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2일 새벽 4시 송화부부는 공주시5곳 아산시4곳 전통사찰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공주시 신원사 갑사 영은사 영평사 동혈사 아산시 봉곡사 인취사 세심사 오봉암입니다.
각사찰마다 주차장은 있습니다.
송화가족님께서 공주나 아산 전통사찰을 가실려면 사찰이름 순으로 가시면 편합니다.
이번순례 사찰은 송화가족님들에게 모두 가보시라고 권할 수 있는 사찰입니다.
공주시 신원사
신원사(新元寺)는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계룡산(鷄龍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신원사는 계룡산 동서남북에 자리한 4대사찰 중 남쪽 사찰에 해당한다. 신원사를 품에 안은 계룡산은 민족의 명산으로서, 《정감록(鄭鑑錄)》과 결부되어 일찍부터 민간 신앙의 영지(靈地)로 주목을 받아 왔던 곳이다. 계룡산의 주봉인 천황봉을 배경으로 하여 천황봉과 연천봉 사이를 흐르는 계곡 옆의 최승지(最勝地)에 신원사가 자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신원사 동쪽의 신도안〈新都內〉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도읍으로 정하여 한때 궁궐 조영 공사를 하다가 중단한 곳으로, 지금도 다듬어진 초석이 많이 남아 있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되어 있다
공주시 갑사
갑사(甲寺)는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鷄龍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계룡산 연천봉으로부터 서북쪽으로 앞이 환하게 트인 곳에 자리한 갑사는 양쪽으로 작은 계곡을 끼고 있는 낮은 능선의 끝부분에 서향으로 세워져 있다. 경내로 들어가는 길은 예로부터 산사의 멋을 한껏 풍겨주는 곳으로 이름이 높고, 주위를 둘러싼 산봉우리에는 수목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갑사의 창건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전해온다. 〈갑사사적비〉와 《문화유적총람》에는 신라 진흥왕 때 자장(慈藏) 율사가 창건하고 혜명(慧明) 선사가 증축하였다 하는데, 이외에도 420년에 아도(阿道) 화상이 창건했다는 설, 556년 혜명(惠明) 화상의 창건설, 그리고 아도 화상이 창건하고 혜명 화상이 중창했다는 설 등이 전해오고 있다.
창건에 대한 기록이 이처럼 확실치는 않지만, 그 시기는 삼국 통일기 이전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신라시대 의상(義相) 대사의 화엄십찰(華嚴十刹) 중에 계룡산 갑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라의 대문장가 최치원(崔致遠)이 찬술한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해동(海東)의 화엄대학(華嚴大學)이 십산(十山)에 있으니 중악공산의 미리사, 남악 지리산의 화엄사, 북악 부석사, 강주 가야산 해인사와 보광사, 웅주 가야협의 보원사, 계룡산 갑사(岬寺), 삭주 화산사, 양주 금정산의 범어사, 비슬산 옥천사, 전주 모악산 국신사이다’ 라고 하였다.
의상 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여 그곳 종남산에서 지엄(智儼) 선사로부터 화엄의 오묘한 뜻을 배워 깨닫고 귀국하여 화엄의 큰 뜻을 선양하면서 국내의 영지(靈地)에 제자들과 함께 여러 절을 세워 화엄십찰이라 일컬었으니,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계룡산 갑사인 것이다
공주시 영은사
영은사(靈隱寺)는 공주시 금성동 11-3번지 공산성(公山城) 내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공산성 내 북쪽 끝에 위치한 영은사는 앞에 있는 금강(錦江)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영은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한다. 우선 백제 때 이루어졌다는 설이 있는데, 그에 관한 정확한 문헌적 근거는 없다. 문헌을 보면, 19세기에 편찬된 《공산지(公山誌)》에 조선시대 초인 1458년(세조 4) 나라에서 영은사를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616년(광해군 8) 이곳에 승장(僧長)을 두어 전국 8도의 사찰을 관장케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정확한 문헌적 고증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아무튼 조선시대동안 영은사가 나름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짐작해 볼 만 하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합숙 및 훈련소로서, 이곳에서 조련된 승병들이 영규(靈奎) 대사의 인솔 하에 충청남도 금산(錦山) 전투에 참여했었다.한편 현재 절에 전하는 탑부재 등의 양식이 고려시대의 것임을 볼 때 영은사는 고려시대 초기에 창건되었을 가능성도 많다
공주시 영평사
영평사(永平寺)는 공주시 장기면 산학리 441번지 장군산(將軍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공주시 동혈사
동혈사(銅穴寺)는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 산45번지 천태산(天台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천태산은 ‘銅穴山’, 혹은 ‘東穴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절 이름도 지금처럼 ‘銅穴寺’로 부른 것 외에 《신증동국여지승람》·《공산지(公山誌)》에는 ‘東穴寺’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이것은 동혈사가 공주 지역의 혈사(穴寺), 곧 풍수에 입각하여 창건된 사찰임을 알게 해준다.
동혈사의 창건이 언제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앞서 말한 것처럼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공산지》에 소개된 것으로 보아서 조선시대 중후기에 이르기까지 법등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뒤 어떤 이유에선지 폐사가 되었고, 근래에 동혈사지에서 북쪽으로 약 50m 가량 올라간 곳에 지금의 동혈사가 세워졌다.
최근에는 화재로 법당·산신각이 소실되었다가 1996년 무렵에 법당을 새로 짓고, 이어서 나한전을 건립했다.
아산시 봉곡사
봉곡사(鳳谷寺)는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595번지 봉수산(鳳首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구전되는 바에 의하면 봉곡사는 887년(진성왕 1)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가 창건하였으며, 산의 모양이 봉황의 머리와 같다고 하여 봉수산이라고 하고, 산 위에 베틀바위의 전설이 어려 있는 돌의 이름을 따 석암(石庵)이라 하였다고 한다. 봉황의 상서로움이 있는 곳에 부처님의 법륜을 굴린 사찰인 듯 싶다.
이 절의 역사는 조선 초기 이후에 이르러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구전에 따르면 고려 의종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1419년(세종 1) 함허 기화(涵虛己和, 376∼1433)가 중창하였는뎨, 당시 상암(上庵)·벽련암(碧蓮庵)·보조암(普照庵)·태화암(太和庵) 등의 산내 암자가 있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그 뒤 1584년(선조 17) 화암(華巖)이 중수하여 봉서암(鳳棲庵)이라 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 1646년(인조 24)에 중창되어 1794년(정조 18)에 경헌(敬軒)과 각준(覺俊)이 중수하여 지금의 이름인 봉곡사로 고쳤다.
1825년(순조 25) 봄 요사를 중수하고 2층누각을 신축하였고, 1872년(고종 9)에 서봉(瑞峰)이 요사의 후방을 증축하였다. 1931년의 중수를 거쳐 비구니 스님들의 수도도량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문수보살좌상의 복장 유물인 《묘법연화경》이 1448년(세종 30)에 간행된 바 있으며, 조선 중종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석암사(石庵寺)는 송악산(松岳山)에 있다.’는 것과 영조 연간에 편찬된 《온양군읍지(溫陽郡邑誌)》에서도 절의 이름을 찾을 수 있어 봉곡암의 연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1929년에 발간된 《조선환여승람(朝鮮豈輿勝覽)》에는, ‘봉곡사(鳳谷寺)는 송악면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 무렵에 절 이름이 지금처럼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절에 관한 직접적 자료로서는 1864년(고종 1)에 쓰여진 〈태화산 봉곡사 산령각 서문(泰和山鳳谷寺山靈閣序文)〉이 《충청남도 사찰자료집》에 남아 있다.
아산시 인취사
인취사(仁翠寺)는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84번지 학성산(鶴城山) 동쪽 기슭의 표고 100m 지점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인취사는 518년(백제 무령왕 18)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은 없다. 다만 조선 후기의 지리지 《여지도서》 〈신창현(新昌縣)〉 <사찰>조에, ‘인취사(咽嘴寺)에는 정문 3칸, 동실방 3칸, 서실방 3칸, 북실협방 4칸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고, 또한 읍지에도, ‘인취사는 현의 북쪽 5리에 있었다. 본래 조그만 암자로서 소수의 승려들이 머물다가 폐사된 지 오래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절 이름이 발음은 같지만 지금의 절 이름과 한자가 다른 것이 주목된다. 그러나 경내에 있는 석탑이나 기와 편을 통해 고려시대 이후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29년에 편찬된 《조선환여승람》이라는 지리서에도 인취사(仁翠寺)라는 이름이 보이고 있어 금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절 이름으로 바뀌어 불려진 것 같다.
최근에는 사경실(寫經室)을 신축 중에 있다. 이 건물은 주지 스님이 발원하여 《화엄경》 전80권의 내용을 전부 사경할 목적으로 짓는 것이다. 현재 백닥나무로 만든 닥종이, 쪽물을 들인 천 등, 사경에 쓸 재료를 주문하고 제작 중에 있다고 한다. 총제작분은 약 400m 분량인데, 특이한 것은 사경실 건물 외벽을 분청자기의 공법으로 타일을 만든 뒤 이것을 깨뜨려서 그 조각을 벽에 붙임으로써 모자이크와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산시 세심사
세심사(洗心寺)는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번지 영인산의 중턱 남쪽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세심사는 백제 때 창건되고, 645년(신라 선덕왕 14)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중창했다고 전하고 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은 없다. 자장이 부처님 진신사리를 가져와 봉안할 곳을 찾다가 천안 광덕사에 두게 하였는데, 천안에서 가까운 이곳에 머무르면서 중창했을 듯도 하다.
경내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탑이 있어 고려시대의 연혁을 짐작할 수 있고,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범우고》 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보이고 있다.
따라서 세심사의 전신인 신심사는 고려시대 이후 존재하였다고 보여지며, 근래인 1968년 일타(日陀)와 도견(道堅) 스님이 절 입구에 있었던 〈세심당(洗心堂)〉이라는 부도명에서 착안하여 세심사로 고쳐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산시 오봉암
오봉암(五峰庵)은 아산시 장존동 산60번지 설화산(雪華山)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아산시의 진산인 설화산은 사화산(死火山)으로 온양온천수의 발원지인데, 크게 다섯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것에서부터 오봉(五峰)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혹은 온양의 옛 읍인 온주(溫州)의 남쪽에 있다고 하여 남산(南山)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남산인 설화산이 읍을 진호하고 그 곳에 절을 창건하여 온주의 백성들의 안위를 기원하였을 것이다.
현재 이 절의 구체적 기록은 전혀 발견되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사세의 규모나 연혁을 알 수 없다. 다만 경내의 삼층석탑은 경상북도 경주시 암곡동에 있는 보물 제126호 무장사(諪藏寺) 삼층석탑과 양식상 유사하며, 또한 이곳에서 발견된 기와 및 토기 조각의 양식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 하대 이후 존재하여 왔다고 추정할 수는 있다.
사찰 입구의 도로 왼쪽에는 계곡이 있어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그 위에 인위적으로 축대를 쌓아 위에는 대웅전, 아래에는 삼층석탑과 요사가 있다. 탑은 본래 자비원 건물이 있던 곳에 있었는데, 대웅전 건립시 현재의 장소로 이전한 것이다. 최근에는 1998년 대웅전을 고쳐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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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으로 보는 사찰은 아주 아름답습니다.
몇군데는 분명히 사찰순례를 다녀온곳이라 생각되는데
아리송하네요.
공주쪽 사찰이 많아요.
햇살스님의 고향이지요. _()_나무아미타불~~
공주에서 대학을 다녔고
제 고향은 예산이랍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