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라이벌" 우리말로 맞수" : 같은 분야에서 또는 같은 목적을 위해 서로 경쟁하는 관계라 한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전반에 라이벌간의 활약은 대중이 반사적 이익을 얻는다.
영남과 호남의 정치인 김영삼과 김대중, K대와Y대학의 인재양성, 삼성과 현대의 기술개발,
축구선수 메시와 호날두의 득점경쟁, 권투선수 장정구와 유명우의 헝그리정신 등이 대표적
맞수가 아닐까?
미국과 중국 양 강대국, 한국과 일본, 보수와 진보는 앙숙관계라고 해야 맞을것 같고
최순실이와 최근에 뜨는 손모라고 하는 여자는 국민의 질시대상으로서 맞수로 봐야한다.
우리 전통가요의 대표적 라이벌로서 나훈아와 남진이 존재한다.
이전에 남인수와 백년설, 이미자와 패티김이 존재했고,
문주란과 정훈희가 있으며 송대관 태진아는 라이벌에 다소 미달된다.
백영호와 박춘석선생은 전통가요 발전에 길이 빛나는 천재로서 라이벌이고
지구레코드사와 오아시스레코드사는 음반회사로서 라이벌이였다.
가요사에 길이 남을 현존 최고의 라이벌 남진과 나훈아, 나훈아와 남진의 존재는
산업사회로 달렸던 가요무대세대와 7080세대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ㅇ 남진은 전라남도 목포, 나훈아는 부산에서 출생,
남진은 버터냄새나는 도시풍의 귀공자
나훈아는 청국장냄새를 풍기는 텁텁한 모습이 어울린다고 할까?
노래 스타일에서 남진은 "님과함께" "사랑의 공중전화" 등 도시풍의 매끄러운 노래가 어울렸고
나훈아는 "고향역" "물래방아 도는데" 등 타향객지 고달픈 사람들에게 짙은 향수를 선사했다.
남진은 아주 명망있는 부자집에서 성장했고, 나훈아는 아버지가 배타는 집안이라 평범했다.
남진은 TV출연은 물론이고 지방의 작은 무대라도 팬들앞에 노래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나훈아는 스타는 밤하늘에 큰 별같아야 한다는 소신으로 극도의 비노출로 이미지를 관리 한다.
두 스타의 팬서비스는 누가 나을까?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ㅇ 남진의 본명은 김남진 1946년 9월생이고, 나훈아 본명은 최홍기 1947년 2월생이라한다.
남진은 배우지망생이였다가 가수가 된 케이스로 데뷰곡은 1965년 킹스타 레코드 KSL-10020
한동훈 작곡 "서울 플레이보이"이다.
이 노래는 힛트가 안되어 무명가수로 남을 뻔 하다가 같은해 김영광작곡 "울려고 내가 왔나"가
힛트하고" 1966년박춘석작곡 "가슴 아프게" "임과 함께"가 연이어 힛트하면서 톱가수의 반열에
올랐고 67년 MBC라디오 연속극 주제가 "지금그사람은" 전국민의 관심으로 영화가 제작되면서
갈망하던 주연배우가 된다.
ㅇ 나훈아는
1968.8.16 심형섭작곡 "내사랑" 같은해 11.28 정진성작곡 "파도넘어 천리길"이 첫음반이다.
1969.2.15 유현석작곡의 "천리길"은 방송을 열심히 타더니 표절곡이라며 방송금지되었고
1969.5.20 유용현작곡의 "사랑은 눈물의씨앗"으로 톱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1969.6.20 오아시스레코드에서는 인기에 반영하여 나훈아 스테레오힛트앨범 독집을 발매했다.
대가수가 되는 과정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양반들이였다.
남진은 전남고흥 어느 폐교를 매입해서 자신의 기념관을 남길려고 작업중이라 하였고
나훈아는 오래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재산들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하였다.
이분의 성격상 헛말을 할 양반이 아닐 것이 분명하고 이왕이면 부산 초량 출생지에
나훈아 길을 만들고 있다 하니 그 부근에 자신의 기념관을 세우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이시대 최선의 라이벌인 두분이 팬들의 관심이 멀어지기전에 한무대 공연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