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의식과 이미지적 인식의 차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또 필자가 공부를 하면서도 궁금했던 점이다. 공부를 할때의 언어와 문자, 일상 생활을 말할 때의 언어와 문자는 겉으로 표현되는 것만 보면 차이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밥 먹어라'와 수학계산을 할 경우를 보아도 표현되는 언어와 문자는 같다. 또 주위에 아이가 말은 똑 부러지게 잘 하는데 공부는 못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같은 언어로 말하는데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뭘까? 만약 그 차이를 알수 있다면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통상 일상생활을 말할 때는 어려움이 없는데, 학습에 관해서 말을 할때 어려운 아이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받아들이는 부분이 서로 다르다면, 길러야 하는 부분도 다를 것이므로, 그 차이를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 질문이다.
질문의 답을 바로 말하면 일상적 의식과 이미지적 인식의 차이이다. 일상적 의식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 때의 의식이다. 이 의식은 인간의 세 가지 의식 중에서 깨어있을 때의 의식으로 거울에 비친 상과 같다. 상은 본질이 비친 것이나, 본질은 아니다. 반면 이미지적 인식은 본질이 이미지로 비친 것이다. 이미지이므로 본질은 아니나, 본질을 파악할 수가 있다. 현실에서 우리 모두는 본질을 파악해야 하므로 당연히 이미지적 인식을 해야 한다. 문제는 겉으로 보아서 둘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학습을 할 때 이미지적 인식을 하는가, 일상적 의식인가에서 그 차이를 알아볼 수는 있다.
여기서 여담으로 현장에서 가졌던 문제의식이다.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아이들이 교사의 말을 잘 듣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을 활용하는데, 특히 아이들에게 무섭게 하는 교사들이 가끔 있다. 그 당시 생각하기를 아이들이 학습을 할려면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은 긴장상태가 아니라 이완된 상태, 자유로운 상태가 되어야 가능하다. 물론 이렇게 분위기를 만들면 더러는 엄격한 분위기보다 학습능률이 오르지 않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는 그렇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무섭게 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학습을 하는 것처럼 보이나, 학습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아이들의 학습력이 점점 더 낮아지는 것을 주위를 통해서 경험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이유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 이유를 말하면, 무섭게 하면 아이들이 일상적 의식에서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일상적 의식에 놓이면 본질 파악이 어렵다. 조야하게 말해서 학습은 대부분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므로, 아이들이 일상적 의식에 놓이지 말고, 이미지적 인식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럴려면 아이들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 자유로운 상태, 흥미있는 상태에 놓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둘의 차이가 뭘까? 꼭 이미지적 인식을 해야 할까란 의문이 든다. 현실에서 공부는 안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이 질문은 카카오 김범수회장을 생각하면서 떠올린 질문이다. 김범수회장도 처음부터 카카오를 이렇게 만들자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카카오 아이디어가 있어서 카카오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확장되어서 범위가 커진 것이다. 여기가 중요한 지점이다. 카카오에 대한 여러가지 기반 지식이 있었고, -이것도 일상적 의식은 아니다-. 여기에 미래 사회를 예견하는 통찰력이 있었다. 미래사회를 예견하는 통찰력이 이미지적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본질에서 미래 사회가 흘러가는 상황이 파악되는 것이다. 결론은 현실 삶에서 일상적 의식으로 삶을 살면, 현재의 삶에서 발견을 하거나 창조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것이 이미지적 인식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어떻게 하면 이미지적 인식을 할 수가 있을까가 질문이 되는 것이다. 이미지적 인식은 인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작업이다. 당연히 아이들의 내부가 자랄 때 내부를 봉쇄하거나 망가뜨리지 말아야 한다. 여담으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뽑는 기준은 상대평가이다. 이 상대평가가 내부가 망가지지 않고 내부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뽑는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이 현실에서 무수히 많은 장애, 내부를 파괴하는 장애를 넘어서 자신의 내부를 보존한 아이들이 뽑히는 것이다. 사회에서 -창의력있게-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언제나 말하지만 아이들의 내부가 자랄 때 외부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독약을 먹이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다.
이미지적 인식을 하는 방법, 이미지적 인식은 에테르체가 만드는 상이다. 에테르체는 생명력으로, 인간의 몸을 움직이는 힘이다. 인간의 발달단계에서 7-14세 사이 탄생해서 자유롭게 활동한다. 7-14세 사이 아이들을 보면 그야말로 지칠줄 모르는 힘이 넘친다. 이것이 에테르체의 생명력이다. 에테르체를 움직이는 힘은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생명력으로, 이 힘을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을 가까이 하거나 동화를 통해서 자연과 친구가 되도록 해 주는 것이다.
두 번째, 에테르체는 생명력으로 혼자서는 상을 만들수가 없다. 아스트랄체의 도움으로, 아스트랄체가 자극을 하면 그것이 상으로 환원이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사물을 볼 때 흥미가 있으면 어떤 이미지, 상(거울에 비친 상과는 다른 의미이다)이 떠오른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노래를 부른 가수가 떠오르는 것과 같다. 반면 흥미가 없거나 잘 모른다면 이미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이때 흥미가 아스트랄체이다. 여기에 중요한 점이 있다. 아스트랄체가 자극을 해도 에테르체가 상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이다. 에테르체가 상을 만든 경험이 있어야 가능하다. 비약하면 이 시기 에테르체가 상을 만든 경험이 있어야 그 분야에 대해서 자신의 내부의 힘, 아이디어, 창의력이 나온다.
그러면 왜 에테르체가 이 시기에 상을 만들어야 하는가란 질문이 떠 오른다. 그 이유는, 이 시기에 만든 상은 아이들이, 이 시기에 대상과 하나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에테르체의 상은 대상의 본질을 의미한다. 대상의 본질을 파악할려면, 나와 대상이 같은 존재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자아가 성장하여 드러나면 인간은 대상과 자신을 하나로 보기 어렵다. 7-9세 사이 의식은 꿈처럼 희미한 의식으로 대상과 하나가 되어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시기 아이들이 동화를 듣고 동화 속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서 같이 슬퍼하고 기뻐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슈타이너는 이를 말하기를 이 시기에 아이들이 상을 만들어야 나중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다고 할 정도이다. 가만히 자신을 돌아보면 자신이 어려워하는 공부가 이 시기에 에테르체가 상을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도 파악할 수가 있다. 그만큼 이 시기에 만든 상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세 번째, 7-14세 사이, 이 시기에 에테르체가 상을 충분히 만들고 나면, 이어서 사춘기 무렵 아스트랄체가 탄생한다. 아스트랄체로 하여금 에테르체를 자극하도록 해야 한다. 자극이란 말은 흥미와 호기심을 주는 것이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이므로 흥미를 느끼면 에테르체가 자극된다. 결과 에테르체가 상을 만들고, 이 상이 인간의 영혼인 오성혼에 전달되어서 비로소 사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미지적 인식이 중요한 이유는 오성혼의 사고가 이미지적 인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본질 파악이 남았다. 대상의 본질은 나에게 있지 않고 대상에게 있다. -그래서 학습이 어려운 것이다-. 만약 대상의 본질이 나에게 있다면 학습을 못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에테르체(감각체 포함)가 상을 만들면 오성혼이 사고를 하고 이어서 의식혼이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게 된다. 오성혼이 사고를 해도 의식혼이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독려하고 작업 결과 열매를 얻는 존재가 '나'이다.
이것이 인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작업이다. 아이들의 내부가 자랄 때는 자아가 성장하지 못했으므로 판단력이 없다. 내부를 닫는 것인지도 모르고 외부에서 하는 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주위에서 반드시 돌봐야 한다. 이 시기 부모가 책을 가까이 하면, 아이들도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은 아이의 에테르체가 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내부 작업의 순서는 감각체와 에테르체가 만드는 상(아스트랄체의 도움)▶ 오성혼의 사고▶ 의식혼의 진리 탐구 작업▶ 열매를 얻은 자아 -이것이 배움이다-. 이를 지식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지(상)▶ 영감▶ 직관이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내부에서 이러한 과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배움이 일어나지 않으며, 자아도 열매를 얻지 못한다.
통상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기회를 만난다고 한다. 그 기회를 인간이 자신의 내부작업을 통해서 잡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범수회장은 그와 같은 일을 하는데 필자는 왜 그렇게 못하느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뭘까란 질문에서 이러한 여러가지 것을 알게 되었고, 결과는 필자의 내부작업을 알게 된 결과로 이어졌다. 반면 김범수회장은 사회에 대한 질문, 미래사회는 어떻게 될 것이다란 질문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파악하고 기술을 접목했기 때문에 지금의 카카오가 가능했다.
주위에서 일상적 의식을 강조하면, 누구라도 이미지적 의식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 현실 삶에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일상적 의식으로 유도하면, 아이들은 내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이 시기는 모방을 하는 시기가 끝나지 않았으므로, 아이가 공부를 잘 하기를 바란다면, 부모님이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 아이들이 이미지적 인식을 해야 하는 시기라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두 의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의해서 살펴야 한다.
현재 누구라도 자신이 하는 질문을 잘 살펴보고, 나는 어떤 질문을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내부작업이 일어나고 , 새로운 통찰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답을 자신의 내부에서 얻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또 보람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