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행지 정보를 수집하는 것부터 이동, 관광, 숙박, 식사 등 여행 일정마다 이동권, 접근권 제약을 겪기 때문이다. 이에 장애인의 여행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제도적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는 3일 이룸센터에서 토론회를 열고, 장애인이 여행지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과제를 제시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가 3일 이룸센터에서 연 '접근 가능한 여행의 현황과 과제' 토론회. |
최근 국제적으로는 장애인의 여행 권리 보장을 위해 각종 법, 제도 등 제정을 장려하고 있다. 예컨대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는 2013년 총회에서 ‘모두를 위한 접근 가능한 관광(Accessible Tourism For All)’을 선언하고 장애인의 무장애 여행(Barrier-Free Tour) 실천을 각국에 권고한 바 있다. 또한 한국이 2008년 12월 비준한 바 있는 UN 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당사국에서 장애인의 문화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지킬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는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진행되는 3차 관광개발기본계획에서 취약계층의 관광 확산을 위해 관광시설 무장애화, 장애 특성별 관광 도우미 양성 등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정부는 2014년 5월 개정 「관광진흥법」에 장애인 관광활동 지원, 취약계층의 관광 복지 증진 등의 조항을 신설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장애인들이 실제로 여행에 불편 없이 참여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4월 밝표한 조사 자료에 의하면, 장애인 중 87.4%가 여행 중 불편함을 느낀 것으로 드러났다. 불편을 느낀 이유로는(중복 응답) 장애인 이동 편의시설 부족 74.1%, 장애인여행 상품 부재 44.8%, 비싼 여행비용 30.8% 순으로 조사됐다.
▲발표자로 나선 이봉구 교수. |
이에 이날 토론회 발표자로 나선 이봉구 동의대학교 국제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관광지와 관광 시설에 대한 ‘관광 접근성 인증제’를 도입하고 대중교통과 관광버스 등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휠체어 탑승설비와 같은 편의시설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관광 정보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관광지와 관광시설의 편의시설, 교통 등 장애인에게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어 해당 정보를 전국적으로 통합한 관광 정보 체계를 구축해, 이를 웹 접근성이 확보된 웹사이트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관광 종사자 교육 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이수한 종사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식으로 종사자의 장애 이해도를 높이고, 별도로 장애인 전문 문화관광 해설사와 관광 코스 개발자를 육성해 장애 친화적인 관광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보편적 관광 계획과 별도의 법정 계획으로 ‘접근 가능한 관광 활성화 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이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수립하게끔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장애인의 물리적 접근성, 정보 접근성 등을 규정한 기존 법률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모니터링을 시행하고, 법률 준수를 장려하는 각종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이들도 정책적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노영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접근 가능한 관광’이 장애인뿐 아니라 보편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보았다.
노 연구위원은 그 근거로 2013년 통계청 등 자료 분석 결과 장애인을 비롯해 이동에 제약이 있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27%인 1381만 명에 이른다는 점을 들면서, “앞으로 이동이 불편한 65세 이상 노인들이 점차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접근 가능한 관광은 특정한 누구를 위한 정책이 아니다”라며 취약계층 관광 진흥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두현 서울점자도서관 관장은 국가가 여행 보조 인력을 확충해 장애인 여행의 질을 높일 것을 제시했다.
김 관장은 “장애인은 여전히 여행지에서 정보를 얻거나 즐길 거리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를 보장하려면 민간 종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만, 민간 영역의 선의에 기대기는 어렵다.”라며 “(여행의 즐거움을) 담보하기 위해 현지인 장애인 관광 도움 인력을 양성하고 그 비용을 국가가 지원한다면, 장애인이 불편을 겪거나 시혜적인 도움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론회 참가자들. |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국관광공사 측에서 토론자로 나와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하고 있는 ‘접근 가능한 관광 기반 조성 사업’ 추진 현황을 밝혔으나 다른 토론자와 참석자로부터 역풍을 맞기도 했다. 사업 방안 중 무장애 관광환경 등을 고려해 선정된 곡성 기차마을, 순천만, 대구 근대골목 등 6곳의 ‘열린 관광지’에서 접근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애인 여행작가인 전윤선 씨는 “순천만은 경치가 좋고 휠체어 접근도 가능했는데, 문제는 경사로가 정비되지 않아 전망대에 올라가 풍경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순천만에서 운행하는) 갈대 열차에는 휠체어 탑승이 어렵고, 주변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도 부족하다.”라며 “곡성 기차마을도 휠체어로 돌아다니기에는 무리가 없으나, 결정적으로 기차를 탈 수가 없다. 기차를 타지 못한다면 굳이 여기에 올 필요가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한 참가자 또한 “열린 관광지라고 선정해 놓은 곳인데 근대골목의 경우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 한 군데밖에 없어 불편을 겪었다”라며 “장애인이 관광할 수 있는 곳이 아닌데도 이런 곳을 (열린 관광지라고) 정한 이유가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정병옥 한국관광공사 국민관광복지팀장은 “열린 관광지는 관광 매력도, 무장애 정도, 무장애 개선 의지를 고려해 선정됐다”라며 “대구 근대골목의 경우 평탄하지 않아 휠체어 이동이 어렵다고 알고 있다.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과 경사로를 확충하기 위해, 대구 중구청과 협의 중”이라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