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우리 친구님 애경이의 아버님 고향이 평남 용강이라고?
아니 이럴 수가~~~
우리 마버님, 어머님 고향도 평남 용강이예요. 두분다 1923년생이시고.
아버님은 용강군 삼화면 주림리 우산 밑동네,
어머님은 용강군 삼화면 읍내
우리 아버님은 두형제중 맏이고 아버님의 아버님(즉 우리 할아버지)가 아버님 초등학교 4학년때 돌아가시고 홀어머님, 증조할아버지와 함께 사시다가 아버님이 초등학교(삼화보통학교)를 졸업하시고
우리 큰 할아버님이 서울에서 대서소를 하셔서 자기 조카가 시골에 있는 것 보다 서울로 와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한다고 하여 서울로 상경하여 그당시 (일제시대) 경성전기학교(현 수도공고) 전기과를 졸업하시고 경전(지금의 한전)서울 청계천 변전소, 고척동 변전소등에서 근무를 하셨습니다. 그러다 6.25전쟁으로 지금의 예비군 비슷한 국민 방위군으로 소집되어 훈련중
그 유명한 국민방위군 사건( 국민방위군 사령관등 많은 장성들이 주.부식비를 횡령하여 국민방위군들이 영양실조, 이질과 같은 전염병등으로 많이 죽음으로서, 여러 장성들이 군법회의를 거쳐 총살당함 , 근현대사의 아주 부끄러운 사건임.- 이 승만 대통령시절)으로 국민방위군이 중도 해체되었지만 서울이 북한군 치하이었기 때문에 서울 가회동 집으로 오지는 못하고 대전에서 머물다가 북에 남겨져 있던 동생(우리 작은 아버님)이 지금의 김 일성대학 전신 재학중 북한군으로 해서 남한에 와서 전투중 포로가 되었지만 그 당시 남한군 소대장이 같은 고향분이라서 정식으로 포로처리가 되지 않고(만약 정식 포로 처리가 되었다면 거제도 포로 수용소로 가셔서 승공, 반공자들간의 치열한 싸움에 어떻게 되셨을까 모르지만) 훈방후 대전에서 계시다가 극적으로 형제간의 상봉이 이루어졌음.
그후 전쟁이 끝난후 아버님은 오류동 응골에 있는 미군부대(나중에 2325 공군 첩보부대) 기술자로 취직하심으로 가회동 집을 세를 주고 오류동 응골로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누님들및 형을 제외하고 나, 남동생, 여동생이 오류동 응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후 우리 작은 아버님은 공부를 하시어 바로 해병학교를 졸업하셔서 해병대 중령까지 하셨습니다.
우리 아버님도 평생 고향에 남겨두고 온 홀 어머님, 할아버님 생각에 저희 몰래 많이도 우셨습니다.
우리는 부모님 살아 계셨을 때는 평남 도민회 혹은 용강군민회(특히 궁동의 우신고등학교에서 여러번 했음-- 그 당시 우신고등학교가 진로그룹것이었음- 진로창업주가 고향이 용강임.)에 부모님 모시고 여러번 갔었는데~~~
우리친척분들은 우리 큰 할아버님 덕분에 일찌기 남한으로들 내려오셔서 이산가족은 거의 없습니다.
용강출신 분들은 진로 창업주, 가수 양 희은 부친(?), 전 부총리(이름은 잊었음), 지구레코드사 창업주등이 있으며
저희는 청주 양씨내 삼화파로서 조선시대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가 단종을 자기 젖을 먹여가며 키우고 단종복위에 연루되었다고 하여 수양대군 즉 세조에 의하여 교살을 당하고 일가들이 용강군 삼화면으로 귀양을 가서 정착하였으므로 해서 삼화파라고 한답니다.
아무쪼록, 애경친구 부친께서 이산가족상봉명단에 뽑히셔서 보고 싶으셨던 이산가족분들을 꼭 만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첫댓글 말은 하고볼일이네. 그동안 그리 모르고있었다니...
우리아버지는 용강군 오신면 구룡리. 삼화면하곤 아주 가깝다고하시네. 우신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용강군민대회도 몇차례 가셨다는데.. 허~참~~
구룡리는 거의 의성김씨들이 모여사는 곳이었나봐. 집성촌이라할수있는....
진남포에서 전문학교를 나오시고 오신면에 있는 유정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다 6,25때 홀로 내려오시다 우리군에 바로 현역입대를 하셨다네. 그러다 미군부대 문인으로 근무하다 우리엄마를 만나 결혼하신거라네.
우리엄만 1954년 상명여고를 졸업하고 3월27일 결혼.. 이듬해 55년 3월27일 꼭 1년 만에 나를 낳으셨단다. 우리엄만 오초 4회란다. 우리의 대 선배님
역사가 다 나오네
암튼 아깐 반가워 기절하는줄 알았다
인규야 !!!
갑자기 너와 가까운 친척관계라도된듯 반갑다
적십자사에서 이번일에 큰 비중을두고 방대한 사업을 추진하는 노고에 감사하며 좋은 성과가 있으면좋겠다는 바램이 크다
야! 세상에 이런일이...
한편의 대하드라마가 따로 없구만.
인규 부모님 생전에 알았으면 두분이 외로움도 덜고 재미있게 지내셨을텐데 안타깝기 그지 없네. 아무쪼록 애경이 아버님께서 어떤경로든 좋은소식을 접하셔서 활짝웃으시는 날이오기를 나도 진심으로 기원한다. 인규가족사에 이런 깊은 내용이 있는줄은 처음 알았네.
인규야 애경이 아버님 가끔찾아뵙고 용강얘기 니입담으로 해드리면 참 좋아하시겠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알고 지낸다는것은 좋은일이야...
옛이야기는 시간있을때 많이 올려 주세요...
가까운 친척이 옆에 살고 있는지 모르는거야....
오늘 산행 같이 하려 했는데 인수위와 일이 생겨서 같이 못하고 이른 아침에 카페 들어 왔더니 절절한 사연을 읽었어요. 예전에 root란 영화가 있었는데 인규가 조상 생각을 하게 해서 좀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 한명숙 국무총리 아들이 군대를 가면서 엄마는 민주화니 뭐니 그리고 국무총리를 하면 무엇하냐고! 통일도 못 시키고. 군대가기 싫어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주는 멧세지가 매우 강했습니다. 산업화, 민주화, 국제화를 그전 대통령들이 이루었다면 이제 통일을 이루는 대통령이 빨리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고향 잃은 부모님들에게 이번 설 명절에 슬픔이 덜하시면 좋겠습니다. 통일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준 두친구에 감사합니다
맞아... 통일을 이루는 대통령이 빨리나와 아버지 생전에 63년 한을 풀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한적십자사에선 준비한 모든 자료를 CD로 만들어 북으로 보낸다는데 그쪽에서 그 자료를 어찌 쓸지는 우린 모르는거니까.......3시간이 넘는 촬영을 800집을 다니며 하는일이니 우리로선 큰 의욕을 갖고 하는 방대한 사업이라 생각되. 꼭 성과가 있을꺼야.
친구들도 기도 많이 해주세요^^
에궁~~~이런일들이 있었구나...인규.애경이는 북한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애정이 있겠구나...적십자사에서 하는 사업등등..기 시간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 과제갰구나..애경이 어머님은 나의 대 선배시네...선배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외득아!!
오랫만^^ 씩씩하게 산에 오르는 모습이 보기좋더라
같이 한번 가얄텐데 시간이 영~ 안맞네...
우리엄마가 너의 상명여고 대 선배님. 아직은 건강하시니 참으로 다행이란다. 너의 이야기도 전해드릴께. 반가워하실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