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우(朴鳳宇, 1934년 7월 24일[1]~1990년 3월 2일[2])
분단 비극의 시인 또는 통일 지향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폭음과 방랑과 가난으로 점철된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아 김관식, 천상병과 더불어 한국 시단의 3대 기인으로 불렸다.[2]
호는 추풍령, 광주 서석국민학교, 광주서중학교, 광주고등학교를 거쳐 1959년 전남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휴전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전라남도문화상·현대문학 신인상(1962)을 수상하였다.
1950년 중학교 2학년 때 625전쟁이 일어나자 모친과 무등산으로 피난하여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내게 된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의한 동족간의 전쟁과 참상은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 시인으로 하여금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며, 이때의 상실감과 분노가 ‘분단의식’이라는 그의 일관된 시정신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는 분단 조국의 현실을 날카로이 응시하고 고발하는 시 「휴전선」으로부터 시작된다.
4·19혁명 후에는 타락한 현실에 대한 허무감과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시 「나비와 철조망」·「젊은 화산(火山)」 등을 통해서 분단의 현실을 노래하기도 하며, 「서울 하야식(下野式)」에서는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드러내기도 한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시로서 저항하다가 불행하게 사라져간 비극의 시인, 불운의 시인으로서 그는 시사에 기록될 수 있다. 전라남도문화상·현대문학 신인상(1962)을 수상하였다.
특히, 시 「백두산」에서는 분단 극복의지로서 통일의 염원을 노래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그는 분단 비극의 시인 또는 통일지향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시집으로는 『휴전선』(정음사, 1957)·『4월(四月)의 화요일(火曜日)』(성문각, 1962)·『황지(荒地)의 풀잎』(창작과 비평사, 1976)·『서울하야식』(전예원, 1985), 그리고 『딸의 손을 잡고』(思社硏, 1987)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 『시인(詩人)의 사랑』(1988)이 있고, 죽은 뒤에 『박봉우집중연구』(시와 시학, 1993. 겨울호.)로 문학과 생애가 집중 조명되었다.
그는 김현승, 서정주 등의 기성 시인들과도 교분을 가졌는데 특히 김현승과의 관계는 어느 사람보다 두터웠다.
그는 1956년에 시「휴전선」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에 등장했다. 「나비와 철조망」,「목숨의 시」,「사미인곡」등의 현실의식을 담은 작품들을 줄곧 발표하면서 문단에서 주목받는 시인으로 자리를 확보하여 갔다. 이 무렵 박봉우는 동서고금의 문학서들을 독파했는데, 특히 괴테와 톨스토이, 이태준, 정지용, 한설야, 박태원, 이기영 등의 문학작품에 심취했다고 한다. 1957년에 신춘문예 당선 시제로 첫 시집 『휴전선』이 출간되었고, 1959년에 두 번째 시집 『겨울에도 피는 꽃나무』를 출간하였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자 419혁명을 소재로 한 최초의 시 「젊은 화산」을 4월 25일에 발표했다. 1962년에 세 번째 시집 『4월의 화요일』을 간행했으며,『현대문학』신인상을 수상했다.
1970년대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낙향하기로 결심한다. 서울을 떠나려 하는 그의 심경과 결심이 네 번째 시집『황지의 풀잎』에 실려 있다. 자신과 한 잔의 술도 나누지 못하고 자신의 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겨울이면 죽은 아내가 그리워 울곤 했다. 세 아이를 남겨둔 채 정신병동에 누워 있다가 1990년 3월 1일 56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시인 박봉우는 조국의 현실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가장으로서는 무능하고 힘없는 아버지였지만 조국의 분단과 왜곡된 당대 현실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저항해 나간 시인이었다.
작품 세계
그의 시는 분단 조국의 현실을 날카로이 응시하고 고발하는 시 <휴전선>으로부터 시작된다. 4·19 혁명 뒤에는 타락한 현실에 대한 허무감과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 <나비와 철조망>·<젊은 화산(火山)> 등을 통해서 분단의 현실을 노래하기도 했고, <서울 하야식(下野式)>에서는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봉우의 시세계는 동양정신을 바탕으로 한 신서정(新抒情)의 탐구이다. 신서정이라 함은 시적 체질인 열정ㆍ방황ㆍ고독ㆍ저항 등이 개인적 차원에서 발상(發想)되는 것이 아니고, 민중 속에서 우러나온 민중의 노래, 민중의 가슴에 닿는 시정신으로 저항적 자세에 선 문명비평에의 도전인 것이다.
동인시절에는 현실에 민감한 작품을 썼으나, 등단 이후에는 동양정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서정시를 추구하여, 그 서정을 통하여 일종의 문명비판을 시도했다. 선적(禪的)인 동양정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서정세계를 추구했으며, 그 서정을 통하여 문명비평을 시도한 것이 특징이다.
박봉우의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육성(肉聲)의 시'이다. 그의 시는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불의와 비리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이른바 참여시의 특성을 갖는다. 50년대의 전쟁과 폐허로부터 60년대의 민주 혁명과 군사 독재, 70년대의 속 빈 강정 같은 풍요 속에서 느끼는 정신적 빈곤감, 80년대의 민주화 열망 등 광복 이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 우리 사회를 온몸으로 맞닥뜨리고 시를 쓴 시인이다.
<권영민의 시평>
그는 언어의 기법을 따지지 않고, 표현의 수사학을 고심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가 호소력을 갖는 것은 시인 자신이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진정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댓글 수고가 많으십니다...
선생님 덕분에 잊고 지내던 시세계를 둘러봅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