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 7세 교황의 초상화
교황
교황 “비오 7세 교황, 격렬한 분쟁·분열의 시대에 친교와 자선의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20일 비오 7세 교황 선종 200주년을 맞아 이탈리아 체세나-사르시나, 티볼리, 사보나-놀리, 이몰라 교구의 순례자들을 만났다. 하느님의 종 비오 7세 교황은 나폴레옹 시대에 약 3년 가까이 투옥생활을 했다. 교황은 비오 7세 교황을 기억하면 “진리에 대한 사랑, 일치, 대화, 가장 작은 이들에 대한 관심, 용서, 평화를 향한 끊임없는 추구, 주님께서 우리에게 권고하시는 복음적 현명함” 등 많은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Amedeo Lomonaco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20일 하느님의 종 비오 7세 교황 선종 200주년(1823년 8월 20일)을 맞아 바오로 6세 홀에서 이탈리아 체세나-사르시나, 사보나-놀리, 이몰라, 티볼리 교구 순례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비오 7세 교황이 걸어온 여정, 곧 이탈리아 체세나의 베네딕토회 수도원 입회와 서품, 티볼리교구와 이몰라교구에서의 주교직 수행, 나폴레옹 시대 사보나에서의 투옥 등을 되짚었다. 교황은 정치적, 사회적 격변의 시대에 1742년 체세나에서 태어난 비오 7세 교황이 사목자로서 보여준 위대한 증거를 떠올렸다.
“비오 7세 교황님은 양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의 훌륭한 본보기였으며 지금도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뛰어난 교양과 강인한 믿음을 보여준 교황이자 수도자, 수도원장, 주교, 교황이었습니다. 이 모든 직무를 수행하며 큰 희생을 치르면서도 항상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는 비오 7세 교황님이 체포되는 비극적인 순간, 교황의 사목적 책임에 대한 타협을 대가로 풀려날 수 있는 길을 제안한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되고, 그럴 수도 없으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개인적인 자유를 희생하면서까지 교황으로 선출됐던 날, 하느님의 도움으로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약속한 일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교황은 체세나-사르시나, 티볼리, 사보나-놀리, 이몰라 교구 등지에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비오 7세 교황 무덤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에게 이 같이 말했다. 교황은 “비오 7세 교황이 증거한 세 가지 핵심가치인 친교, 증거, 자비를 우리 개인과 공동체의 여정에도 필수적인 가치”로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친교
교황은 비오 7세 교황이 친교 증진의 필요성을 “확고히 지지하고 옹호했다”고 말했다. 친교는 비오 7세 교황이 “격렬한 분쟁과 분열의 시대”에 제시한 첫 번째 목표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빚어진 혼란은 하느님 백성의 마음과 주변 세상과의 관계 모두에서 도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를 흘리는 상처와 같은 고통스러운 균열을 일으켜 왔습니다. 교황님조차도 그러한 것들에 짓눌려 계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비오 7세 교황님은 일치를 수호하려는 침착하고 항구한 인내를 통해 교황을 고립시키고 온갖 존엄을 박탈하려는 사람들의 오만함을 변화시켜 이러한 일들을 교회를 위한 헌신과 사랑의 메시지를 다시 전할 수 있는 기회로 바꾸셨고, 하느님 백성은 이에 열렬히 호응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공동체는 물질적으로는 더 가난했지만 도덕적으로는 더 강인하고 응집력 있으며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모범은 우리 시대에 우리가 희생을 치르더라도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 본당과 가정에서 친교를 이루고 화해를 장려하며, 평화를 증진하고, 사랑 안에서 진리에 충실한 일치의 건설자가 되도록 부추깁니다!”
교황은 험담이 친교를 파괴한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타인을 헐뜯고 싶을 때 좋은 치료법이 있다”며 “혀를 깨물고 참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증거
비오 7세 교황의 삶을 특징짓는 두 번째 가치는 증거다.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 비오 7세 교황님은 말과 삶으로 용기 있게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비오 7세 교황님은 교황 재임 초기에 추기경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 우리의 좋은 모범이 필요합니다. (...) 호화로운 삶이 아니라 (…) 오히려 재물에 무관심하고, 겸손하고, 겸허하고, 인내하고, 자선을 베풀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모든 사제 직무의 모범 안에서 우리 창조주의 모습이 드러나고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 보존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은 아름답습니다. 실제로 비오 7세 교황님은 자신이 갖고 있던 이러한 그리스도인 예언의 이상을 당시의 권력자들과 갈등을 겪을 때에도, 개인적으로나 교회 차원에서 상황이 좋을 때나 나쁠 때에도 모두 품위 있게 그것을 실천하고 장려했습니다.”
교황과 이탈리아 체세나-사르시나, 티볼리, 사보나-놀리, 이몰라 교구 순례자들과의 만남
자비
교황이 언급한 비오 7세 교황의 세 번째 가치는 자비다.
“비오 7세 교황님은 나폴레옹 사건이라는 큰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시며 ‘가신’(家臣) 관계의 개정과 그에 따른 가난한 농민의 해방, 많은 귀족 특권의 폐지, 세금제도 개선, 고문 폐지, 의료 서비스 개선과 의료 연구 발전을 위한 로마 라 사피엔자 의과대학 설립 등 당대에 혁신적인 사회 개혁과 사업 등으로 두각을 나타내셨습니다.”
교황은 비오 7세 교황이 총명하고 현명한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비오 7세 교황님은 매우 총명하고 믿음이 강인하며 현명한 분이었습니다. 또한 지혜롭게 투옥 생활을 견디는 방법도 알고 있었습니다. 때때로 그는 세탁물에 감추어 메시지를 보냈고, 이런 방식으로 교회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는 주님께서 주신 보편 교회의 통치 임무를 수행하고자 했던 총명하고 영리한 인물이었습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온화하지만 현명한 교황
교황은 비오 7세 교황이 “박해자들에게도 동일한 자비를 베풀었다”고 떠올렸다. “그들의 잘못과 횡포를 분명히 비난했지만, 그들과 대화의 통로를 열어두려고 노력했으며 무엇보다도 항상 용서를 베풀었습니다. (...) 비오 7세 교황님은 교황청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몇 년 전 자신을 투옥했던 나폴레옹의 친척들, 지금은 패자가 되어 감옥에 있는 그들에게 따뜻하게 대우해 주는 등 교회의 환대를 베풀기까지 했습니다.” 교황은 하느님의 종 비오 7세 교황을 기억하면 “진리에 대한 사랑, 일치, 대화, 가장 작은 이들에 대한 관심, 용서, 평화를 향한 끊임없는 추구, 주님께서 우리에게 권고하시는 복음적 현명함” 등 많은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비오 7세 교황이 우리에게 물려준 가치들을 되돌아보는 게 유익하다고 덧붙이면서, 특별히 “그 가치들을 우리의 것으로 삼고 증거함으로써 우리와 우리 공동체 안에 온유함과 기꺼이 희생하려는 의지가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온유하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권고하신 대로 슬기로운 것”이라며, 이는 박해자들 앞에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바오로 6세 홀에 모인 이탈리아 체세나-사르시나, 티볼리, 사보나-놀리, 이몰라 교구의 순례자들
번역 박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