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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앞에서의 명상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던 우리 집 염소는
한 치 앞을 알아채기나 했을까
아작아작- 배춧잎을 베어 먹던 고놈,
하늘 아래
숨 받은 목숨은
밥이 되기 위해 밥을 먹는다
뱅어 자반 속에 깨알처럼 박힌 눈알들은 총 몇 개나 될까
아기 다람쥐는 누구의 밥이 되기 위해
엄마의 길을 밟았을까
총 맞고 사선으로 날던 콩새는 지금쯤
어느 숲에 떨어져 밥이 됐을까
더듬이가 긴 징게미는 볼록렌즈를 쓰고도 왜
그물망을 피하지 못했을까
칠산 바다에서 잡혀 온 조기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 있을까
태평양을 가르던 명태는 어찌하여
만삭의 알 보자기를 풀지 못한 채 잡혀 온 것일까
나는 지금 누구의 밥이 되기 위해
새벽잠 설치고
퀭한 눈으로 밥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일까
살기 위하여
혼자 술을 마신다 또 하루를 살고
하루분의 먹이만큼
작아진 몸으로
기름방울처럼 물 위를 떠돌다가
가련한 짐승들 어미 품에 잠든 곁으로 돌아와
혼자 술을 마신다 살기 위하여
조금씩 작아지며 나는
죽어간다
얼마나 더 작아져서 죽어질 것인가
기우는 밤, 작은 별들 하늘에 떠 있다
아버지
지난겨울 온 세상이 하얀 눈 속에 묻힌 날,
아버지는 호올로 세상을 떠났다
대학병원, 요양병원 수차례 전전하다
끝끝내 고향 집에 내려가 보지 못하고
요양병원 집중치료실에서
거인처럼, 차력사처럼, 온몸에 바늘을 꼽고
고무호스 주렁주렁 늘어뜨린 채
이승의 마지막 끈을 놓아 버렸다
생전 아버지는 개미 한 마리 밟지 않으려고
고갤 숙이고 땅만 보고 다녔다
짐 자전거를 많이 끌어
왼쪽 어깨는 주저앉고 오른쪽은 솟아올랐다
영하 18도 살뚱맞은 추위 속에
하늘은 연사흘째 사카린 같은 눈을 뿌렸다
적막하디적막한 새벽 한 시-
비보를 받고 달려간 요양병원 집중치료실
하얀 칸막이가 쳐진 시트 위에 반듯이 누워
아버지는 단 한마디 말이 없고
고향에서 올라온 홍시 하나, 머리맡에
빨간 조등을 밝히고
아버지의 마지막 밤을 꺼질 듯 비춰주고 있었다
장구미 고모
아버지 상을 치르고, 친정 조카가 보고 싶다는
고모를 뵈러
신양면 황계리 노인 요양원을 찾았다
-아버지가 저 전달에……
말문을 열려는 순간 고모는 빨간 목젖을 떨며
어린아이처럼 목을 놓았다
89살 먹은 동생이 91살 오빠
비보를 접하자
오빠를 부르며 부르며 송아지처럼 머리를 부딪쳐 울었다
할머니가 다섯 살 난 딸을
삽다리 제재소 집 애 보는 아이로
주고 온 날 그 밤에도
모녀는 다른 지붕 아래서 저렇게 울었을 것이다
밤 되면 호랑이가 찾아와 무섭다며
정신 줄 놓으시는 고모
지금도,
눈 쌓인 봉수산 쳐다보며 그 밤 생각하시는 걸까
고비사막으로 떠난 낙타
할머니 등에는 항상 혹이 붙어 있었다
고비처럼 굽은 할머니,
코를 벌룽거리며 날숨을 내쉴 때마다
고비사막 바람 소리가 났다
터벅터벅 마실 갔다 돌아올 때나
눈꺼풀 껌벅이며 꾸벅잠 잘 때도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던 혹,
혹이 점점 자라 버거워질 때가 되면
절로 꼭지가 떨어져 나가고
예쁘고 자그만 새 혹이 알살을 드러낸 채
자라나고 있었다
우리 칠 남매는 낙타 등에서 떨어져 나왔다
마지막 혹이 떨어져 나오고
늙은 낙타는
시름시름 앓다 다리를 끄을며
고비사막으로 떠났다
은하의 별들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밤이었다
나왕케촉*
음악이 있기 이전에 먼저 소리가 있었다
그의 노래는 소리의 세계에 있다
별과 별 사이를 스치는 아스라한 바람 소리다
어미 뱃속에 웅크린 태아가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달팽이관을 통해 들려오는 우주의 숨소리다
우산살처럼 펼쳐진 타르쵸 오색 깃발이
스산한 바람결에 날리는 저녁,
소금 자루 운반하는 야크 떼 꺼진 옆구리를 시리게
스쳐가는 초원의 바람 소리다
끝없는 망명길 달라이라마의 수행승이 되어
히말라야 산기슭에 은둔자로 살아가던
나왕케촉, 언제부턴가
대나무 피리 한 자루로 떠돌며
고독한 티베트의 바람을 불어 내기 시작했다
태양은 날마다 떠올라 같은 길을 되돌아올 뿐,
그대 외로운 혼이
한 자루 대나무 피리를 만나면
티베트의 산과 강이 흐느끼며 춤추고
마침내, 설산을 넘어
남쵸호 광활한 호수에 쏟아지는 새벽 별이 된다
*나왕케촉: 티베트 출생 음악가로 중국의 티베트 침
략 후 인도로 망명, 달라이라마의 수행승이 됨.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아까워한 달라이라마는 음악을 통해 티
베트의 독립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환속시킴.
페인트칠하는 남자
양수 속 태아가 어미 배를 발로 차내듯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인 암스트롱이 유영하듯
33층 아슬한 하늘 끝에 목숨 매달고
한 남자가 페인트를 칠한다
거미가 항문으로 실을 뽑듯 길게 로프를 드리우고
반동을 이용해 부드럽게
공기를 밀쳐내며
상하좌우 이동하는 손과 발의 동작,
얼마나 많은 세월 몸과 마음 갈고닦으면
저리 자유로운 몸 될 수 있을까
몸 가는 대로 마음이,
마음 가는 대로 몸이 따를 수 있을까
묵묵히 하늘에 페인트를 칠하는, 저 남자
아버지는 힘이 세다
아버지는 힘이 세다
세상 누구보다도 힘이 세다
손수레에 연탄재를 가득 싣고
가파른 언덕길도 쉬지 않고 오른다
꼭두새벽 어둠을 딛고 일어나
국방색 작업복에 노란 조끼를 입고
통장 아저씨를 만나도
반장 아줌마를 만나도
허리 굽혀 먼저 인사를 하고
이 세상 구석구석
못쓰게 된 물건들을 주워 모아
세상 밖으로 끌어다 버린다
나를 키워
힘센 사람 만들고 싶은 아버지,
아버지가 끌고 가는 높다란 산 위에
아침마다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비 내리는 소래포구에서
두꺼운 안경알에 빗방울이 방울방울 달라붙는다
내 작은 생의 닻을 갯물 속에 내려놓고
낡은 시계 바늘 들여다보며
막 건져 올린 망둥어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젊은 날의 슬픈 사랑과 돌이킬 수 없는 추억들이
뻘 속 깊이 가라앉아
사물거리다
하얀 포말로 뽀글대며 떠오르는 소래포구,
조금씩 기우는 폐선
갈매기 똥 어룽진 갑판 위에 웅숭그리고 앉아
너울처럼 떠오는 고독이
자고 나도 항상 오늘이 되는 나날 속에
갈매기야,
머리맡에 낮게 떠가는 괭이갈매기야,
낚대 멀리 던져 놓고
흐려지는 눈알 비비며
두고 온 시간을 건져 올려보는 소래포구, 저물녘에서
그 시절
종점에서도 한참을 걸어야 닿는 변두리의 변두리
내 새끼들 잠들어 있는 연탄 냄새 다정한 집에는
방안 가득 하얀 기저귀가 마르고
젖살 포동한 갓난애기 배냇짓하며 나비잠을 잤다
날개옷 잃어버린 가련한 천사는
전설 속에 갇혀
날아가지 못하고
밤 되면 수지웁게 하늘 같은 지아비를 맞아들였다
소의 유언
-2010년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이 땅의
11만 마리 소들을 진혼하며
저는 다 알아요, 싸락눈 싸락싸락 루핑 지붕을
때려 쌓는 소한의 아침,
주인님 지극정성으로 마련해 주신
검정콩 누렁콩 듬뿍 넣은 특별식 받아먹으며
이미 다 알고 있었어요
마지막 길이 슬퍼 눈물 펑펑 쏟은 게 아니오라
주인님 넘치는 사랑에 그만
눈물샘이 터져 버리고 말았던 거였어요
다 알아요, 집 나올 때 왜
주인님 다수운 손길이 제 언 잔등 위에서 오오래 떨리고 있었는지
고욤나무 쳐다보며 한사코 줄담배만 태우셨는지
그날, 미시(未時) 조금 지나 날이 개고
수리봉 산그림자
사부작사부작 눈 쌓인 밭고랑을 타고 내려올 무렵
주인님 저와의 긴긴 세월,
추억의 구기자 밭 개옻나무 아래서
알 수 없는 주사 한 대를 맞고 개골창에
꼬꾸라져 나뒹굴다
포클레인 삽날에 찍혀 땅속 깊이깊이 묻히고 말았어요
뼈는 묻고 살은 썩어서 꽃 피는 봄날이 오면
이 땅을 푸르게 할 흙이 되어드릴게요
제 무덤 위에도 밤마다 푸른 별 돋고 철 따라
이름 모를 작은 꽃들 피어나겠지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눈물 거두시고 안녕히 안녕히 계시어요
염소
늙은 염소가 아작아작 마른 볏짚을
씹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한 해 마지막 남은 햇살이
희미하게
비추이고 있었다
알약처럼 힘없이 쏟아져 내리는 염소 똥에선
모람모람-
잘 발효된 술빵 냄새가 났다
한 밤을 더 자고 나면
고집스럽게 나이를 많이 먹어버린
저 염소도
할 수 없이 나이 한 살 더 먹고
조금 더 자란 수염을 나부끼며 서 있을 것이다
추자도 뿔소라
추자도 뿔소라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네
날카로운 뿔 곧추세우고
몸통 으깨져도 끝끝내
몸 열지 않는
추자도 뿔소라를 깨 먹으며 술을 마셨네
왜놈 되놈 쳐들어와도
차라리 목숨 끊을지언정 치마끈은 풀지 않았던
고추같이 맵찬
우리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들,
옭매고 옭맨
고쟁이 속 순정이 피 토하는 밤
마주 앉은 순 토종,
조선의 얼굴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술을 마셨네
끌려가는 소
끌려만 가고 있네, 빗소리 한사코
수군대는 논둑길
먼 하늘에 두 눈알 박고
굳은 입술 다문 채 끌려만 가네
찬비 맞는 봄풀들 검은 머리 흔들며 우네
동구 밖에 장승
비 뿌리는 하늘만 쳐다보네
주막거리 지나 우두봉(牛頭峰)
바라보며
피눈물 흩뿌려 거친 바람 잠재우고
돌아보고 돌아봐도
하얀 꽃잎만 흩날리는데
끌려만 가고 있네,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길
독새풀 파릇이 돋아나는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으로
곧은 뿔 잘라지겄네, 움머-
넓은 발 피집 잡히겄네, 움머-
두 눈 크게 뜨고 쓰러지겄네, 움머 움머-
닭집
닭장 속에 닭들이 한 마리씩 죽어갔다
부릅 눈 뜨고 날개 퍼덕이며
할딱대던 닭,
닭집 아줌마는 하느님이시다
벼슬이 크고 빛나는 닭부터 하나씩
목숨 깊숙이 칼날을 밀어 넣고
손 씻고 돌아서서 한 줌 모이를 던져주면
목숨 붙은 닭들은
한 알의 모이를 더 먹기 위해
벼슬을 세우고 쪼고 할퀴며 필사적으로 싸웠다
닭장은 점점 비워지고
마침내 남아 있는 한 마리의 닭,
빈 닭장을
왔다- 갔다- 하다
눈을 내려 감고 모이 접시 앞에 서 있다
산 낙지를 씹으며
리펑, 덩샤오핑
천안문 발포
어항 속에 낙지가 헤엄을 친다
1989년
6월 6일
초고추장 종지 속에서
꼬물대는 낙지발
광주, 사인규명
10만 운집
난도 당한 낙지발이
입천장에 달라붙는다
법질서 파괴 시
단호 대처
깻잎에 쑥갓을 놓고
오이, 고추, 마늘을 싸
꼭꼭 씹어 삼켰다
불혹不惑
- 40세
길 가는 여자들 먼눈으로 바라보며
죄를 짓다
돌아서면
문득,
딸애의
귀갓길이
걱정되는
나이
종심從心
-70세
길 위에서 만난 고추잠자리 한 마리
어깨 위 사뿐 앉아
말 걸며
따라올 것 같다
여우비 잠깐 뿌리다 지나가는
가을 산길,
떡두꺼비 한 마리 풀섶에서 뛰어나와
길동무하자며
길 막고
떼를 쓸 것 같다
금성일식
두꺼운 구름 커튼을 열어제끼고 살짜기
살굿빛 태양이 수지운 얼굴을
내밀었다
구름 빛이 차차 엷어지며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져나가자
살굿빛 얼굴이
진한 감빛으로 한껏 달아올랐다
2012년 6월 6일,
좁쌀 만 한 점으로 나타난 금성이 태양의 흑점
사이를 뚫고
가슴 한복판을 어루만지며 지나갔다
07시 9분 38초부터
13시 49분 35초까지
하늘과 땅, 온 우주가 숨을 죽이는 아!
고요하여라…
황홀하게도 슬픈
슬프게도 황홀한 세기의 만남, 그 찰라의 순간을
굵은 땀방울 뚝, 뚝,
떨어뜨리며
달궈진 태양의 몸은 활활활 타올랐다
얼마나 긴긴 기다림이었을까
이토록 짧은 만남 위해
산길 물길 들길 먼 하늘길 에돌아 105년 뒤
다시 찾아오마고
머리맡에 달랑, 쪽지 한 장 써 놓고
또다시 먼 길 떠나버린 바람둥이, 떠돌이별!
실레네 스테노필라⁎
얼마나 간절한 기다림이었을까
빙하 말 시베리아 콜리마 강변
매머드 들소 뼈가 묻혀 있는 동토 속에
기억이 짧은 북극 다람쥐가
숨겨놓고 찾지 못한 열매 한 톨,
해와 달과 바람의 손길 기다리며
3만 1천8백 년 동안의 고독한 잠 속을
뒤척이다 러시아 과학자
손끝에서
하얀 울음 터뜨리며 꽃을 피워냈다
실레네 스테노필라!
얼마나 가슴 떨리는 설레임이었을까
밀레니엄이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동안
산이 강 되고 강이 바다가 되고
얼마나 숱한 생명들이 지구별을 찾아와
사랑하고 사랑하다 돌아들 갔을까
눈썹 끝에 가물대는 자그만 별 하나 반짝,
빛난다
머언 태곳적 별에서 폭발한 불빛이
수백 광년을 달음질쳐와
지금 막, 내 망막 속으로 들어왔으리라……
⁎러시아 연구진이 시베리아 콜리마강 인근
툰드라 지대 지하 38m에서 3만 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석죽(패랭이꽃) 과의 열매를
발견, 조직을 배양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된 식물명.
1999년 12월 31일밤을 위한 시
세기의 마지막 밤, 잠시 후면 새천년이
시작되리라, 새천년 새 아이들이
첫울음을 터뜨리리라
지구촌의 들뜬 사람들 밀레니엄 축제로
흥청대고 있을 시간, 나는
아시아의 동쪽 끝 사우스 코리아
수도 서울의 어둡고 춥춥한 방구석에
이불 덮어쓰고 누워
오늘 인천 앞바다로 떨어진 태양과
내일 아침 동해에 떠오를 태양이
어떻게 어떻게 다를까를 곰곰 생각타가
동네 슈퍼에 얼마의 외상값과
몇 년은 더 갚아야 할 빚과 통장을 머리맡에 놓고
새천년을 맞는다
저녁에 갈아 넣은 연탄은 아침까지는
내 등을 따습게 해 줄 것이다
저녁밥을 남겨 놓았으니
내일 아침엔 찬밥을 먹으면 될 일이다
꽃은 피고 나비는 날고
강물은 예고 또 예고
지상의 영웅들이 끊임없이 새 이름표를
바꿔 다는 동안, 태양은 또다시
천 년 외롭고 따분한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