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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1-20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 지태일 목사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과거는 물론이고 지금도 지구상에는 전쟁과 테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치뤄지고 있습니다. 우리 한반도도 과거 54년전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의 발발지역이었습니다. 총성은 멈추었지만 아직도 전쟁은 끊나지 않고 핵문제 해결위해 애쓰고 있는 현실입니다.
오늘날 전쟁과 테러의 대표적인 곳이 중동지역입니다. 이스라엘과 아랍세계, 팔레스타인과의 전쟁 테러는 끊이질 않습니다. 미국 영국을 위시한 아라크에서의 전쟁은 이제 주권이양이 얼마 남지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더욱 테러와 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거기다 지난 주는 중동 선교의 꿈을 가지고 훗날 목회자가 되겠다고 외대에서 아랍어도 배우고 신학교도 마치고 아랍어 연수도 하고 대학원 진학을 위한 학비도 마련할겸 이라크로 떠나갔던 우리 젊은이 고 김선일씨가 이슬람 무장 단체에 피납되어 피살되었습니다.
그렇게도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얼마 안되어 참혹하게도 참수형으로 피살되었습니다. 무사 귀환을 기도하고 염원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온 나라와 전 세계가 분노하고 슬퍼하고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북이스라엘 나라의 여호람 왕이 남유다 왕 여호사밧 왕과 에돔 왕으로 연합군을 형성하여 모압 왕과 전쟁을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왜 전쟁을 하려했느냐 하면 모압 왕 메사가 한 때는 북이스라엘의 여호람의 아버지, 악한 아합왕이 살아 있을 때에는 서로 의지하고 동맹도 맺어 같이 싸우기도 하고 조공도 바치었습니다. 4절을 보면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조공으로 이스라엘 왕에게 바칠 정도로 잘했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이 죽자 모압왕 메삭 이스라엘왕 여호람을 배반한 것입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 왕에게 매번 바쳐오던 조공을 바치지도 않고, 이스라엘 왕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유다와 에돔 세 나라가 연합하여 모압과의 전쟁을 하게 된 것입니다.
3나라가 합쳤으니 수적으로 우세인 연합군은 처음에는 기세등등 했습니다. 그러나 연합군은 곧 낭패를 만납니다. 그것은 적군의 칼날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적,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9절을 보면 세 왕, 이스라엘 왕이 유대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길을 출발한지 7일만에 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은 군사들과 따라가는 생축을 먹일 물이 떨어진 것입니다. 사철 흐르던 강물이 메말라 낭패를 보게 된 것입니다. 전쟁을 채 하기도 전에 물이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물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체는 60%이상이 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음식은 몇 일씩 안 먹어도 살 수 있으나 물은 몇 일씩 안 먹으면 살 수가 없게 됩니다. 전쟁은 고사하고 사람이 살수 가 없는 것입니다.
에돔 골짜기는 바짝 말라 있습니다. 땅도 물의 근원도 말랐습니다. 그렇다고 비가 올 징조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뜨거운 태양만 작렬하고 있었습니다. 진짜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서 쩔쩔맬 때가 있습니다. 내가 만난 문제가 너무 무겁고 견딜 수 없어서 신음할 때가 있습니다. 내 영혼이 황폐해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실패의 언덕에서 울며 부르짖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얽히고 섥혀서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꼬이고 꼬이는 안타까운 문제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이 때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려움에 직면하면 성격, 신앙 등 그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본문도 그 당시 두 왕의 서로 다른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북이스라엘 왕 여호람입니다.
북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위기와 문제속에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 반응이 9-11절에 나옵니다. 여호람은 절망에 빠진 나머지 탄식 원망의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10절을 보면,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물이 떨어지자 자신의 죄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오히려 불평하며 탄식하되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며 원망합니다. 평소에는 하나님 없는 삶을 살다가 무슨 문제가 발생 하니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우리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2) 남유다 왕 여호사밧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호사밧왕은 어떻게 했는가를 보겠습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찾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는 길이 있음을 알았음으로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았고 “그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있도다”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문제를 만나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습니까? 믿지 않는 자들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 받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유다왕 여호사밧은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만한 선지자가 여기에 없느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기도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런 말씀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물어야, 기도해야 합니다.(11절)
가끔 우리도 문제에 부딪혀 보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게 낙심이요 절망입니다. 그러나 낙심하고 절망해서 문제를 해결 해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불평하여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을 찾아다녀 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의논도 해보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붙들고 애원도 해 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문제 해결의 길이 없습니다. 오늘 여호사밧의 말처럼 하나님께 물을만한 선지자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그 문제를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과 의논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천지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만이 역사의 운행자요, 주관자요 섭리자 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이 물을 때 이스라엘의 한 병사가 대답을 합니다.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이 말을 듣고 유다 왕과 이스라엘 왕이 직접 엘리사 선지를 방문했습니다. 얼마든지 아랫 사람, 신하를 시켜서 방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하를 시킨 것도 아니라 직접 찾아 갔습니다.
12절에 보면 “여호사밧이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이에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그에게로, 즉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에게로 내려 가니라”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조언을 구하기 위해 친히 방문한 것입니다. 이것은 겸손입니다.
우리가 문제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으려면 누가 내 대신 나가서 받는 것 아님니다. 내 구원은 내가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구원입니다.
인생 살다가 문제에 직면할 때에 긴급한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물을 만한 선지자를, 기도와 하나님의 종을, 그 종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시기 바람니다.
2. 개천을 많이 파라(15-16절)
두 왕의 내방을 받은 엘리사 선지가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그 왕들을 어떻게 대합니까?
1) 사악한 왕, 이스라엘 왕에 대해서는(13절) 아주 냉담합니다.
엘리사의 말 가운데도 14절을 보면 유다의 선한 왕 여호사밧이 아니면 당신,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의 아들 여호람을 쳐다 보지도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얼마나 그들이 악했는지 쳐다 보고싶지도 않음을 말합니다.
2절을 보면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저가 그 아비의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하였음이라 그러나 저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그랬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여호람왕의 부모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들을 많이 하였고, 여호람 왕도 그의 부친을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을 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엘리사 선지는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로부터 당신이 어떻게 화평의 대답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평안할 때 위해 주고 지원해 주던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예언자 바알과 아세라에게로 가시오. 그들에게 당신의 곤경을 도와 달라고 하시오."
엘리사는 여호사밧과는 달리 이스라엘 왕의 부분적이고 형식적인 개혁에 속지 않았습니다. 그가 바알 상들을 치워 버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에게 바알의 예언자들이 있었고, 아마 그들 중 몇몇은 이 전쟁에 참가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라. 그들에게로 가라. 당신이 섬기는 신들에게로 가라(삿10:14). 어찌하여 당신이 하나님을 구하는가?"(14:3) 반문하고 있습니다.
엘리사 선지는 한 나라의 왕이지만 그의 면전에서 그의 악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토로했습니다. 죄악을 용납하지 않는 엘리사입니다. 즉 그는 진심으로 "그를 향하거나 보고도" 싶지 않았다고 했습니다(14절).
그래도 여호람은 이 냉담한 대우를 인내성 있게 받아들이는 큰 자제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알 예언자들에게서 말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현재의 상황을 매우 개탄하면서, 또 그 선지자 엘리사가 이 사실에 동정어린 배려를 해 주기를 바라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예언자에게 겸손한 탄원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기가 하나님께 합당치 못한 자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왕들이 자기로 말미암아 죽게 되는 것을 바랄 수는 없었습니다.
2) 믿음이 깊은 유다 왕은 엘리사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다왕 여호사밧은 여호와 하나님을 잘 경외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 선지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1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 하였으리이다"
엘리사는 "그(여호사밧 왕)의 낯을 보아서", 바로 그 왕 때문에, 그 모두를 위해 "여호와께 간구" 하고 싶어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그 예언자들의 호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악한 사람들도 때로는 그들이 신실한 사람들의 단체의 일원이거나 그들과 우의를 맺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좋은 대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한 집안도, 한 교회도, 나라도 예수님 잘 믿는 한 사람으로 인해 잘되고 은혜를 받습니다.
이 여호사밧을 통하여 주시는 교훈은 집안에서 누군가는 예수님 잘 믿는 사람이 한 사람쯤은 있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만일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잘 경외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엘리사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르켜 맹세하노니 만일 내가 유다왕 여호사밧의 낮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않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여호람을 보았을 때는 다소 착찹하고 분개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을 보았을 때는 어떻게 하면 문제와 위기를 해결할 것인가? 엘리사 선지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15절에 거문고를 탈자를 불러 오라 말합니다. 비파를 뜯으며, 시를 노래하는 경건한 한 악사를 불러왔습니다. 거문고 타는 사람으로 하여금 찬송을 연주하게 했습니다. 자신도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던 이스라엘 왕도 찬송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자던 여호사밧도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군대의 장수들도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때,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15절) 언제 하나님께서 역사하심니까? 찬송할 때 성령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성령이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사는 이제 거룩한 음악이 준 감동을 받아 새 기운을 얻어서 "여호와의 손이 그 위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시22:3에 보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신다”고 하셨으며, 신자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찬송과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서 감옥 문을 열어주시며, 사자의 입을 막아주시며, 고통에서 건져주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대하20:21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과 암몬 자손들과 싸울 때 성가대를 조직하여 찬송을 불렀더니 하나님께서 천군 천사들로 역사 하시어서 상대방의 군대를 전멸시켜 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명령했던 바와 같이, 하나님의 찬송이 아름답게 들려지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안정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또 기도하는 데에 적합한 정신 상태를 되찾는 계기가 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원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마음을 조용하고 냉철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염려, 근심, 걱정, 불평하지 마시고 오히려 찬송하시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신자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절대로 원망과 불평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때 사탄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찬양할 때 하나님 역사, 말씀하심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그들의 현재의 곤경은 잘 해결될 것이요, 싸움에서 승리하여 영광스럽게 되리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3.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16절)
찬송할 때 여호와 신이 감동하여 엘리사에게 말씀하십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본문 16절입니다.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님이 이제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찬송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종 엘리사를 통하여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께서 직접 기적을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통하여 그가 하실 일을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금년에도 시작할 때 주신 말씀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느냐?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달에는 성령의로 충만할 때 "순안티람바노타이"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우리 교회에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옥합을 깨뜨리는 행복한 사랑, 내가 깨어 드릴 옥합이 무엇인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대로 가만 두어서는 안된다는 말씀 아님니까? 그 은혜에 감사감격하여 귀한 옥합을 깨뜨릴 때 성도는 주님앞에 행복한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주시는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고 믿을 때 그대로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엘리사 선지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그 음성이 무엇입니까?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는 말씀입니다.
1) 먼저 골짜기를 파되 다른 곳을 파서는 안됨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에돔 골짜기, 물이 말라버린 이 골짜기에 개천을 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야말로 불가능한 곳, 비합리적인 곳, 차가운 곳, 별로 매력이 없어 보이는 곳, 안될 것 같은 그 곳, 우리가 실패한 곳, 그 자리가 바로 우리가 파야 할 골짜기입니다.
다른 곳을 파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안되면 자꾸 다른 곳을 모색해 봅니다. 심지어 인위적인 방법을 모색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타종교, 이상한 종교까지 모색합니다. 또 이 교회에서 안되면 저 교회로, 무슨 은혜를 따라도 아니고 사명도 아니고 인간적인 문제 때문에 교회도 자기 생각대로 옮겨 봅니다. 그러나 어려워도, 불가능해보아도, 때로는 실패한 자리이지만 그 곳을 파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몇 날이 못되어 약속하신 성령을 충만히 받을텐데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곳은 환란과 핍박의 도성입니다. 여러 가지 박해가 있는 곳입니다. 아직도 교권주의가 도사리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이 기회를 엿보는 그런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성령을 보내실테니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태어난지 3달만에 던짐을 당한 곳은 죽음의 강 나일강입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다른 곳에 골짜기를 파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믿고 나일강에 모세를 갈상자에 넣어 띄울 때 하나님은 건져내셨고 모세를 통하여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다른 곳을 함부로 파지 마시기 바람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골짜기에 많은 개천을 파시기 바람니다.
2) 다음으로는 믿음으로 샘을 파야 합니다.
17절은 이렇게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장마가 시작되고 비가 오려면 먼저 바람이 불고 검은 구름이 몰려와야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좌우되지 말고 믿고 샘을 파라는 것입니다. 기대감을 가지고, 꿈과 비젼을 가지고 샘을 파라고 말씀하십니다.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했으면 도전하십시오. 믿음이 생겼습니까? 새로운 도전을 하십시오.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비결입니다.
♬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맘에 의심없이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약속위에 서리라...
이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며
이 맘에 의심없이 살아갈 때에
우리 소원 주안에서 이루리....
엘리사는 아직 "바람도비도 없는 데도, 물이 충분히 공급될 것" 이라고 말하여 그들의 경이감을 더하게 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로써 손바닥만한 구름에서 물을 얻었으나, 엘리사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물을 끌어 내오는 것입니다.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막9:23)
신앙의 길은 무조건 두손 들고 "주여 믿습니다"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한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인 양 넋두리하지 마시기 바람니다. 어제 실패했다고 오늘 또 실패할 것인 양 좌절하지 마시기 바람니다. 새로운 역사,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시기 바람니다.
3) 다음으로는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말씀하심니다.
개천은 물을 담아두는 웅덩이입니다. "개천에 골짜기를 많이 파서" 물을 받을 준비를 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는 자들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또한 개천을 깊이 파되 “많이 파라”는 것입니다. 많이 파면 물이 많이 고이게 될 것입니다. 적게 파면 적은 물을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큰 꿈을 꾸고 큰 역사를 이루실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어렵습니까?
건강을 잃어버렸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이 여리고 여린, 아니면 어리고 어린 초신자입니까?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생활 신앙생활 가운데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믿음생활 하는 가운데에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분들이 계십니까? 메마른 시대, 마른 골짜기라고 낙심만 하고 있지 마십시다. 샘을 파십시요. 크게 깊이 많이 파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순종하며 많이 파시기 바람니다. 사람이나 환경이나 연세도 다 뛰어 넘으시기 바람니다.
만일 개천을 깊이 많이 파지 않았다면 그물은 괴어 있거나 담기지 못하고 다 흘러가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4. 많은 개천을 믿음으로 팔 때, 순종의 결과입니다.(20절)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종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여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팠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이 나왔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의 종의 말씀에 따라 개천을 많이 팠는데도 물이 안나왔습니다.
그런데 불평불만하지 않았습니다. 웬만하면 속았다고, 미쳤다고 다시는 그런 일 안한다고 할 것입니다. 무슨 순종은 무슨 순종이냐고?
그러나 여호사밧과 그 왕들은 하나님께 소제 즉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20절을 보겠습니다.
"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 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즉 물은 땅을 판 개천에서 나오지 않았고 에돔편에서 흘러 들어와서 땅에 물이 가득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침 소제 드릴 때에, 즉 온 백성이 일어나 아침에 기도하는 그 시간,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기 시작했습니다.
문제 있다고 보따리 싸들고 홀로 산에 들어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니면 포기하거나 낙심하거나 될대로 되라고 하지 마시기 바람니다.
여러분 우리가 모이는 이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역사하는 자리입니다. 온갖 문제, 오만가지 문제가 해결되는 자리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 꼭 나오시기 바람니다. 하나님앞에 나오시기 바람니다.
♬ 오라 오라 방황치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앞에 오라....
22절을 보면 이른 아침 골짜기에 흘러 넘쳐나는 물에 아침 해가 비취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선한 아침이었습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이었습니다. 물 한방울 없던 메마른 골짜기에 물이 흘러 넘치고 거기 아침햇살이 비치니까 물이 빛이 나며 붉은 빛을 띄게 된 것입니다.
23절을 보면 이것을 보고 모압 사람들은 이스라엘 연합군, 3나라 군사들이 서로 싸워 죽이고 죽인 피구나. 이제 올라가서 그들의 노략물이나 가지러 가자 하고 방심하여 올라갔다가 연합군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자기네 나라로 도주하게 되었습니다.(26-27절)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 험한 역사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려고 찾아왔던 악한 사탄의 역사가 원수가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위기와 문제를 만날 때에 낙심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 골짜기에다가 많은 개천을 파시기 바람니다. 우리가 판 그 땅에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물이 흘러와 가득하게 됨으로 살리는 역사가 충만하게 일어날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