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스타벅스 로고와 공습경보 '사이렌'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 로고에 그려진 여인은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Seiren'이다. '세이렌'은 머리는 여자이고 몸통은 새인 괴조로 복수형은 '세이레네스Seirenes'이다. 다른 설에 의하면 세이렌은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인 인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섬 인근을 지나는 배를 애잔한 연주와 노랫소리로 유인하여 섬 주변에 지천으로 깔린 암초에 좌초시켰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선원들은 그들의 음악 소리를 듣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배에서 뛰어내려 헤엄을 치다 지쳐서 익사했다.
세이레네스는 강의 신 아켈로오스Acheloos와 9명의 무사이 중 하나인 멜포메네 Melpomene, 혹은 칼리오페, 혹은 테릅시코레Terpsichore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신화학자들에 따라 그 수는 2명, 3명, 4명으로 달라진다. 그리스 신화에서 세이레네스는 괴조로 등장하는데 맨 처음 등장하는 곳은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호의 모험]이다. 그에 따르면 세이렌은 텔크시오네 Thelxinoe, 몰페Molpe, 아글라오포노스 Aglaophonos등 총 3명인데, 그중 1명은 리라를 켜고, 다른 1명은 노래를 부르고, 마지막 1명은 피리를 불었다.
이아손을 비롯한 55명의 아르고호의 영웅들은 흑해 연안의 콜키스에서 황금 양피를 탈취한 다음 귀향길에 세이레네스가 사는 섬을 지나가야 했다. 멀리서 그들의 고혹적인 연주와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선원 중 리라와 노래의 달인 오르페우스가 앞으로 나서 연주와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이레네스의 마력이 선원들에게 미치지 못했다. 오르페우스의 연주와 노래가 세이레네스로부터 선원들을 보호해 주는 방어막이자 맞불이었던 셈이다. 단 1명 부테스Butes만은 갑판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그들이 사는 섬 해안으로 헤엄쳐 가려고 했다. 그러자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를 구해서 릴리바이온Lilybaion으로 데려가 아들 에릭스Eryx를 낳았다.
그 후 세이레네스가 등장하는 곳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다. 이곳에는 세이레네스의 출신이나 이름은 거명되지 않은 채 그 수가 2명이라고만 언급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귀향길에 세이레네스가 사는 섬을 지나가야 했다. 호기심이 무척 강했던 오디세우스는 세이레네스의 노랫소리를 꼭 듣고 싶었다. 그래서 이전에 1년 동안 같이 살았던 마녀 키르케Kirke가 당부한 대로 얼른 밀랍을 녹여 부하들의 귀에 발라 준 다음 믿을 만한 부하 2명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게 하고는 후에 아무리 자신이 몸부림쳐도 풀어 주지 말고 더 단단히 묶으라고 당부했다.
세이레네스는 과연 오디세우스의 배가 사람의 고함이 들릴 만큼 다가오자 그들을 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디세우스여, 자 이리 오세요. 배를 세우고 달콤한 우리 노랫소리를 한번 들어 보세요. 우리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고 이곳을 통과한 배는 아직 하나도 없어요. 우리 노랫소리를 들은 사람은 죽어서도 더 많은 것을 알고 가지요. 우리는 풍성한 대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다 알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트로이에서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이 벌인 전쟁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세이레네스가 절묘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자 오디세우스는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듣고 싶은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몸부림치며 부하들에게 자신을 풀어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부하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터라 노를 젓기만 했다. 다만 페리메데스 Perimedes의 에우릴로코스Eurylochos가 오디세우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미리 시킨 대로 더 많은 밧줄로 그를 더욱더 꽁꽁 묶어 버렸다. 부하들은 세이레네스 노랫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게 되자 비로소 자신들의 귀에 바른 밀랍을 떼어 내고 오디세우스도 밧줄에서 풀어 주었다.
'스타벅스'의 로고는 세이렌이 인어라는 설에 따라 만들어졌다. 초창기 '스타벅스' 로고에는 세이렌 하반신의 물고기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미적으로 예쁘게 처리되면서 희미해졌다. '스타벅스'가 세계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혹시 회사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는 로고의 세이렌 덕분 아닐까? 그래서 '스타벅스' 매장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녀가 연주하며 부르는 노랫소리에 홀려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실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이끌리듯 말이다. 달콤한 커피 향까지 뿌려 대며 유혹하는 그녀를 당할 재간이 어디 있겠는가?
민방위 훈련 때 울리는 '사이렌siren'도 '세이레네스'의 단수형인 '세이렌'에서 유래한 말이다. 신화 속 세이렌이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해서일까? 영미권에는 '사이렌'이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와 앨범을 낸 가수가 아주 많고, '사이렌'이라는 밴드도 있다. 영국과 미국의 해군에는 '사이렌'이라고 명명한 전함도 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새크라멘토 사이렌스Sacramento Sirens'라는 여자 프로 축구팀이 있다. 남극대륙에는 '사이렌만Siren Bay'과 '사이렌 바위Sien Rock'가 있다.
브랜드로 읽는 그리스 신화 중에서
김원익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