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우리나라 철강업계는 지난 50여 년간 경험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을 동시 다발적으로 경험했다.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설, 포스코의 인도 진출, 냉연사들의 실적저하와 M&A설 등이 올해 내내 이슈화됐으며 전기로.냉연.후판 업체들도 설비증설과 합리화로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또한, 원료사들의 여전한 위세 속에 나라밖으로는 조강생산 1억1천만t의 아르셀로-미탈이 탄생해 철강업체 M&A를 통한 대형화에 불을 당기고 있다. 이에 EBN 스틸뉴스는 이런 국내외 철강업계의 지각변동을 점검해보고 우리나라 철강업계의 경쟁력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5회에 걸쳐 정리해보고자 한다.
① 초대형 철강공룡 탄생..M&A 태풍 확산 ② 철강산업,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으로 ③ 포스코, 해외로 날개짓 ④ 40년 독점체제에서 경쟁 체제로 ⑤ 철강업체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나
- 유럽의 자존심이 팔렸다 = 지난 6월25일(현지 시각) 세계 철강업계를 뒤흔드는 ‘핵폭탄급’ 뉴스가 외신을 타고 전세계로 타전됐다. 세계 1위 철강업체인 미탈스틸이 2위인 아르셀로를 인수합병(M&A)하는 소식이 전해진 것.
아르셀로 이사회는 이날 "미탈스틸이 새롭게 낸 제안이 세버스탈에 비해 더 좋은 조건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면서 만장일치로 미탈의 인수합병 제안을 승인했다. 이어 열린 아르셀로 주주총회에서는 주주들이 러시아 세버스탈과의 합병에 반대하면서 미탈스틸의 아르셀로 합병은 완료됐다.
프랑스.룩셈부르크.스페인의 3국 철강업체가 합병한 아르셀로는 미탈스틸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방어하기 위해 러시아 세버스탈을 끌어 들이기도 했지만, 결국 두 번의 수정 제안을 거쳐 최초안보다 가격을 14% 이상 높인 인수안을 받아들였다. 인수대금은 259억 유로(약 32조2800억원)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미탈스틸의 락시미 미탈회장이 아르셀로 인수 계획을 밝혔을 때만해도 철강업계의 반응은 반신 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설마 유럽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아르셀로가 미탈에 먹힐까 하는 분위기. 그러나 설마는 5개월만에 현실이 됐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탈이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워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르셀로까지 집어 삼킬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 철강공룡 아르셀로-미탈 탄생 = 미탈스틸의 아르셀로 인수로 연간 1억1천만t의 조강생산량을 자랑하는 초대형 ‘철강 공룡’ 아르셀로-미탈이 탄생했다.
지난해 미탈스틸의 조강 생산량은 6천298만t, 아르셀로는 4천665만t으로, 통합회사의 조강 생산량은 1억963만t이 된다. 이는 경쟁업체인 일본 신일본제철(3291만t)과 한국 포스코(3천142만t)의 약 3배가 넘는 규모다. 합병 회사의 조강 생산량은 세계 철강 생산량의 10%에 해당하고 매출도 690억달러가 된다.
또한 아르세로-미탈은 북미와 동유럽, 아프리카, 서유럽, 남미지역 등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시장지배력을 보유하게 됐으며, 특히, 유럽과 미주에서 독점에 가까운 시장지배력으로 철강재 가격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위치로 부상했다. 이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료 수요사이자 상당한 자급능력을 갖춰 연원료 부문에서도 독보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게 됐다.
- M&A로 30년만에 ‘철강왕’ 등극 = 1976년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연산 6만t짜리 철강업체로 출발한 미탈스틸이 30년만에 종업원 32만명을 거느린 ‘다국적 기업’으로 올라선 비결은 인수합병이다.
미탈스틸은 1989년 트리니다드의 국영제철소 인수를 시작으로 멕시코와 캐나다 업체를 계속 사들였다. 1995년 연산 500만t의 카자흐스탄 국영제철소를 인수하면서 몸집은 560만t으로 커졌다.
이후 중부 유럽과 알제리, 남아공으로 계속 확장했고, 2005년에는 미국 철강기업 인터내셔널스틸그룹(ISG)을 인수해 연간 5천만t을 생산하는 세계 1위의 다국적 철강기업 미탈스틸을 탄생했다.
미탈스틸을 이끌어 온 락시미 미탈(55)은 인도 서부 라자스탄주 출신으로 콜카타의 세인트 사비에르스 대학에서 경영학을 배운 뒤,아버지가 운영하던 소규모 제철소에서 처음 철강 일에 뛰어 들었다.
- 공룡의 미래에는 부정적 평가도 = 미탈스틸이 급격하게 몸집을 키워가고 있는 이유는 철광석과 유연탄 등 원재료 구매에서의 협상력 제고와 생산.판매량 조절을 통한 제품가격 인상 두 가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커진 몸집만큼 두 가지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철강 원재료 협상은 일본 신일철이 일본 고로사(조강 생산 1억1천만t)를 대표해 전세계 수요의 70%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BHP빌리튼, 리오틴토(이상 호주), CVRD(브라질) 3사와 협상을 하고, 여기서 결정된 가격(인상율)이 전세계 철강사에 적용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신일철이 2005년 가격협상에서 철광석 78.3%, 유연탄 119.3% 인상에 합의하자 조강생산 3억5천만t의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바오스틸로 하여금 2006년 협상을 하도록 했다. 하지만 중국의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결국 일본이 다시 나서 철광석 19.5%, 유연탄 9.6%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3억5천만t이란 막대한 수요를 앞세운 중국이 원재료 3사에 KO패를 당한 것이다. 이러한 시장여건에서 아르셀로-미탈이 1억1천만t 규모로 가격협상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급조절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미탈스틸은 유럽 및 미주의 부도난 철강회사의 M&A를 통해 성장한 회사다. 1990년대 유럽과 미주의 철강회사들은 입지상의 한계, 낮은 생산성, 높은 인건비, 설비투자의 누적적 부진 등 구조적 한계로 불황기 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졌고, 그로 인해 미탈의 좋은 먹이감이 되었다.
따라서 유럽.미주 철강회사들의 한계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아르셀로-미탈은 범용 강재의 비중이 높아 철강경기가 불황기에 들어갈 경우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고로철강의 꽃이라는 자동차 강판 생산비율의 경우 신일철은 22%이지만, 아르셀로-미탈은 10%에 불과하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생산의 수요탄력성이 낮은 철강산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과연 미탈스틸이 ‘설비규모의 경제’보다 ‘판매(감산)전략을 통한 시장조절’이 성공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포스리 손영우 연구원도 최근 ‘초대형 철강사 미탈: 기업사냥 행진과 미래’란 보고서를 통해 “그동안 인수한 부실 철강사의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을 냈던 미탈의 경영방식이 아르셀로의 사업장에서 통할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 세계 철강업계 M&A 전쟁 = 미탈스틸의 아르셀로 인수합병 이후 세계 철강업체간 활발한 M&A가 펼쳐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인도업체의 M&A 추진이 활발하다.
러시아의 억만장자 로만 A. 아브라모비치가 경영하는 철강회사 에브라즈그룹은 지난달 미국 오리건스틸에 총 23억달러의 인수 제안했으며, 세계 12위 철강업체인 러시아 세베르스탈은 세계 7위 US스틸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인도업체도 만만치 않다. 타타(Tata)그룹 계열의 타타스틸도 지난해 세계 9위였던 영국의 코러스(Corus) 인수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코러스 인수전에는 브라질 CSN도 가세,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M&A 바람은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탈의 아르셀로 통합 이후 설비구조조정계획에 따르면 아르셀로-미탈의 생산능력은 연산 1천400만t으로 글로벌 비전에서 제시한 2015년까지 2억t 목표를 채우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M&A가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유럽과 미주에서는 독과점 논란으로 추가적인 인수가 불가능하고, 러시아.중국에서는정부의 견제가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동아시아를 비롯해 동남아시아, 인도의 철강회사가 다음 인수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 포스코도 M&A서 자유롭지 않아 = 아르셀로-미탈의 다음 M&A 대상으로 포스코가 꾸준하게 거론되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아르셀로-미탈측은 지난달 30일 한국투자증권 김봉기 연구원과 만난 자리에서 “포스코는 이익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면서 “상대적으로 고평가돼 있는 신일철 등 세계 철강사들에 비해 M&A 대상으로 더 매력적”이라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포스코는 현금성 자산보유가 많고, 이익 창출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기술력도 탁월한 데 반해 주식은 저평가돼 있다”면서 “누가 봐도 매력적인 M&A 대상”이라고 말했다.
아르셀로-미탈측의 포스코 M&A 추진여부에 대해서는 “M&A를 추진하면서 드러내 놓고 하지는 않는다”고 여운을 남겼다.
포스코는 또 미탈과 인도에서 한 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아르셀로-미탈의 락시드 미탈 회장은 지난 7월 인도 오리사주에 연산 1천200만t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포스코의 인도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포스코와 아르셀로-미탈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