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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평해전 전사자 추모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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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 • 자유게시판 스크랩 취재여행기
바람꽃 추천 0 조회 103 07.11.09 15:49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장편소설 “서해해전” 후속작품으로 1975년 4월 사이공 함락되던 때 있었던 이야기를 택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당시 주월 대한민국 대사관 공사로 근무하다가 탈출하지 못하고 체포된 예비역 준장 ‘이대용’공사와 그를 체포했던 ‘즈엉 징 특’이다.

이대용 공사는 당시 교민 철수본부장으로서 대한민국해군 LST편으로 교민들을 철수시켰으나 미처 철수하지 못한 한국인 170여명을 지켜내다 대사관 직원 7명과 함께 사이공에 억류된다.

이때 그에게 체포영장을 들고 왔었던 자가 ‘즈엉 징 특’이다.

이후 서병호 영사, 안희완 영사와 함께 사이공 치와 형무소에서 5년 동안 옥고를 치르게 된다.

이때 그를 심문했던 자 중 한명이 당시 통일전선부 3호청사요원로서 훗날 판문점에서 “서울불바다”를 거론하게 되는 박영수다.

한편 세월이 흘러 ‘즈엉 징 특’은 2001년 주한 베트남 대사로 부임하게 되고 이대용과 즈엉 징 특의 운명적인 재회가 서울 신라호텔에서 이루어진다.

서먹했던 두 사람, 그러나 두 사람은 과거의 앙금을 털어내고 진정한 벗이 된다.

Ironical한 두 사람의 악연이 대한민국과 베트남의 경제협력에 초석의 계기가 된다.

나는 과거의 적이 현재의 친구가 된 전형적인 표본이 되는 이 이야기를 소설로 남기고 싶어 베트남을 방문하였다.

‘즈엉 징 특’과 3차례에 걸쳐서 인터뷰를 했고 중간에 틈틈이 전쟁박물관을 비롯해서 자료를 찾아다녔다.

짧은 일정의 취재기행(紀行)을 사진으로 남긴다. 

 

사진설명 

1

다음날 즈엉 징 특을 만났다. 그가 반갑게 대해주어 고마웠다. 그는 옛 기억이지만 생생하다며 진솔하게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사진은 그와 인터뷰를 나누는 모습  

 

 

베트남교통경찰은 외국관광객들과는 사진을 잘 안 찍는 모양이다. 몇 명의 경찰에게 거절당하고 나서 생각을 바꾸었다. 다른 경찰에게 다가가 “당신이 참 멋있다.”라는 말로 환심을 사서 겨우 찍은 사진이다.   

 

 

3

월남전 당시 월맹군이 격추시킨 미국 비행기 잔해들이다. 알뜰하게 모아서 전쟁박물관에 조형물로 전시해두었다. 조형물 앞에 있는 사진(필자 왼쪽)은 해안가에 격추된 미군 전투기 잔해를 끌어내는 여전사의 사진으로서 베트남전쟁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여기는 대표적인 사진이다. 

 

4

월남전 때 월맹(베트남)이 노획한 미국 비행기들을 전시한 사진이다.

 

 

5

월남전 마지막 날 대통령궁의 철문을 부수고 진입한 월맹군 탱크이다. 

탱크 옆에는

“(T.54B TANK, No 843) From company 4, battalion 1, bridge 203 of the armored forces, and commanded by lieutenant but quang than, company commander who lead a thrust of army corps 2 in the attack and seizure of the saigon presidential palace, April 30 1975“라는 안내문이 있는데

이는 “1975년 4월30일 보병 1개 대대와 203 기갑부대가 사이공을 입성할 때 대통령궁을 점령한 탱크”라는 설명이다.

(소설내용 일부 : 11시가 넘어 선 시각 2군단 전차대가 퉁낫가(街)를 내려왔다. 전차대가 사이공시내에서 한 일이라고는 천주교성당을 지날 때 선두가 공포 한 방 쏜 것뿐이었다. 선두 전차가 독립궁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파하여 철문을 넘어뜨렸다. 843라는 흰 글씨가 뚜렷한 전차가 독립궁 돌계단 밑에 정지했다. 전차병은 ‘티엔 비 사이공’이라는 글씨를 쓴 띠를 철모에 두르고 있었다.)  

 

1975년 4월말의 월맹군(베트남) 사이공 진격을 나타낸 지도이다.

(소설내용 : 미국대사관에 갔던 정순영이 자정 가까운 시각에 돌아왔다. 그는 월맹군 총사령관 반 띠엔 둥 대장이 사이공과 붕타우를 연결하는 15번 도로와 사이공과 바다로 연결되는 도로를 차단시켜놓고 동, 남동, 서, 북서, 남 등 5방면에서 공격준비를 해두었고 벤깥(ben cat)에 마련한 전방지휘소에서 레 툭토와 팜 흥과 함께 사이공입성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했다.)

 

7

무술 훈련하는 베트남군인들 모습이다. 그들의 훈련모습을 보면서 그 옛날, 저들의 간담을 써늘하게 했었던 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용사들 모습이 떠올랐다. 출입하는 것부터 힘들었지만 그들의 훈련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8

오픈카페에서 망중한을 보내는 필자.

 

 

9

호치민광장이다.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고 조용했다.

 

10

하노이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West lake의 석양이다.

여행 다니다 매번 느끼는 일인데 석양을 만나면 이상하게 집 생각이 많이 난다.

 

11

West lake를 배경으로 한 선상 레스토랑(POTOMAC Restaurant)에서 와인을 곁들인 Sea Food로 모처럼 호사스러운 식사를 해 보았다. 음악도 마음에 들고 분위기가 좋은 곳이었다.

“이렇게 로맨틱한 곳에 여자 친구는 어디 두고 혼자 왔느냐?”

자신을 ‘수퍼바이저’라고 소개한 종업원이 던진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라서 아쉽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여서 더욱 우울했다.

“그러게? 나도 왜 혼자인지 모르겠다.”

종업원이 웃는다. 그러면서 여종업원과 사진 찍기를 권했다. 상술이겠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옆 좌석에 있는 젊은 백인 한 쌍이 너무도 부러워 자청해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독일에서 왔다는 그들은 내년 초에 결혼할 예정이라며 여행 중이라고 했다.

정말이지 부럽도록 샘이 났다.

 

12

다음날 즈엉 징 특과 인터뷰를 마치고 “VAN MIEU”라는 곳에 가보았다. 공자를 모신 사당이라고 했다.

사진은 사당 내에서 고등학생들이 콘테스트를 하는 모습이다. 웃고, 떠들고 소리 지르는 모습이 사회주의라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고 매우 자유분방해서 좋았다.

하지만 장소가 우리나라의 성균관 같은 곳인지라 엄숙하지 못해 당혹스러웠다.

 

13

가지에서 뿌리가 뻗쳐 나오는 나무이다. 뿌리들이 가지마다에서 삐쳐 나와 공중에 매달려있는 것도 많았다.

생김새가 참으로 기괴하여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14

다리를 쉬게 하느라 벤치에 앉았다.

한 쪽에서 필자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몰려다녔다.

단체관광 온 한국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연인, 친구 혹은 가족들과 다니는 외국관광객들에 비해 색다른 모습이다.

“단체관광 오셨습니까?”

내가 한 남자에게 물어본 말이다. 남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때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남자의 손을 끌어당기며 나를 힐끗 쳐다본다. 

이상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지 말고 빨리 가자는 눈치 같았다. 졸지에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곳곳에서 한국말로 ‘00 여행사!’ ‘xx 여행사’라는 소리가 사당 안을 맴돈다.

사람들은 소리 나는 곳으로 웅성웅성 모였다 이내 사라진다. 그들이 사당 안으로 들어선지 불과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들이 짧은 시간에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15

500년 되었다는 조그마한 사당이다.

물 위에 지어진 모습이 이채로워 그냥 지나지 못했다. 

폴란드에서 왔다는 부부가 딸 둘을 데리고 있었다.

나는 무척 귀엽게 생긴 8살 된 작은 아이에게 작은 선물을 했다. 이름을 말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세월 탓인가 보다.) 선물을 받은 탓이겠지만 그 아이가 나를 무척 좋아했다. 아이가 좋아하니 부모도 덩달아 좋아한다.

그들과 보낸 시간이 아주 짧았지만 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16

베트남이 대게 그러하듯이 하노이도 오토바이소리로 아침을 열고 오토바이소리가 멈추면 하루가 저문다.

자동차 시내주행속도는 시속 40㎞를 넘지 못한다. 오토바이 때문이다. 

필자의 눈에는 그들의 오토바이 주행이 마치 곡예를 하는 듯 보였다.

자동차경적, 오토바이소음 등으로 귀가 피곤하고 매연과 먼지 등으로 목구멍이 늘 불편하다.

이 때문에 하노이 시민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닌다.

 

 

17

예쁘다.

필자는 이 꽃의 이름을 모른다.

 

 

18

베트남 전통악기 연주하는 사진이다.

이 연주를 듣느라 시간을 솔찬히 보냈지만 아깝지 않았다.

 

 

19

연주가 끝난 후 한 악사에게 졸라서 같이 찍었다.

 

 

 

취재후기  

 

하노이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늦은 밤이었다.

비싸기는 해도 초행길에는 택시가 최고 아닌가,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긴 했는데 웬걸? 시동이 안 걸려 기사가 주변에 있는 동료기사들에게 밀어달란다. 

시동이 걸리긴 했어도 호텔까지 불안한 마음으로 갔다. 참고적으로 택시는 타기 전에 가격 흥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아침에 호텔에서 가까운 공원을 찾아 산책했다.

반기는 것은 오토바이와 먼지, 매연 그리고 소음뿐이다. 호텔로 돌아서려할 때 젊은 여자가 다가와 물건사기를 권한다.

그녀가 풀어놓은 물건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물건을 사달라는 그녀의 표정이 압권이어서 물리치지 못하고 하나 집었다. 지갑이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영어가 전혀 안 되는 여자와 물건 값 흥정은 코메디였다. 옥신각신거리고 있을 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그들을 향해 "anybody speaking english?"하고 소리쳤다. 아무런 대꾸가 없다.

물건사기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여자는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지레짐작으로 5불을 건넸다.

그거면 충분할 것 같아보였다. 그러나 웬걸? 여자는 2불 더 달란다. 이거야 원, 나는 손짓발짓 해가며 많이 주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여자는 울상을 짓고 말았다. 마음 약한 내가 2불을 더 건네려할 때 구경하던 한 여자가 물건 파는 여자에게 뭐라고 소곤거린다.

여자는 이내 표정이 달라지더니 숫제 환하게 웃으며 돈을 꾸깃꾸깃 접어서 집어넣는다. 이번엔 내가 손해 본 느낌이다. 어쩌겠는가, 적선한 셈 치고 말았다.

하지만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구경하던 그 여자가 옆에 있는 갓난아이를 가리키며 엄지와 검지를 빠르게 비빈다.

가만 보니 아이를 위해 한 푼 달라는 시늉이었다. 나는 모른 척 시침을 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변에 있는 행상인들을 불러 모은다. 그들이 내 앞에 각기 가지고 온 물건을 내 앞에 쫘~악 펼친다. 이렇게 난감할 수가? 나는 재빠르게 자리를 떠야했다.

 

길거리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를 붙잡고 베트남전쟁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젊은이는 알고 있다면서 자기는 전쟁 이후 태어나서 행운아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군에 대해 말했다.

잔혹한 인으로 알고 있다는 그의 대답이 씁쓸했다. 하지만 이제는 친구의 나라이고 서로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아 다소 위안이 되었다.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다가와 타지 않겠느냐고 성가실 정도로 따라붙는다. 하지만 아주 친절하여 화내기가 쉽지 않다. 나는 한 번도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다. 물론 안전 때문이었다.

마지막 날 BAO TANG HO CHI MIN(호치민 박물관)에 갔다.

베트남은 호치민으로 시작해서 호치민으로 마무리 짓는 나라였다. 베트남 사람들이 국부라고 일컫는 호치민은 내가보기에는 그들에게 신처럼 보였다. 싸우다가도 호치민 이야기를 꺼내면 멈출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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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1.11 08:08

    첫댓글 베트남에 취재하러 갔다 오셨군요. 참으로 부지런도 하십니다.그리고 대단하십니다.훌륭한 내용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아울러 VND 100 (동)은 우리나라 화폐 가치로 6원30전가량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000동은 630원 정도죠. 아울러 5$은 4,625원정도이므로 VND는 73,400동 가량 될 것이라고 봅니다. 100$을 환전하면 베트남돈으로 1,470,000동 가량이라 대단하죠. 전대가 필요하겠죠.

  • 07.11.10 11:40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건필하십시요^^*

  • 07.11.11 03:04

    필승 뉴욕해군동지회 노승걸입니다. 뉴욕에는 한번 돌아오지 않으십니까? 좋은작품 기대합니다 선배님!

  • 07.11.15 19:16

    선배님 건강하시죠 늘 건강하시고 좋은글 나오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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