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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하루가 눈 한번 깜짝거리는 속도와 같다.
중학교 다닐 때 권말순 선생님이 체육선생님으로 초임 발령을 받아 오셨다.
그때는 여자 체육 선생님은 드물었고 22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라떼'는 청년 같은 남학생들이 있어 가르치기가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선생님은 성실하게 열심히 가르쳤다.
얼마나 제자들에게 살갑게 하셨으면 어느 제자라도 잊지 못할 스승님으로 각인되어 있다.
친구들과 나는 선생님 집을 부지런히 드나들면서 어려운 사제지간이 아닌 가족처럼 지냈다.
나이는 우리와 7년 차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좋은 선생님으로,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이 많은 선생님이시다.
중년이 되어 동창인 친구 아들 결혼식을 서울 운현궁에서 했는데,
선생님이 어떻게 알고 빨간 스카트를 입고 오셨다.
얼마나 젊어 보였으면 남자동창생이 선생님을 보고 "자는 누구노"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박장대소하며 권말순 선생님이라고 하니 놀라 뒤로 넘어간다.
세월이 흐르니 누가 스승인지 제자인지 분별이 어렵다...ㅎㅎ
선생님은 70대 초반부터 우리 집에 오셔서 숙박을 하고 골프를 치고 가셨다.
오셨다하면 우리 남자 동창생과 후배들이 밥 사기 바빴다.
선생님 친구들은 제자들이 졸업한지 수 십 년이 지나도 저렇게도 대접을 받나하고 부러웠을 것 같다.
가끔은 서로 안부를 묻지만 거의 10년 동안 골프를 안 오시기에 이제는 기력이 부쳐서 못 오시나 했는데
친구들과 4명이 2박3일 동안 골프를 친다고 오셨다.
대전에 볼일이 있어 가셨다가 사왔다면서 대전에 유명한 튀김 소보로 빵과 호박설기 떡을 주신다.
필자도 성심당을 안다.
친구들과 안면도 2박3일 여행을 갔다가 비가 와서 마지막 날
일정을 취소하고 일찍 헤어져 차표변경을 하느라 대전역 대합실에서 3시간을 기다렸다.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성심당>이란 쇼핑백을 나만 빼고 다 든 것 같았다.
너무 궁금해서 어떤 분에게 "저게 뭐래요? "하고 물으니 가성비 좋은 튀김 소보로 빵이란다.
1956년 창업한 성심당은 전국 최고의 삥 집 반열에 올랐다.
하루 매출이 1억원이 넘는다고 하니 두 시간씩 기다려서라도 사간다고 한다.
빵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는데 주먹보다 큰 게 6개에 만원이라고 하니 나만 빼고 다 사는 모양이다.
당시 줄을 두 시간씩 서서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그냥 왔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유명하다는데 사 올 껄 그랬나? 언제 먹어본다고? 대전 갔을 때 사와야 하는 건데...
그러면서 대전의 유명한 튀김 소보로 빵맛이 궁금했다.
그런데 서울 사시는 선생님이 대전에 볼일이 있어서 가셨다가 튀김 소보로 빵을 사 오셨다.
바삭바삭한 식감이 마성의 맛이다.
먹을 복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ㅎㅎ
선생님은 83세의 연세라고 하기에는 주름이 너무 없다.
의학의 힘을 빌린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집에 오시면 맛사지 팩을 붙일 때도 있고,
오이를 썰어서 부칠 때도 있어 그 열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열심히 관리한 만큼 당연히 주름이 없는 게 맞다.
짐을 풀고 저녁을 드시고 우리 거실에 오셨다.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고 내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바꾸어 드렸다.
오래 만에 옛날 얘기꽃을 피운다.
그 연세에 3일 연속으로 골프를 친다니 그 체력이 놀랍다.
나는 체력 감당이 되겠냐고 여쭤봤다. 가끔은 골프여행을 하시니 단련이 되어 괜찮다고 하신다.
골프를 일주일에 한번씩 치고, 수영을 일주일에 한 번씩 하시니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 진입이 멀지않았다고 뉴스를 통해 듣는다.
삶을 즐기기 위해 3일씩이나 골프 예약을 하신 선생님을 보면서,
또 아직 젊은 새댁처럼 사는 나를 보면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피부로 느낀다.
선생님과 친구분들이 만족한 단양 여행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첫댓글 권말숙 체육 선생님 기억이 새롭내요~~남학생들 한테는 엄청 무섭게 했는데^^
나그네님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많이 반가워요.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그래야 했겠지요..
어정쩡하게 했다가는 남학생들에게
휘둘려 죽도 밥도 아니다 싶어서 인가 봅니다.ㅎㅎ
오늘 눈이 많이 내리네요^^
치울 일은 걱정이지만 설원의 풍경이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