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빛마을에서
간밤은 40년 넘게 만나온 대학 동기들과 감빛마을에서 함께 보냈다. 부부 동반으로 의령의 알려진 고깃집에서 한우를 구워 잔을 채워 권하며 저녁을 먹었다. 식후 네온 빛이 화려한 남천 구름다리를 거닐고 감빛마을 숙소로 이동해 밤참을 들면서 2부 행사가 이어졌다. 올여름 퇴직하는 친구를 격려 축하하고 젊은 날로 돌아간 학창 시절과 초년 교단 추억담을 나누다가 잠에 들었다.
여섯 가족 부부 내외들이 묵은 감빛마을 숙소는 내 고향의 폐교된 초등학교 총동창회 본부를 겸했다. 이른 새벽에 잠을 깬 나는 바깥으로 나갔더니 깜깜한 밤하늘에는 스무하루 하현달이 중천에 걸려 있고 뭇별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시골이라 밤하늘 별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고 기온은 열대야 기준선을 밑돌아 서늘하게 느껴졌다. 날이 밝아오기 이전 여명에 들녘 농로를 걸었다.
간밤에 잠시 짬을 내어 방문했던 고향 집의 큰형님 내외를 다시 뵙고 텃밭의 기지와 오이를 가득 따 봉지에 채워 숙소로 돌아왔다. 고향 흙내음이 느껴지는 채소는 울산의 한 친구와 나누어 배낭을 정리해 놓았다. 숙소의 침구를 정리하고 세면과 샤워를 했다. 가례면 본동으로 농가 주택을 지어 귀촌 귀농한 친구네가 준비해둔 맛깔스러운 추어탕과 밑반찬으로 아침 식사를 마쳤다.
본디 여덟 가족이 만나야 하는데 대구 친구는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 참가로 빠졌고, 통영 친구는 간밤 이튿날 일정을 고려해 자택으로 먼저 돌아갔다. 남은 여섯 가족 가운데 나는 혼자였고 울산 한 동기는 지난봄 불치의 병마와 투병하던 아내가 생을 먼저 하직해 홀로 왔더랬다. 아침 식사를 마친 친구들은 우리 모임은 으레 그랬듯이 이튿날 오전은 함께 보낼 일정이 기다렸다.
전날 저녁을 먹은 식당 근처 들녘으로 이동해 귀촌한 친구 농장을 둘러봤다. 현지 농부가 벼농사를 짓던 농지를 돌려받은 친구는 올봄부터 손수 밭작물을 가꾸었었다. 여름 채소들은 거의 끝물이고 가을 채소가 들어갈 차례였다. 고추와 콩 농사는 잘 지어 놓았고 익어가는 참깨는 수확하는 중이었다. 귀촌 친구의 농장을 둘러보고 운암 상촌의 수형이 아름다운 자송령을 구경했다.
이어진 여정은 자굴산과 인접한 한우산 정상을 자동찻길로 올라 여름 산마루 풍광을 굽어보고 궁유 벽계관광단지로 나갈 참이었다. 갑을지구 골짜기로 들어가니 한우산 산등선에는 풍력 발전기 거대한 날개가 돌고 있었다. 지방도로를 따라 자굴산 허리를 돌아간 한우산 들머리는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라 더 이상 오를 수 없어 한우산을 넘어 궁류로 가려던 동선은 변경이 불가피했다.
면 소재지로 나가 진주 대구 간 국도를 따라가다 쌍백에서 한태령을 넘으니 의령 궁류 평촌이 나왔다. 거기는 40년 청와대를 관할하던 경찰서에서 문책 인사로 쫓겨온 순경이 일으킨 괴기스러운 총기 사고가 발생했던 곳으로 하룻밤 새 지역민 60여 명이 희생되었다. 일정을 같이 하는 한 동기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봄밤 첫 부임지에서 보리밭이랑 몸을 낮추어 살아남았다고 했다.
우리는 의령 8경 드는 붕황대로 가서 일붕사를 둘러봤다. 봉황대는 깎아지른 듯 아주 높다란 바위 절벽에 기화요초가 자라는 명소였다. 시간이 부족하고 날씨도 무더위 탐방 데크를 따라 오르지 못하고 인근의 일붕사 경내로 들어섰다. 암반 동굴의 규모가 커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법당에 안치된 석불상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일붕사에서 나와 남은 일정은 이병철 생가 방문이었다.
삼성 그룹을 일으켜 세계적 기업 반열에 올린 호암 이병철은 의령이 낳은 걸출한 인물이다. 호암이 태어난 정곡면 중교리를 생가를 찾으니 마침 월요일이라 여느 박물관처럼 대문이 닫혀 개방되지 않는 날이었다. 담장 너머 덩그런 기와집을 까치발로 바라보고는 발길은 읍내장터로 향했다. 일정을 함께 보낸 이들은 바깥으로 꽤 알려진 메밀국수를 먹고 한 친구는 망개떡을 사 돌렸다. 23.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