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
물의 본성은 평온함과 무서움이니 물은 배를 띄우게도 하지만 때로는 뒤집기도 한다
임금이 하는 짓이 시원찮으면 백성이 임금을 갈아치운다는 뜻으로 전국시대 때 조나라의 "순자"가 한 말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물은 오염되어 언제부터인가 대부분 가정에서 생수를 사먹게 되었지만 생수병 1리터에서 미세입자 24만개 정도가 검출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지하수의 오염도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그 원인은 생수병 뚜껑을 열고 닫을 때 그리고 물을 여과하는 과정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생겼다고 한다.
모처럼 찾아 나선 하천길은 육룡이 나르샤의 전주땅이다.
조선 왕실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용의 고향,
전주시내를 흐르는 하천은 크게 두 가지로 호남정맥 슬치재 인근에서 흘러온 전주천과 모악산 서쪽에서 흐르는 삼천(三川)이 있다.
삼천의 유래는 "모악산 북, 동쪽의 독배천, 고덕산 옥녀봉의 덕적천, 모악산 서쪽에서 흘러온 본류 이 세 가지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으며 , 전주시내를 관통하는 전주천과 삼천 두 하천은 경각산-고덕산을 사이에 두고 흘러와 완산구 서신동에서 합류한다
두 하천이 만나기까지 전주천은 발원지에서 28km 삼천은 32km를 흘러오는데 호남평야의 만경강으로 흘러드는 전주천의
최장 발원지는 모악산 도립공원에서 흘러온 삼천이 되겠다.
이른 아침 모악산 아래 대한불교 조계종 제17 교구 본사인 금산사에 들러 부처님 전에 3배 하고 나와 하늘을 보니
그 옛날 누군가 그렀던 것처럼 "오늘은 비가 올려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 금산사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전설이 고이 살아있는 사찰이다.
관심법으로 많은 사람을 때려죽인 궁예왕과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후백제의 견훤왕
금산사는 후삼국시대의 왕이었던 견훤왕이 장남 신검에 의해 강제로 감금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후삼국의 신검이나 조선초의 이방원이나 비슷한 조건에 의해 시작했으나
신검은 이복동생 금강을 죽이고 견훤을 이곳 금산사에 감금시켜 반란에 성공한 듯했지만 얼마 못 가서 후백제를 거덜 낸 인물이다.
아들 잘못인지 부모 잘못인지 어지간하면 장남한테 왕위를 물려주시지 않으시고... 견훤왕이 이곳에서 뭘 생각하며 지내셨을지... 아마도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셨을듯하다.
미륵전
국내에서 전각 안에 모셔진 부처님 중 키가 가장 크며 높이는 무려 11m에 달한다.
합천 해인사에는 부처가 되고 싶었던 장경 81,352 장속의 5천2백만 자의 글이 있다면
이곳 금산사의 미륵부처는 부처가 되고 싶었던 나무를 곱게 깎아 부처가 되었고, 부처가 곧 나무가 된 곳이다.
비로자나불을 비롯한 삼신불(三身佛)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적강전과 보물 석련대
석련대에는 불상을 올려놓을 수 있게 만들어졌는데 석공(石工)이 부처를 다 만들어 석련대에 올려놓았는지 아니면
어떠한 연유로 만들지 못했는지... 아니면 빈 공간의 아름다운 여백으로 그대로 두었는지...
화려한 연꽃무늬가 금방이라도 분홍빛의 꽃을 피울 듯하다.
모악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금산사 삼층 석탑을 찾아보기로 하고
금산사에서 모악산으로 이어지는 임도길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아주 편안하게 오르면
계곡의 물소리는 서서히 없어지고, 대숲의 바람소리가 들릴 무렵에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심원암 절터 석축을 만난다.
북강 삼층석탑
심원사는 없어진 지 오래이나 나무사이로 보이는 김제 평야를 바라보며 서있는 석탑은 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석탑의 의미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조형물로써 사리가 있건 없건 그 상징성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우리나라 석탑은 통일 삼국시대대의 탑들이 가장 아름다운데 이곳의 탑은 그 이후인 고려시대의 탑으로 보인다
지도상으로 보이는 것들 찾아봤으니 잘 다듬어진 등산로 따라 오른다.
모악산(母岳山) 정상이 지척이고
모악산 정상 부근에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바위가 있어 모악산이라는데
여자에게서 어미가 된다는건 쉬운일이 아니다
서말 서되의 피를 흘리고 여덟말의 젖을 물려야 하는 어머니
까막눈인 저에게도 그 바위가 보일지... 가봅시다.
참고로 모악산 서쪽으로 흐르는 원평천 상류인 금산사 계곡 인근으로 사금(沙金)이 나온다니 금가락지 필요하신 분 계시면 김제시 원평면에 신고하고 찾으러 가보시기 바라고...
모악산 정상입니다.
저짝으로 멀리 진안의 마이산이 보였는데
집에 와서 보니 마이산은 어디 가고... 금남정맥에서 만나는 운장산과 호남정맥 만덕산만 보인다
금산사와 금평저수지 방향
엄한 아버지를 닮은 겨울 산
뭐든 다 내주실 것 같은 어머니를 닮은 봄빛 평야
멀리 보이는 곳은 원평천이 자리하는 김제평야이며
희미하게 보이는 산하는 부안의 변산과 선운산 방향이며 여덟 폭 병풍그림처럼 거칠 것 없이 펼쳐져 있다.
이제 조망 놀이는 끝나고 모악산 동봉 헬기장을 지나 배재(장근재)로 향한다.
동봉에서 대략 700m를 지나서 삼계천(계월천) 최고 상류지점인 산죽 밭으로 들어서며
지나간 경로 32km
하천길 169번째 길
반은 산죽이고 반은 풀밭인 곳에서
등로옆에서 삼천 발원지를 쉽게 찾을 수 있었으며 이곳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배재골인데 오래전에 사람들이 거주했던 곳을 지난다.
삼천 발원지 인근 모습인데 오래전에는 밭으로 사용한 듯 보인다.
한여름에 오면 얼반 죽을듯한 잡목지대를 지나
내려온 곳
1950년대에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돌축대가 많이 보이는데
이사하며 가지고 다니기 불편했던 오래된 돌절구는 보이지 않는다.
산이건 계곡이건 사람이 거주했던 곳 흔적이 있였다면 돌절구는 꼭 찾아보는데
어느 게 돌절구인지 낙엽이 쌓이고 물이 얼어 구분도 안 되고...
지구에 존재하는 산소의 30%을 담당하는 이끼류이며
얽히고설킨 이끼류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에서 어미와 자식 같은 모성애가 그려진다
초봄이라고 하지만 아직 곳곳에 얼음이 얼어있고 높은 산 응달에 쌓였던 눈이 모두 녹는 그런 계절이 찾아온다면
그늘진 곳에 자리 잡은 이끼도 좀 더 푸른빛을 보일 것 같다.
해발 500m 높이의 돌축대
1950-70년대만 하더라도 20 가구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배재마을인데
지금은 텅 비고 이끼만 가득하다.
이렇듯 산중턱에 사람이 모여 살았다면 연중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았다는 뜻인데
왜 마을을 버리고 하나같이 마을을 떠났을까
하고 싶은 말이 쌓였어도
한마디 못하는 옛 돌담
아무리 큰 붕어라 하더라도 물밖으로 나오면 힘을 못쓰듯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아련한 그리움만 남아있고
말없는 돌담만 가지런하게 자리를 지키며 이곳에도 한때는 사람이 살았다며 외로이 견디며 서있다.
농사를 지어 금산사 아래 동네인 김제시 원평면으로 이고 지며 가서 팔아 생활했다는 마을
나이 드신 분들은 모두 돌아가시고 젊은 분들은 떠난 지금은 집터만 남아 있다.
참고로 202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약 6만 6천 채 가구의 빈집이 있으며 어지간해서 팔지 않고 방치한다고 한다.
지초 폭포
구이면 안덕리 마을에 들어와
어르신 두 분을 만나서 배재마을의 유래를 들어보고
이제부터 좀 더 쉬운 길로 가며
구이면 안덕마을
다락논 위의 명당터에 지은집으로 보이며 굵은 은행나무로 둘러싸인 집은 빈집인 듯 보이고
그 아랫집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듯 보인다.
장파마을을 지나
아래만 보고 흐르는 물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구걸할까! 아니면...
물의 본능은 평온함과 무서움인데
언젠가는 물은 사람의 마음에서 떠날 것 같다.
지나온곳
교동마을에서 오늘 함께 해주실 전주의 사자자리님을 만나고
산꾼으로써 산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다.
이후로는 갈대와 맑은 물이 흐르고
여름휴가철에 사람들이 찾을 것으로 보이는 맑은 하천이건만 갈대가 너무 많이 자라 뚫고 들어갈 방법이 없어
바늘하나 꽂을 곳이 없어 보인다.
구이면 원기리에 들어와
대왕 고래를 닮은 구이 저수지
한때 유행했던 송창식의 고래사냥 노래가사 중 자 떠나자 서해 바다로 신화처럼 소리치며 고래 잡으러!~~~♪
태평양에 살던 대왕고래가 이곳에 자리 잡고 살았나
고래를 쏙 빼닮은 구이 저수지가 곁에 있다
희망을 전해줄 것 같고 용기를 전해 줄 것 같은 모습으로 구이저수지에 눌러앉았다.
고래를 닮은 이곳 구이저수지는 최대수심 16미터이며 가운데 자라섬으로 불리는 섬이 있는데 일명 무덤섬이다.
황해도 연안(延安)을 본관으로 하는 "연안 이 씨"의 무덤이며 무덤은 60년 전만 해도 육지에 붙어 있었으나 저수지 공사로 인해
지금은 물 위에 핀 연꽃인양 홀로 떠있다.
대왕 고래를 닮은 구이저수지와 가운데 연안 이 씨 무덤섬
구이저수지와 경각산 - 한오봉 방향
삼천과 경각산 페러 글라이딩 활공장 방향
도심으로 흐르는 하천이라 그런지 쓰레기는 거의 없으며 장마철에 떠내려온 미친? 치맛자락 같던 비닐도 안 보인다.
멀리 전주시의 삼천동 아파트가 보이고
사자자리님
정월대보름이라 행사를 하시는 듯 민요 가락도 울려 퍼지고
어쩌나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삼천에는 도심의 하천인데 수달과 고라니가 살고 있구요
또, 맑은 곳에서 살고 있는 곤충인 반딧불이가 산다고 하며(전국 최초로 반딧불이 서식지 복원)
전주천 상류처럼 이곳 삼천은 전주천을 만나기까지 비교적 맑게 흐른다.
혁신도시이며 슬로시티의 전주와 인근의 완주군 호남정맥 슬치에서 흘러온 전주천과 모악산에서 흘러온 전주천 최장 발원한 물이 서로 만나는 곳에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고, 이제 비는 오고 내일 일정을 위해 숙소로 향한다.
우리나라 10 대강(낙동강, 한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 만경강, 동진강, 삽교천, 안성천, 형산강)인 만경강(80km)을 이루는
최대의 형제 격인 전주천이 흘러 만경강으로 흐르고 만경강은 아랫동네의 김제, 정읍의 동진강과 어울려 호남평야를 이루니
그 넓이는 대략 가로 50km 세로 80km 전체넓이는 약 3,500㎢이다(전국 논 비중으로 본다면 당연 1위다)
참고로 우리나라 국토면적은 남, 북 22만 3천㎢이며 그중에 남한은 약 10만㎢이니 호남평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겠다.
전주에서 어느 동태찌개집에 들러 밀가루 반죽한 수제비를 뜯어 넣고 계시는 사자님
하루동안 도움 감사 드리며 올 한 해 안전 운전하시고 멋진 장거리 산행 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지칠줄 모르는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힘찬 발걸음 응원합니다
삼천 길을따라 걷는것이 꼭 고향길 어느곳을 걷는것 처럼 편안하고 즐거운길이 었어요.
아마 날씨가 따뜻하고 봄이 다가오니 마음과 몸이 그렇게 반응을 했나봅니다.
전에 전주천에 이어 이번 삼천도 전주에 사는 저 보다도 더 현지인처럼 느껴집니다.
그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모든길은 걷다보면 "인문"이다
만나서 반가웠구요~~^^~~
늘 하시는 걸음 "안전과 건강"을 빌어 봅니다.
수고하셨어요.
또다시 하천길을 걸음하셨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전주에 대해서 저보다도 훨씬 많이 알고 계십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은 무제봉에서 모악산 정상 중간에 쉰길바위라는 바위가 있는데 조망도 좋은 곳입니다.
모악산 정상석에서 마이산쪽으로 보면 뾰족하니 앞마이산만 보입니다.
숫마이산은 앞마이산에 가려 보이지 않구요.
저희 고향 모악산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쉰길바위 [모악산]
추분날 수고 하셨고요
춥지만 봄소식은 자연에서 들려 오던군요 건강하게 걸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천길이 방장님에게는 끝난길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중인 길이었나 봅니다.
점점 짧아지는 천들의 길이처럼
방장님의 발걸음도 가벼워지길 바래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직도 찾아볼 하천이 남아 있나봅니다.
먼곳까지 가셔서 수고 많았네요.
전주라 혹시나 했더니 역시 사자자리님이 보이네요 ㅎㅎ
삼천 발원 모악산.
그리 멀지 않은데도 한번을 가보지 못했네요.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나는 배요 내 마음은 물이니, 내 행함에 있어 마음물길이 또한 가장 중함을 생각해 봅니다.
강길 하시는 방장님의 귀한 발길
소중한 자료 잘 봅니다.
강길 이야기 오랜만에 보니 참 좋네요
늘 화이팅 하십시요. 응원드려요^^
물을 사랑 하시는 방장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글과 풍경들 강의 발걸음들 차분하게 잘 봤습니다
며칠전 통화중에 옥천이라 하셨는데
아마도 천성장마삼종주길에 걸어 두었던 시그널을 보셨나 봅니다 마음적으로 그냥 포근한 옥천 육영수여사 생가.정지영 시인등 유명하신 분들의 옥천 옥천에 가면 풍미당의 물쫄면이랑 물가라 그런지 도리뱅뱅이도 먹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환산(고리산)에서 바라보면 토끼가 좌측을 보고 있는듯한 풍경도 볼만 했습니다 아무쪼록 강 걸음 늘 무탈하게 다녀 오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