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וְזֹאת הַבְּרָכָה 베조트 하브라카" : 9월 마지막주 토라포션
신33:1-34:12(To), 수1:1-18(Haft), 계22:1-5(Brit), 슥1-14, 말1-4(Ne)
수요일(넷째날)
신33:18-21, 계21:1-8, 슥10-12
초막절 7일 가운데서 오늘부터는 절기의 힘이 좀 약한 날이다. 절기 가운데 평일처럼 지내는 날로 보내고 있다. 그리고 7일, 8일로 가면서 또다시 절기로 가게 문을 닫게 된다.
[하그 חג] : 절기
- 이게 쓰여지는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세 절기이다. (다른것은 [모에드]이다.)
- 이것은 춤추는 절기, 정말 기쁜 절기이다.
- 유월절은 어린양의 피로 기쁜 절기였고, 오순절 또한 우리에게 성령과 토라를 주셔서 기쁜 절기였다. 그리고 초막절은 우리에게 또 다른 기쁨의 절기로 오게된다. 이 기쁨의 절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싸메앜흐 שׂמח] : 기쁨, 즐거움
오늘은 초막절 셋째날이다.
초막절 [수코트 סכוֹת] frm [수카 סכה](초막) : 초막들의 절기
- 초막절엔 초막을 짓는 절기이다.
성서력으로 7째 달이 되었고, 우리는 두번의 안식일을 보냈다. 7째달에 7일이란 안식일은 두번(7+7)을 보내고, 15일부터 7일간을 초막절로 보내게 되어있다. 완성의 절기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절기의 완성 즉, 재림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7째달 15일날 있기 때문에, 달은 보름달이 뜨게 되어있다. 올해는 33년만에 슈퍼문에 유럽등지에서는 Blood moon으로 보였다.
초막절에 꼭 해야하는 것이 하나 있다. 초막절에는 초막에서 자야한다. 초막에서 먹고 자는게, 초막절 때 해야 할 일이다. 초막은 장식용이 아니다. 이쁘고 멋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초막의 의미가 별로 없다. 사실은 굉장히 허름하게 만드는 임시 거처이다.
초막은 마치 너의 인생이 나그네라는 것들을 말한다고 했다. 너의 본향이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초막, 지붕이 뚫려있으면서 하늘을 보게 되면서, 너의 본향은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초막을 만드는 원칙은 반드시 하늘이 보여야 한다. 그래서 나무를 얹으면서, 나무 사이로 하늘의 별도 보여야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조상들의 이야기들을 해주는 것이다. 광야의 이야기들을 초막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먹고 자는 것이다.
초막절 자체는 하늘에 있는 것이 이 땅에 내려오는 절기이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늘에 있던 모든 것들이 임하는 절기이다. 주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샤칸], 거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와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다.
* 토라포션 베조트 하브라카
[베조트 하브라카 וְזֹאת הַבְּרָכָה] :그리고 이것이 그 축복이다
일년간의 토라포션을 끝내고 마지막 토라포션이다. 1년간 정말 힘들게 달려왔다. 54개의 토라포션을 계속 공부했다. 마치 끝날것 같은 이야기인것 같은데, 다시 뭐가 시작되는것 같기. 베(וְ), 바브가 들어가 있다. 뭔가 끝날것 같은데, 끝날것 같지 않다.
이 토라포션이 끝나면, 토라포션이 없기에 새벽예배를 안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붙여서, [베레쉬트]가 다시 시작된다. 마치 끝날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고, 조금 더 깊은 차원으로, 나무의 나이테와 같이 계속해서 돌게 된다. 계속 원처럼 순환한다.
[마아갈 מעגל] : "의의 길"
사실 이게 돈다고 해서, 수레바퀴 모양이라 수레바퀴라는 뜻도 있다.
의의 길은 계속 순환하는 것이다. 시작했으니까, 완성하고 끝..! 이 아니라, 계속해서 도는 것이다. 토라는 계속해서 돌게 되어있다. 주님의 모든 절기 시스템도 마치 이 마아갈 처럼 계속 돌게 되어있다.
초막절이 지나가면서 완성되었구나, 끝난 것 같지만, 또 돌게 되어있다. 시작에서 마지막으로 온 것 같지만, 이 마지막이 시작이 되는 것이다. 샤밧 자체도 7째날 샤밧..! 완성인 것 같지만, 다시 일주일을 시작할 수 있는 첫째날이 되는 것이다. 다시 또 첫째날을 보내게 되고, 또 6일이 지나고 샤밧이 오게 되면, 다시 또 첫째날로 가게 되어있는 것이다.
초막절도 계속 돌게 되어있다. 초막절이 되어서 끝날 것 같지만, 다시 또 유월절이 오게 될 것이고, 초막절이 또 올 것이다. 그래서 [마아갈]은 계속해서 돌면서, 이것은 시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모든 절기가 이 [마아갈]의 특징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 초막절 절기를 잘 준비하지 못한 분 있는가? 걱정하지 말라. 내년 초막절이 또 있다. 그런데 이 마아갈의 시스템을 모르면 문제가 생긴다. 내 마음이 깨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토라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마음을 계속해서 교정시키기 원하시는데, 이 마음이 마아갈의 시스템을 모르면 순식간에 깨지고 만다
토라포션의 맨 첫번째 단어는 베레쉬트의 [베트 ב]이다. 그리고 이번주 토라포션 베조트 하브라카의 맨 마지막은 이스라엘, [라메드 ל]로 끝난다. 이 글자를 합치면, [레브 לב](마음)이 된다.
주님의 새 언약을 이 마음에 다 기록하는 것이다. 그래서 토라는 다 마음에 대한 내용이다.
토라에서는 마음을 다루고, 우리가 배웠지만, 마음은 다 땅을 의미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토라에는 하늘 이야기보다 땅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땅에서는 다 생명이 나온다. 그래서 주님은 다 우리 마음에서 진짜 생명을 얻기를 원하신다. 내 마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어서 거기서부터 나오는 생명을 얻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마음의 핵심은 [라메드](훈련)이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계속해서 훈련시키기 원하신다. 뭔가 완성된 것 같고, 나는 좀 괜찮은 것 같다고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훈련되고 훈련되는 훈련의 시스템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내 마음이 어떠한 이해와, 진리와, 믿음의 영역이 있는데, 이것이 다 사랑과, 의지와 합쳐지게 된다 .그랬을 때 비로소 여기에서 삶이 나오는 것이다. 내가 좀 많이 알고 있다고, 진리만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사랑과 의지와 하나가 되야 삶으로 나와지는 것이다.
Ex ) 가난한 사람을 도와줘야지..! 그게 맞지..! 그런데 내 안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삶으로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저 사람을 정말 많이 사랑하고 싶은데, 어떻게 사랑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돈만 많이 퍼주는 것이 진리 같다. 그래선 안되는 것이다. 진짜 진리와 진짜 사랑이 하나가 되야 한다.
여전히 나만 생각하고 싶고, 이기적 자아에서 머물고 싶은 욕망에서 주는 사랑으로 나와야하고, 이타적인 마음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이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을 훈련시키기 원하시는 것은 다 그것이다. 너의 마음을 이제는 주는 마음으로 바꿔보라는 것이다.
매년 돌아오는 절기는, 마음을 훈련하는 것을 실천하기 굉장히 좋은 실습 기간이다.
신16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고아, 과부, 객, 성중의 레위인, 자녀와 다같이 기뻐하라
- 너 혼자 초막절이야,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는 사랑이 없이는 14절은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절기를 지킬 때는 너 혼자만 기뻐하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은 땅을 얻기 원하시고, 그 마음을 얻기를 원하신다. 지난주 토라포션 하아지누에서 우리가 배웠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모세의 노래를 배웠다. 그런데 읽었던 신약 성경에서는, 바벨론 패망의 노래를 들었다.
[레브 לב], 마음을 거꾸로 하게 되면 [바벨 בבל]이 된다.
[바벨] : 혼합되다
-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이 바벨탑이다
모세의 노래는 이 딱딱하게 굳어진 이기적인 마음을 완전히 없애는 노래이다. 이 땅, 마음이 부드러워야지만, 거기에다가 씨를 심을 수 있고, 말씀을 뿌릴 수가 있다.
호7:8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북 이스라엘은 자기 맘대로 한다. 여러 민족과 섞고, 다른 민족의 풍습이 좋다고 하면서 가나안 여러 민족과 다 섞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하신다. 덜 구운 것이다. 한쪽만 구워진 과자가 되는 것이다.
전을 뒤집지 않으면 한쪽은 타고, 한쪽은 덜 익을 것이다. 그것은 먹을 수 없어 버리는 수 밖에 없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복 [브라카 ברכה]
- 온 땅을 정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복이 있어야 한다
- [바르 בר] : 아들, 아들이 있어야지만 온 땅을 정복하고 땅에 충만하고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땅은 다 마음이다. 온 마음을 다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아들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창11 바벨탑 사건에서, 온 땅의 언어는 하나였다. 온 땅이 원래는 하나였다. 온 마음은 에하드였다. 온 마음은 원래 에하드 밖에 없었다. 다 주는 마음, 다 그리스도의 마음, 아들에 대한 마음 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한 말이 하나였다고 한다
말 [다바르 דבר] : 아들(בר)에게 종속(ד)되는 것이 다 에하드였다.
- 그들은 다 이 아들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었다.
창11: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벽돌 [라반 לבן]
- 우리가 돌 대신에 벽돌로 대신하자고 한다.
돌 [에벤 אבן] : 아버지와 아들, 에하드 였던 그 주는 마음 대신에 딱딱하게 굳은 마음으로 에벤을 대신하고 있다.
[에벤], 돌은 강력하다. 돌은 사라질 것 같으나,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있다. 이스라엘을 보면 집도, 성도 다 돌이다. 나무도 벽도 다 돌로 만든다. 돌멩이가 하찮은 것 같지만, 오늘날 많은 유대인들이 그 돌에 키스하고 기도편지도 넣어놓고 있다(통곡의 벽).
[에벤 אבן] : [아브] + [벤] = 아버지 + 아들
- 아버지 : 영, 뜻 / 아들 : 몸, 뜻을 실제가 되게 한다.
- 알렢(א)에서부터 시작해서 베트(ב)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 아들 대신에 딱딱한 마음으로 대신하려고 하고 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다 주는 사랑인데, 그것을 대신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하늘에서 이룰 것을 땅에서 이룰 분,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주 토라포션 베조트 하브라카는 모세의 축복과 죽음이 같이 나오고 있다. 모세가 죽으면서 끝난다. 그리고 여호수아서로 넘어가게 되어있다. 토라포션의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나오는 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복 이야기로 끝난다.
축복 [브라카 ברכה] : 아들(בר) 자체가 우리에게 축복이다.
cf ) 우리가 생각하는 복 이야기할때는, 우리 가족 행복하게 잘 살기 바라고, 무탈하길 바라고, 하는 일 마다 잘 되는게 복인줄 알았다. 그러나 토라를 보면서, 그게 복이 아니었구나를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복도, 내 복이었구나. 그것을 복으로 계속 만들었던 것이다. 토라에선 아들 자체를 복이라고 이야기한다.
여러분에게 진짜 행복은 무엇일까? 나에게 진짜 행복은 주님과 내가 하나되는 것이다. 진짜 에하드가 되는 것이 바로 큰 복이다. 그래서 초막절 기간에는 반드시 이 베조트 하브라카를 읽게 되어있다. 그리고 베레쉬트 말씀을 읽게 되어있다. 연결되어있다.
초막의 의미가 뭘까?
- 집이다. 집을 만들었는데, 결혼했으면 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일 것이다. 멋들어지지 않고, 허름해 보일 수 있고, 살림살이가 비어있어도, 내 사랑하는 님과 함께 이 집에 평생 산다면, 그만한 행복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베조트 하브라카의 [하브라카]는 주님 자체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그 축복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 축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신33
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2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내산에서 오셨다.
- 시내 [시나이 סיני]
[시나이]의 핵심은 [싸멕 ס]이다.
= 평가하다, 측정하다
싸멕을 보면, 원형이다. 계속 보는 것이다. 아까 보았듯이, [마아갈]도 원이다. 계속 도는 것이다. 초막절의 핵심도 이 싸멕이다.
- 그래서 [수코트 סכוֹת](초막절)이 된다. 계속 원처럼 도는 것이다. 초막으로 완성되는 것 자체는 계속 도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혼자 도는 것이 아니다. 이제 신랑과 신부가 하나가 되서, 함께 도는 것이다. 이 [싸멕](평가)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시내산 사건, 금송아지 사건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이 그 가운데서, 모세의 기도로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 용서하다 [쌀랔흐 סלח] : 여기에도 싸멕이 들어가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원하지만, 실제로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용서하실 때에 오신다. 진정 누군가를 용서할 때 온다. 용서하는 것은, 실제로 내가 하는 것 같지만, 내가 하는게 아니다. 내 힘으로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맘에 안드는데 어떻게 용서하는가?
이 용서의 [싸멕]도 내가 하는 평가가 아니라, 그분이 내 안에서 하는 평가가 용서를 하게 하는 것이다.
- 용서할 때 실제로 그 사람에게 복이 임하게 된다. 실제로 그분이 내 안에 오시게 되는 것이다.
이 시내산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토라를 주셨다. 토라는 가르침, 지침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주님이 분명히 말해주시고 계신 것이다. 용서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오실 수 없다.
또한 주님은 세일 산에서 일어나셨다
세일 [쎄이르 שׂעיר] : 비추다, 일어나다
- [쎄이르]라는 말과 같은 말이 있다.
= [싸이르] : 숫염소, 털이 많은, 장발의
그래서 이 털이 많은 숫염소를 대표하는 성경 인물이 [에싸브 עשׂו](에서)였다. 실제로 에서가 이 세일 땅에 거하기도 했었다.
- [에싸브 עשׂו](에서) : 자기 행위, 자기가 다 행하려고 하는 것, [아싸 עשׂה]하려는 것의 주체가 자신이다. 자기 행위, 자기 의가 나오는 것이다.
주님이 세이르에서 오신다는 것은, 자기 행위로 하려는데서 벗어나려고 할 때, 주님이 거기서부터 빛을 비추신다는 것이다. 너의 행위에서 나오려고 하는 자들, 자기 의에서 나오려고 하는 자들에게 주님이 비추시고 계신 것이다.
또한 주님은 바란 산에서 나타나신다.
바란 [파란 פָּארָן]
바란 광야에서 12 정탐꾼 사건이 있었다. 그들이 다 약속의 땅에서 엄청난 거인을 보았지만, 다 허상이었다.
- [쩰 צל] : 그림자, 허상
바란 광야에서 허상을 보고 수군대며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완전히 낙담시켰다.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면, 옛 자아로 돌아가면 좋았을 것이라고 원망하는 것이다. 그들 입에서 다 자기 말들이 나온 것이다.
주님은 이 [파란 פָּארָן] 산에서 비추신다는 것은, 그 입(פ)에서 자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א)을 말하게 할 떄, 주님이 빛을 비추고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시나이]는 다 용서하는 것을 의미하고, [세이르]는 자기 행위, 자기 의를 Stop시키는 것을 의미하고, [파란]은 자기 입에서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신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 이게 초막절 기간에 우리가 해야하는 일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우리가 하나님의 [하브라카], 예수 그리스도를 받기 위해서, 아들이 우리와 함께 거하기 위해, 아들이 오시기 위해서 해야 할 일 세가지인 것 같다.
- 서로를 용서하고, 내 의와 행위를 멈추고, 이제는 내 입에서 오직 신성만을 이야기하길 원하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보았을 때, 축복이라는 말이 여러가지가 있다. 어디서는 복이라고 하고, 어디서는 행복이라고 한다. 복과 행복이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가 있다.
[브라카 ברכה] : 복
[아쉐르 אשר] : 행복
1) 브라카
브라카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축복하실 때 쓰여지는 단어이다. 아쉐르가 하나님 입에서 나온적은 없다. 하나님 입에서는 반드시 브라카만 나온다
- [브라카 ברכה] : 그 입에서는 다 아들이 나온다. 다 아들(בר)을 적용(כ)하라는 이야기 밖에 나오지 않는다.
브라카의 핵심은 누군가를 축복한다기 보다, 축복하는 사람이 누구냐가 더 의미가 있다. 축복을 하는 주체가 누구냐이다. 모든 사람이 내가 너를 축복하노라 하지만, 실제로 그 축복이 내가 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축복의 근원 되시는 분이 누구시냐는 것이다. 바로 그분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복의 주체, 복의 근원이신 야훼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축복으로 아들이 적용되는 것이다.
브라카가 복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원래 의미는 다르다
- [브라카] : 무릎을 꿇다.
무릎을 꿇는 것이 바로 복이다. 누구에게 꿇는가? 다 아들에게 꿇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것이다
시95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빌2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분의 형상의 진리, 그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되어있다.
2) 행복 [아쉐르 אשר] : 기쁨, Happiness
- 아셀 지파 : 행복한 지파
- 다른 뜻 : 걸음, 보행, 걸음을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발을 떼는 것) -> 똑바로 가다.
- 걸음마를 떼면서 한발씩 나오는 것이 아이에게 행복이다. 나오다 보니까, 내가 걸을 수 있다고, 성공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이게 정말 행복이고, 형통하게 된다. 그리고 이 걸음이 나에게 얼마나 복된지, 복되다, 행복이다. 이게 다 [아쉐르]의 뜻이다
비슷한 단어
- [야사르 ישר] : Straight
- 똑바로 가는 것이다. 내가 주님께만 똑바로 가는 것 자체가 나에게 크나큰 기쁨이고 행복이라는 것이다. 내가 주님께 똑바로 가는 것이 성공이구나, 형통의 길이구나, 복된 길이구나라고 하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똑바로 걸을 것이다. 옆으로 비틀거리면서 걷는 사람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복과 차이가 있다면, 행복은 내 내면에서 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다른데서부터가 아니라, 내 안에서 부터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사람은 다 그분의 [브라카]가 있어야지만 행복하다. 이 [브라카]가 있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다. 복 자체가 내 안에 와야지만이 행복해서, 이 행복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복 받은 것을 그대로 내가 적용했을 때, 실제로 그것이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 아들에 대해서, 그분에 대한 해석이 있어야지만 비로소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내 안에 아들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구나..! 내가 그분을 통해서 축복을 받았구나..! 그래야지만 내가 내 걸음으로 똑바로 걸을 수 있고, 내가 하나님께로 똑바로 걷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형통하고 성공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아쉐르 אשר]라는 말을 자세히 보자.
=> [로쉬 רשא](머리)가 된다. 행복은 다 머리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머리를 주신 이유는, 다 행복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토라의 첫번째 단어인 [베레쉬트]안에 [로쉬](머리)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토라의 첫 부분부터, 너의 마음을 완성하는 첫 단계부터 너는 행복해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행복은 다 이 [로쉬], 머리에서부터 온다. 주님은 머리로 당신이 주는 그 의를 깨닫게 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계속 반복할 때, 머리이구나..! 이것을 반복할 때 이것이 내 안에서 습관이 되고, 이것이 정말 나에게 행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냥 가만 있으면 안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안에서 나와야 한다. 아들이 들어왔으니까, 이제 그 아들을 밖으로 살아내야 한다. 그래야지만 행복한 사람이 된다.
행복을 내 안에,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야 라고 나 혼자 생각한다면, 그것은 행복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진짜로 행복한 사람은, 밖으로 삶으로 나오는 사람이다.
복있는 사람은 바로 이 머리가 바뀐 사람이다. 행위로 나와야 한다. 머리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때는 성령의 시대라고 한다
- 성령 [루앜흐 רוּח] : 여기에도 머리(ר)가 있다
= 머리가 바뀌는 시대이다.
내가 주님 앞에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머리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내 오감으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성령을 통한 머리로 살겠다는 것이다.
- [루앜흐 רוּח] : 계시된(ו) 그 머리(ר)로 삶(ח)을 산다.
이제는 내 생각과 내 머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사상과 의식과 목표를 가지고 내가 살겠다.
=> 한마디로 하면 이것이 "토라"이다.
= 내가 이제는 토라로 살겠다. 이것이 토라 안에 다 들어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토라는 다 가르침, 지침이라고 했다. 이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바로 이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 지침인 것이다. 토라로 산다, 넌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사는데 행복한가? 나는 토라로 살기 때문에 행복한다.
[토라 תוֹרה]로 산다는 것은, 십자가(ת)에 못(ו)박히신 그 머리(ר)로 산다는 것이다.
- 그게 바로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오직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는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머리로 산다는 것은 감각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토라의 가르침, 가장 높은 차원의 높은 사상을 향하여 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토라로 사는 것이다.
계20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다고 한다. 이들은 어떤 사람인가?
-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
여기서 말하는 복이 무엇일까? 브라카일까 아쉐르일까?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복이 있다. [아쉐르 אשר]일 것이다. 행위, 삶으로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축복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머리(רשא가 바뀐 자들이다.
-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베임을 당한 자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씀 [다바르 דבר] : 아들(בר)에게 종속(ד)되느라, 다 목이 잘린 것이다.
=> 머리가 바뀐 자들.
이제는 내 머리로 살지 않고, 아들에게 종속되는 그 머리로 살겠다고 삶으로 보여준 자들, 삶으로 행한 자들은 다 목 베임을 당하고, 머리가 바뀐 자들은 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바뀐 머리로 사는 사람들, 내 머리가 아니라 그분의 머리로 사는 자에게는 승리함이 있을 것이다. 머리로 산다는 것은, 다 영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자가 바로 머리로 사는 자이다.
신33:4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령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 토라를 명령한다. 이것이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다
총회 [케힐라트 קְהִלַּת] from [카할 קהל] : 공동체
- 이 시대의 교회를 말하고 있다. 교회는 다 토라의 명령을 지키는 공동체인 것이다
우리 예슈아 비전교회(קה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됨을 소망(ק)해야 하고, 머리됨을 계속해서 훈련(ל)하는 교회이다. 이것을 다 소망하시고 훈련하셔야 한다. 이제는 내 머리가 아니라 그분이 머리가 된다고 하셔야 한다.
신33:5 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수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한 때에로다
이제 6절부터는 12지파에 대한 복이 임하게 된다. 여수룬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있다. 그런데 곧 백성의 수령이 모인다. [로쉬], 머리들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 예슈아 앞으로 가는 백성들은, 다 머리가 바뀐 자들만이 모이게 될 것이다.
초막절에 우리의 오감으로 주님을 찾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가운데 오시기 원하시고, 이미 오셔서 여러분 가운데 함께 계시는 그 주님과 하나가 되는 진짜 절기가 되길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 자체가 복일 것이다. 그 축복을 알지 못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모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베조트 하브라카, 하브라카, 그 축복이 바로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베조트 하브라카 וזאת הברכה]
[하브라카] : 예수 그리스도
-> 그래서 이것은 [베레쉬트 בְּרֵאשִׁית], 이 머리(ראש)와 붙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같이 읽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제는 토라를 통해서 우리의 머리가 바뀌기 원한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생각, 내 관점, 내 머리로 살지 않고, 그리스도의 머리로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 54번째 토라포션은 이것을 말하고 있다. 끝난것 같으냐? 이제는 너의 머리가 바뀌었다. 이 바뀐 머리로 네 삶을 살아야 한다. 네 생각으로 살지 않고, 네 바뀐 머리로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로 네가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아갈로 계속 돌고 돌게 될 것이다
* 기도
주님, 우리의 머리가 바뀌기 원합니다. 이미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 아들을 통해 이제 내 머리가 바뀔 것입니다. 내 오감, 내 경험과 지식으로 살았던 모든 것들을 이제는 멈추고, 그리스도가 내 머리가 되셔서 이 삶을 살게 하소서. 이제는 이 초막절에 내 머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머리로 살게 하는, 그리스도의 머리와 내 머리가 하나가 되어, 같이 이 초막에서 거할 수 있는 그러한 절기가 되게 하소서
하그 싸메앜흐 할 수 있는 이 Rejoice의 절기가 되게 하소서. 이 머리가 바뀐 절기가 되어서, 머리가 바뀐 내가 당신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머리가 바뀐 것이 가장 큰 축복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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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아들에게 종속되는 자는 다 목베임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목이, 우리의 머리가 바뀔 것입니다. 이제는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될 것입니다.
단순히 받는 복을 가지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종속되게 하소서, 말씀에 순종되어서, 삶으로 이 토라를 살아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쉐르, 복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머리가 바뀌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삶으로 살아내는 자, 이 초막절에 나 혼자가 아닌 고아와 과부 종들, 모든 이들과 함꼐 먹고 마시는, 나보다 남을 생각하게 하시고, 그것을 통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절기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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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 기간에 우리에게 베조트 하브라카 말씀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 축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축복, 하브라카는 예수 그리스도 당신이십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 내 머리가 바뀌어서 이 복을 다른이에게 전하며 살겠습니다. 나 혼자 기뻐하는 절기가 되지 않게 하소서. 모든 이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도록 머리가 바뀌게 하소서. 내 감각적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초막에서 먹고 마실 때, 머리가 바뀌어서 첫째 부활에 참여할 수 있게 하시고, 주님과 에하드를 누릴 수 있는 절기가 되게 하소서. 우리 모두 머리가 바뀌어져서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당신께 종속되었을 때 그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말씀에 적용되서 살아갈 수 있는 매일 매일이 되게 하소서.
목요일(다섯째날)
신33:22-26, 계21:9-27, 슥13-14
기뻐해야 할 절기가 3가지가 있다고 했다
-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 하그를 쓸 수 있는 절기이다.
초막절 때 해야할 것 중에 반드시 해야할 것이 초막, 수코트를 설치하고 그 안에서 먹고 자는 것이다. 초막절에 또한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다.
- 바로 기뻐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반드시 해야한다. 기뻐하라..! 이것이 수코트의 주제이다.
이 날은 강력한 기쁨의 시간이다. 그래서 이 강력한 기쁨이 내 안에서 부터 밖으로 흘러 넘치는 것이다. 나를 봄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기뻐해야 한다. 왜 기쁘냐? 수콧이다. 초막절이다..! 그래서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초막절 때 부르는 찬양이 있다. This is the time, all we are rejoicing, 즈만 심하테이누..!
[즈만 심핰테이누]
[심핰] : 기쁨
[즈만] : 그 때
- 어떤 Season이 있는데, 우리가 마음껏 기뻐해야 할 시즌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기쁨의 시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7일동안 기뻐하라고 한다. 7일동안 슬퍼해도 안되고, 아무 감정 없이 있어도 안된다. 7일 동안 기뻐해야 한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계속 기뻐하셔야 한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이런 이야기도 한다. 이 기간에 누군가 돌아가셨으면 어떡하는가?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이 수콧 기간때는 슬픔을 표현하면 안된다. 마음껏 기뻐해야 한다. 이 수콧이 끝나고 나서 슬퍼한다. 그만큼 하나님의 기뻐하라는 명령이 큰 것이다. 초막절에 반드시 기뻐하라는 명령은 가족의 죽음보다도 더 큰 것이다. 기뻐하라..!
유월절 [페쌐]은 우리를 자유케 하는 절기, 시즌이었다.
오순절 [샤부옷]은 주님이 우리에게 토라를 주신 날이다. 토라의 시즌이다. 말씀, 성령을 주신 시즌이다.
초막절 [수코트]는 기쁨의 시즌이다.
이번주 토라포션은 베조트 하브라카이다. 이것이 그 축복이다. 오늘은 특별히 초막절 이야기를 많이 하겠다. 이것이 마지막 토라포션이다. 그런데 이것이 끝나면, 끝이 아니라 다시 베레쉬트, 창세기로 돌아간다.
히브리어로 계속해서 돈다라고 해서 [마아갈 מעגל]이라고 배웠다.
시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의의 길 [마아갈] : 길, 행로
마아갈은 다 지나간 길이다. 누군가 이 길을 먼저 지나간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지나간 길, 발자취 이런것이 된다. 그래서 옛날 고대 시대에는, 자동차가 없었으니까 수레바퀴라는 뜻도 있다. 수레바퀴로 먼저 앞으로 지나간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길을 발자취를 따라서 가는 것이다. 누군가가 먼저 이 의의 길을 지나가신 분이 있는 것이다. 그 길을 졸졸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이 끝이 없다. 발자취만 보다 보면 계속 돈다. 멈춰 있으면 만나게 될 것 같은데, 계속 돈다.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의의 길은 계속 순환하는 것, 도는 것을 말한다. 절기는 다 이 시스템으로 되어있다. 다 도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베조트 하브라카와 베레쉬트가 붙어있는 것이다. 시작에서 마지막으로 온 것 같지만, 마지막에서 다시 시작이 된다. 끝이 없다.
전3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 분명 하나님의 때가 있다고 한다.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 때는 분명히 있다. 초막절 이 때는 기뻐할 때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 영적인 시즌이 우리에게 분명히 있는 것이다.
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 영원히 있을 주님의 시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동양 : 원
- 동양적인 사상에서는 돈다고 한다. 원은 원이다. 이것을 윤회라고 한다. 죽은 것 같지만 다시 태어나고, 다른 동물로 환생했다고 한다. 이것이 동양적인 그래프이다.
서양 : 직선
- 서양에서는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때가 있는 직선상의 구조이다.
성경 : 나이테
- 그런데 성경적인 시즌, 모습은 원은 원인데, 창조부터 시작해서 계속 나이테처럼 도는 것이다. 계속 돌면서 커진다. 이것이 마아갈이다. 분명히 때가 있다. 2011.9월/12년/13/14년의 초막절이 있다. 동일한 시간인데 그 시간이 점점점 달라지는 것이다. 다르지만, 그것이 점점 커진다. 하지만 똑같다. 내년 초막절도 분명히 올 것이다.
계속 반복되지만, 이게 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날은 중요하다. 한 날은 그 날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날 가운데, 9월 9일 이런 날은, 신사참배가 결정된 날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똑같은 9월 9일에는 엄청난 사건들이 터지게 된다. 정확한 날에 대해서 그것이 계속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흔히 말하는 Blood moon들도 정확한 날, 시간에 보이게 된다.
이것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이 반복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어떠함을 말한다. 우리 삶에 어떤 것이 반복되느냐?
- 먹고, 자고, 싸고, 놀고가 반복되면, 그것이 그 사람의 어떠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반복한다.
- 저 사람은 교회에서 악기만 치는 것을 반복한다면, 어느새 예배 인도자가 되어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어떠함을 살기 원한다면, 나의 절기를 지키라고 말하신다. 절기의 최소 단위는 샤밧, 안식에서 부터 시작한다. 모든 것의 중심엔 다 샤밧이 있다. 이 샤밧의 시스템으로 돌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 샤밧을 12개의 달이 나누고 있다. 12개의 달이 샤밧을 중심으로 계속 돌게 되어있다.
니산월이 되어 봄이 되면,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이 있다.
- 이것과 정확하게 반대인 7월에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이 있다.
마치 이 봄 절기와 가을 절기는, 정확하게 반으로 접혀진다. 봄 절기가 출발이었으면, 가을 절기가 도착이 되는 것이다. 봄에서 시작되었으면, 가을에서 완성이 된다. 다 이 시스템인 것이다.
또 완성된 것 같은데, 다시 또 돈다. 초막절이 끝난다고 아쉬워 할 필요 없다. 다시 또 유월절이 시작될 것이고, 토라를 주실 것이고, 나팔을 불고, 초막절이 오게 될 것이다. 유월절, 초막절도 다 7의 시스템이다.
- 그래서 유월절도 초막절도 7일동안 지키게 되어있다. 7의 시스템으로 돌게 되어있다.
이 7에 대한 사이클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 여호와의 Life style이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이 절기 속에 다 들어있다. 절기는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그런 중요한 틀이 된다. 그래서 그분을 경험하는 것은, 다 이 절기를 반복해서 살아내면서 그 삶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이 시대에 토라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 절기가 회복되면 되는 것이다. 절기 안에 다 예수님이 들어있고, 토라의 모든 비밀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절기, 히브리어로 [모에드 מוֹעד]이다. Appointed time, 정한 때를 말한다.
- 이것은 [에드]에서 나왔다. 이것은 성경의 핵심이다.
[에드 עד]라는 말은, 증거라는 말이다. 무엇에 대한 증거이냐? [모에드](절기)는 다 진리에 대한 증거이다.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한 증거가 바로 이 절기이다.
[모에드]라는 것은, 다 진리가 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계속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절기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내 삶의 모습과, 내가 이런 사람이야, 내가 예수님안에 있다고 증거하기 보다는 어쩌면 절기 속에서, 이 절기를 살아냄으로서 증거하는 것이다
- 나팔절엔 나팔을 불면서, 절기 안의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 초막절엔 초막을 설치하고 마음껏 기뻐하면서, 또 4가지 식물도 흔들어보면서 예수님을 기억해 볼 수 있고 / 대속죄일때는 같이 성회로 모여서 울고 회개하면서 기억한다. 다 그분을 증거하는 것이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증인은 이 증거에서 나왔다. 이 증거를 살아낸 사람들이다
증인 [에다 עדה]
- 우리는 모두가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절기에 대한 증인이 되어라고 하는 것이다. 살아 내야 하는 것이다
모에드는 예수를 증거하는 증인의 Life style이다. 그런데 요즘 이방 신들도 이런 절기들, 자신의 [모에드]를 가지고 있다. [모에드]가 약하다면, 그 영향력도 약하다고 보는 것이다. [모에드]에 관한 명령이 많을수록, 초막을 설치해라, 뭐를 해라가 많을수록, 강한 신이다.
Ex ) 메카를 향해서 하루에 5번 기도하라는 종교들.. 일주일에 6번째날은 반드시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는 것들.. 오늘날의 무슬림을 만든 것이 이러한 강한 명령이 있는 것이다.
- 우리는 대속죄일, 일년에 딱 한번 금식했다. 하루도 아니고, 실제로 2끼이다. 그런데 무슬림은 1달동안 라마단동안에 금식을 한다. 라마단 금식은 굉장하다. 오늘날 이 강력한 것을 반대하기 위해서 그 기간에 역 라마단 기도도 한다. 같이 또 기도하면서, 무슬림, 중동 국가들을 축복하기도 한다.
- 이것들이 다 오늘날의 이슬람교를 굉장한 파워로 증거하게 하는 그러한 삶이 되는 것이다
Ex ) 카톨릭에서도 이러한 절기, 모에드를 많이 만들어놓았다. 다른 신의 것들을 흡수하기 위해서 만들어 논 것이다
- 다른 신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다른 신의 절기를 흡수하면 된다. 그러면 다른 신도 내 것이 되는 것이다.
- 우리가 아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들을, 초실절 대신에 부활절(Ester)로 바꿔버렸다. 예수님의 생일 자체도 크리스마스, 성탄절로 바꿔버렸다. 다른 신의 절기가 흡수되면, Life style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토라에서 이 절기가, 유대인의 절기, 이스라엘의 절기라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의 절기"라고 말하고 계신다
- 다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라이프스타일이 있고, 이것을 네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난 싫고, 절기를 왜 해야하는지 모르겠고, 초막을 왜 설치해야하는지 모르겠고 안하겠다는 것은, 당신의 라이프 스타일대로 살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에 보면, 이 하나님의 절기의 사이클을 그대로 다 따라한다. 정말 배교하는 사람들은 이 절기를 그대로 따라한다. 이 절기를 따라하지 않는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이단들이다. 스스로 이단이라고 칼 들고, 피묻히고 하면, 사람들이 근처에도 안갈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절기, 성회라고 하면, 굉장히 뭔가 있어보이고, 성경에도 이렇게 써있으니, 맞는 것 같아서 다 따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위조지폐같은 것들은 진짜와 흡사하게 만든다. 정말 똑같이 만들어야지만, 본따야지만 그것에 속게되는 것이다.
그리고 단위가 작은 10원등으로 만들지 않는다. 단위가 큰 것들을 만든다. 정말 큰 것들, 토라 안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가장 큰 것들만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그 중의 핵심이 이 절기이다.
모에드, 절기의 핵심의 다른 것은 "반복하는 것"이다. 한번 절기를 했다고 끝이 아니다. 절기는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이 반복이라는 말이 [에드 עד]에서 나왔다
- 반복 [오드 עוֹד]
그래서 우리는 매일 매일 이 절기를 반복하고 있다. 오늘 하루의 삶에도 절기를 반복하고 있다. 새벽예배 나오는 사람들은, 상번제를 매일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샤밧을 반복한다. 샤밧이 안오면 좋겠다고 해도 샤밧은 또 오게 되어있다. 그리고 유월절부터 초막절까지의 절기도 계속 오게 되어있다.
우리는 즈만 심하테이누, 기뻐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이 [모에드]안에도 기쁨이 숨어져 있다. 이 [에드]를 가지고 눈을 붙이면 [에덴 עדן](기쁨)이 된다. 에덴이라는 것은 다 기쁨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우리가 죄 없기 전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 내가 모에드에, 이 초막절에 기뻐한다는 바로 에덴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에덴에서의 Life style을 살아내는 것, 모에드를 살아내는 것이 이것을 말하고 있다.
이 [에드]를 계속 지키게 되면, [에드]의 다른 말은 "영원"이다.
쉐마 이스라엘 찬양이 있다. 이것의 끝이, [바룩 쉠 케보드, 말쿠토 레올람 바에드]이다.
[레올람 바에드 לעלם ועד] : 영원 영원히
- 모에드는 영원히 지킬 절기이다.
주님이 오시면 절기가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또 절기를 살아낼 것이다. 절기는 끝이 없다. 영원한 여호와의 절기는 끝이 없다. 영원히 기뻐해야 하는 것이다. 기뻐하다가 말다가 하는게 아니다.
예수님의 증거를 지키는 증인들은, 계속해서 영원히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증인이 되었다가 배교했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증인이 되고 살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절기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그분의 부활과, 당신의 영원한 Kingdom을 이루기 위해서 계속해서 주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 초막의 의미가, 내가 너희와 함께 거하겠다. 그냥 한번 거하겠다가 나는 그냥 가는게 아니라, 계속해서 영원히 거하겠다는 것이다. 초막절, 주님의 재림은 우리와 함께 영원히 거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모에드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다. 주님도 이 절기를 다 지키셨다. 절기에 맞춰서 예루살렘도 오르신다. 또 그의 사도들도 이 절기를 그대로 따라했다. 다 이 길을 걸어간 것이다.
모에드라는 것은 뭘까? 모에드(מוֹעד)는 다 하나님과 영원(עד)히 함께하기 위해서, 증거(עד)를 가진 증인(עדה)들이 반복(עוֹד)해서 사는 것이고, 그것이 그들에게 기쁨(עדן)이 되는 것이다.
레위기는 모세 오경의 핵심에 있다. 굉장히 어렵고, 나랑 상관없고, 교회에서 잘 읽지도 않는 책이라고 볼지도 모르지만, 레위기는 핵심중의 핵심이라, 모세 오경의 가운데에 놓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정말 하이라이트는 레23-25, 절기 장이다. 그래서 이것을 숨겨논 것이다.
초막절 넷째날이다. 애굽에서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에 거주했다. 그래서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날도 초막을 짓는다. 하나님꼐서 이제 그들 가운데 사신다는 의미이다.
초막절은 주님이 와서 함께 거하시고, 성막이 만들어지고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행15: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 사실 이 말씀은 암9:11에 있다.
암9: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 이게 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수카를 일으킬 것이다. 장막, 초막, 수카이다.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에돔의 남은자라고 한다. 요르단의 남쪽 지역의 에돔이다. 여기에 남은자가 있고,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 열방을 기업으로 얻게 한다. 에돔의 남은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이 지금 하나되고 있다.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 파종하는 자 / 곡식 추수하는 자 / 포도를 밟는 자 / 씨 뿌리는 자의 뒤 /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는다 : 어떤 계절일까? 초막절을 말하고 있다. 가을 절기를 말하고 있다. 수카를 설치하는 가을 절기를 말하고 있다.
- 특히 포도주가 나온다. 샤밧 때 포도주를 마신다. 포도주는 다 기쁨을 말한다. 기쁨의 절기이다. 그래서 이 때는 먹고 마시고 마음껏 하는 것이다. 단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
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 포도주를 마시게 되는 기쁨의 절기가 회복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15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의 땅에 다시 심으신다고 말하신다. 다 뽑으시고, 이스라엘은 다 흩어졌다. 그런데 그것을 다시 모아서, 이스라엘 땅에다가 그것을 다시 심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일 보게 될 열두 지파에 대한 모세의 마지막 축복들이다. 이것을 모아서 이스라엘에 다 심으시겠다. 모두 다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그 소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의 왕국, Kingdom이 다시 부활하고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암9:11은 굉장히 중요한 구절이다.
- 그리스도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이 암9:11을 파하기 위해서, 911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정확한 날, 시간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필이면 그 날로 정한다. 이것을 통해 미국과 중동 가운데 테러와, 사람들의 슬픔과, 애통함과, 비통함과, 온 열방이 다 그 사건을 주목하게 된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회복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 12지파가 오면 안되고, 다윗의 Kingdom 회복되면 안되기에, 미국을 대표하는 센터에 폭파가 일어난 것이다. 이게 다 911에 대한 이야기이다. 암9:11을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계략이다. 그러나 이 암9:11은 다시 회복될 것이다. 주님이 다시 심으실 것이다.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다시 수카를 설치하게 하실 것이다.
슥14: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이방 나라중에 남은 자가 매 해마다 초막절에 올라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분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이다. 매 해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실 것이다 하고 있는 것이다.
초막절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어떻게 하실 것인가?
1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초막절을 지키게 된다, 그 안에 만군의 여호와가 계신다. 그분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오지 않는 자들에게 비가 안내리게 될 것이다. 비는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한다
비는 다 물, [마임 מים]이다. 비는 다 물로 되어있다. 하나님의 손(י)으로 하늘의 진리(מ)가 이 땅의 진리(ם)로 오게 되는 것이 물이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내려오시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이 되는, 알렢이 베트가 되는, 아브가 벤이 되는 것을 말한다.
초막절에 올라오지 않는 자에게는, 이 알렢에서 베트까지 올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위에 있는 진리가 이 땅으로 내려와서 살아낼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히 비가 안온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비가 오면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 비를 맞는 것이다.
- 주님 우리에게 당신의 진리를, 마임을, 생명수를 부어주시고, 흘러 넘치게 하소서.
초막절에 비가 오면, 완전 로또다 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도 초막절 넷째날에 비가 오고 있다. 당신의 진리가 적시고 있는 것이다.
초막절은 어떤 사람이 지킬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만이 초막절을 지킬 수 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초막절을 지킬 수 없다. 절대 이 비를 맞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초막절을 다 지키는 것이다.
내가 초막절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다윗의 장막이 내 안에서 세워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와서, 이 다윗의 장막 안에서 함께 거할 수 있는 장막을 내 안에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초막을 만들었는가? 우리 안에 이제 나 혼자 거하면 아무 소용 없다. 이제 그분이 내 안에 거하셔야 한다. 주는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오셔야 한다. 그래서 함께 그분의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해야 한다.
여호와와 함께 같이 살기 원하는 절기를 통해서 당신의 라이프 스타일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라이프스타일로, 에드, 에다, 오드, 에덴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 기도
초막절 넷째날입니다. 우리의 모든 Life style이 완전히 바뀌게 하십시요. 내 스타일이 아니라, 당신의 스타일로 바뀌게 하십시요. 내가 이제 다윗의 장막을 세울 것입니다. 이 다윗의 장막에서 진정 증거로, 증인과 영원함과 반복되고 기쁨으로 나올 것입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거할 수 있는 다윗의 장막이 세워지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하고 싶은 이 주고자 하는 마음이 이 다윗의 장막에 서게 하소서. 이 증거를 가지고 살아내는 증인들이 있게 하소서. 당신의 증거를 반복해서, 영원까지 가져갈 수 있는 이 기쁨의 장막이 내 안에 세워지게 하소서.
내 안에 무너진 장막의 기초를 세울 것입니다. 이 초막절 기간에 이 모든 것들이 세워지게 하소서. 암9:11이 세워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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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에 마음껏 기뻐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내 안의 슬픔, 낙심이 있습니까.. 이 모든 마음을 잠시 접어두겠습니다. 즈만 심핰테이누, 우리의 기쁨의 시즌이 왔다. 이 초막절에 마음껏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가 마음껏 기뻐할 수 있는 그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당신밖에 없습니다. 내가 바로 당신을 통해서 기뻐할 수 있는 하루 되게 하소서. 이 초막절 절기에 우리에게 있는 모든 슬픔이 거둬가게 하시고, 모든 어려움과 잡생각들이 사라지게 하시고, 진정 그리스도를 통해서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의 절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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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음껏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껏 기뻐할 때가 왔다. 나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십시요. 내 안의 모든 어려움을 기쁨으로 바뀌게 하소서. 세상과 내 환경은 바뀌지 않고 똑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장막이 지어진 내 안에서부터 기쁨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초막절이 벌써 가운데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남은 날 동안에 더욱 더 기뻐할 수 있는 우리되게 하소서. 마지막 때 무너진 다윗의 장막에 세워질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와 먹고 마실 수 있는 다윗의 장막이 세워질 것입니다. 내가 이 안에서 진정한 에덴의 기쁨을 맛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금요일(여섯째날)
신33:22-26, 계22:1-12, 말1-2
베조트 하브라카 : 이것이 그 축복이다.
신명기의 마지막 토라포션인 동시에, 모세오경의 마지막 토라포션이다. 이제 거의 끝이 되었다.
우리가 계속 쓰고 있는 신명기라는 말은, 사실은 헬라어 번역에서 나온 말이다.
신17: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미쉬네-하토라 מִשְׁנֵה הַתֹּורָה], 이것을 오해하다 보니까, 신명기가 되는 것이다.
[미쉬네] : 둘, 두번째
- 첫번째 토라가 있고, 두번째 토라가 있고, 다시 한번 쓰여진 두번째 토라, 두번째 율법으로 오해해서 신명기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신명기의 히브리적인 이름은 [드바림](말씀들)이다. 그런데 이것을 신명기, 두번째 율법이라고 표현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그들에게 한 말, 말씀들을 의미한다. 똑같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다르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하신 것이고, 모세가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말하고 있다.
[미쉬네 מִשְׁנֵה] : 두번째, 두배(x2), 똑같은 것을 하나 더 만드는 등사본/복사본
from [샤나 שׁנה] : 해, 년 / 다시하다(->두번째), 완전히 바꾸다(Transformation, 변화, 변혁)
- 한 해가 지나갔다, 나이를 한 살 먹으면, 완전히 나의 삶이 또 바뀌는 것이다.
이제 한 해가 지났다. 유대력으로 5775년이 지나고, 5776년이 시작되었다. 벌써 새 해가 시작된지도 20일이 되가고 있다. 토라포션도 한 바퀴가 돌고, 이 토라포션을 마지막으로 다시 베레쉬트로 가게 된다. 작년에 들은 베레쉬트랑 또 다를 것이다. 작년의 노아 말씀이랑 또 다를 것이다. 우리는 계속 다르다. 나이를 한 살 먹음으로, 토라를 한 바퀴 돎으로서 우리에게 새로운 Transformation이 있게 된다.
이 신명기의 시작에서 모세는 출애굽했던 세대가 아니라 새로운 다음 세대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주인공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계속해서 느보산에 올라가서, 땅을 바라보면서 계속 이야기한다. 얼마나 가고 싶겠는가? 그런데 주님이 너는 못간다고 이야기하신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다 상기시킨다. 너네 조상이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하고, 약속의 땅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게 붙어있으라. 아브라함,이삭,야곱때부터 있었던 그 언약에 신실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준비하는 말씀들을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이번주 토라포션의 마지막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말씀은 단순히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는 말씀이기도 하고,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한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었다. 들으라. 이 시즌 앞에서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주 토라포션에서는 열두 아들에 대한 축복이 나온다. 바로 여러분에게 하는 축복이다. 12개를 계속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나서 모세는 죽는다.
사실 이 드바림을 보면, [다바르 דבר]에 아들(בר)이 있다. 다 아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계속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이 드바림 자체는 다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 이웃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 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
단순히 약속의 땅에 들어가네 못가네가 아니라, 그 땅,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정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계속해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 자기 사랑, 자기 중심, 이기심, 이것들로는 못 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타적인 것으로 나오고, 주는 사랑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기 사랑, 자기 중심, 이기심은 다 우상숭배가 된다는 것이다. 제발 이것들을 섬기지 말아라. 이것이 있으면 그 약속의 땅, 전적으로 주는 땅에는 못 들어간다. 가면 너네는 큰일난다는 것이다.
신33엔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이스라엘 지파들을 축복한다. 마치 야곱이 죽기 직전에 했던 축복과 매우 비슷하다. 33장은 1-5절이 매우 중요하고, 6절부터 각 지파에 대한 축복을 쭉 한다.
신33: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베조트 하브라카 וְזֹאת הַבְּרָכָה]
[아쉐르 베라크 אֲשֶׁר בֵּרַךְ]
[모쉐 이쉬 하엘로힘 מֹשֶׁה אִישׁ הָאֱלֹהִים] : 하나님의 사람 모세
- 모세는 하나님의 [이쉬]이다.
[에트 브네 이스라엘 리프네이 모토 אֶת־בְּנֵי יִשְׂרָאֵל לִפְנֵי מֹותֹֽו] :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모세는 이 토라포션의 가장 큰 중심 주인공이었다. 물론 가장 중심은 주님이시지만, 모세는 계속 [마쉬앜흐]를 말하고 있다고 했다.
- [모쉐 מֹשֶׁה] : 진리(מ)의 형상(שׁ)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이다 라고 한다.
- [이쉬] : 사람, 남자, 남편
모세가 바로 남편이 된다고 한다. 예슈아이다. 예슈아는 우리의 남편, 남자, [이쉬]가 되신다.
[리프네이 모토] : 죽기 전에
죽는다는 것은 슬프다. ([무트] : 죽음).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다. 우리에겐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부활에 대해서 그 진리를 아는 자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위로부터 오는 계시(ו)를 통해서 진짜 진리(מ)가 완성(ת)되는 것이 죽음(מות)이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오래 사는 것 같지만, 다 죽는다. 죽음을 통해서 아버지의 것이 아들에게 전해진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이삭이 야곱에게, 모세가 죽음으로서 여호수아가 실제로 등장하게 된다. 모세 따로, 여호수아 따로가 아니다. 실제로 같다. 다 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그것이 예호슈아가 되서 실제로 일하게 되는 것이다.
진리가 완성(=죽음)된 [리프네이](얼굴)을 말하고 있다. 그 얼굴 앞에, 바로 예슈아를 말하고 있다.
[브네이 이스라엘](이스라엘 자손)을 위해서이다
- 이스라엘 [야싸르엘] : 하나님께 곧바로 가는 / [브네이](아들들)
= 하나님께만 곧바로 갈 수 있는 아들, 예슈아이다.
다 예슈아를 이야기하고 있다. 왜냐면 이제 나오게 되는 열두 지파에 대한 축복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이 다 하는 것이다.
예슈아는 다 주는 사랑이다. 우리가 지난 1년동안 들은것은, 다 주는 사랑을 배웠다. 도데체 얼마나 주는것이 주는 사랑이냐? 그 범위를 모르겠고, 그냥 다 주라.. Give to give까지 배웠다.
생명을 준다라는 것, 생명까지도 주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은 나는 이 heart의 반쪽밖에 안된다. 내 생명을 줘도, 너는 죽지 않는다. 아직 너에게는 반쪽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생명을 준다는 것은, 내가 아직 반쪽이기 때문에, 이 남은 반쪽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왜 네가 반쪽이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반쪽에 불과하다. 내가 완전해 지기 위해서는 나머지 반쪽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슈아이다.
완전한 에하드를 위해서는 반드시 예슈아, 주는 사랑이 필요하다. 완전한 [하아담](The Man)이 되기 위해서는, 완전한 [하이쉬]가 필요할 것이다. 그 한 사람이 필요하다. 정말 주는 사랑의 반쪽이 필요하다. 원래는 하나였다. 이 하나에서 반쪽이 떨어져나간다.
- [하이샤]였는데, 이것이 완전해 깨져버렸다. 나만 생각하고,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떨어져서, 우리가 다 나뉘어졌다. 이것을 Broken heart라고 이야기했다. 다 깨어진 마음들이다.
그렇다면 이 깨어진 마음과, 다시 이것이 하나가 되서, 주님과 하나가 되서, [하아담](한 새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33:2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1) [시내산] : 평가가 필요하다.
= [쌀랔흐](용서) : 누군가를 용서해야 한다. 깨어진 마음들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하다.
2) [세이르] : 자기 행위, 자기 의, 자기가 [아싸]하려고 하는 것들에서 일어나야 한다. 내 힘으로, 내 의로 하려고 했던 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 그것을 중단해야 한다
3) [파란] : 내 입이 이제는 더 이상 아무 말이 아니라 신성만을 말하는 입이 되어야 한다.
-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 할 때도, 내 생각과 마음대로가 아니라, 신성을 말하는 것이다. 수콧 기간에 이 세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 이게 무슨말일까? 비춰지는 불이 있다고 하신다
불 [에쉬다트 אשֶׂדת]*
- 율법의 불이라고도 표현된다. 또는 불이 율법이다라고도 이야기 할 수 있다.
시내산, 세일산, 바란산은 다 여성형이다. 그러나 이 [에쉬다트]는 여성 단수형이 쓰인다.
불 [에쉬 אשׂ] : 신성(א)의 형상(שׂ)
= [이샤 אשׂה] : 여자
[다트 דת] : 법
=> 토라를 가지고 있는 여자, [하이샤]
토라에서 말하는 주는 사랑,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지고 있어, 하나가 된 이 [하이샤]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오른손에 있다고 한다.
오른손 [야민 ימִינ] : 우편
- 하나님의 우편할 때, 메시아의 보좌를 가르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 주라고 이야기한다. 오른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하이샤]와 [하이쉬]가 하나가 된 것이다. 이것이 [하아담](The Man)이 되는 것이다. [이샤 אשה]와 [이쉬 איש]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쉬와 이샤가 합쳐진다. 그러면 여기서 [야 יה], 하나님이 나오는 것이다. 그분의 형상과 모양이 되는 것이다.
신33:4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령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야곱의 총회 [케힐라트 야아코브 קְהִלַּת יַעֲקֹֽב]
[케힐라] : 모여라
- 이제 진짜 토라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 진짜 소망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가 되고, 그것을 계속해서 훈련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하아담](The Man)에 대해서 계속 소망을 날마다 훈련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주님은 이 비전이 있는 사람에게, 이어서 12지파에 대한 축복을 주신다. The Man, [하아담]에 대한 비전이 없이는 열두지파에 대한 축복을 주실 수가 없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숫자가 12이다.
여기 보면 12지파의 이름들이 다 나오진 않는다. 시므온이 빠져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 열두 지파가 다 들어가야 된다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주님이 이 12를 계속 맞추시고 계신다. 이 숫자에 맞추기 위해 일부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
- 우리가 다 열두지파의 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2는 다 제자에 대한 숫자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다 12명이었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12번째 히브리글자가 라메드, 훈련하다이다. 이 라메드는 굉장히 중요하다. 라메드가 없이는 주님이 오실 수가 없다. 훈련이 없이는 오실 수가 없다.
주님의 초림은 라메드로부터 시작한다. 훈련된 사람에게 시작되고, 당신의 재림은 라메드로 시작해서, 레쉬로 간다. 그분의 성령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라메드의 숫자값은 30이다. 30부터 시작되는 레위인의 성막 봉사가 다 라메드를 통해서 된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도 30세부터이다.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것을 계속 훈련시키실 것이다. 끝까지 훈련시키실 것이다.
이게 다 우리로 신부수업하게 하는 것이다. [이샤]로 준비되어라..! 이분은 이미 다 준비되어있으시다. 그러나 이 깨어진 사람들이 준비되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단장하고, 더 그날을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 기간은 초막절이다. 초막절은 다 주님과의 결합, 결혼, 하나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하나됨이 있는 시간이 이 초막절이다.
- 결혼식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마치 주님이 우리를 영접하는 것은, 우리가 성소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리고 진짜 그분과 결합하는 것은, 어느 장소가 아니라 지성소에서만 그 결합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그래서 수콧은 다 주님과의 결합을 말하고 있다.
출25: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 속죄소가 있다. 그것에 그룹이 날개를 편다
(날개를)펴다 [파라샤 פרשׂה] : 해석하다
- 지성소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 삶에서 해석하게 된다. 이런 것이었구나..!
그리고 속죄소를 날개로 덮는다고 한다.
덮다 [카파르] or [수카] : 덮는 것
- 주님이 다 덮어주시는 곳이 [수카]이다. 주님만 의지해야 하는 곳이다. 주님만 의지함으로써, 내 신랑만을 의지함으로써 다음 스텝을 주님이 정하실 수 있도록 다 내어 맡기는 것, 주님만 의지하는 것이다.
[수코트 סכוֹת]의 [싸멕 ס]이 평가하다, 의지하다라는 뜻이 있다
- 주님만 의지하는 것, 초막에 있는 그분만 의지하는 것이다.
주님만 의지했을 때, 이제 신랑이 딱딱 일할 수 있도록 내어 맡길 수 있는 출발 선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초막절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결혼식때는 초막과 굉장히 비슷한 후카가 설치되있었다.
- 마치 우리를 덮고, 우리가 결혼함으로써 한 새사람이 되어서,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이 주님이시다란 것이다
예수님과의 결혼은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콧, 초막절이 주님과의 결혼에 대한 예행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cf ) 많은 분들은, 내가 꼭 신부가 되야하냐고, 나는 그냥 하객이면 만족하다는 분들도 있다. 결혼사진에 여러 웨딩사진이 걸려있다. 그런데 진짜 주인공이 나인데, 저 사람은 나 아니라고 손사래치고, 그냥 잔치 음식이 맛있다고, 신부가 식권달라고 하면 안된다. 주례자 앞에서 선언하는데, 신부가 신랑을 사랑하냐고 말하는데, 갑자기 신부가 내 옛 애인이, 자아가 떠오르고 있고, 애굽이 떠오르고 있다고, 아니요 라고 하고 뛰쳐나가면 안된다. 이러면 결혼식 큰일나는 것이다.
이 날을 위해서 모든것이 차근차근 셋팅된 것이다. 이 날을 위해서, 내가 이전에 받고 싶은 욕구, 이기적 욕구에서 다 드러냈다. 나는 여전히 이기적 자아가 크고, 나는 반쪽밖에 안되고, 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고백했다.
진정 에하드가 뭔지를 이제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비전, The Man에 대한 비전을 완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우리는 다 유월절을 통과해서 오순절, 초막절까지 왔다. 십자가에서의 어린양의 죽음, 부활, 토라, 성령, 신부단장의 시간이 왔다. 신부 입장 소리가 이제 들리는 것이다. 나팔 소리가 들리면서, 신랑이 준비되었고, 신부입장의 발걸음을 뗄 순간이 이 초막절의 순간이 된다.
신랑은 태초부터 있었던 내 짝이었다. 원래 그분과 나는 하나였다. 태초부터 정했던 그 예슈아, 신랑을 향해서 발걸음을 떼는 순간이 초막절인 것이다.
그래서 초막절은 철저하게, 신부가 나 자신이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깨지는 것이다. 이제 나는 반쪽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저 신랑과 하나가 되야지만 내가 완전할 수 있다고 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초막절은 내가 죽고, 그분이 사는, 그분을 위해 사는, 신랑이 하자는대로 하게 되는 Life style인 것이다.
더 이상 반쪽이었을 때, 하나라고 여겼던 그 모든 내 욕구는 다 접어둬야한다. 결혼했는데도 불구하고, 내 맘대로 하고 싶은 욕구는 다 접어둬야한다. 아내도 저도 결혼하기 전에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신랑과 신부가 하나되면서, 맞춰가고 한 비전을 품으면서 이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반쪽임을 고백하고, 우리가 하나가 되고, 이것을 받아들였을 때, 주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을 완전히 취했을 때, 이것이 셋팅되고 받아들였을 때, 이것이 얼마나 기쁨인데, 즈만 심하테이누, 나에게 기쁨이 되는 절기인지를 반드시 아셔야 한다. 이 기간이 그 기간이다.
왜 주님이 초막 설치하고, 계속 기뻐하라고 하시냐면, 다 준비 되었기 때문이다. 너만 들어오면 된다. 이 초막 안에 들어오면, 이제 함께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쉐르](행복)이라는 것은, 실제로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얻는것이 아니라고 배웠다. 행복은 철저하게 내가 죽고, 주님이 원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기뻐할 때, 그 때 행복이 오게 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옛날의 모든 머리, 내가 하나라고 믿었던 내 모든 머리가 주님의 머리로 바뀌었을 때, 그 사람이 바로 첫째 부활의 행복, 첫째 부활의 [아쉐르]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살아내지 않으면 [아쉐르]는 없다.
계시록에서 첫째 부활을 이야기할 때. [브라카]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아쉐르]를 이야기한 것은, 너가 그것에 대해서 행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이다.
- 아닌데? 그냥 가면 되는데? 이게 아니라, 네가 반쪽임을 고백하고 그분께 나오라는 것이다.
네 모든 것들을 Stop하고, 그분께 맞춰져라 했을 때, 네 목이 잘릴 것이다. 네 머리가 그리스도의 머리로 완전히 바뀔 것이다. 그 때 내가 너와 함께하게 되고, 하나가 되는 첫째 부활의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 머리가 바뀌길 바란다. 이 초막절에 내가 반쪽이었음을 고백하고, 완전히 바뀌어져서, 내 머리가 잘려지고, 그분의 머리가 입혀지는 그런 몸이 되시길 바란다. 첫째 부활의 복은 굉장한 복이다. 머리가 바뀌는 복이다.
* 기도
베조트 하브라카, 이것이 그 축복이다고 말하셨습니다. 열두지파의 축복이 이 시간 모두에게 다 임하기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The Man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하이쉬와 하이샤가 하나가 되야지만이 이 열두지파의 복이, 이 완전한 복이 우리에게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교회에게 말하고 있는 메세지는 진짜 소망이 무엇인지, 그 소망을 계속해서 훈련해 나가고 있느냐? 바로 그것은 네가 반쪽밖에 안되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고, 나머지 반쪽과 결합해라, 이 수카 안에서 하나가 되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 내가 반쪽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내가 당신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The Man에 대한 비전, [하아담]에 대한 그 비전을 품을 것입니다. 이제 그 수카 안에서 당신과 내가 하나가 될 것입니다. 진정 결혼식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내 모든 머리가 바뀌어지게 하십시요.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Stop하고, 반쪽일 때 하나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Stop하고, 내가 반쪽임을 고백하고, 나머지 반쪽에게 모든것을 맡겨드리는 수카 기간이 되게 하소서.
반쪽, 하이쉬이신 당신이 이 초막 안에 샤칸하심을, 거하고 계심을 압니다. 내 모든 반쪽이 이제 주님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나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 용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자기 생각과 행위로 판단했던 것들을 다 버릴 것이고, 내 입에서 나오던 모든 악한것을 버리고, 오직 신랑, 신성만을 향하는 입술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케힐라,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이 소망을 품게 하시고, 훈련하게 하소서.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의 Life style로 바뀌어 질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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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진정한 행복은 내 머리가 그리스도의 머리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아쉐르는 그것입니다. 이 초막절이, 내 머리가 그리스도의 머리로 바뀌게 하소서. 신부입장 소리와 함께 내 발걸음을 떼겠습니다. 이제 내 모든것을 신랑에게 맞추겠습니다. 당신이 이끄시는 이 토라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첫째 부활의 아쉐르가 있는 우리되게 하소서.
신부입장소리와 함께 당신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신부되게 하소서. 신부의 모든 것은 주님, 신랑께 맞춰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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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정 하나라고 여겼던, 내가 바로 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다 내어 맡깁니다. 나는 반쪽에 불과했습니다. The Man에 대한 비전을 품기 위해 반쪽에 불과했던 것을 고백합니다. 이제 반쪽을 만났습니다. 수카안에서 당신, 내 신랑을 만났습니다. 하이쉬와 하이샤가 결합되는 The Man에 대한 비전을 품는 수콧기간되게 하소서.
모든 깨어져 있던 마음들이 하나로 뭉치기 위해 내 입에서 용서가 나오게 하시고, 자기 행위를 내어 맡기게 하시고, 내 입술에서 신성을 말할 수 있는, 내 입을 바꿀 수 있는 입술이 되게 하소서. 그 때 우리가 하이쉬, 에쉬다트, 토라를 가진 여자가 될 것입니다. 이제 당신과 하나가 되는 그 지성소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비전을 날마다 소망하고 훈련해나갈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된 삶, 신부된 삶이 되게 하소서. 그 때 열두지파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베조트 하브라카, 그것이 우리에게 축복이 될 것이며, 그것이 마지막 때, 첫째 부활의 행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