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출신 유태계 미국인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는 천문학적 규모의 ‘핫머니’를 주무르면서 월 스트리트 등 세계 금융가에서 최고의 명성과 부를 쌓아온 거부. 미국 등 서방의 외교정책까지 영향을 끼쳐 온 그의 면모는 ‘환투기꾼’과 ‘자선 사업가’라는 극단의 평가가 엇갈리는 야누스의 얼굴로 특징 지워진다.
소로스는 지난 1992년 영국 파운드 위기 때 단숨에 20억 달러를 벌어들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가 당시 파운드 투매와 매수를 위해 순식간에 동원한 자금은 100억 달러였다. 위험성이 높지만 고수익을 보장하는 헤지펀드를 위주로 한 그의 이런 도박은 세계 자금 흐름의 변화를 주도하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1990년대 중반 멕시코 페소화 폭락 사태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금융 불안 뒤에는 이런 엄청난 투기성 자금이 도사리고 있었다.
소로스는 파운드 위기로 떼돈을 벌고 난 3개월 뒤 영국 신문 <더 타임스>에 전례 없이 파운드 투기 때의 내역과 수익을 공개한 뒤, 내전으로 고통받는 보스니아에 50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자신이 199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설립한 영어 전용 중부유럽대학원에 2억 3000만 달러, 옛 소련 구성국 과학자 지원에 1억 달러, 러시아 인문학 교육 지원에 2억 5000만 달러를 각각 내놨다.
그는 이미 1980대 중반부터 공공 자선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소로스재단을 거의 모든 옛 사회주의권 나라에 설립하고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그는 이를 ‘신판 마셜플랜’이라고 불렀다. 그의 관심은 이밖에도 미국 중간 선거나 마약 문제, 서방 세계의 활성화 등 미치치 않는 데가 없었다. 수없는 선전 팸플릿을 제작·배포하고 텔레비전 토크쇼에도 자주 나갔다. 하지만 1992년 파운드 투기 때까지는 그는 아직 뒤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1995년 1월 스트로브 탈보트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미국 주간지 <뉴요커>와의 회견에서 “우리는 옛 공산 진영 정책에 독일·프랑스·영국과 함께 보조를 맞추려 하고 있고 거기에는 소로스도 함께하고 있다”고 밝힌 것 처럼, 그는 점차 전면으로 부상했다.
1930년 부다페스트에서 유태인 정부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소로스는 1944년 나치 점령 하에서 유태인 신분을 숨긴 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 처절한 가족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 정신적 충격으로 그의 어머니는 그 후로도 가족의 유태인 혈통을 극도로 혐오하면서 일생을 보냈고 그 자신도 그 엄청난 자금 중 한 푼도 이스라엘이나 유태인을 위한 일에 보탠 일이 없다. 그가 신학 논문을 끊임없이 써대고 칼 포퍼의 '열린 사회'를 강조하면서 보다 보편적인 이념을 통해 유태 종족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나치 하에서의 악몽에 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투기와 탈세를 기본으로 하는 그의 돈벌이와는 모순되는 이중성을 갖는다.
1952년 런던정경대학을 나와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간 소로스는 처음 주식 브로커에서 출발해 1969년 퀀텀펀드를 설립한 뒤, 당시까지만 해도 생소하던 선물거래 옵션 등 금융파생 상품을 통한 해외 투자에 눈을 돌렸다.
사람들은 소로스의 자선 행각이 그의 메시아주의적 심리 구조나 '과대망상증의 초기 증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유명해진 이상 과거처럼 얼굴 내밀지 않은 채 돈벌이는 어두운 데서 자선사업은 밝은 데서 따로 할 순 없게 됐다”는 그가 돈벌이에 따르는 부정적인 면을 희석하기 위해 내세운 새로운 치부책일지도 모른다.
소로스는 2000년 IT 버블 폭락 이후 투자 방식을 보수적인 쪽으로 바꿨다. 2002년 12월 프랑스 법정은 1988년 프랑스 투자회사인 소시에테제네랄의 내부자 주식 거래 혐의로 소로스에게 유죄를 확정했다. 이 일로 그는 220만 프랑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소로스는 판결에 항소했으나, 2006년에 프랑스 고등법원에 의해 형이 확정되었다.
21세기 들어 소로스는 자선 활동과 정치적 활동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2003년엔 미국진보센터라는 연구소의 설립 기금을 제공했고, 미국 공화당 조지 부시 대통령의 2004년 재선을 반대하는 무브온 같은 단체에 수백만 달러의 기부를 약속하기도 했다. 4년 후 그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대통령 선거운동을 열렬히 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