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헬 1,2-11; 루카 9,7-9
+ 오소서, 성령님
오늘부터 사흘간 제1독서에서 코헬렛의 말씀을 듣게 되는데요, 예전에는 전도서라 불렀었죠? 히브리어 ‘카할’은 ‘회중’을 뜻하는데요, 여기서 파생된 ‘코헬렛’은 ‘회중을 불러 모으는 사람’ 또는 ‘집회에서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집회에서 진리를 전한다고 해서 전도서(傳道書)라 불렀는데, 아무래도 길을 다니며 전도하는 것과 헛갈리기 때문에 코헬렛으로 이름을 바꾼 것 같습니다.
오늘 독서는 “허무로다, 허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허무’라는 말은 히브리어 ‘헤벨’을 번역한 것인데요, ‘헤벨’은 연기, 안개, 숨결을 뜻하면서, 덧없다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욥기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제가 영원히 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 제가 살날은 한낱 ‘입김’일 뿐입니다.”(욥 7,16) 여기서 ‘입김’으로 번역된 말이 ‘헤벨’입니다.
또한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진정 사람이란 ‘숨결’일 따름… 그들을 모두 저울판 위에 올려놓아도 ‘숨결’보다 가볍다.”(시편 62,10) 여기서 ‘숨결’도 ‘헤벨’입니다.
또한 아담과 하와가 낳은 자식 이름이 카인과 아벨인데요, 여기서 ‘아벨’이라는 이름은 본래 ‘하벨’입니다. 역시 ‘헤벨’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아벨의 목숨이 카인에 의해 덧없이 사라졌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허무’라는 단어로 시작하면서 코헬렛 전체의 주제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첫째, 세상 만물의 덧없음, 둘째, 사람이 애쓰는 노고가 무슨 보람이 있느냐는 물음, 셋째, 시간의 단조로움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 넷째, 인간 기억의 무상함입니다. 무척 우울한 주제들이죠?
그런데 코헬렛은 이러한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충고를 제시합니다. 세상 그 자체 안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희망을 하느님께 두어야 한다는 것을 코헬렛은 에둘러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세 인물 모두 헤로데에게 부담스런 존재들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죽였기 때문이며,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끈질기게 회개를 촉구했고, 옛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 하더라도, 헤로데에게 기분 좋은 얘기를 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헤로데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분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나 그는 말합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헤로데는 요한을 죽인 것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고 다만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합니다.
루카 복음 13장을 보면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13,31)라고 충고합니다.
루카 복음 23장에서 헤로데는 자신의 뜻을 이루게 되는데요, 예수님께서 잡히신 후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으신 다음, 빌라도가 예수님을 헤로데에게 보내기 때문입니다.(23,7)
그러나 헤로데는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한 다음,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 보냅니다.(23,11) 진리이신 분께서 자신을 찾아오셨지만, 헤로데에게는 조롱거리일 뿐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코헬렛처럼 모든 것이 덧없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찾으라고 불러주시는 때입니다. 허무감에 사로잡혀 살아갈 것인지, 허무의 한가운데서 영원하신 분께 시선을 향할 것인지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두치오, 예수님과 헤로데, 1310년 경
첫댓글 코헬렛과 전도서의 맥락을 이제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코헬렛의 이야기를 불교의 제행무상과 비슷하게 이해했는데 '우리의 희망을 하느님께 두어야 한다' 이네요
제행무상과 비슷한 것 같아요. 다만, 불교의 가르침이 '제행무상이므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제행무상이므로 영원하신 하느님께 희망을 두어야 한다'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