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2.5모작 네 번째 이야기 - 서초동 법조인생의 이모저모
만물이 약동하는 4월 중순이 되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는 영국시인 T.S. 엘리어트의 ‘황무지’ 시(詩)의 첫 구절을 떠올리며, ‘나의 인생2.5모작’ 네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항상 청춘일 줄로만 생각했던 제가, 1979년 사법시험 합격으로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어느새 43년째 되었습니다. 언젠가 변호사 생활을 마치고 자연인으로 지낼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다고 당장 생소한 일을 하기는 어렵고, 그저 오랫동안 쌓아온 지재권 전문 법조인의 경험을 토대로, 인생 제3막을 개막하기 전까지 자유롭게 후배들에게 뭔가 창의적으로 되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어정쩡한 인생2.5모작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2006년 2월 공직 퇴임후 모교법대 교수, 역삼동 특허법인을 거쳐, 서초대로변 신축빌딩에 조그만 법무법인을 차렸다가 능력부족으로 1년 만에 문을 닫은 다음, 법원정문 앞 정곡빌딩으로 이전한지도 5년이 넘었습니다. 새 봄 들어와서 이곳 법조타운에도 매화, 산수유부터 시작해서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까지 온갖 꽃들이 만발해 있습니다. 저는 매일 출근해서 반복되는 변호사 일상을 보내지만, 사무실이 법원 담벽에 붙어있는 덕택에, 틈날 때마다 구내 정원과 법조타운을 둘러싼 서리풀 공원을 산책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곳 법원정문 앞으로 이사한 다음부터, 매주 수요일 오전 사무실 화분에 물주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사할 때 선물 받은 화분을 버리기 아까워서 시작했던 일입니다. 5년 내내 법원 앞 시위대의 시끄러운 마이크 소리에도 불구하고, 매주 한번 사무실 화분에 물주고, 수시로 뒷동산(서리풀 공원)에 올라가는 습관이 들면서부터 웬만한 소음은 무심하게 넘기고, 마음이 예전보다 고요해진 건 사실입니다.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을지 몰라도, 제 인생에 있어서 약간의 발전과 성숙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저 감사한 아침입니다.
돌이켜 보면 서초동과 제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88 서울올림픽 무렵이니까, 벌써 35년이나 흘렀습니다. 당시 법무부 평검사로 재직하던 중, 무주택 공무원 주택조합에 가입해서 서초동 경부고속도로 변에 위치한 조합아파트를 처음 분양받았습니다. 한참 법원·검찰 종합청사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던 서초동 일대는 무허가 판자촌이 가득했고, 서초경찰서 자리에는 약수터가 있었고, 반포대로 향나무 부근에는 꽃 도매상들이 줄지어 모여서, 약간 시골스러우면서도 어수선한 풍경이었습니다.
1989년 9월 드디어 서초동 검찰청사가 준공되어 서소문에서 이전할 때, 저는 지적재산권 전담부서로 신설된 형사6부 검사로 발령되어 서초동 시대의 개막에 동참했습니다. 이어서 1995년도에 대검찰청 청사까지 서초동으로 옮긴 뒤, 저는 대검 전산담당관, 기획과장을 거쳐 다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 초대 컴퓨터수사부장, 서울고등검찰청 등을 전전하면서 서초동 법조타운을 맴돌며 근무했고, 공직 퇴임 후에도 여전히 서초동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터줏대감처럼 지내고 있으니까,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법조인 성향에 비추어 보면 유달리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인 게 분명합니다.
이처럼 남들보다 삶의 혜택을 많이 받은 만큼, 고난이나 역경을 덜 겪었다는 측면에서는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것이라는 지적을 받아도 달리 변명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도 남에게 꺼내기 어려운 고난과 역경이 없지 않았고, 공직 퇴임 전후해서 스스로 선택한 결과에 따른 시행착오를 극복하느라, 지금까지 ‘사서 고생’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공직 퇴임 직전에 변호사 개업 결심을 하고나서, 아내와 함께 우면산 소망탑 등산을 하던 중, 우연 같은 필연으로 마주친 선배 교수(당시 경희법대 이영준 학장님) 댁에 들러서 와인을 마시면서 의기투합해서, 모교 법대교수로 전직하겠다고 갑자기 방향을 바꾼 일이 먼저 떠오릅니다. 공무원 급여보다 3분의2로 줄어드는 대학교수 봉급문제를 고민하다가, 당시만 해도 법대교수의 변호사 겸직이 허용되던 시절이라, 부업으로 약간만 더 벌면 가능하겠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공무원연금을 일시금으로 타서 서초동에 조그만 사무실을 장만해 두고, 노후생계를 도모하려던 계획이 ‘사서 고생’의 시작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변호사로서 활동반경이 떨어지는 만큼, 연금 없는 노후생활의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직도 변호사 현업 활동에 매달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저는 집착과 고집이 가져다주는 폐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폐단은 집착과 고집하는 사람이 더 잘 알게 마련입니다.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들은 그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고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제게 변호사라는 미련과 집착이 남아 있는 건, 꿈과 이상(理想)에 매달려온 저 자신의 보람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마음의 갈망 때문입니다. 스스로 자주 “변론은 인간존엄을 위한 종합예술이다. 진실에 충실한 변론이야말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나간다는 지름길이다.”라고 다짐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으로 인해 소송의 근본목적을 잊고, 돈 문제만 집착하는 당사자를 보면, 동질성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삶’은 누구에게나 고난과 역경도 허용하고, 전쟁과 불행조차 허용하고 있으며, 70억 인구 하나하나가 다양하듯이 어떤 규정과 정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고난과 역경으로부터 효율적으로 도망쳐, 마음의 평화와 행복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지금의 나’는 단지 살아지게끔 하는 ‘참나’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모로 보나 과거에 연연하고 현재에 집착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비정상적입니다. 누군가 상실을 겪고, 고통을 겪을 수 있는 것도 모두 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선택한다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고통과 상실을 알고서는 선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어떤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이해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잠을 잘 때 꿈을 꾸고, 그 꿈속에는 ‘나는 누구이다’가 주인공으로서 반드시 등장합니다. 그런데 꿈이 깨어져 버리고 잠에서 깨어나면, 꿈속의 나는 사라져 버립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말입니다.
누구나 ‘지금의 나’가 자기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지금의 자기는 무의식 상태에서 잠을 자고 있고,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이 깨어지면 그에 따라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따라서 집착은 어떤 명분이라 할지라도 비정상적입니다. 따라서 삶에 집착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이에 저의 인생2.5모작에도 위기가 닥쳤습니다. 사무실 유지에 필요한 임대료, 운영비, 대출이자, 세금납부에 차질이 생긴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법률상담 문의가 갑자기 줄어들었습니다. 대면상담이 어려워진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저는 새로운 대책을 찾아 나섰습니다. 고객과의 접점을 확보하기 위해 로톡과 네이버 엑스퍼트 온라인 법률플랫폼에 가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작권, 특허, 영업비밀 분야의 법률지식과 상담경험을 바탕으로, 몇 달 동안 재미있게 상담접수를 받았습니다. 주로 젊은 세대가 상담요청을 하고, 상담수익은 매우 미미했지만, 실제 겪는 법률문제를 간결하게 상담해 주고, 의뢰인들이 보내주는 상담후기를 읽으면서, 경력 변호사로서 회춘(回春)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나마 변협 집행부의 탈퇴권유로 인해 지금은 위축되고 말았지만, 저수지에 돌멩이를 던지는 마음으로, 인생2.5모작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볼 작정입니다. (온라인 법률플랫폼 문제는 민감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아서,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추가의견을 드리겠습니다.)
성현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삶’에 대한 최종적 이해는 바로 그것이 되는 것입니다. 즉 살아간다고 여기고 있는 ‘삶’의 주인이 되는 것, 즉 ‘삶’의 주인만이 참다운 ‘삶’이라 할 수 있으며, ‘삶’의 주인으로서의 ‘삶’만이 ‘삶’의 유일한 가치이자 의미라는 것입니다.
흔히 ‘사랑’과 거룩함이 깃든 마음에는 두려움과 질병이 들어올 수가 없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랑과 거룩함이 깃든 마음은 어떤 편견도, 어떤 조건도 상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 세상이 진리의 세계이지만, 어떤 편견도 어떤 조건도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드러날 수가 있으며, 무엇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결국 사랑과 완벽한 거룩함이라는 것은 결국 자유와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는 '나'에 대한 그릇된 동일시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보자는 의미입니다. 즉 '지금의 나'만을 '나'라고 여기는 그 고집과 아집을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받아들이고 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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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매달 15일 게재되는 네번째 칼럼 원고입니다. 아직 2,3일 여유가 있어서, 문맥이나 내용에 고칠 부분이 발견되면, 지적해 주셔도 됩니다.
이 글에 감히 지적할 능력도 안되니 무슨 훈수를 두겠어요..검사라는 공무원으로, 법대 교수, 변호사등..그저 43년간의 법조 외길 인생을 살아온 사랑하는 우리 정진섭 동기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울 뿐이지요 허나 현실이 어렵다니 안타깝네요 나와는 가까이 있으니 일간 보도록 해요~ 진섭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