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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g67ZNZf7Uo?si=ePWSCJ0GTpSPUt-z
그대 품에서 잠들었으면 / 박정수
나는 그대의 빈틈이 있었다면
사랑했을 것이다, 사랑했을 것이다
어둠은 내려 않는데 음
그대 들려줄 한 줄 시도 못 쓰고
기억 속으로 차가운 안개비 안개비만 내린다
홑이불처럼 사각거리며 가슴 저미는 그리움 쌓이고
세상에 온통 시들었어도 깊고 고요한
그대품에서 잠들었으면 잠시라도 잠들었으면
2026년 3월 14일 심스테파노길 명주군왕릉 주차장...(09:55)
*심스테파노 길
강원도 원주와 횡성 동쪽엔 구한말 병인박해 때의 천주교 성지가 없었다.
그러다 이 길을 탐사하며 이 길이 지나는 골아우 마을에 심스테파노라는 천주교 신자가
지방관아의 포졸이 아니라 서울에서 출동한 포도청 포졸에게 잡혀가 순교한 사실을 찾아냈다.
바우길 탐사대는 이 마을을 심스테파노마을이라 부르고, 이 길을 심스테파노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순교자를 기리며 순례자의 마음으로 걷는 길이다. / 출처 : 강릉 바우길
병인박해(1866) 때 순교한 심스테파노가 살았다는 ‘강릉 골아위’가 ‘골아우(지금의 경암동)’라는 주장에서 유래했다.
심스테파노는 천주교 순교자 877명 중에서 유일한 강릉 출신이다.
이 길에는 신당도 많다. 승천사와 법륜사는 사찰이 아니라 신당이다.
신이 깃든 고개의 아랫마을이니 어쩌면 당연한 풍경이다.
마을로 내려온 길은 걷기에 편하고 숲은 깊었지만 산은 험하지 않다.
솔바우 전망대 오르는 길은 야자매트가 깔렸고, 내려가는 길은 계단이 놓였다. 전망대에도 데크로드가 설치됐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을 조성하면서 새로 들인 시설이다. 솔바우 전망대에서 강릉 시내가 훤히 보인다.
까마득한 높이의 교각이 고속도로를 떠받치고 있다.
막바지에 이를 즈음 ‘우추리’라는 마을 간판이 나타난다. 강릉 사람이 위촌리를 부르는 이름이다.
도배(都拜) 마을이라고도 한다. 절 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위촌리에서는 온 주민이 모여 촌장에게 세배를 올린다.
율곡 이이(1536∼84)의 마을 대동계가 전승되는 유일한 고장이다.
이사님 Opening...(09:58)
바우님의 날진 물통 기증... O, X 퀴즈로 바우님들에게 선물한다
10 구간지기 낭만주객님 & 하곤님.
테라님, 숙이자매님, 뒤로 미수기님
시나브로님, 지고지산님, 에셈님
밀가 국땅님
심스테파노길 힘차게 출발... 명주군왕릉 홍살문을 지나간다...(10:15)
홍살문紅─門
홍살문(紅살門), 홍전문(紅箭門), 홍문(紅門), 정문(旌門)은 대한민국의 전통 대문(大門)으로,
설치한 지역이 신성한 곳이거나 구격(具格,격식이나 예절을 갖춤)이 맞는 장소임을 나타내기 위해 표지로 세우던 문이다.
이름을 직역하면 '붉은 화살 문(Gate with Red Arrows)'이라는 뜻이다.
기록상 삼국시대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며, 현재 남아있는 홍살문들보다 과거의 홍살문들은 그 크기가 매우 컸다.
종로거리에도 거대한 홍살문이 있었다.
주로 왕릉과 같은 묘지나 향교. 서원, 궁궐 및 관아 등의 정문으로 설치하였으며
드물게 용주사처럼 절에 있는 것도 있고 대구 약령시처럼 거리에 설치한 경우도 있다.
형태를 보면 나무로 만든 기둥과 살에 붉은색을 칠하고 문의 상단에도 붉은 화살(홍살)들이 붙었고
가운데에 한국식 태극무늬를 새겨 붙인다. 태극무늬를 지나는 홍살들은 서로 꼬여 당파 모양을 하였다.
붉은색으로 칠함은 동짓날 팥과 같이 붉은색이 양기를 띠어 귀신과 액운을 물리친다는 뜻이고,
윗부분을 화살로 장식함은 잡귀를 화살로 쏘아 없애버린다는 뜻을 담는다.
일반 문과 달리 문짝이 없고 '문 문(門)'자 모습을 하였다.
용도도 일반 문과는 다르게 장소의 안팎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지점으로 도달했음을 명시하는 것이다.
또 홍살문 옆에는 신성함을 위하여 하마비(下馬碑),
즉 통행인의 신분과 상관없이 '타고 있던 말에서 내려걸어 지나가라'라고 지시하는 내용을 새긴 비석을 세우는 곳도 있다.
이곳에서는 귀천과 상관없이 왕이나 황제조차도 말에서 내려야 한다.
명주군왕릉 溟州郡王陵
강릉김 씨의 시조인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묘.
신라 태종무열왕 5대 손으로 알려진 김주원이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封)해졌기 때문에 왕릉이라고 한다.
신라 선덕왕(宣德王)이 후사(後嗣) 없이 죽자, 신하들은 왕족 중에 김주원을 택하여 왕위에 추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침 경주에 내린 큰 비로 강을 건너지 못해 김주원은 회의에 참석지 못하게 되었다.
신하들은 “하늘이 비를 내려 김주원을 이 회에 참석지 못하게 한 것은
하늘이 김주원을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함이니 다른 사람을 뽑자.”라고 하여 김경신(金敬京:元聖王)을 즉위케 하였다.
원성왕은 왕위에 오른 후 김주원을 강릉에 보내 명주, 삼척, 울진, 평해 등
영동지방 일대를 식읍(食邑)으로 주고 명주군왕에 봉하였다고 한다.
강릉 성산면 보광리 삼왕동의 북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임영지(臨瀛誌)'에 의하면 김주원의 묘소는 한때 실전(失傳)하였다가
김주원의 후손인 김첨경(金添慶)이 조선 명종(明宗) 때에 강릉부사로 와서 찾아냈다고 한다.
현재의 묘역은 봉분 아랫부분에는 긴 사각형의 둘레돌을 두른 묘 2기(전:왕릉, 후:왕비릉)가 앞뒤로 배치되어 있다.
묘 앞에는 "명주군왕 김주원묘(溟州郡王金周元墓)"라고 새긴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는 망주석, 문인석, 동물 석상이 한 쌍씩 세워져 있다.
동네 입구에는 신도비(神道碑)와 재실(齋室)이 각각 있다.
1971년 12월 16일에 강원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곳곳에 쌓여 있는 눈...올 겨울에 밟는 마지막 눈이 아닐까 싶다.
눈의 무게를 못 이겨 부러진 나무들을 제거하면서 걸어간다.
우리나라 산을 다니다 보면 산죽(山竹,조릿대)이 무척 많다.
이사님 입안에 떡이 한가득...
'봄이 가까워질수록 눈은 산꼭대기로 올라간다'...라는 詩의 한 구절이 있다.
겨울과 봄이 서로 힘 겨루기 하고 있는 요즘
봄의 전령들이 낮은 곳 부터 여기저기서 오고 있는데 ... 산 위에는 아직 겨울이 진행 중이다
대관령 고속도로를 배경으로 ... 인디언 캡
칭런님
날진 물통을 기증하신 분...(알고 보니 대학 선배님이셨다...^^)
고속도로 밑 터널을 지나간다.
사랑과 의리로 뭉친 주문진 공주님들...
삼지 닥나무 꽃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심어 기르는 낙엽 떨기나무이다.
줄기는 높이 1-3m,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며, 피침형으로 길이 8-15cm, 폭 2-4cm이고, 얇다.
잎 양면은 털이 많은데, 뒷면에 더욱 많다. 잎자루는 길이 5-8mm이며 털이 난다.
꽃은 3-4월에 잎보다 먼저 묵은 가지에서 난 머리모양꽃차례에 피며 밑을 향하고, 노란색이다.
꽃받침통은 끝이 4갈래로 갈라지며, 꽃잎처럼 보이고, 길이 1.2-1.5cm, 안쪽이 연한 노란색, 흰색의 연한 털이 많다.
열매는 수과이며, 난형이다. 수피는 섬유용으로 쓴다.
승천사를 지나면서...
봄 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시집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중
지름길로 힘들게 오르고 있는 하이에나...
이곳에서 점심 식사 공지를 한다... (11:40)
식사 후 솔바우 전망대 아래 임도길에서 모이기로 한다.
약간 쌓여 있는 눈으로 계단이 상당히 미끄러웠다.
식사 후 다시 모이는 임도길...
곳곳에 흩어져 식사 후...내려 오고 있는 바우님들...
막간을 이용해 가위 바위 보로 구간지기를 이기면 양말을 선물한다.
국땅님은 계속해서 진다.... "표정에 나타난다..에이~씨... 또 졌네'
허브님은 이기셨는지...
지영 씨는 양말을 안 주면 한 대 때릴 폼이다.
연거푸 세 번 도전해 계속 지고 있는 테라 선수...(어케 저리 못 이길까?)
법륜사 앞에서 잠시 휴식...(13:25)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벌들의 움직임이 분주(奔走) 하다
신목(神木)
무(巫)에서 신목은 하늘과 땅,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거룩한 곳이므로
우주의 중심으로 여겨지고 우주목(宇宙木)의 의미를 가진다.
단군신화에 의하면 환웅(桓雄)은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나무 신단수(神壇樹) 밑에 강림하였다 하니,
신목 신앙이 한민족의 태초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신목에 대한 신앙은 산악신앙 및 천신강림(天神降臨) 신앙과 연결되어 있다.
고조선 이래 신목에 대한 신앙은 무와 더불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내려온다.
1919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거수노수명목지 朝鮮巨樹老樹名木誌' 에 따르면
당시 한반도 전체 신목의 총수는 940개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목의 나무종류로는 느티나무가 가장 흔하고 팽나무와 들메나무가 그다음으로 많다.
신목은 그 위치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신앙되어 온다.
하나는 무당의 집이나 신당(神堂) 곁에 자리하여 있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이나 산속에 위치하여 있는 경우이다.
무당집 곁에 특정의 신수(神樹)를 모시는 풍속은 시베리아 제민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자의 경우 신목은 특히 당건물 및 신천(神泉)과 함께 한국무의 전형적인 신당 내지 굿당을 이루어왔다.
신당의 신목은 영험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어져 무당은 영력을 얻기 위해,
단골은 집안식구의 병을 낫게 하려고 색색의 헝겊이나 환자의 옷가지를 나무에 걸어둔다.
굿하는 도중 신목 앞에 약간의 제물이 바쳐지기도 한다.
마을이나 산 속에 위치한 신목이 특별한 신명(神名)을 얻어 불리는 경우가 많은데,
성황목(城隍木)·산신목(山神木)·부군목(府君木)·대감목(大監木)·동신목(洞神木)·본향목(本鄕木) 등이 그것이다.
이들 신목을 위하여 매년 봄이나 가을에 정기적으로 마을굿이 행하여진다.
태만하여 그 굿을 올리지 않으면 벌로 재앙이 내린다고 믿어지고 있다.
동네의 치성을 드리는 신목이 암수 한 쌍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신목의 주위에 돌무더기를 쌓아놓거나 또는 돌로 제단을 마련하여 두는 예도 많다.
일제강점기 이래 신목 신앙을 미신으로 여긴 기독교인들이 그 타파의 일환으로
마을의 신목을 베어버리거나 훼손하여 신목은 많이 줄어들었고,
그 때문에 마을사람들과 반목을 불러일으킨 사례가 흔하였다.
그러나 신목은 아직도 많이 남아 신앙되고, 신목 신앙은 한국사람들에게 여전히 살아 있다.
구간지기님이 신목에 관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고래를 닮은 바위
이 방향에서 찍으니 고래 모습이 좀 더 역동적이다.
작은 개울 상태를 살펴 보고 임시 징검다리를 놓아본다
천주 교인들이 잠든 곳... 그들의 곁을 조용히 지나간다
심스테파노
강원도 강릉 출신의 천주교인으로 1866년 병인교난(丙寅敎難) 때 순교한 인물.
청송심씨로 정약용의 외손자이며, 삼척부사를 지낸 정대무의 사위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강원도 강릉 굴아위에 살다가 1868년 5월 경포(京捕)에게 잡혀 풍수원에 살던 최바오로와 함께 갇혔다가 순교하였다.
나이는 29세였고 시신을 안장한 곳은 알 수 없다. 병인교난에 순교한 최초의 강릉 출신 순교자이다.
희미하게 보이는 고래바위 경암(鯨岩)
골아우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 있는 자연 마을.
골아우(鯨岩洞)는 마을에 고래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고래바위는 성산면 위촌리 송두 안쪽 골아우에 있다.
골아우는 고래바위가 줄어서 골바우로 되었다가 나중에 골바우가 골아우로 변했다.
골아우에 있는 고래바위는 산기슭에 있는데 등 부분은 검고,
배 부분은 희어 마치 고래가 뭍에 나와 앉아 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다.
바위에는 '경암(鯨岩)'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고래바위가 영험하다고 하여 바위 밑에 제단을 차려놓고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또 예전에는 아이들의 손등에 사마귀가 생기면 고래바위 밑에 가서 흐르는 물을 손등에 발랐는데,
그렇게 하면 사마귀가 없어졌다고도 한다.
골아우는 위촌리 마을 제일 안쪽에 있는 마을로
사실이재와 멍애재에서 내려온 줄기 사이에 있어 마을이 산으로 둘러 쌓여있다.
골아우로 흐르는 물은 사실이재(사천면 사기막리와 경계)와 멍애재(성산면 보광리와 경계)에서 흘러와
옥천폭포를 지나 위촌리 가운데 있는 황계를 이루며 느릅내, 죽헌동을 지나 경포호로 흐른다.
골아우에서 남쪽으로 가면 남녘골이 있는데 이곳에 ‘강릉김 씨 세장동’이라 새긴 바위가 있고,
또 구한말에 이곳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심스테파노가 풍수원(豊水院)에서 포도청 관원에 붙잡혀 순교하였다고 한다.
솔안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 있는 자연 마을.
솔안(松內)은 마을이 큰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는 안쪽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솔안 마을은 사실이재와 멍애재에서 내려온 줄기 사이에 있고, 앞에는 돌탑이 있는데,
이 돌탑 옆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솔안 마을에는 골아우에서 흘러온 물줄기를 건너 남쪽으로 가면 망월이가 되고,
서쪽으로 들어가는 골을 따라 들어가면 지암이 되고, 내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양짓말(송양초등학교)이 된다.
솔안 마을에는 골아우와 쑥고개가 있고, 마을길을 확장하면서 소나무와 돌탑은 없어졌다.
동해고속도로가 지나간다.
3월 / 용혜원
봄이 고개를 쑥- 내밀기에는 아직은 춥다
겨울이 등을 돌리고 확- 돌아서기에는 아직은 미련이 남아 있다
뼈만 남은 나무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연초록과 꽃들의 행진을 눈앞에 그리며
기다림과 설렘으로 가득한 계절이다
땅속에 햇살이 따사로운 봄을 기다리는 새싹 눈빛이 가득하다
위촌리-사람과 자연-세거성씨와 인물 渭村里-自然-世居姓氏-人物
위촌리에는 유서 깊은 몇몇 집안이 대대로 살아오고 있는데, 이들 세거성씨를 알아본다.
먼저 강릉 김 씨(위촌파)를 들 수 있는데,
강릉 김 씨 위촌 파는 매월당 김시습의 양자로 입적된 김덕양의 아들 김준현이 파조가 된다.
김덕양은 김시습의 고조인 김한신의 아우 김한경의 5세손이다.
현재 마을에는 김준현의 15세 종손인 김덕래[73살] 씨가 살고 있다.
강릉 최 씨 비인공파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에 마을로 들어왔는데
‘종(鐘)’자 항열의 9대조인 ‘최장이’라는 분이 파조가 된다.
강릉 함 씨 위촌파는 지금으로부터 450여 년 전에 ‘식(植)’자 항열의 15대조인 함숭조가 파조가 된다.
강릉함씨는 낭천파, 오곡파, 위촌파, 오봉파가 있다.
성주 이씨는 ‘석(錫)’자 항열의 15대조인 진사공 이종제의 아들 이시준이 파조가 되는데
그는 지금으로부터 약 450여년 전에 조산(대전동)에 들어왔고 그 후손들이 위촌리에 들어왔다.
한산 이씨가 위촌리에 세거하게 된 경위는 325년전으로 거슬러 간다.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하고 주부(主簿)를 지낸 이은(李垠)[1641-1689]의 장남
이정한(李䅍漢)[1660-1690]은 1690년 2월 부인 강릉김씨가 사망하자
어린 두 아들 이서(李稰)와 이빈(李穦)을 위촌리에 사는 장인 김명규(金命奎)에게 맡겼는데,
같은 해 4월 이정한마저 사망하면서 어린 형제가 강릉 외가에서 계속 자라게 되었다.
강릉시 남문동에 거주하는 후손 이종구에 따르면 325년이 지난 2015년 현재
이들의 후손은 100세대 이상으로 늘어났고, 강릉 일원에 80세대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인물]
위촌리가 배출한 역사적 인물 가운데서 대표적인 인물 몇 분만 거론해보기로 한다.
먼저 김상적은 만력 정축 8월에 태어나서 숭정 경진 정월 64세로 세상을 떠난 인물로 호는 위촌이다.
대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 공조좌랑을 거쳐 인조 때 경상북도 풍기군수를 역임했다. 문집 3권을 남겼다.
김세록은 만력 신축 4월에 태어나서 숙묘 기사 3월 89세로 세상을 떠난 인물로 호는 위천(渭川)이다.
김상적의 아들로 위촌리의 대동계를 주도적으로 결성하였다.
'전고대방(典故大方)'에 보면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는데
특히 대나무를 잘 그려 바람이 불면 대나무에서 소리가 났다고 한다.
심스테파노는 강릉의 골아우에 살았는데 고종 3년(1868) 무진년 5월에 병인교난 때
포도청 포졸에 잡혀 횡성군 풍수원에 사는 최바오로와 함께 갇혔다가 치명했는데, 나이는 29세였다.
무덤이 어디 있는 줄은 모른다.(『치명일기』)
한산 이씨(韓山李氏) 이승학(李承學)[1838-1923]은 이빈(李穦)의 고손(高孫)으로서
1894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올랐다. 수차 입궐 권유를 받았으나 애향심의 발로로 후학 훈도에 전념하였다.
종착지에 거의 도착해...구간지기 마무리 인사와 수고한 지기님들에게 박수를.... 대단히 수고들 하셨습니다...(14:42)
매화(梅花)는 꽃이 일찍 핀다고 하여 조매(早梅), 추운 겨울에 핀다고 하여 동매(冬梅), 한매(寒梅),
눈 속에 꽃이 핀다고 하여 설중매(雪中梅), 설중군자(雪中君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매화 사랑 / 김남조
새봄의 전령 매화가 피었습니다.
매화는 첫새벽 샘물 위에
이슬 설픗 얹히듯이 고요히 피어납니다
매화는 꽃이면서 정신입니다
눈 그치면 꽃 피자 꽃 피자고
스스로 기운 돋우는 용맹한 분발입니다
가장 오래 머무는 꽃도
마음속 날마다의 매화입니다.
부서진 이정표를 정리하면서....
위촌리 渭村里
위촌리는 약 400여 년 전 조선 인조 때 경상북도 풍기군수를 지낸 위촌(渭村) 김상적(金尙積)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살았기에 그의 호를 따서 지명이 생겼다.
위촌리를 우추리라고도 하는데, 우출(牛出)이는 위촌리 마을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골아우(鯨岩)에
소가 반듯하게 누워있는 와우형(臥牛形)에서 소나 나왔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위촌리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우출이라 하다가
1916년에 골아우, 새잇말, 송두골, 항생골, 지암을 합하여 만들었다.
1955년 9월 1일에는 강릉읍이 강릉시로 승격됨에 따라 명주 군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에 따라 강릉시에 통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위촌리는 멍애재와 사실이재에서 내려온 줄기에 싸여 있고, 위촌리 가운데로는 황계와 위촌천이 흐르고 있다.
위촌리로 흐르는 황계를 따라 내려가면 마을 입구에서 수붕구를 통해 모든 물줄기가 빠져나간다.
위촌리에는 영동 고속도로 강릉 나들목이 있고, 송양 초등학교가 있다.
최근 인근에 교동택지 및 유천택지가 조성되어 준 도심의 주거생활이 편리해지고,
근교농업 및 귀촌 귀농지역으로 각광받으면서 주택 및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위촌리의 송양 초등학교는 한때 폐교위기에 처했었으나,
도심에서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어 교사를 새롭게 증축하는 등 활성화되고 있다. 도배마을로 유명하다.
위촌리에서는 설날이 되면 온 주민이 모여 촌장에게 세배를 올린다.
“설 이튿날 촌장님께 세배하러 갑니다. 마을에서 촌장님을 가마로 모셔오지요.
합동으로 세배를 올리고 마을 사람끼리도 세배를 합니다.
원래는 설날 세배를 올렸는데 일제가 막아서 이튿날로 옮긴 전통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위촌리가 고향인 소설가 이순원은 “위촌리에서는 가정마다 대동계 향약의 4대 강목이 걸려 있다”고 덧붙였다.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
학창 시절 뜻도 모르고 외웠던 문구가 우추리에는 집집마다 걸려 있단다. /중앙일보
송양초등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버스에 오른다...(15:14)
곳곳에 쌓여 있던 눈으로 마지막 겨울을 잠깐 느껴 보고...
따사로운 봄 햇살로 기분이 절로 좋아지던 걷기 좋았던 날씨...
함께한 바우님들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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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걷자님~
걷자님과 삼세판 가위바위보
약간의?반칙이 있었던 거
고거슨 비밀로 해주셔요~ㅋㅋㅋ
사진 감사드리고
수고 많으셨어요~^^
반칙이라니?...테라님의 실력으로 이겼는데...
(근데, 어케 가위바위보를 그리 못해요?..ㅋ)
양말 선물에 좋아 하는 모습을 보니 어린이 같았다는...^^
늘..
참 좋은 바우길..
오늘도 많이 받아갑니다..
걷자님 늘..
다음에 뵈면 걷자형이라고 부를께요..
서로 인사는 제대로 못했어도....
만나면 반가운 얼굴입니다.
함께 여서 즐거웠습니다....^^
걷자님의 징검다리 센스 👍
떡볶이도 맛있었어요~
늘 감사합니다~걷자님 ^^
눈이 녹아 도랑에 물이 많을까..해서 먼저 갔었는데....
마침 쓸 만 한 받침대가 있었습니다.
떡볶이 조금 밖에 못 드려 죄송스러웠고
저도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조만 간에 두 분과 식사해야겠습니다)
@걷자(서울/강릉) 감사합니다 ~^^😍
내 배 좀 않나오게 찍어 주셈 ㅋㅋㅋ 수고 많았음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시는지...
그 배가 얼마나 사랑스런 배인데...
(하긴, 배는 좀 집어 넣긴 해야겠지..ㅋㅋ)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다녀온 뒤라도 그 곳의 이야기를 알게 되니
다음에는 장소와 스토리가 함께 버무려 지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걷자님 언제 소주 한잔~~^^
바이블 후기 감사합니다.~~
어쭙잖은 후기에...바이블 후기라는 말씀...
과찬에 쑥스럽기만 합니다.
장소와 스토리가 잘 버무려져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길 ...
언제 한잔 할 기회를 ... 감사합니다 ...^^
아마도 심스테파노길이 올 해의 마지막 눈길이 될 것 같네요.
살포시 다가 온 봄 기운이 하얀 눈을 시나미 녹여내며
붉은 황토빛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 바우길에는 우리 바우님들의 희노애락이 함께 살아 숨쉬고 있었구요~
늘 변함없이 함께 하신 바우님들 모두 수고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징검다리를 잘 만들어주신 걷자님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맘 편히 개울을 건넜네요.^^
바우길에서 령관네와 많은 대화는 없지만....
그냥 얼굴만 봐도 반갑고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대들과 함께 걷고 웃을 수 있어 즐겁고 행복합니다...^^
걸었던 길인데도 매번 다른 느낌을 주네요.
설산을 못간 아쉬움을 조금은 달래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길에 깊이를 더하는 좋은 정보들 늘 감사합니다.
오래전에 백두대간을 완주하고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안 가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또 다른 계절이 궁금해져 자꾸만 오르게 되더군요
산도 그렇고 길도 그런 것 같습니다...갈 때 마다 새로운 느낌...
지산님 얼굴 봬서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