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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만난 영화] 차별과 사랑
“신은 우리를 닮았겠지. 물론 당신보다는 내 쪽을 더 닮았을 가능성이 높고.”
미국항공우주국(NASA)비밀 실험실의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 그는 신이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백인 남성인 자신이 신과 닮았을 것이라는 그 믿음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믿음은 그 자체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믿음에 신과 닮은 자신은 우월하고,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한 존재는 열등하다는 생각이 덧붙여질 때는 문제가 생긴다. 더구나 열등한 존재는 차별을, 심지어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생각은 세상을 위험에 빠뜨린다. 신의 피조물로 가득 찬 바로 그 세상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다.
차별은, 이를 합리화할 수 있는 ‘다름’을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가장 쉽고 확실하게 그 다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상대의 외모다. 이러한 이유로 피부색과 성별이 차별의 근거로 가장 쉽게 이용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2017년 작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는 다름에 대한 차별이 당연시되던 1962년 미국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한다. 흑인이 법적으로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던 시절이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1863년 1월 1일 노예 해방령이 선포되었지만, 흑인은 실질적인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투표 세금을 부과하고, 투표 자격시험을 통해 흑인이 투표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흑인이 자유로이 투표할 수 있게 만든 투표권법은 1965년에 통과되었으니, 영화는 차별이 정상으로 인식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차별은 모든 다름을 겨냥한다
차별은 흑인만이 아닌, 모든 다름을 겨냥한다. 언어 장애인인 일라이자와 함께 비밀 실험실의 청소부로 일하는 흑인 여성 젤다, 그리고 백인 남성 동성애자 자일스는 모두 차별의 대상이다. 그 이유는 다름에 있다.
다름을 확인하는 순간 다정함은 적의로 돌변한다. 자일스는 친절한 파이 가게 백인 총각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한다. 바로 그때 흑인 부부가 파이 가게로 들어와 자리에 앉으려고 한다. 중산층 이상의 전문직으로 보이는 옷차림의 흑인 부부에게 백인 총각은 앉지 말라고 단호히 말한다. 매장에는 자일스가 이미 앉아 있었고, 빈좌석들도 많았던 터다.
여기는 포장 주문만 하는 매장이라며 다시 소리친다. “어서 나가!” 그리고 자일스에게 말한다. “당신도 나가 줘. 여긴 가족 식당이야.” 그렇게 친절하고 다정다감했던 청년에게 흑인과 게이는 가족들이 봐서는 안 될 존재였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는 바로 비밀 실험실의 수조에 갇힌 생명체다. 브라질의 아마존에서 잡아 온 생명체로, 파충류의 피부에 아가미가 달렸다. 인간처럼 얼굴과 팔다리를 지녔지만, 도마뱀과 인간을 합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생명체는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이 생명체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잔인한 폭력이 이루어진다. 아마존의 원주민들에게는 신으로 추앙받던 존재지만, 비밀 실험실에서는 조롱과 폭력의 대상일 뿐이다. 이 생명체를 해부해 버리겠다는 결정도 쉽게 이루어진다.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존재로, 더욱이 나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에 큰 고민이나 갈등, 죄책감 따위는 수반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수많은 폭력과 대규모의 학살은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이기 시작할 때 이루어진다. 오늘날에도 곳곳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수많은 학살은 무차별적이다.
사랑과 유사성
모두가 이 아마존 생명체와 인간의 차이점에 주목할 때, 둘의 유사성을 본 사람은 바로 청소부 일라이자다. 일라이자는 자신처럼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처럼 입을 뻥긋거리고 소리를 못 내요. 그럼 나도 괴물이에요?” 일라이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이 괴물이 아니듯, 실험실의 생명체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과 생명체의 유사성에 대한 발견은 이내 사랑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소리 내어 말하지는 못하지만, 서로 교감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달걀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데이트를 즐긴다. 낯선 외모가 주었던 공포는 점점 사라진다. 친숙함은 안전감을 증가시키고, 사랑의 감정을 강화한다. 이제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뀌고, 물고기처럼 깜박거리는 눈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일라이자가 이 생명체와 사랑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을 장애인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줘요.” 말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장애인으로 여기는 여느 사람들과 달리, 실험실의 생명체는 일라이자를 그의 존재 자체로 인식한다. 사랑은 상대가 나와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지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우리를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향한다.
사랑이 만들어 낸 아가미
둘의 사랑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에서 시작되었지만, 사실 둘은 다르다. 물속에 있어야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는 생명체와,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는 인간이니 말이다. 둘의 사랑은 비극적 결말을 예상케 한다. 둘의 사랑이 영원할 수는 없을까?
깊은 물속으로 이 생명체를 껴안고 함께 가라앉기 시작한 일라이자. 갑자기 일라이자의 목에 있던 상처에서 아가미가 돋아나더니 그가 물속에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사랑은 둘을 실제로도 비슷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여 목에 아가미가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서로 비슷하게 만든다.
미국의 로버트 자이언스를 비롯한 여러 심리학자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 함께 살다 보면 얼굴이 비슷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연구자들은 결혼한 지 25년 정도 된 실제 부부와 무작위로 짝지어진 남녀의 25년 전쯤의 사진과 최근 사진을 준비하였다. 누가 부부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사진을 보여 주며 얼굴이 닮은 정도를 판단하게 하였다.
결과에 따르면, 실제 부부의 사진들의 경우에는 젊었을 때 사진보다 나이가 든 뒤 찍은 사진이 더 닮은 것으로 지각되었다. 하지만 무작위로 짝을 이룬 남녀의 경우, 젊었을 때나 나이가 든 뒤의 사진은 모두 유사성의 정도가 낮은 것으로 지각되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부부의 얼굴이 닮아가는 이유는 함께 사는 동안 서로의 정서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정서는 전염된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하면서 부부는 같은 얼굴의 근육을 사용하고, 이러한 역사가 천천히 얼굴을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실험에 사진을 제공한 실제 부부들에게 자신들의 얼굴이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정도, 결혼 생활의 만족도, 행복감, 그리고 살면서 겪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사건의 수 등에 대해 질문하였다. 결혼한 지 25년 된 부부들은 서로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할수록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고, 걱정이나 근심도 더 많이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로의 정서를 많이 공유할수록 부부는 더 행복해지고 얼굴은 더 닮아 가는 것이다.
물의 형태와 사람의 형태
물의 형태는 다양하다. 실험실 수조에 담긴 물과 버스 창에 떨어진 빗방울은 모양이 다르다. 어떤 모양의 컵에 담겨 있는지에 따라 물의 외형은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물이라는 본질은 동일하다.
사람의 형태도 다양하다.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 다른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 다른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하지만 인간이라는 본질은 동일하다.
차별을 없애는 것은 그도 나와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이다. 사랑은 차별 없는 마음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사랑은 내 얼굴에 그의 모습이 새겨지는 것을 허락한다.
[심리학이 만난 영화] 자폐의 심리학, 레인 맨
팜스프링스로 여자 친구와 주말여행을 떠나던 찰리(톰 크루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다. 그는 바로 차를 돌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집이 있는 신시내티로 향한다.
차가운 추억
고향은 따뜻함을 떠올리게 만드는 공간이지만, 찰리에게 고향 집은 차가운 기억만 남아 있는 곳이다. 찰리가 두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엄격하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자식보다 장미와 자동차를 더 사랑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1949년형 뷰익 로드마스터 컨버터블을 가지고 있었다. 8천 대 정도만 생산된 8기통의 클래식 자동차. 하지만 아버지는 차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찰리는 거의 전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다. 자신의 성취를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한 번만 그 차를 몰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안돼.” 사춘기였던 찰리는 아버지의 자동차 열쇠를 몰래 훔쳐 친구 네 명과 함께 자동차를 몰고 나갔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경찰에 붙잡히고 만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동차를 몰고 나갔을 것이라는 말은 쏙 뺀 채, 자동차를 도난당했다고 신고한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가 보석금을 내서 그날로 풀려났지만, 찰리는 이틀 동안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아버지가 보석을 신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건이 있은 뒤 찰리는 아버지를 떠났다. 그 뒤로도 아버지를 찾지도, 연락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차가운 사람들
장례식에 참석한 찰리의 얼굴에 슬픈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 준 친구와 여자 친구는 찰리를 걱정하지만, 사실 그는 어떤 슬픔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유언을 확인하려고 온 것뿐이었다.
담당 변호사가 찰리에게 아버지의 유언장을 읽어 주었다. 유언장에서도 아버지는 찰리에 대한 그리움이나 미안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래전 아버지와 같았다. 아버지는 찰리에게 뷰익 자동차와 장미를 물려주었다. 그 외의 모든 재산, 그러니까 집을 포함한 3백만 달러 상당의 유산은 다른 상속인에게 물려주었다.
“장미? 장미라니!” 찰리는 유언장의 내용을 듣고 아버지를 저주한다, 만일 지옥이라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는 거기에 있을 거라고, 그곳에서 지금 자신을 바라보면서 비웃고 있을 거라고. 아버지는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찰리에게 냉랭함을 유지했던 것이다.
사실 찰리는 아버지만큼 냉정하고 타인의 마음에 무관심한 사람이다. 그에게는 일과 돈이 전부다. 수입차 딜러인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사람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에게 여자 친구는 일을 함께하는 동료이자 성적 대상일 뿐이다. 여자 친구는 늘 따뜻한 대화를 원하지만 그에게 대화는 돈 문제를 해결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여자 친구와 1년 넘게 사귀면서도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레인 맨’과 레이먼
찰리는 유산이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유언장 속 3백만 달러의 상속자를 찾아 나선다. 그 사람은 바로 레이먼(더스틴 호프만), 알고 보니 찰리의 친형이었다. 자신이 외아들이라고 생각하던 찰리에게 형이 있었던 것이다.
찰리의 기억 속에도 레이먼이 희미하게 남아 있기는 했다. 찰리는 자신이 무서워할 때마다 노래를 불러 주던 ‘레인 맨’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지만 그저 자신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노래를 불러 주며 어린 찰리를 달래 주던 친형 레이먼이 레인 맨이었다. 어린 찰리는 레이먼을 ‘레인 맨’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찰리가 세 살쯤 되었을 때 아버지가 자폐증을 앓던 레이먼을 시설로 보내면서 둘은 헤어졌다.
서번트 증후군
“그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요.” 레이먼을 9년 동안 돌본 간호사가 레이먼의 증상을 말해 준다. 자폐증의 큰 특징은 타인과의 의사소통 장애이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고, 보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상호 작용이 불가능하고 동료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말 그대로 자신만의 세상에 스스로 갇혀서 살게 되는 것이다.자폐증의 증상은 매우 다양하다.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라고 부르는 자폐증은 특정 영역에서 매우 뛰어난 기술이나 재능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 예로, 다니엘 타밋이라는 사람은 운전은 커녕 왼쪽과 오른쪽조차도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3.14로 시작하는 파이(π) 값의 소수점 아래 22,514자리 수를 5시간 9분 54초에 걸쳐서 정확하게 기억해 내서 유럽 신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레이먼도 전화번호부에 나온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정확하게 기억할 정도로 엄청난 기억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문제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체계자와 공감자
흥미로운 사실은 자폐증에 성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폐증은 여아보다 남아에게서 나타날 가능성이 네 배가량 더 높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자폐증 전문가 사이먼 배런-코헨(Simon Baron-Cohen)은 극단적인 남성 두뇌를 타고났기 때문에 자폐증이 발생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남성은 체계화하는 두뇌를 가진 체계자(systemizer)로 태어난다. 남성은 대상을 규칙에 따라 지각하고, 수학적이며 기계적인 기준에 따라 분류하는 것에 특화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 반면, 여성은 공감하는 두뇌를 가진 공감자(empathizer)로 태어난다. 여성은 타인의 얼굴 표정과 몸짓을 쉽게 읽어 내는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물론, 남성들 중에도 공감자의 두뇌를, 여성들 중에도 체계자의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배런-코헨 박사는 체계자의 두뇌를 가진 두 명이 만나서 아이를 낳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유사한 사람들끼리 매력을 느끼고, 짝을 맺는 경향 때문에 두 명의 체계자가 결혼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체계자의 뇌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 아이는 극단적으로 남성적인 뇌를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곧 공감하는 능력은 제로에 가깝고, 규칙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능력만 극도로 뛰어난 뇌를 가지고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자폐적 인간
배리 레빈슨 감독의 1988년 작 ‘레인 맨’(Rain Man)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자폐증으로 진단받은 사람은 레이먼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찰리나 찰리의 아버지도 자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레인 맨은 체계자의 뇌를 가진 세 남자들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이들 세 남자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조금씩 자폐 증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관점과 논리만을 주장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증상 말이다.
찰리는 유산을 받으려고 어쩔 수 없이 레이먼과 함께 아버지의 유산인 뷰익 로드마스터를 몰고 대륙 횡단 여행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찰리의 닫혔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린다. 여행의 출발은 ‘자폐증 환자’ 레이먼과 함께 시작했지만, 여행의 끝에서 그는 ‘형’ 레이먼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따뜻함
레이먼은 놀라운 관찰력과 기억력을 보여준다. 레이먼이 보여 준 천재적인 능력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찰리를 감동시키고 그의 마음을 연 것은 어린 동생이 뜨거운 물에 델까 봐 걱정하고, 무서워하는 동생을 달래려고 노래를 불러 주던 레이먼의 따뜻한 마음이었다.자폐증이었음에도 본능적으로 아기였던 동생을 보호하려 했던 레이먼. 세상을 향해 굳게 닫혀 있던 레이먼의 마음도 아기였던 동생 찰리에게만은 열려 있었던 것이다. 결국 성인이 된 찰리의 닫힌 마음을 여는 것은 따뜻했던 레인 맨에 대한 추억이었다. 유능함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정작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따뜻한 마음이다.
[심리학이 만난 영화] 상상 훈련, 올드보이
10년 동안의 상상 훈련, 과연 실전에 쓸모가 있을까?”
다섯 명의 깡패에게 둘러싸인 오대수가 깡패들을 향해 주먹을 날리기 직전 외친 한마디다. 복수를 꿈꾸며 10년 동안 얼굴도 모르는 상대와 상상 속에서 싸우는 훈련을 했던 그다. 과연 상상 훈련은 실전에서도 효과가 있었을까?
일순간에 깡패 무리를 쓰러뜨린 오대수. 그가 말한다.
“있다!”
오대수는 자기 이름을 ‘오늘만 대충 수습하면서 살자.’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아내와 어린 딸아이와 함께 사는 지극히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도 크게 잘한 일도, 그렇다고 큰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던 오대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납치된다. 깨어난 곳은 싸구려 모텔방처럼 생긴 여덟 평짜리 사설 감옥.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누군가를 강제로 감금시키는 곳이었다. 누가, 왜 자신을 납치해서 감금했는지조차 아무도 알려 주지 않는다. 그는 하루에 세 번 넣어 주는 중국집 군만두만을 먹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텔레비전에 자신의 아내가 처참하게 살해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바로 집을 나간 지 1년이 된 남편 오대수. 사설 감방 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던 그가 이제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내를 죽인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 자살을 시도해도 누군가 들어와서 그를 살려 놓고 간다. 자기 마음대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오대수는 만일 자신이 살아서 나갈 수만 있다면, 자신을 이 감방에 처넣은 인간을 찾아내서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오대수가 날마다 상상 속의 적을 대상으로 훈련하는 이유다.
박찬욱 감독의 2003년 작 ‘올드보이’는 자신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일로 누군가는 마음의 상처를 받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그 상처는 더 커져서 처절한 복수로 이어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설정은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오대수가 사설 감옥에 갇힌 동안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갖춘 싸움꾼으로 재탄생한다는 것이다. 장도리 하나만 가지고도 수십 명의 조직폭력배를 제압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과연 상상 훈련만으로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 만화나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7년 동안의 상상 훈련
현실에서 10년 동안 상상 훈련을 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다만 7년 동안 상상 훈련을 한 사람은 찾을 수 있었다. 류치쿵(Liu-Chi Kung). 그는 1958년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콩쿠르에서 2등을 수상한 피아니스트다. 하지만 중국의 문화 혁명이 시작된 다음 해에 투옥되어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서 피아노를 치기는커녕 볼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석방되자마자 순회 연주회에 나섰다.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피아노를 만져 보지도 못한 사람이 출옥하자마자 관객들 앞에 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연주력이었다. 피아노를 7년간 만져 보지도 못했지만 그의 연주력은 오히려 전보다 향상되어 있었다. 평론가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류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날마다 피아노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건반을 누르면서 연습할 수는 없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상상 속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연주해 보았던 모든 곡의 음 하나하나를 마음속에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피아노를 만질 수 없는 현실에서도 그는 마음으로 피아노 건반을 누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뇌는 상상과 실제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뇌가 상상에 속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상상 훈련을 실제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우리의 마음속에 훈련의 기록을 남겨 두는 것이다.
덕분에 상상을 통해서 우리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지식과 행동의 연결 고리를 강화할 수 있다. 류치쿵처럼 자신이 연주했던 곡을 상상 속에 반복해서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피아노 연주에 필요한 주요 지식과 행동의 연결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 트레이닝
상상을 통해서 정신 표상에 있는 행동 간의 연결 고리를 강화하는 훈련은 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실행되어 왔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부르는 데 이는 정신적인 이미지를 이용해서 행동이나 기술을 연습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미지 트레이닝이 스포츠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가장 큰 이유는 수행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미지 트레이닝은 연습을 통해서 습득한 새로운 운동 기술을 실전에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일단 획득한 운동 기술을 유지하는 데에도 효과를 발휘한다. 이미지 트레이닝은 윗몸 일으키기와 같은 단순한 운동에서부터 골프나 체조의 안마, 미식축구와 같이 다양한 종목에서 수행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테네시대학교 여자 농구 팀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기존 연습에서는 자유투 성공률이 52퍼센트였지만 야유를 퍼붓는 관중 앞에서 경기하듯 떠올리며 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이 추가되었을 때는 그 성공률이 65퍼센트로 증가했다.
성공을 만드는 상상 기법 ‘과정 시뮬레이션’
우리가 자주 하는 상상 가운데 하나는 성공에 대한 상상이다. 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성공의 결과를 상상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하거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를 상상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축하와 환호, 그리고 스스로 경험하게 되는 자부심을 상상하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또 다른 상상은 성공으로 가는 길을 상상하는 것이다. 대학에 합격하고자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녁까지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그리고 공부하지 말고 놀자는 친구들의 유혹에는 어떻게 대처할지 등을 상상하는 것이다. 곧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하는 것이다.
미국의 셸리 테일러(Shelley Taylor)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시험을 일주일 앞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의 효과에 대해 실험했다.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받은 이후의 결과를 상상하는 결과 시뮬레이션 조건, 시험 준비 과정을 상상하는 과정 시뮬레이션 조건, 또는 상상에 대해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은 통제 조건 가운데 하나에 무작위 할당되었다.
결과 시뮬레이션 조건의 참여자들은 날마다 5분간 긍정적인 결과에 대해 상상하게 했다. 점수가 발표되고, A학점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환호하는 가운데 자부심을 느끼는 장면을 시각적으로 상상하게 했다.
그 반면, 과정 시뮬레이션 조건의 참여자들은 날마다 5분간 A학점을 받고자 교과서를 열심히 읽고, 노트 내용을 보며, 과제에 집중하고, 공부하는 데 방해되는 유혹을 거절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상상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통제 조건의 참여자들은 시험 전 자신의 공부 과정을 모니터링하게 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과정 시뮬레이션을 한 참여자들이 다른 조건에 비해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더 높은 성적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정 시뮬레이션은 시험에 대한 계획과 준비를 구체화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곧 시험에 더 철저히 대비하게 한 것이다.
결국 과정 시뮬레이션이 학생들의 시험에 대한 불안을 줄일 수 있었고, 계획 활동을 증가시킴으로써 성적 향상에 도움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동안의 상상 훈련, 과연 실전에 쓸모가 있을까?”
“있다!”
“만일 실전 과정을 상상했다면!”
[심리학이 만난 영화] 복종의 심리학, 밀그램 프로젝트
마이클 알메레이다 감독의 2015년 작 ‘밀그램 프로젝트’는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연구와 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물론 영화의 중심에는 심리학 역사상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복종 실험이 있다.
복종 실험의 시작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처벌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역 주민이 실험실에 찾아간다. 그곳에는 또 다른 사람이 실험에 참여하려고 와 있다. 실험은 두 명이 함께하는데, 한 사람은 연구자의 지시에 따라 연기할 가짜 참가자 곧 공모자였다. 제비뽑기로 교사와 학생 역을 맡을 사람을 정했는데, 진짜 참가자는 교사로, 공모자는 학생으로 뽑히도록 미리 조작해 두었다.
이 실험에서 교사는 학생에게 학습 과제를 주고, 학생은 이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역할이었다. 실험의 주된 목적은 처벌을 받으면 학습이 더 잘되는지 알아보는 것이므로 학생이 기억과제에서 오류를 범하면 교사는 학생에게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이 실험에서 처벌은 전기 충격이었다. 전기 충격은 서른 개의 스위치가 달린 기계 장치로 전달되었다. 1번 스위치를 누르면 15볼트의 전기 충격을, 30번 스위치를 누르면 무려 450볼트의 전기 충격을 전달하는 기계 장치였다. 스위치 위에는 전압이 일으키는 충격의 강도가 쓰여 있었다. 이를테면 15볼트에는 ‘약한 충격’, 330볼트에는 ‘극도로 강한 충격’, 그리고 450볼트에는 그저 ‘XXX’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연구자는, 교사 역의 진짜 참가자가 보는 앞에서 학생 역의 공모자 손목에 전극을 부착한 뒤 학생을 의자에 묶었다. 학생은 사실 자기가 심장이 안 좋은 편이라며 괜찮겠는지 묻는다. 물론 연구자는 괜찮다고 답한다. 교사는 실험 전에 자신의 손목에 전극을 연결해 전기 충격을 실제로 체험해 본다. 깜짝 놀라는 교사에게 연구자가 몇 볼트인지 맞춰 보라고 한다.
“150볼트 정도는 될 것 같은데요.”
“아니요, 지금 충격은 45볼트에 불과합니다.”
도대체 45볼트가 이 정도라면, 450볼트는 얼마나 충격적인 것일까? 교사는 체험을 통해 진짜 전기 충격을 가한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학생이 전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교사와 학생은 각기 분리된 방으로 들어갔고, 교사가 스위치를 누를 때마다 학생은 전기 충격의 강도에 맞게 신음과 비명 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틀어 주었다.
피해자의 저항
연구자는 교사에게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한 단계씩 높이라고 지시했다. 학생은 연구자와 모의한 대로 점점 더 많은 문제를 틀렸고, 그때마다 교사가 줘야 하는 전기 충격의 강도도 높아졌다.
교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스위치 누르기를 망설이면, 연구자는 “당신이 계속하셔야 실험이 됩니다.”라고 하거나 “당신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습니다.”와 같은 명령으로 압박했다.
전기 충격이 세질수록 학생의 신음 소리도 커졌다. 150볼트에는 “내가 심장이 안 좋다고 했었죠. 심장의 느낌이 좋지 않아요. 그만둘래요. 내보내 주세요.” 하고 외쳤다. 이후 학생은 지속적으로 실험 거부 의사를 밝히고 전기 충격을 가할 때마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밀그램의 연구가 불편한 이유
만일 우리가 이런 실험에 참여해서 교사역을 맡았다면 학생 역을 맡은 사람에게 최대 몇 볼트까지 전기 충격을 주었을까? ‘나라면 450볼트까지 주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밀그램은 실험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러한 실험에 450볼트까지 충격을 줄 사람이 얼마나 될지 예상해 보라고 하였다. 조사 대상자들의 대답을 알아본 결과 그럴 사람은 3%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이러한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밀그램의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62.5퍼센트가 ‘처음 보았고, 인상이 좋게 생겼으며, 심장이 좋지 않고, 전기 충격을 멈추라고 애원했던 중년의 남성’에게 450볼트의 전기 충격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학생이 전기 충격 판에서 손을 떼지 못하도록 참가자에게 절연 장갑을 끼고 강제로 학생의 손을 붙잡아 전기판에 누르게 한 연구에서도 30% 가량의 참가자들이 끝까지 연구자의 명령에 복종하였다. 밀그램의 연구는 여느 선량한 사람도 그가 놓인 상황에 따라서 대량 학살의 하수인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종 실험의 결과가 발표되자 많은 사람이 연구 결과에 충격을 받은 동시에 불편해했다. 연구 결과는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던 인간에 대한 믿음과 정면으로 배치되었고, 자유 의지를 지닌 인간이 권위자의 명령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존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신도 악마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는 듯한 밀그램의 연구는 자신이 선한 존재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나의 폭력을 합리화하는 방법, 책임 전가
밀그램의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무고한 상대에게 전기 충격을 가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고통을 호소하는 상대방의 외침을 들으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갈등했다. 이러한 스트레스와 갈등을 해결해 준 것은 바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한 연구자의 말이었다.
예일대학교 소속의 과학자가 “내가 모든 책임을 질 테니 계속하세요.” 하고 말했을 때, 참가자들은 책임감의 측면에서 면죄부를 받은 느낌이었다. 명령을 내린 권위자에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피해자에게 가하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폭력을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이다.
밀그램의 실험에서 150볼트의 전기 충격은 이 참가자가 전기 충격을 450볼트까지 줄지를 예측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150볼트의 충격을 가하면 공모자는 강력히 실험을 거부한다. 이 시점이 바로 참가자가 가장 크게 갈등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에 멈추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80% 가량이 450볼트까지 충격을 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년 뒤, 21세기의 복종
밀그램의 실험이 이루어진 지도 어느덧 50년이 넘었다. 그동안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인식은 훨씬 높아졌다. 만일 밀그램의 복종 실험을 지금 다시 한다면 이전처럼 많은 사람이 권위자의 비합리적인 명령에 순순히 따를까? 시대가 변했으니 권위를 대하는 사람들의 방식도 변했을까?
미국 산타클라라대학교의 제리 버거(Jerry Burge) 박사는 21세기에 밀그램의 실험을 다시 재현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밀그램의 실험 이후 심리학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에 대한 보호 조치는 실험 수행의 가장 중요한 선결 요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제리 버거는 대학교의 생명윤리위원회로부터 전기 충격의 최대치를 150볼트까지로 제한하기로 하고 실험을 승인받았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150볼트 스위치를 누르자 학생 역할의 공모자가 고통을 호소하며 실험을 멈춰달라고 했으나 참가자의 70% 가량이 실험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150볼트는 참가자가 전기 충격을 450볼트까지 줄지를 예측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따라서 제리 버거의 연구 결과는, 밀그램 실험 이후 5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선량한 시민들이 권위자의 명령에 따라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또 다른 선량한 시민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고통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저항의 결정적 시기
인류의 역사에서 벌어진 많은 폭력과 학살의 출발은 권위자의 작지만 부당한 명령에서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다. 권위자의 부당한 명령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강한 폭력과 학살의 수준에까지 도달한다. 따라서 부당함을 느끼고 그것 때문에 스스로 심리적으로 갈등을 경험하는 순간(밀그램의 실험에서는 150볼트 충격을 준 직후)이 바로 저항의 결정적 시기가 된다.
이 순간에 저항하지 못하면 우리는 끝내 저항하지 못하게 된다. 작은 부당함에 바로 저항하지 않으면, 우리는 머지않아 더 큰 부당함에 매우 쉽게 복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심리학이 만난 영화] 행위자-관찰자 차이, 어느 가족
법적으로는 범죄 집단
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노부요’. 자신을 자주 찾던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 남자의 이름은 ‘오사무’. 하지만 이 여자에게는 남편이 있었다. 노부요는 오사무와 함께 남편을 죽인다. 부부 행세를 하던 이들은 버려진 남자 아이를 주워 와 좀도둑질을 시켰다. 마트나 문방구 진열대 위의 물건에는 주인이 없다고 가르쳤다.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 집에서 배울 수 없는 애들이나 가는 곳이라며.
아파트 1층 베란다에서 여자 아이가 혼자 놀고 있다. 이들이 데려온 아이였다. 두 달쯤 지나자 이 아이에 대한 뉴스가 올라왔다. 실종된 아이였다. 이들은 다 같이 실종 뉴스를 보았지만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를 찾지 못하게 머리 모양을 바꾸고, 이름도 바꿔 불렀다.한 노인이 있다. 부부로 행세하는 남녀와 두 아이에게 잠자리를 내 준 노인이었다. 노인이 타는 연금은 이들의 주된 생활비로 쓰였다. 어느 날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노인의 장례식은 물론 사망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신을 암매장하고 노인의 체크 카드로 연금을 인출해서 썼다. 법적으로 이들은 범죄 집단이었다, 그것도 아주 질이 안 좋은.
시신을 집에 묻은 진짜 이유
노인의 죽음을 숨기고, 시신을 자기들이 사는 집에 묻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사이코패스’일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추론한다. 이 과정을 귀인(歸因)이라고 한다. 행동의 원인을 어디에다 돌릴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귀인은 사회적 정보 처리의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행동이나 사건이라도 귀인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귀인의 결과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이 달라진다.
만일 노인을 집에 묻은 이유가 이들이 악마적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귀인하면, 이들을 사회로부터 최대한으로 격리시켜야 한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노인을 집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있었다고 귀인하면, 오히려 이들이 안타깝게 여겨질 수도 있다.
행위자-관찰자 차이
다른 사람의 행동의 원인을 귀인할 때는 그 사람의 성격이라는 내적 요인에 귀인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자신의 행동의 원인은 주로 상황이라는 외적 요인에 귀인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행위자와 관찰자 사이에서 발견되는 행동 원인 추론의 차이를 ‘행위자-관찰자 차이’라고 부른다.
약속 시간보다 한참이나 늦게 장소에 도착한 당사자(행위자)는 자신이 늦은 이유를 일찍 출발했지만 오늘따라 차가 많이 막혔기 때문이라고 ‘상황’에 귀인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정시에 나와서 기다린 상대방(관찰자)은 행위자가 늦은 이유를 불성실하기 때문이라며 ‘성격’에 귀인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사일을 개발하는 이유가 옆 나라의 군사 위협 때문이라며 자국의 상황에 귀인한다. 하지만 옆 나라 처지에서는 상대 국가가 매우 호전적인 성향을 갖기 때문이라고 귀인한다. 이처럼 동일한 사건 또는 행동의 원인에 대한 귀인의 차이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개인이나 국가 간에 갈등을 촉발시킨다.
나쁜 결과는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서?
행위자-관찰자 차이가 유발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행위자와 관찰자의 시야에 주로 보이는 세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할 때는 그의 상황보다는 주로 그 사람을 보게 되기에, 주의를 기울였던 행위자로부터 사건의 이유를 찾게 된다. 그래서 관찰자인 우리는 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그들이 품는 내적 속성의 결과물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그 반면, 행위자의 시야에는 주로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한 정보가 들어온다.
행위자-관찰자 차이 때문에 사회적 약자가 놓인 상황에 눈길을 주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관찰자들은 나쁜 행동과 좋지 않은 결과는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불행의 원인을 그들에게 둔다. 가난한 자들은 게으르고, 무능력하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가난은 오롯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귀인 양식은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그들의 불행이 내가 속한 사회 시스템의 책임이 아니며, 더 나아가 공동체의 구성원 가운데 하나인 나의 책임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행위자-관찰자 차이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불행에 심리적 거리를 두며 살 수 있는지도 모른다.
심리적으로는 가족
노인을 집에 묻은 두 남녀는 제71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8년 작 ‘어느 가족’의 아빠와 엄마다. 그리고 영화는 이들이 너무도 따뜻한 사람들로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심지어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도, 관객은 이들이 잡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선택과 행동에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고레에다 감독이 이들과 사건을 둘러싼 상황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노부요의 남편은 가정 폭력을 일삼았다. 남편의 폭력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노부요는 살인을 저질렀다. 법원에서도 정당방위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오사무는 노부요가 일하던 가게를 자주 찾던 단골손님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고, 어렸을 때부터 혼자였고, 지금도 혼자인 남자. 마음을 의지할 곳 하나 없던 둘은 부부처럼 살기 시작했다. 남자 아이는 부모가 도박장의 주차장에 버리고 간 아이다. 그냥 두었으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데려와 함께 살았던 것이다.여자 아이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날 아파트 1층 베란다에 늘 그렇듯 혼자 있었다. 부모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듯 집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따뜻한 음식이라도 먹이려고 아이를 데려와 밥을 먹인 뒤 다시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집에서 부부 싸움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며. 아이의 몸에는 상처가 있었다. 폭력의 흔적이었다. 여자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은 이유다.
이들은 법적으로는 가족이 아니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가족이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노인을 암매장한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이 심리적 가족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인도 이해할 것이다. 노인도 자신들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 혼자 산 속에 누워 있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좀도둑질로 연명하는 이 가족에게는 노인의 연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해 보였다.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고 연금을 받지 않으면, 이 가족은 생존할 수 없었다.
영화의 힘
관객은 영화 속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라보는 관찰자다. 따라서 행위자-관찰자 차이에 따르면, 관객은 주인공들의 행동의 원인을 그의 성격이라는 내적인 요인에서 찾을 가능성이 높다. 영웅은 영웅적 속성을, 악마는 악마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 가족’에서 두 남녀 행동의 원인을 관찰자의 시점에서 보면, 이들은 파렴치하고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악마에 가까운 인물이다. 절도와 살인, 유괴, 암매장. 양심이나 도덕은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자들로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어느 가족’은 관찰자인 관객이 상황을 보도록 만든다. 놀랍게도, 관객은 이 가족에 공감하게 되고 심지어 그들의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
영화라는 매체는 우리를 심리적으로 더 성장시키는 힘을 가진다. 일상에서는 쉽게 외면하던 상황이라는 정보를 관찰자인 관객이 주의를 기울여 보게 하는 데서 그 힘이 나온다. 그래서 너무도 명백하지만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사실, 곧 나쁜 행동과 결과는 나쁜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나쁜 상황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영화는 다시 일깨워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