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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말씀/ 누가복음 9:1-17 요절/ 누가복음 9:16,17a | 2022. 6. 5 | |
누가복음 제 14 강 |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더라”
이 그림은(PPT로 사진을 띄움) 스페인의 유명한 화가 피카소의 '황소의 머리'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길을 가던 피카소가 우연히 버려진 자전거 한 대를 발견하고 그 자전거에서 안장과 핸들을 떼어 안장에다 핸들을 거꾸로 붙인 것인데 런던 경매시장에서 293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버러진 자전거가 피카소의 손을 거친 순간 초고가 미술품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버러진 자전거와 같이 작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자체는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별 볼일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손에 들어가면 달라집니다.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예수님이 축사하시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사용하사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오병이어를 찾고 적극적으로 주님께 드림으로 생명을 살리는 역사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을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예수님은 그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설명해 주셨고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 보내고자 하십니다. 내 보내어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도록 하십니다. 제자들이 아직 어리기에 양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불안하기도 하셨지만 보내십니다. 제자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자신의 능력과 권위를 주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는 전도의 사명을 감당토록 하십니다. 전도의 사명은 사람의 능력이나 권위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과 권위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믿고 복음의 능력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할 수 있고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3-5절을 보면 예수님은 전도여행을 할 때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지키는 지팡이도 생활필수품을 담는 배낭도, 양식이나 돈과 같은 경비도 여분의 옷도 가지고 가지 말라 하십니다. 이는 사람이나 물건을 의지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느 집으로 들어가든지 그곳에서 머물다가 떠나도록 하셨습니다. 삶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하며 복음을 전함을 통해 개인뿐만 아닌 가정을 살피고 돕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전도를 하다 배척받는 경우에는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도록 하셨습니다. 복음 전도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접하지 않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위축되지 말고 끝까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렇게 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곳곳에 복음이 전파되었고 병을 고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시기에 심히 좋은 아름다운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아름다움을 상실하였습니다. 죄로 인해 병들어 죽어가는 인간을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땅에 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골고다에 오르셨고 십자가 위에 손과 발이 못 박힌 채 죽으셨습니다. 이후 사흘 만에 성경대로 부활하사 우리의 모든 죄와 죽음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케 하셨고 복음을 믿는 각 사람의 내면에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0장 13-15절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 나라의 전파와 이를 통한 치유와 회복의 역사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보내심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을 가진 전도자들을 통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캠퍼스 목자요 성경선생으로 부르시고 보내셨습니다. 죄 가운데 병들고 쓸모없는 인생을 살던 자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전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어명이요 신명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고인 물처럼 신앙이 부패합니다. 생동감을 잃어버립니다. 나가서 전도할 때만이 죽어가는 영혼이 살아나고 자신도 살아나게 됩니다. 전도할 때 주님이 함께하시며 능력과 권위를 더하여 주십니다. 시대가 어렵고 복음의 수용성이 낮고 열매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한 사람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자들의 전도를 통해 사람들 가운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요한이 살아났다고 말하며 또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옛 선지자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였습니다. 분봉 왕 헤롯은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였습니다. 그 또한 예수님이 누군가 하며 예수님을 보고자 하였습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부분 떠나갑니다. 하지만 떠난 이들의 마음에 심겨진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만듭니다. 박철언 형제가 있습니다. 소원 있던 양이였습니다. 하지만 학기 중 편입준비를 하느라 떠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락이 왔는데 전남대에 편입을 하게 되었고 광주1부 UBF에 나가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군에 입대하여 군종병으로 복무하며 예수님을 잘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전한 복음은 하나도 헛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각 사람에게 지금도 역사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당장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가족들과 양들에게 포기치 말고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0,11절은 말씀합니다.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을 고치시더라.” 사도들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한 제자들에게 쉼을 주고자 그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라는 마을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곳까지 무리가 따라왔습니다. 제자들은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목자 없는 양으로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환대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 하시며 병 고칠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끝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무리가 걱정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여기는 빈들입니다. 빈들에는 먹을 것도 유할 곳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라고 제안하였습니다. 제자들의 제안은 현실적이고 타당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3a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상황과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가진 것이라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인데 왜 이런 부담스럽고 불가능한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첫째는 제자들이 양 무리들의 목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실 제자들뿐만이 아니라 무리들도 문제 제시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무리와 다른 것은 문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양 무리들이 겪고 있는 병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문제를 말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해결하고자 하는 자가 목자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은 긍휼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양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그것을 내 문제로 생각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돕는 자세, 그것이 바로 목자의 심정이요, 아비의 마음입니다. 무리들이 만약에 제자들의 자식들이라면 아무리 빈들이고, 때가 저물어가고, 돈이 없어도 먹을 것을 찾아서 먹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심정의 문제입니다. 능력이 많다고, 돈이 많다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은 아닙니다. 목자의 심정과 책임감이 있을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선한목자이십니다. 선한목자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원수와 같은 죄인된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목자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사랑을 덧입습니다. 심정을 덧입습니다. 그 사랑과 심정이 양들을 먹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통해 먹일 수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돕고자 하셨습니다. 빈들에 남자만 하여도 오천 명이 있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나 병 고침은 경험해 보았기에 예수님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먹는 문제는 예수님이 아닌 각자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백성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먹이셨습니다. 60만 명을 40년 동안 먹이신 하나님이 5천명을 한 끼 먹이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먹이십니다. 내가 부족하고 가진 것이 없더라도 하나님이 친히 먹이십니다. 이 믿음을 가질 때 위축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양들을 먹일 수 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13b절은 말씀합니다.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제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먹을 것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들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찾아서 가지고 나온 오병이어를 바라보시고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리를 한 오십 명씩 앉히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그렇게 무리들을 앉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기도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빌었습니다. 그런 후에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눠 주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빵을 떼기 시작하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빵과 물고기를 떼어내어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장정 오천 명이 먹고 다 배불렀습니다. 그 남은 것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져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으시고 그것으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와 같이 하찮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 하늘에서 떡과 고기를 내리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이 드린 작은 오병이어를 꼬투리 삼아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작은 오병이어를 귀하게 여기시고 이를 통해 일하십니다. 오병이어는 작은 불씨와 같습니다. 작은 불씨, 그 자체는 정말 작습니다. 그런데 작은 불씨에 바람이 불어 닥치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오병이어의 작은 불씨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 닥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는 내가 전하는 한 번의 전도, 한 번의 만남, 한 번의 기도와 섬김, 1시간의 일대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것 자체만 놓고 보면 정말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꼬투리로 하나님이 축사하시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내게 있는 작은 오병이어를 하찮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주님께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봄 학기 캠퍼스에서 전도를 하다가 한 형제를 만났습니다. 첫 만남은 아주 짧은 만남이었습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 다시 만나면 밥 먹자고 약속하였습니다. 한 달이 지나 세 번째 만날 수 있었고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일대일 성경공부도 시작하였습니다. 첫 번째 공부 후 바로 소감모임에서 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꾸준히 공부도 하고 밥도 자주 먹었습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잘 먹는지 물으니 그는 맛있는 것은 다 잘 먹는다 하였습니다. 회를 좋아한다 하여 MT 때 주문진 수산시장에 회를 사와 함께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감사할 줄 알고 잘 먹는 모습이 좋았고 무엇보다 말씀 앞에 진지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기말시험 후 춘천에 남아 예수님을 계속 배우면 어떻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처음에는 먹는 문제와 물질문제로 부모님 집에서 방학을 보낼 것 같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먹는 건 교회서 학기 때 먹던 것처럼 함께 먹으면서 지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방학동안 사용할 수 있는 기숙사를 신청하고 춘천에 머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동안 먹였던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가 되었습니다. 잘 먹인 것도 아니었고 저의 것으로만 먹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김다니엘 형제의 부모님이 보내준 음식과 홍에스라 목자가 인터넷으로 산 고기가 냉장고에 있어 그걸로 먹이고 때로는 라면으로 때로는 학교식당에서 먹였습니다. 김바울 목자님이 섬겨주실 때 좋은 것으로 먹였습니다. 한 영혼에 대한 긍휼의 마음으로 그를 먹이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들을 쓰셨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말씀을 친히 먹이셨습니다.
배불리 먹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배고픈 무리를 배부르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배불리 먹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5)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먹고 그 피를 마실 때 영원한 생명을 얻고 참된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진실 되게 자기 죄를 고백하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을 얻고 참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다 배불리 먹이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먹이신다는 믿음을 갖고 우리에게 있는 오병이어를 찾아 주님께 적극 드려야겠습니다. 이를 통해 다 배불리 먹는 생명구원의 역사에 아름답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가오는 여름수양회에 우리의 오병이어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새롭게 임하고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