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제가 이혼녀입니다. 명색이 변호사인데 양육비도 못 받고 있어요. 이게 현실입니다.” 이혼은 변호사에게도 어렵고 서러운 결정이자 힘든 과정이다. ‘돌싱’ 변호사 정은세(가명) 씨는 “확신이 없다면 과감하게 이혼소송을 취하하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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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실에서 판사의 이 말이 떨어지면 대부분 여자들은 운다. 소리 내어 우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고, 그저 눈물만 흘리다 천천히 일어난다. 반면 남자는 어색한 표정으로 먼저 나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결혼생활에 한이 많은 건 여자 쪽인 것 같다. 그래서 이혼 상담을 하는 쪽도 여자가 훨씬 많다.
“실은 제가 이혼녀입니다. 명색이 변호사인데 저도 양육비 못 받고 있어요. 이게 우리나라 이혼입니다.”
“어머, 그래도 변호사님은 능력 있잖아요. 양육비 좀 못 받아도 뭐가 걱정이겠어요?”
양육비를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혼이 곧 아이와의 절연이 되는 우리나라 이혼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싶다.
“이혼만 하면 훨훨 날아다닐 것 같아요, 변호사님.”
“글쎄요. 이혼 후가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저는 이혼 안 했을 겁니다. 몰랐으니 했지.”
“이혼하면 그렇게 힘든가요? 변호사면 돈도 잘 버실 거고 누가 무시도 안 할 거고….”
그녀의 오해처럼 그렇게 걱정 없는 이혼녀의 삶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혼은 변호사에게도 어렵고 서러운 결정이자 과정이다.
변호사인 나도 이혼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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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유로 이혼을 결심하지만 이혼 과정은 대부분 지난하다. 죽어도 이혼은 못한다고 버텨서 판결까지 받아야 하는 경우부터 재산을 빼돌리거나 아이를 데려가서 보여주지 않아 애를 말리는 일이 많다. 그런 상대방과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소송을 하고 나면 여전사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노랫가사처럼 이혼을 하고 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시의 슬픔은 잊을 수 있지만 상처는 지울 수 없다. 아이가 어릴 때 이혼한 나는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아 그나마 수월하게 일과 양육을 같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혼녀란 이유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겪어야 했기 때문에 이혼 후 3년이 어떻게 지났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왜 이혼했었는지, 그 이유조차 생각이 안 날 때가 온다.
하지만 자고 있는 아이 얼굴을 보다가 가슴이 칼로 베이는 듯 싸하게 아픈 날은 계속 반복된다. 주변에서 ‘애 잘 키웠다’는 칭찬을 들으면 더 없이 뿌듯하다가도 문득 외로움이 찾아들 때나, 모든 복을 타고난 듯한 사모님들을 우연히 만났을 때 밀려드는 서러움은 여전히 반복된다.
때로는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주인공 엄마가 딸 옥희를 부둥켜안고 “엄마는 옥희만 있으면 돼” 이렇게 자기 다짐을 반복하던 장면이 가슴 절절하게 공감될 때도 있다. 계절이 바뀌느라 마음이 싱숭생숭해질 때나 달콤한 로맨스 영화를 보고 났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나 역시 되뇌고 마는 것이다. “엄마는 OO만 있으면 돼.”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극본은 공교롭게도 남자 작가 주요섭의 손에서 태어났다. 어떻게 남자가 과부의 심정을 알았을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작가 주요섭이 지인의 얘기를 듣고 소설화한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1930년대 과부가 겪었던 갈등을 21세기 이혼녀도 여전히 겪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도통 생각나지 않았던 이혼의 이유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바로 전 배우자와 얽힐 때다. ‘그래. 이래서 내가 이혼했지’라며 가슴이 꽉 막혀버리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면 비로소 ‘내가 이혼 잘했지’라며 시원해 한다. 이런 심정은 연애니 결혼이니, 이런 것에 대한 갈망을 다 부질 없어지게 만들어 현재의 ‘이혼녀’ 생활을 감사하며 지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물론 전 배우자도 나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혼이 정답일까?
이혼 상담을 오는 사람 중 열에 일곱은 ‘이혼을 꼭 하겠다’고 결정 내린 후 재판을 준비하러 오는 사람이다. 나머지는 ‘이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상담이나 한 번 받아보자’하며 오는 사람이다.
나는 실제로 이혼을 해봤기 때문에 이혼을 권하지 않는 변호사 축에 속한다. 좋은 배우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배우자도 아닌 이와의 결혼 생활은 아직 자녀가 어리다면 유지하는 게 낫다.
남편과 같이 사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이혼 후 그간 해본 적 없는 몸 고생을 할 마음도 없는 중산층 여성의 경우 적나라한 재산분할 견적서(!)를 뽑아주면 이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의 중산층은 경제적 기반이 튼튼하지 않다. 겉으로 드러난 그들은 자기 소유의 아파트에서 살고 신형 중형차를 타고 다니며 한두 명의 자녀를 키우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는 급여를 받고 있어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소송에서 재산 분할 시 이것저것 빼고 나면 거품이 태반이다. 아파트는 대출을 끼고 샀기 때문에 팔았을 때 대출금과 세금, 이런 저런 비용을 모두 빼고 나면 절반 가치밖에 안되고, 자동차는 할부금을 갚고 있는 중이며, 생활비는 매달 자녀 교육비로 지출돼 예금과 같은 현금 보유액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성(性) 문제로 외도 발생하는 경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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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도 수 년 동안 이혼을 고민하다 실행에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돈만 풍족하면 배우자와 안 맞아도 어떻게든 살아질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쇼윈도 부부로 지내는 건 자신까지 속여야 유지되는 삶이기에 매우 고통스러운 일로 보였다. 결국 이혼이 유일한 해답이 되고 마는 것이다. 유명하기 때문에 이혼 과정이 노출되고 그만큼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남의 소문은 길어야 3일이라고 했다.
세간에서는 이혼 사유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성격 차이’를 두고 실상은 성(性) 문제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만 보면 성 문제 하나 때문에 이뤄진 이혼상담은 없었다. 일례로 배우자의 외도가 넓은 의미에서의 성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아내나 남편과의 성(性) 문제 하나 때문에 외도가 일어나는 경우는 없었다.
함께 살기 힘들어져서 하는 게 이혼이라지만 이혼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배우자가 가정폭력을 주도하거나 자녀를 괴롭히는 경우, 중증의 의심병이나 성격적 결함이 있는데도 치료나 상담을 거부하는 경우, 심각한 마마보이나 마마걸인 경우 이혼을 강하게 권한다.
반면에 이혼을 해야 할 상황이지만 권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중증 정신질환을 앓는 경우가 그렇다. 이혼을 하게 되면 성년의 자녀가 남편의 보호자가 되기 때문에 차마 자신의 자녀에게 부양의 짐을 건넬 수 없어 엄마로서 이혼을 못하는 것이다.
그런 가정 환경에서 약 2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여성은 대개 모성이 강하다. 가정 폭력까지 동반된 환경에서 힘겹게 결혼을 유지하고 있는 분을 만날 때마다 국내에 정신의학과 치료를 위한 믿을 만한 의료시설이 더 많이 갖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홧김에 갈라서면 후회만 남는다
한편 잘못된 이혼 결심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홧김에 이혼하자고 내뱉었는데 접기에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끝까지 밀고 가는 경우(의외로 많다), 외도 사실을 알게 된 뒤 오로지 혼내주겠다는 생각에 이혼을 요구했는데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럴 때는 그냥 자존심을 버리고 이혼 의사를 철회하는 게 낫다.
특히 배우자에게 많이 의지하고 살던 경우 이혼 후에 후회가 남을 수 있고, 홀로서기가 쉽지 않을 수 있어 이혼 의사를 밝히는 데 신중해야 한다. 성공적인 이혼은 이혼 후 삶이 성공적인가에 의해 결정된다. 모든 걸 혼자 해결하며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이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홀로서기가 안되면 자신과 자녀를 비롯해 부모와 형제까지도 힘들게 만든다.
이혼은 정신력과 의지, 그리고 현명함이 필요한 과정이다. 협의이혼이든 재판상 이혼이든 이혼을 하는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험난하다. 이를테면 재판상 이혼까지 왔을 때는 각자 재산을 빼돌리고 거짓 주장이 난무하는 게 기본이다.
이럴 때일수록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감정 조절을 하는 게 중요하다. 상대방이 낸 준비 서면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해 정제되지 않은 말을 마구 쏟아낸 서면을 내는 경우 재판부에게 나쁜 이미지만 줄 수 있다. 그래서 이혼 소송은 본인이 직접 수행하기보다는 변호사 도움을 받는 게 훨씬 좋다. 특히 상대가 지저분하게 나온다면 변호사의 도움이 필수다.
하지만 부부의 삶은 본인이 제일 잘 알기 때문에 변호사 선임을 했더라도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변호사를 도와야 한다.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집요하게 찾고, 상대의 유책 사유를 밝혀낼 수 있는 사실관계를 꼼꼼하게 챙기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이다.
나쁜 배우자도 좋은 부모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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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법원에서 송달되는 소장 봉투에는 가정법원 표시와 함께 배우자에게 보여주지 말라는 문구까지 있어 누가 봐도 가사소송인 걸 알 수 있게 되어있다. 회사 동료가 알게 됐다는 사실 하나로 남편이 타협의 여지가 없게 다혈질로 돌변해 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창피한 마음에 소문이 더 퍼지기 전 이혼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빨리 끝내고 싶다 보니 부인이 원하는 걸 웬만하면 들어주고 마는 것이다. 때문에 상대 배우자가 어떻게 나올지를 예상해보고 치밀하게 전술을 짜야 한다.
이혼 과정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이혼 과정에서는 물러설 때를 아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남이 보면 별 의미 없는 배우자와의 감정싸움이 자신에게는 인생을 건 자존심 싸움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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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에 동의했거나 이혼 소송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확신이 없다면 과감하게 이혼을 거절하거나 소송을 취하해야 한다. 특히 내게는 나쁜 배우자이지만 아이에게 좋은 부모였다면 이혼 시기를 자녀가 성년이 되었을 때로 미루는 게 현명하다.
결국 모든 이혼은 계획적이어야 한다. 이혼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더라도 이혼 후 생활을 감당 못한다면 결코 성공한 이혼이 아니다. 이혼 결심이 섰다고 해서 선언하듯 ‘이혼하자’거나 ‘이혼하면 얼마 줄 수 있느냐’는 식으로 말부터 꺼내지 말고 이혼 후 어떻게 살아갈 건지 구체적인 계획을 짜놓고 내 협상안을 들고 이혼 요구를 해야 한다.
성급한 재혼까지 겹치면 또 한 번의 이혼을 고민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이혼하게 되면 위축된 자세로 지내게 되고 그렇게 사회적으로 고립되게 되다 보면 자존감도 낮아진다. 자존감이 낮아지면 자립할 의지도 줄어들어 경제적 어려움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따라서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공적인 이혼이 되기 위해서는 이혼 후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낼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키워둬야 한다는 말이다.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하더라도 이혼 후 어떤 허드렛일도 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다면 충분히 이혼 후 성공적인 새 삶을 살 수 있다.
외로움을 많이 타고 남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성향의 분들은 이혼 후 재혼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재혼은 초혼보다 더 조건을 중요시하고 더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혼녀’라는 사실, 안 밝히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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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사생활에 유독 관심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가까운 지인 몇 사람에게 이혼 사실을 밝혔다면 이미 당신 주변의 절반 이상이 문제의 이혼 사실을 알고 있다고 보면 맞다. 만약 당신이 직접 이혼 사실을 밝히지 않기만 한다면 주변에서는 ‘글쎄, 이혼은 안 한 것 같은데’라며 긴가민가해 할지도 모른다.
철저한 자기 관리는 이혼 후 몇 년 동안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이다. 우리 사회가 이른바 ‘이혼녀’에게 갖는 불온한 편견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석에서 이혼을 당당하게 밝히는 여성을 두고 어떤 모자라는 남성 일부는 이를 개방적인 여성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주관에 대해 혹자는 이렇게 답할지도 모르겠다, ‘피해의식 아니냐’고. 단언컨대 아니다. 나의 경우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내 이혼을 갖고 농담할 정도지만 친하지 않은 남성에게 절대 이혼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혼했다고 말하는 걸 마치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받아들이는 황당한 경우를 심심치 않게 겪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이혼 가정의 자녀에게 가해지는 편견 또한 적지 않다. 따라서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이혼 사실을 밝히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이혼 후까지 좋은 관계로 지내는 부부가 드문 우리 현실에서는 전 배우자가 아이 양육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어린 경우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가족 그림을 그리거나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담임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 한 부모와 산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특히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슴 아픈 일이 많이 생긴다. 만일 피치 못하게 유치원 연령의 자녀를 두고 이혼해야 한다면 이럴 때를 대비해서 결혼식 사진, 부모와 같이 찍은 가족사진을 챙겨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같이 살지 않는 아빠나 엄마를 일 때문에 외국에서 살고 있다거나 출장을 자주 다니는 걸로 몇 년이라도 감추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녀 앞에서 절대 전 배우자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테면 ‘비록 엄마 아빠는 이혼했지만 연애 때는 꽤나 뜨거웠던 커플이었다’라며 자신이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전 배우자에 대해 긍정적인 얘기를 들려주면 아이가 이혼 가정이란 현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여기지 않게 될 것이다.
더 바란다면 자녀를 위해 이혼 후에도 전 배우자와 자연스럽게 만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재혼한 경우 전 배우자와 만나거나 전화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경향이 많은데, 결국 희생당하는 건 아이들이다.
타인에게도 전 배우자의 험담을 하지 않아야 한다. 전 배우자에 대한 비난은 곧 내 아이의 핏줄에 대한 비난이기에 결과적으로 제 얼굴에 침 뱉기가 된다. 아주 가까운 친구 한두 명에게 털어놓는 것까지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내게 큰 관심 없는 사람에게까지 말하지 말라는 거다.
이 밖에도 이혼 후 몇 년 동안은 왜 이렇게 되어야 했는지, 내게는 문제가 없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재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혼 사유가 모두 전 배우자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배우자를 선택한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었는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자문해보라는 의미다.
자존심 접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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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에게 털어놓는 것도 한두 번이면 족하다. 자주 되풀이하면 과거에 집착하는 듯이 보이고 그런 모습은 주변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 한두 번 말하다 보면 말하는 나도 재미없는 게 결국 이혼 얘기다.
물론 동창 모임에서 친구들의 단란한 결혼생활에 대한 자랑이 이어지면 이혼녀도 사람인데 당연히 자기연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 때를 대비해서 평소 같은 처지의 친구 한두 명을 사귀어두길 바란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친구를 부러워는 하되 질투는 하지 않을 정도로 내공을 키워야 한다. 관대해지지 않으면 사회적인 교류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쪽이 사회적인 교류가 별로 없는 경우 아이도 소극적으로 자라는 경향이 있다고 하니 주의해야 할 대목이다. 특히 엄마가 키우는 경우 스포츠 활동에 소극적이 되기 쉽다. 엄마가 먼저 변해야 하고 밖으로 나서야 한다. 놀이공원에 덩그러니 애랑 둘이서만 다니면 처음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놀이공원에 어떤 부부가 다정히 아이 손을 잡고 와서 사진을 찍는 모습 보면 괜히 내 아이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심적으로 견디기 힘들다면 주중에 다니면 된다. 아니면 편한 친구를 초대해서 같이 다니면 된다. 친정 식구가 이런 때 정말 요긴한 동반자다.
이혼 후 생활이 현재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서 이뤄지는 이혼도 최근 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저소득층일수록 남성보다 여성이 돈을 벌어 생활비를 충당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런 경우 남편이 앞장서서 집안 살림을 돕고 아이를 챙기지 않으면, 부인 입장에서는 이혼을 하는 게 여러모로 더 이득인 경우가 많다. 한 부모 가정의 경우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고 임대주택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 경우에는 진학에서도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혼은 결혼 생활에서 이미 자녀 양육을 책임지던 엄마가 생활비도 책임져왔기 때문에 이혼 전후의 생활이 큰 차이가 없는 편이다. 다만 결혼이라는 게 경제적인 득실만 따져서 유지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자녀의 의사를 꼭 확인하라고 권한다. 내게 무능한 남편이라고 곧 무능한 아빠는 아니기 때문이다.
약속한 양육비를 제때 주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양육비 이행명령신청을 통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과태료나 감치에 처해지도록 할 수 있지만 양육비를 주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전 배우자에게는 제도조차 별로 의미 없는 경우가 있다.
아이를 양육하지 않는 상대방이 남편인 경우에는 양육비를 부인이 갖는 돈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양육비를 받아 호의호식을 할까 봐 걱정하는 투로 얘기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호의호식이 가능한 정도로 고액의 양육비를 주지도 않으면서 그러니 더 황당하다.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쪽이 엄마인 경우에는 “자기 자식을 낳아줬으면 됐지, 여자인 내가 왜 양육비를 주냐”고 묻는 경우도 종종 본다.
양육비 지급은 부모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일이다. 돈만 가지고 아이를 키울 수 없지만 돈이 없으면 아이를 아예 키울 수 없다. 아이의 불행은 부모 모두의 불행이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이혼 후 경제적인 독립만큼 정신적인 독립도 중요하다. 이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연민과 자기비하에 빠져들면 그 영향은 고스란히 자녀가 받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저서 <사랑의 기술>을 통해 ‘대부분의 어머니가 젖을 줄 수 있으나 꿀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꿀을 줄 수 있으려면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일 뿐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삶에 대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불안도 감염된다. 이 두 태도는 어린아이의 정체성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자기반성 없는 ‘재혼 로망’은 ‘절망의 반복’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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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유년시절 정서적으로 불안 심리를 겪게 되면 성인이 된 후 결혼생활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시에 그렇지 않은 유년 시절을 겪은 이보다 훨씬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게 관련 전문가의 조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엄마가 미래에 확신을 갖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져주는 경우 자녀는 온실 속 화초로 자란 아이보다 훨씬 내면이 충실한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혼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언제나 강해야 한다. 그 보람이 고스란히 양육자의 공으로 돌아오는 걸 목격하면 이혼을 도와줬던 변호사도 보람을 느끼게 된다.
이혼 후 자녀를 양육하는 쪽은 어머니와 아버지 역할을 같이 해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역할을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일례로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혼자 키우게 된 엄마가 아들 목욕이 고민이라고 했다. 아들을 데리고 여탕을 들어갈 수 없고 그렇다고 혼자 남탕에서 목욕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어서 난감해했다. 다행히도 공부방 대학생 형의 도움을 받는 걸로 문제를 해결했다.
요즘에는 이혼 상담을 하면서 재혼에 대해 묻는 경우가 많다. 그럼 꼭 해주는 대답이 있다. “당신의 남자(여자) 보는 눈이 바뀌지 않는 한 재혼은 하지 마세요.”
이혼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결혼 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성향인 건 아니다. 대부분 서로 안 맞는 사람끼리 만난 경우다. 그런데 문제는 그 눈이 안 바뀌는 한 전 배우자와 비슷한 이성에게 끌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이성 보는 눈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면 재혼보다는 교제만 길게 하는 게 낫다.
반대로 전 배우자와 다른 점 하나에 끌려 재혼을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전 남편이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경우 상대방의 경제력만 보고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는 경우다. 아무리 재혼은 조건 위주의 만남이라고는 하지만 결혼은 사람이 부딪치는 일상의 반복이기 때문에 조건 하나에 꽂혀서 하는 재혼은 잘못된 만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옆에서 이런 저런 조언이 있었더라도 결혼을 선택한 게 당신 자신이듯 이혼도 당신이 선택해야 한다. 이 원칙을 간과하는 이혼이 요즘은 늘고 있다. 부모에 이끌려 상담을 오는 젊은 부부를 보면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판단을 못하는 것 같다.
이들은 결혼생활이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안 했을 거란 말을 한다. 이혼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벗어났다는 사실에 홀가분하겠지만 이후에는 온전히 혼자 책임져야 하는 일상과 삶만 남는다. 이혼을 꿈꾸고 있다면 먼저 강한 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부터 다지길 권한다.
- 정은세(가명) 변호사 ycnexa2m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