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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군장교62기 원문보기 글쓴이: 萬愚
처남이 우리 내외의 결혼40주년기념으로 일본 하나마키(花卷) 3박4일 패키지투어를 깜짝 선물로 마련했습니다만
대상포진을 앓고 있는 중이라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온천관광이라는 말과 우리 내외를 극진히 여기는 그의 마음과
정성이 갸륵하고 대견하여 따라 나섰습니다.
상품명: 하나마키(花卷)온천 3박4일♨
일정: 11.8(목)~ 11.11(일)
항공편: KAL전세기
여행사: 여행매니아
11.8(목) 인천공항~하나마키
마중나온 하나마키 시청 직원 및 호텔 직원들 하나마키 호텔 본관
하나마키 호텔은 千秋閣(SENSUKAKU), 本館(HOTEL HANAMAKI), 紅葉館(KOYOKAN) 세 호텔로 이루어져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 호텔마다 별도의 대온천장 및 식당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5월에 로즈가든의 장미가 유명하고 호텔 산책로가 아름답습니다.
산책로에 일본 최고급 호텔인 佳松園(KASHOEN)이 있습니다.(1인 3만엔)
佳松園
호텔 주변 산책로(걸어서 30분)
카마부치노 폭포
舊 하나마키 온천 여관
하나마키 호텔 본관과 일본식 룸
하나마키(Hanamaki, 花卷)
하나마키는 일본 동북부 이와테(岩手)현의 중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은하철도 999의 작가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이곳에 명물 하나마키 온천은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히라이즈미 유적, 겐비케이계곡, 유리공예마을, 모리오카, 다자와 호수 등을 둘러 볼 수 있다. 특히 다자와 호수는 전설을 간직한 금빛 다쯔코상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미즈사와 온천욕 체험도 포함되어 있는데 수심 1m의 온천수와 우윳빛 유황온천을 체험할 수 있다.
1954년 시로 제정되었다. 1613년이래 난부 씨[南部氏]의 조카마치[城下町]이자 오우가도[奧羽街道]의 역참(驛站)으로 번성하여 '하나마키 상인'이라 불리는 호상(豪商)이 생겨났다. 벼농사 및 야채·과수 재배가 행해지며 공업으로는 정밀기계·전기·식품가공업 등이 발달해 있다. 시의 서부에는 하나마키 온천 외에 많은 온천지가 있다. 하나마키 공항, 도호쿠[東北] 자동차도로, 하나마키 인터체인지가 설치되어 있다.
면적 384.73㎢, 인구 약 십만명?
11.9(금) 히라이즈미(平泉)유적 주손지(中尊寺)-콘지키도(金色堂)세계문화유산 관광
히라이즈미(Hiraizmi, 平泉)
총면적은 63.39㎢이다. 이와테현의 남쪽에 위치한다. 비교적 낮은 구릉지대에 있고, 코로모강[衣川], 기타카미강[北上川] 등이 흐른다. 이러한 지리 조건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군사적 요충지의 역할을 해왔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말기에 오슈 후지와라[?州藤原] 일족의 근거지였다. 당시 히라이즈미[平泉]의 인구는 10만~15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헤이안쿄[平安京]에 이어 2번째로 큰 도시였다. 현재 주손지[中尊寺(중존사)]나 모쓰지[毛越寺(모월사)]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1889년 4월 1일 히라이즈미촌[平泉村], 주손지촌[中尊寺村], 도고우치촌[?河?村]이 통합하여 히라이즈미촌[平泉村]이 되었다. 1953년 10월 1일일 정제시행으로 히라이즈미정[平泉町]이 되었다. 1955년 4월 15일 히라이즈미정[平泉町]과 나가시마촌[長島村]이 통합해 현재의 히라이즈미정[平泉町]이 되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철도는 JR도호쿠혼선[東北本線], 도로는 고속도로 도호쿠자동차도로[東北自動車道], 국도 4호 등이 지난다.
관광지로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 정토사상을 대표하는 사찰인 주손지와 모쓰지가 잘 알려져 있으며, 주손지의
곤지키도[金色堂(금색당)]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해마다 5월과 11월에 후지와라마쓰리[藤原まつり] 등의 축제가 열린다.
히라이즈미 유적 주손지 경내 단풍이 절정을 이루어 너무나 아름답다.
주손지 경내 단풍
주손지 절의 콘지키도(金色堂 일본 국보 1호)
주손지는 천태종의 동북 대본산으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20여 개의 주요 불당과 보관소, 신사 등으로 구성돼 있어 전체를 둘러보기만 하는데도 약 2시간여 이상이 소요됩니다.
주손지를 방문한 일본 전통시 하이쿠의 명인 마쓰오 바쇼가 앉아 시작(詩作)을 한 곳으로 전해지는 전망대가
위치합니다.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바쇼가 읊은 하이쿠 비문
1644 일본 이가 구니[伊賀國] 우에노[上野]~ 1694. 11. 28 오사카[大阪].
일본에서 하이쿠[俳句]의 대가로 꼽히는 인물.
정식 이름은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본명은 마쓰오 무네후사[松尾宗房]. 17음절 하이쿠에 불교 선종의 정신을 불어넣고 이 형식을 널리 인정받는 예술 표현수단으로 만들어, 17음절 하이쿠 형식의 의미와 전통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그는 일찍부터 하이쿠에 관심을 가졌지만, 처음에는 문학에 대한 관심을 접어두고 고향의 봉건 영주 밑에 들어가 시종으로 일했다. 그러나 1666년 주군이 죽자 사무라이(무사)의 지위를 버리고 시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수도인 에도[江戶:지금의 도쿄]로 나온 그는 시인이자 비평가로 차츰 명성을 얻었다. 1679년에는 '새로운 형식'으로 된 첫번째 시를 썼는데 그는 이 형식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마른 나뭇가지 위에/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가을의 해질녘"과 같은 시구가 불러일으키는 소박한 서술적 분위기와 서로 관계가 없는 두 현상을 비교하고 대조하는 기법은 바쇼 문체의 특징이 되었다.
당시 하이쿠는 사소하지만 인기있는 문학적 오락으로서 시중에 떠도는 덧없는 소문을 암시하고 형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진부한 하이쿠의 테두리를 과감하게 뛰어넘으려고 애썼으며 하이쿠는 참신하면서도 영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쇼는 불교의 선종 철학에 입각해 사소한 것 뒤에 숨겨진 가능성을 드러내고 삼라만상의 상호의존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세계의 의미를 단순한 시형식에 압축·표현하려고 애썼다.
1684년부터는 여행을 시작했는데 후에 이어진 숱한 여행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여행 이야기는 여행길에 본 다양한 광경을 기록한 하이쿠만이 아니라 그 하이쿠의 배경을 설명해주는 아름다운 산문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북부지방을 여행하고 쓴 〈오쿠노 호소미치 奧の細道(오쿠노로 가는 작은 길)〉(1694)는 가장 아름다운 일본 문학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여행하는 동안에 현지의 시인들을 만나 렌가[連歌]를 짓는 솜씨를 겨루었는데 솜씨가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일부 비평가들은 렌가를 그의 대표작으로 간주한다. 바쇼가 렌가를 짓기 시작했을 당시에는 이어지는 시구 사이의 관계가 대체로 말장난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바쇼는 시인은 단순히 말솜씨만 좋아서는 안 되며 '향기'와 '메아리', '조화'를 비롯한 섬세한 이미지의 연상에 따라 시구를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쇼의 시를 묘사할 때 흔히 쓰이는 용어는 '사비'[寂]이다. 이것은 예스러운 것, 한적한 것, 빛바랜 것, 은근한 것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이런 특징은 "국화 향기……/그리고 나라[奈良]에 있는/고색 창연한 부처들"과 같은 시구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시든 국화 향기는 옛 수도 나라에 있는 오래된 불상들, 먼지를 뒤집어쓰고 칠이 벗겨져가는 불상들의 시각적 형상과 어우러진다. 바쇼는 자신이 쓴 시의 온화한 정신과 일치하는 삶을 살면서,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화려함과는 대조적인 검소하고 소박한 은둔생활을 했다. 그는 사회와 완전히 관계를 끓고 '바쇼안'[芭蕉庵]이 있는 후카가와[深川]로 들어가곤 했는데 '바쇼안'은 자신의 필명을 따서 지은 소박한 오두막이었다. 후세 사람들은 바쇼의 인간성과 그의 시를 기려, 그를 하이쿠의 성인으로 추앙했다.
<바쇼의 하이쿠 기행> 책소개
1689년 음력 3월 27일부터 9월 6일까지의 156일 동안, 지금의 도쿄 후카가와에서 출발하여 오쿠를 거쳐 호쿠리쿠 로를 따라 오가키가지 이르는 6,000여 리의 여행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바쇼의 마지막 기행문이며 그의 하이카이 문학의 도달점으로 평가되고 있는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 문학의 작품에서 외국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작품이기도 하다.(218면)
바쇼는 모든 문물이 도시로 향하고 일찌기 자본주의적 성향을 띠기 시작한 이 시대에 저, 변방으로의 여행, 매우 고된 여행을 통하여 하이카이와 문예를 완성해 갔다. 따라서 일본인에게 바쇼의 이미지는 오로지 하이카이와 여행으로 평생을 일관한 속세를 초월한 여행 시인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현대 일본인들이 동경하는 것이기도 하다.(212면)
바쇼풍 하이카이는 바쇼의 무소유를 지향한 걸식 선언, 은둔과 여행에 일생을 바친 탈속 행위와 그것을 지지한 각 지방의 열렬한 문하생과의 공감의 좌를 모태로 생겨났다. "높이 깨닫고 속세로 돌아가자."라고 설파했던 바쇼는, 문학과 종요,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현실 이익을 추구하고 향락과 유희가 만연해 있던 일본 근세 시대에, 은둔과 방랑의 생활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 매우 반시대적인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반시대성이야말로 오늘날에도 그가 일본인의 동경하는 인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계기로서 작용하고 있으리라.(213면)
이것은 일본인만이 아니라 속도와 물질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동경해마지않는 삶이다. 언제나 어떤 상황에는 반작용이 일어나기 마련이이서 질주해가고 있는 현대인은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회의하게 된다. 이게 과연 삶인가 하면서 삶의 노예가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 삶의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죽을 때까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일벌레로 바쁘게 살다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할 수만 있다면 여유롭게 살고픈 욕구가 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사람의 몸이 기계가 아닌 이상 죽도록 일만 한다는 것은 너무도 슬프고도 무의미한 일이다. 지금도 아날로그적 삶을 그리워하고 자연으로 귀환해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이쿠는 절제미가 있다. 이것이 최대의 강점이라 생각한다. 그 짦은 시구에 엄청난 함축성을 가지고 있다. 시를 써 본 사람들은 긴 시를 쓰는 것보다 짧은 시를 쓰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버려야 빛이 나지만 아까워서 버리지 못할 시어들이 얼마나 많은가. 취사선택이 아주 필요한 것이 특히 '시'인 것이다. 모두를 끌어안고 가다보면 핵심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과감히 버려야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하이쿠'이다.
<바쇼의 하이쿠 기행>에 있는 하이쿠
"세상 사람이/찾지 않은 꽃이여/ 처마 밑 밤꽃"
겐비케이계곡
계곡 반대편에서 주문한 단고가 바구니에 담아 밧줄을 내려온다.
한국관광객이 주문하면 태극기가 걸리고 애국가가 나오고 주인이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단고(어린 시절 어깨에 물지게 같이 지고 당고! 당고! 앙고 당고! 팔던 아저씨가 생각난다.)
하나마키 출생 그들이 자랑하는 미야자와 겐지 우리에게는 "은하철도 999"로 더 유명한
<미야자와 겐지의 일생>
욕심은 없고
결코 성내지 않으며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어
......
남쪽에서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겁내지 말라고 일러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송가 있으면
부질없는 짓이니 그만두라 말하고
......
모두에게 멍청이라 불리고
칭찬도 듣지 않고
골칫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인간이
나는
되고 싶다
-미야자와 겐지-
일본의 대표적인 동화 작가이자 시인이면서 농예과학자인 미야자와 겐지
(1896~1933)는 이와테 현 하나마키 시의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겐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일본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단가를 짓기 시작하였는데,
열여덟 살 무렵에는 동화를 지어 형제에게 읽어 주었다고 한다.
1921년에는 무작정 도쿄로 상경하여 동화를 창작하였는데, 겐지 동화의 초고는
대부분 이 시기에 씌어졌다.
이후 누이 동생의 병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온 겐지는 1921년 12월 히에누키
농업 학교의 교사로 1926년 3월까지 근무하게 된다.
이 시기는 그의 문학이 화려하게 꽃을 피운 시기였는데, 시집 《봄과 수라》(1924)와 동화
《주문이 많은 음식점》(1924)을 각각 자비로 출판했다
"봄과 수라"는 생전에 간행된 유일한 시집이고 몇 몇 사람에게서 격찬을 받았지만
널리 읽히지는 않았다.
농업 학교 교사 시절에 농민들의 빈곤한 생활을 알게 된 그는 1926년 3월
고향인 하나마키로 돌아가 거기서 젊은 농민들에게 농학이나 예술론을 강의하며
벼농사 지도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농민의 삶을 알고 싶어 농학교를 퇴직하고 스스로 농업생활을
실천하면서 라스(羅須)지인(地人)협회를 설립하여 농업과학 연구와
농사 지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농민예술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병석에 눕게 되었으며 자신의 농업 기술로는 농민들을 가난에서 구할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절망,
농민들의 도시 사람에 대한 반감 등에 부딪혀 좌절감은 더욱 깊어진다.
결국 겐지는 1933년 급성폐렴으로 37세에 요절한다.
만년에 나온 동화로는 걸작 《은하 철도의 밤》,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등이 있다.
종교와 자연과 과학이 융합된 독자적인 소재를 다루었고 일련종의 신앙에 기초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동화로는 "주문이 많은 요리점", "바람의 마타사부로","은하철도의 밤" 등
100여 편이 있고, 시에는 "비에도 지지않고", "영결(永訣)의 아침" 등 400여 편이 있다.
미야자와 겐지는 주로 생명 존중 사상과 공생(共生)의 행복관을 작품에 담아냈다.
이것은 당시 군국주의적인 일본 사회에서는 외면당했지만, 사후에 독자들에게
인정받아 지금은 겐지 붐이라고 할 만큼 열광적인 독자군이 형성되어 있다.
이는 겐지의 작품이 현대 사회에 대한 환멸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겐비케이 유리공예마을 관광
<호텔로 돌아와 식사 후 공연관람>
호텔 저녁 부페
감사의 노래(번역)
고마워요 고마워, 건강하게 長壽하여 고마워요.
자식, 손자, 증손자, 고손자도 다 갗춘(있는) 장수요.
인생은 오십부터 환갑을 넘고 고희의 언덕도 희수에 미수에 백수의 축하도
그리고 가내의 번성도 당신 덕분일뿐
고마워요 고마워 건강하게 오래살아서 고마워요.
오늘의 고생도
오징어 같이 오래 씹은 후에야 맛이 나듯이
인생 달인도 쓰라린 역경때 격려를 받아
지지말고 좌절하자말고 걸어서 왔지요.
가내의 번성은 단신 덕분릴뿐
고마워요 고마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서 고마워요
이 노래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라고나 할까? 나이 든 노신사가 노래를 부르고 할머니와 손자, 손녀가 춤을 추는데
정말 가슴이 찡 했습니다.
11.10(토) 모리오카~아키다(秋田) 현
모리오카 이온쇼핑몰
다자와(田澤湖)
七種樹(한뿌리에서 7가지 나무가 나온다고 함)
타자와 호수가에 '타츠꼬'상
아키타 현 3대 명물: 쌀, 개, 미녀
영화 하치 이야기에 나오는 개가 아키타 犬(개)입니다.
줄거리
| 하늘이 내려준 자그마한 사랑의 선물...
1923년 12월, 아키다현 오오다테. 흰눈이 소담스레 내리는 어느 겨울날, 흰눈처럼 하얀 하치가 누렁이, 검둥이 형제들과 함께 태어난다. 아키다현청 토목 과장은 그중 하얀 강아지를 자신의 은사인 동경제대 농학부 교수 우에노 박사에게 보내기로 한다. 태어난지 한달, 세상에 눈뜨기도 전에 강아지는 동경으로의 낯선 여행을 시작한다.
동경 시부야에 우에노 교수 댁에 보내진 흰둥이. 하얀 색 털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강아지는 단번에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유독 애정을 느끼는 우에노 교수는 힘차게 땅을 박차고 서있는 이 강아지를 보고 八자라는 뜻의 '하치'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볕드는 마루에서 하치의 벼룩을 잡아주고, 첨벙첨벙 목욕도 함께 하는 우에노 교수님의 하치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서 부인이 질투할 정도다.
하치는 교수님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교수님의 사랑에 보답이라도 매일 시부야 역으로 출근하는 교수님을 배웅하고, 저녁에는 마중 나가며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도중 쓰러지신 교수님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이를 모르는 하치는 매일같이 시부야 역에서 교수님을 기다린다. 한해, 두 해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우에노 교수를 기다리는 하치.
1935년 3월 8일, 눈내리는 시부야 역에서 긴 기다림 속에 하치도 영영 눈이 되어 버리는데.
아키타 현의 하치미쯔야 (벌꿀가게) 벌꿀로 만든 카스테라와 슈크림이 맛있었습니다.
11. 11(일) 칠복사(七福寺), 테츠쿠리(수공예) 마을 관광 후
하나마키 공항~ 인천공항
칠복사
모리오카 테즈쿠리 마을
수공예촌, 도자기, 천연염색, 철기, 죽세공, 민예품 소개
<참고사항>
유카타[yukata, 浴衣]
흔히 남색 바탕에 독특한 거친 무늬로 염색(유카타소메[浴衣梁め])된 일본의 편안한 무명옷. 유카타는 원래 잠옷 또는
목욕 후에 집안에서 입는 옷으로 만들어졌다.
오늘날에는 더운 여름철 저녁에 옥외에서 입기도 한다.
일본의 여관과 호텔에서는 고객들이 편하게 입고 다닐 수 있도록 유카타를 제공한다.
유카타는 목욕을 하고 난뒤나 안감으로 입기위해 만든 것이지만
여름 평상복, 여름 축제나 봉오도리, 하나비같은 행사등에도 입습니다.
면으로 만들어진 간편한 무명옷이죠.
그에 비해 기모노는 입학식, 졸업식, 피로연과 같은 공식적인 행사 자리 이외에도
오쇼오가츠(正月) 와 같은 명절이나 시치고산(七五三), 성인식, 결혼식, 장례식 등
통과의례와 같이 의식을 갖추어야 하는 자리에서 입는 것으로
실크로 만든 의식용 옷입니다.
옷마다 차이는 있지만,
여자의 경우 유카타는 작고 아기자기한 무늬 기모노는 화려한 무늬가 대부분이구요
보통 유카타가 3000~4000엔정도하는데에 반해
기모노는 옷마다 가격의 차이가 크지만 대략 10만엔 정도(물론 싼것도 있습니다.)
하나마키 온천
이와테(암수) 현
일본 동북관광
여행매니아
www.tourman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