 표정이 볼만하다. “분명 웅장한 폭포는 아니지만 볼만 했는데, 비가 너무 안 와서 그런가 보다.”고 어쩔 줄 몰라 한다.
어찌 폭포뿐인가, 사는 게 바빠 많은 것을 놓쳐야 했다. 때때로 억울하고 약이 올랐지만 이제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지 싶다. 남들이 보았다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어떤 모습인지, 내 생전에 볼 수나 있을지, 도무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에게는 귀여운 폭포가 있다. 폭포 앞에서 동그란 눈으로 어쩔 줄 몰라 하던 친구와, 끊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던 물줄기는 내 안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툭하면 웃음꽃을 피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