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아담, 이브의 신화는 桓國(한국)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의 제기이다.
여와는 태호복희의 누이이다.
그녀는 흙을 빚어 7일 만에 사람을 만들고
혼을 불어 넣었다고 하였다.
<여와>라는 이름은 <여호와>와 거의 일치한다.
女媧者鍊土造像而注之魂七日而成焉
[여와자연토조상이주지혼칠일이성언]
(여와는 흙으로 빚어 사람의 형상을 만들고
이에 혼을 불어 넣어 이레 만에 사람을 만들었다.)
성경의 근거 문헌이 동방사회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짙게 한다.
넷째, 建元稱帝(건원칭제)의 새로운 명칭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례로 <태백일사>의 고구려 본기에 실린
제왕 명칭과 연호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연대는 기존의 한국사에서 통용된 것임)
제황명 기존의 왕명 연호 연대
고주몽 성제 1대 동명왕 다물 B.C. 97 ~ 19
태조 무열제 6대 태조왕 강무 A.D. 53 ~ 146
광개토경호태열제 19대 공개토왕 영락 A.D. 391 ~ 412
장수 홍제호태열제 20대 장수왕 건흥 A.D. 413 ~ 491
문자호 태열제 21대 무자왕 명치 A.D. 492 ~ 519
평강상호 태열제 25대 평원왕 대덕 A.D. 559 ~ 590
영양무원호 태열제 26대 영양왕 홍무 A.D. 590 ~ 618
보장제 28대 보장왕 개화 A.D. 642 ~ 668
한단고기에 나오는 고구려 ~ 고려 왕조의 제황 칭호나
연호만 보아도 우리나라는 적어도 삼국시대나 고려왕조에
이르기까지 건원칭제를 단행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김부식 이후의 역대 사가들이 사대사상에 입각하여
우리의 역사를 모두 제후국의 역사로 변조하였음이 입증되고 있다.
이른바 일본의 나라현 이시까미 신사에 붕안된 七枝刀(칠지도)의
명문이 보이는 「泰和四年,태화사년」운운의 기록도 일본인들은
동진의 태화 (366~371) 4년(369년)으로 해석하거니와,
백제의 고이왕(234~286) 17년(250년) 신공여왕의 야마다이국을
쳐부수고 그 땅에 종친들을 파견하여 부여씨의 왜국을 건설하고
그 발전을 기원하는 뜻에서 이 칼을 하사한 것이니,
칼의 명문 속의 태화 4년은 백제 고이왕의 연호로서
A.D. 237년을 뜻한다.
칠지도의 명문은 다음과 같다.
「太和四年ㅇ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練ㅇ七枝刀ㅇ
[태화사년ㅇ월십육일병오정양조백련ㅇ칠지도 ㅇ
辟百兵宜供供候王ㅇㅇㅇㅇ作
피백병의공공후왕ㅇㅇㅇㅇ작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ㅇ世ㅇ 生聖晉 故爲倭王ㅇ造傳ㅇㅇ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ㅇ세ㅇ 생성진 고위왜왕ㅇ조전ㅇㅇ세]
(태화 4년(A.D.237) ㅇ월 16일 병오 백련검 칠지도를 만들다.
마땅히 모든 제후, 왕과 각 군에 공급하여 비치케 할지어다.
선세 이래 이런 칼은 없었으며 백제 ㅇ세 ㅇ께서 성진을 낳으시매
왜왕(지)을 위하여 이 칼을 만드노니 후세에 영세토록 전할지어다.)
백제가 제후국에 하사한 칼에 중국 진나라 연호를
썼으리라 생각함은 망발이다.
당시 백제 고이왕의 연호가 태화였다.
태화의 연호를 삼국사기 등에서 찾지못하자
엉뚱하게 동진의 연호 태화를 골라 내는 궁상을 보라.
오늘 우리나라의 사학은 일본의 주장ㅗ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있다.
실로 가관이 아닌가?
태백일사에 나오는 고구려의 연호들이 언제인가는
破邪顯正(파사현정)의 절대적 역활을 할 때가 있으리라 본다.
가령 융무, 건흥, 명치의 명문이 들어 있는
출토품이 나온다는 것을 가상해 보라.
융무를 명나라의 융무(1645년)라고 하며,
건흥이 성한의 건흥(304~305)이라 하고,
명치를 일본의 명치유신시대라고 망발하는 자
없으리라고 단정 할 수 있겠는가?
백제가 왕후장상을 거느린 건원칭제의 나라이기에
왜왕에게 칠지도까지 하사했거늘,
고이왕이 동진의 태화 연호를 차용해서
썼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적어도 신라 무열왕의 태화(647~650)라는 연호로
비정해 보는 자기주장이라도 있어야 마땅치 않을까?
식민사학의 거두인 두계 이병도 박사도
이 칠지도의 「태화 4년」 만은 백제 연호일 것이라 했다.
그래서 3세기 중엽의 백제가 많은 제후를 거느린
일대 제국이었다는 사실에 승복했다.
생각하면 기막히는 일이다.
스스로를 과장하는 정도가 지나쳐서
지탄을 받는 일이 있어도 자학이나 자폄의 정도가
지나치다는 말은 좀 치나쳐서 상상키조차 어려운 현상인 것이다.
<한단고기>에 다행히 고구려 고려조의 견원칭제 사실을
숨김없이 기술하여 우리에게 용기를 불러 일으켜 주었다.
기왕에 신라 백제의 견원칭제 진상도 밝혔더라면,
그래서 저 칠지도의 태화 4년의 수수께끼도
풀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아뭏든 <한단고기>의 이런 기술 태도는 삼국사기 이래의
사대 사서 때문에 생겨난 천고의 한을 풀어 주는
한가닥의 청량제 구실을 하는 것이다.
첫댓글 역시 대한민국~~.♡
감사합니다.
냥이 많이 컷네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