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곁에 몸을 누이고 주위를 돌아본다
평원은 한 마리 야수를 키웠지만
먼 하늘 마른번개처럼 눈빛은 덧없다
어깨를 짓누르던 제왕을 버리고 나니
노여운 생애가 한낮의 꿈만 같다
갈기에 나비가 노는 이 평화의 낯설음
태양의 주위를 도는 독수리 한 마리
이제 나를 드릴 고귀한 시간이 왔다
짓무른 발톱사이로 벌써 개미가 찾아왔다
-『부산일보/오늘을 여는 詩』2024.10.01. -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죽음 곁에 몸을 누이고’ 살아가고 있다. 죽음이 풍기는 향기에 젖어 죽음이 드리우는 그늘 속에서 팔랑대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인해 의식을 갖고 죽음을 들여다보면, 죽음 역시 또렷한 의식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느낀다. 섬칫 두려운 눈길을 감지하게 되었을 때, ‘노여운 생애가 한낮의 꿈만 같’다고 한들 어찌 지나친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으랴!
그런 점에서 죽음을 담백하게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과의 응시 속에서 ‘이제 나를 드릴 고귀한 시간이 왔’음을 알아채고 죽음에 목숨을 순순히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생의 완성이 어디에 있고 무엇으로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깨우친 존재들이다. 하여 우리의 삶이 ‘먼 하늘 마른번개처럼 덧없’는 것임을 자각하는 일이야말로 삶과 죽음의 양면에 걸쳐 어떤 장애에도 걸림 없이 지고한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방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