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목 (마티아) 어르신을 추모하며
개암 김동출(프란치스코)
우리 성당에서 가장 연로하신 97세(1929년생) 진수목(陳洙沐) 마티아 어르신께서 성모승천대축일을 하루 앞둔 8월 14일 새벽, 입원했던 병원에서 선종하셨다. 이 소식은 따님 로즈마리 자매님이 인터넷 전화로 알려왔다.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자매님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카카오톡을 열어 가장 먼저 연락을 주었다. 마티아 어르신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늘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주일미사에 빠짐없이 참여하셨다. 교우들은 어르신께서 건강을 잘 지키시어 백수를 누리시리라 기대했었다.
고인은 거제도 장승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마산으로 이주하셨다고 들었다. 화자와 고향이 같아서인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남다른 정감이 깃들어 있었다. 주일이면 성당 입구에 서서 어르신을 뵙기를 은근히 기다리곤 했다. 진 마티아 어르신의 존재를 처음 깊이 알게 된 것은 그분의 선행을 취재하던 때였다.
어르신께서는 본당의 오랜 염원이었던 엘리베이터 설치 사업을 위하여 큰 금액을 아낌없이 내어놓으셨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성당 앞뒤에 놓인 낡은 구형 에어컨이 지나친 전력 소모로 전기 요금이 과중해져 신부님께서 깊은 근심에 잠겨 계신다는 소식을 접하시고, 망설임 없이 전기 효율이 뛰어난 대형 스탠드형 에어컨 두 대의 구매 비용을 흔쾌히 기부하셨다. 이 모든 행보는 본당 공동체를 향한 어르신의 넓은 마음과 굳은 신심을 드러내는 증거로 남았다. 주임 신부님께서는 이 아름다운 선행을 교중미사 중에 알리셨고, 온 교우들이 그 뜻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 나아가 주위 분들은 고인의 숨은 선행이 이뿐만이 아니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께서는 주일미사 때마다 일정한 자리를 정해 앉으시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출입문과 가까운 우측 열을 선호하셨다. 그 자리는 늘 소박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풍겼고, 자연스레 어르신의 발걸음을 이끌곤 했다. 그런데 지난 6월 무렵에야, 그 주변에 요셉회 회원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 속에 공동체의 따뜻한 연결이 숨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여느 날에는 평소와 달리 마티아 어르신께서 따님으로 짐작되는 여성을 대동하고 주일미사에 참석하셨다. 어르신을 닮아 인상이 고운 50대 중반으로 짐작되는 첫째 따님 진 로즈마리 자매였다. 성당에서 홍보를 맡고 있는 화자는 그날도 카메라를 지니고 있었기에, 미사 시작 직전 주변 교우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두 부녀에게 초점을 맞추어 소중한 순간을 기념사진으로 담아 드렸다.
그러나 실내에서 촬영한 사진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미사가 끝난 후 따님과 어르신께 양해를 구하고, ‘엘리베이터 길’을 따라 본당의 유일한 포토 존인 성모 동산으로 모시고 갔다. 성모상을 배경으로 다시 한번 아버지와 따님의 모습을 담았으며, 촬영을 마친 뒤에는 그 사진을 곧바로 카카오톡으로 보내드려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따님께서는 친절하게도 “아이고, 감사합니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좋은 사진을 찍어주셔서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라는 답변을 주셔서 흐뭇하였다. 나아가 주제넘게도 그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만들어 드리면 어떨지 싶어 따님의 뜻을 여쭈었더니, “아, 그러셨어요. 아버지께서 몇 년 전에 하나 준비해 놓으신 게 있는데 제가 내려가면 비교해 보고 가족들과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데까지 신경을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답신이 왔다. 어쩌면 주제넘은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직감적으로, 고인을 성당에서 뵐 날이 그리 머지않았다는 예감이 스쳤다.
그 후 어느 주일미사에는 둘째 따님으로 보이는 분과 함께 참석하셨다. 그 순간, 예전에 큰따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아내를 4년 전에 먼저 떠나보내신 뒤 홀로 지내시는 아버지를 위해 두 따님이 번갈아 내려와 모시고 있다는 사정을 전해 들었던 기억이었다.
1929년 거제도 장승포에서 태어나신 고인께서는, 1944년 장승포초등학교(18회)를 졸업한 뒤 온 가족과 함께 마산으로 터전을 옮기셨다고 한다. 1949년 마산 공립상업학교(24회)를 졸업하기까지, 고인은 푸른 잔디 위를 누비는 축구선수로서 남다른 달란트를 빛내었다. 해방의 혼란 속에서도 ‘한국전력’에 입사하여 한국 최초의 실업팀인 한국전력 축구단의 초석을 놓으셨고, 국가대표 상비군으로서 빛나는 열정을 바치셨다.
고인의 발자취는 단순한 경기를 넘어, 시대를 밝히는 희망의 에너지가 되었다. 선수 생활을 마친 후에도 경남축구협회 전무이사 겸 감독, 마산시 체육회 사무국장으로 봉사하시며 지역 체육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한전 마산지점 근무 시절에는 노조 지부장으로서 동료들에게 스포츠의 기쁨을 나누고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가꾸셨다. 한평생 겸손한 원로로서 후학들을 다정히 품어주신 모습은 참된 스승이자 이웃 사랑의 실천이었다.
고인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무엇보다 깊은 신앙의 영성이었다. 3남 2녀의 자녀가 태어날 때마다 강보에 싸인 핏덩이 어린 생명을 제일 먼저 주님의 제단 앞으로 품고 가 유아세례를 받게 하셨다. 주님의 은총 아래 온 가족이 하나의 신앙으로 묶인 복된 성가정을 이루셨으니, 고인께서 남기신 가장 숭고한 유산은 바로 이 깊고 순전한 믿음의 나무일 것이다.
고인께서는 한국 실업 축구 발전의 산증인이셨다. 그러기에 마티아 어르신의 살아오신 경력을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듣지 못한 것이 회한으로 남는다. 만약에 고인이 건강하실 때 편안한 자리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을 기회가 화자에게 주어졌다면, 유족들에게 소중한 기념이 될 평전 한 권이 세상에 남았을 것이다.
특히 한국전력에 입사하여 실업 축구선수로 활약하고, 노동조합 위원장으로서 시대의 굴곡을 몸소 겪어낸 경험은 귀중한 역사적 자산이었지 않은가? 강가의 모래알 같은 그 수많았던 이야기가 후대에 전해지지 못한 채 묻혀버린 것은, 마치 도서관 하나가 무너져 버린 듯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분의 삶이 남긴 울림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으며,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역사의 한 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르신과의 만남은 비록 짧은 기간에 그쳤기에 고인의 삶 전체를 온전히 조망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뵈었던 어르신은 정이 깊으시고 참으로 선하신 분이셨다. 따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해 드린 얼마 뒤, 교중미사 시작 전 불쑥 하얀 봉투 하나를 제게 건네주셨다. 봉투 앞면에는 단아한 필체로 “김동출 프란치스코 형제님”이라 쓰여 있었고, 뒷면에는 한자로 본인의 성함 ‘진수목(陳洙沐) 마티아’가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귀가하여 봉투를 열어보니,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만 원권의 금일봉이 곱게 들어 있었다. 일흔두 살인 제가 백수를 바라보시는 연로한 어르신으로부터 용돈을 받게 되다니—깊은 감사와 함께 적잖은 부담스러움이 교차하였다.
이 놀라운 사실을 쁘레시디움 단원들에게 말씀드리니, 어르신의 깊은 뜻이 담긴 것이니만큼 잘 간직하였다가 뜻있게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고인의 마지막 곁을 끝까지 지키며 정성을 다해 모신 분은 로즈마리 큰따님이셨다. 지난 8월 초, 고인께서 폐렴으로 인한 고열로 인근 병원에 입원하시어 집중 치료를 받으셨으나 안타깝게도 경과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입원 일주일째 되던 날, 따님께서는 정성스레 아버님의 면도를 해드리고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혀 드리며 따뜻한 온기를 나누셨다. 따님은 밤이 깊어 잠자리를 편안히 보살펴 드린 뒤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그날 새벽 아쉬운 이별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고인께서는 간병인에게 혼자 계시겠다는 뜻을 전하신 후, 홀로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치시고 마치 단정히 기도하시듯 평온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자식에게 마지막까지 짐을 주지 않고 평안히 길을 떠나고자 하셨던 고인의 깊은 뜻이자, 마지막 순간까지 품위를 잃지 않으신 정갈한 이별이었다.
고인의 유족 현황을 알아보고 고인께서는 이 땅에서 참으로 성가족의 기적을 이루고 가셨음을 알게되었다. 다섯 남매 모두가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세례를 받았고, 두 사위 중 한 분 역시 신앙인이었으며, 아홉 명의 손자 또한 모두 할아버지의 믿음을 이어받았다. 비록 연로하신 어르신께서 장남 베드로와 삼남 바오로, 그리고 사랑하는 부인 ‘수산나’를 4년 전에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셨지만, 이제는 부인과 먼저 간 아들들과 천상에서 기쁘게 상면하시어 영원한 빛과 평화 안에 머무르게 되셨으리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시작에 앞서 주임 신부님께서는, 우리 본당의 가장 연로하신 97세 진수목 마티아 어르신께서 성모 승천 대축일을 하루 앞두고 하늘의 부름을 받으셨음을 온 교우에게 알리셨다. 성모님의 영광스러운 승천을 맞이하는 이 거룩한 시기에, 주님께서 그 영혼을 성모님의 손에 맡기시어 천상에서 영원한 빛과 복락을 누리게 하시기를 온 교우와 함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본당에서는 성모 승천 대축일 다음 날(8월 16일) 아침 8시, 유족과 많은 교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故) 진수목 마티아 어르신의 장례미사를 봉헌하며 하느님 품으로 보내드렸습니다. 저는 33번의 타종을 시작으로 장례미사의 전 과정을 영상에 담으며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하였습니다.
2026-08-16
첫댓글 이생에서는 눈물을 흐르게 하지만,
본향으로 돌아가는 일이니 미소로 환송합니다.
그러나 안식을 기도하며 유가족의 슬픔을 함께 합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