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에게 꽃은 좋아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으며 꽃을 통해 많은 시가 태어났다. 이 산문집도 머위꽃을 볼 때부터 부레옥잠을 만날 때까지의 기록이다. 시인은 풀꽃문학관 빈터에 꽃을 심고 가꾸면서 생애 가운데 가장 많이 들일을 하며 산 날들이었고 그러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새롭게 깨달았다고 말한다.
“해마다 봄은 쉽게 오지 않는다. 멀리서 망설이면서 더디게 더디게 온다. 발자국 소리만 들려준다든가 숨소리만을 미세하게 들려주다가 어느 날 벼락 치듯 달려온다. 아니, 온 세상을 덮어버린다. 올해의 봄은 또 그렇게 올 것이다.”
더디게 오는 봄을 기다리던 나태주 시인은 봄꽃으로 가장 먼저 돌담 위에 핀 머위꽃을 만난다. 그리고 “올해도 내가 살아서 봄의 사람인 것이 그럴 수 없이 고맙고 기쁘다”라고 말한다. 1년을 기다려 다시 찾아온 봄꽃을 통해 살아 있음의 기쁨을 느낀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살아 있는 생명 그 자체로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또 가장 좋은 때가 아니겠는가.”
나태주 시인은 생명의 소중함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그리고 “우리 문학관에서는 흔한 풀꽃조차도 귀한 가족과 같은 존재로 대접받는 경우가 많다”, “‘문학관에 와서 시인 말을 듣지 않고서는 풀을 뽑지 마시라’는 말이고 ‘품으려고 하면 잡초도 꽃이고 베려고 하면 꽃도 잡초다’라는 말이다”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생명에는 차별이 없다. 시인은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를 깨었다며 미안해하고, 꽃이 피면 날아드는 나비와 꿀벌이 보이지 않아 안타까워한다. 꽃 피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열매를 맺지 않는 것도 기후 변화로 인해 “모든 생명체가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한다.
나태주 시인은 꽃과 나무를 보며 시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풀꽃문학관 한편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도장지, 즉 웃자란 가지를 전지가위로 잘라내며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
“시를 두고서도 쓸모를 생각해 본다. 도장지처럼 웃자라 겉으로만 멀끔하니 보기 좋고 헌칠한 시가 아니라 외모나 내용은 조금쯤 빈약할지라도 독자들의 요구를 충분히 들어주면서 독자들에게 친절과 도움을 함께 주는 그런 시가 되어야 한다. 날마다 그렇게 나는 뜨락에서 배우고 생각한다.”
또한 시인은 “나는 한때 나의 시가 민들레의 홀씨가 되어 먼 데, 아주 먼 데까지 가서 나도 모르는 사람들 가슴에 뿌리 내려 꽃을 피우는 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게 민들레의 생명력이 부럽고 고마웠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민들레가 시적인 사유와 영감을 충분히 준다면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의 문장을 들려주기도 한다.
“민들레가 웃고 있었다면/ 네가 먼저 웃고 있었던 것이다// 새들이 노래하고 있었다면/ 네가 먼저 노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아무래도 이쁘냐?/ 그렇다면 네 마음속 세상이 먼저 이뻤던 것이다.”
나태주 시인은 또한 문학관에 자라고 있는 꽃과 나무에 얽힌 사연들을 들려준다. 유년 시절 외갓집에서 살 때 올라타 놀았던 보리수나무, 세상 뜨신 어머니가 고향 집에서 기르시던 우산꽃, 구재기 시인에게 선물받은 애기붓꽃, 은사 김기평 선생님이 주신 수선화, 이해인 수녀님이 이름 지은 봄까치꽃, 친구 송수권 시인을 떠올리게 하는 등꽃 등등. 나태주 시인에게 그 꽃들은 다만 꽃이 아니라 사람이기도 하다.
나태주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꽃은 사람의 정서가 담긴 꽃이어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듯이, 이 산문집의 중심 소재도 꽃과 나무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은 우리네 삶이다. 산문집을 읽다 보면 만개한 꽃들에 둘러싸인 풀꽃문학관의 풍경이 그려지기도 하고, 오래된 주택가 골목길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며 꽃을 구경하는 나태주 시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힘들고 지친 우리의 마음을 녹여주는 따스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마음이다. 몸이 아무리 열악해지고 아프기까지 해도 마음으로 행복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꽃이 주는 선물이고 긍정의 마음이 주는 축복이다. 비록 여러 가지로 번잡하게 힘들게 살아가더라도 나에게 이렇게 날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골목길이 있고 그 골목길에서 만나는 정다운 이웃 한 사람이 있다는 건 더없이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