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분도작가님>
+찬미예수님
어제는 주님 봉헌 축일이었습니다.
주님 봉헌 축일 강론을 준비를 하면서 은총의 밤 강론, 두 개를 준비했습니다.
신자들에게 봉헌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묵상하게 하자 해서 두 가지를 준비를 했지요.
봉헌이 무엇입니까?
옳지, 옳지, 이 자매가 봉헌은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되돌려드리는 것이라 했어요.
정답입니다.
많은 분들에게 봉헌이 무어냐 하면 바치는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치는 것은 내 것의 일부를 바치는 겁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것이 있습디까?
자식이 여러분 겁니까? 몸이 여러분 겁니까?
저는 책을 좀 많이 보는 편인데 2년 전부터는 책 한 페이지를 읽을 수가 없어요.
초점이 흐려져서 눈에 힘을 주고 부릅뜨고 책을 봐도 읽을 재간이 없어요.
동네 안과에 가도 “노안입니다. 신부님 저도 그래요” 하더라고요.
나는 생활의 질이 떨어져서 책을 못 읽고 밤에는 운전을 포기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데.
누가 실력 있는 의사에게 가자해서 검사했더니, 세상에! 4가지가 한꺼번에 다 있습디다.
첫째, 녹내장, 둘째 백내장, 셋째 황반변성, 넷째 안구건조증이 있어서 눈에 스크래치가 많데요
그날 내려오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내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난 눈이 내 것이라 생각하며 쓰는데, 내 눈이라 했지 주님의 눈이라 한 적 없는데.
피정 때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 하긴 했는데 막상 물어보면 “제 눈 괜찮아요.” 했는데.
실명되는 것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숨이 끊어질 때까지 어떻게 살는지가 중요한 것이구나!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에게 되돌려 드리는 것이 봉헌이다
내 것의 일부를 떼어 헌금하고 교무금 내고 꽃동네 회비내고 건축금 내는 것이 봉헌이 아니라,
애초부터 하느님의 것이었고 그것을 하느님께 되돌려드리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는 경영권만이 있을 뿐이지 소유권은 없다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어리석은 청지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청지기는 주인대신 주인재산을 관리하다 내놔라하면 무조건 내놔아 합니다.
언감생심 주인재산을 제 것으로 착각하고 사용하다 주인이 알면 요절이 난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청지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봉헌하면서 유세 떨 이유도 없고 하느님에게 뭔가 달라고 할 자격도 없어요.
‘이것 드리니 이것 주세요, 감사예물 드리니 뭔가 주세요.’ 하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봉헌에는 시간의 봉헌이 있을 것이고, 육신의 봉헌, 그리고 물질의 봉헌이 있을 겁니다.
어제 복음에 보면 아기 예수님이 부모에 의해서 성부께 온전히 봉헌이 되었고
시메온과 안나가 천상의 소리로서 하느님께 봉헌된 예수님과 부모를 축복합니다.
축복하면서도 참 뼈아픈 이야기도 같이 합니다
부모의 중요한 역할이 뭐라 생각하십니까?
때 되면 밥 먹이고 학교 보내고 용돈주고..이것이 부모의 역할입니까?
부모는 분명히 전달자입니다.
성모님과 요셉처럼 자식을 하느님께 전달하는 전달자입니다.
자식들을 성부께 봉헌하는 봉헌의 전달자입니다
자식들의 기도를 성부께 봉헌해주는 기도의 전달자입니다.
자신들의 고통을 성부께 봉헌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성모님은 첫 아들을 바쳤습니다.
첫 아들이자 독자를 바쳤습니다.
율법대로 바쳤습니다.
첫아들의 의미는 분명 다릅니다.
없던 것이, 새로운 것이 창조됐기 때문에 첫 아들은 늘 신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쁨과 행복의 상징이 바로 첫 아들이었습니다
많은 자식 중에도 첫째 자식은 사랑이 많이 갑니다.
둘이 결혼했더니 남편 닮고 나 닮은 새끼가 세상에 나오는데 얼마나 신기하고 예쁘겠습니까?
부모 사랑의 첫째 결실이 첫아들입니다.
성서에 첫아들은 하느님 축복의 결과인 동시에 고통이 따라오는 고통의 인간으로 나타납니다.
가문을 이어야 하고 동생들과 늙어가는 부모님을 모셔야합니다.
그래서 첫 아들은 늘 짐이 무겁습니다.
저도 3남 2녀 중에 제가 장남으로 동생이 넷입니다
장남은 비록 사제로 살아도 그 짐의 무게를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늘 홀로계신 어머님 걱정, 동생들 넷이 잘 살아야지 삐걱거리는 소리 들리면 잠이 안 옵니다.
큰 형으로서 재산이 있어서 경제적으로 도와줄 능력도 없고 그저 묵주기도나 바치고 있습니다.
첫아들은 죽을 때까지 첫 아들입니다
그래서 성서에서 첫 아들은 많은 단련을 시킵니다.
아브라함의 첫 아들이면서 유일한 아들이었던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 합니다.
그래서 봉헌한다고 하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봉헌은 포기를 나타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사악을 포기해야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첫 아들 이사악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첫 부분을 주님께 봉헌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애착하는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잊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장 애착하는 것이 있다면, 건강이든 자식이든 능력이든 돈이든
가장 귀하게 여기는 그것의 주인은 너 자신이 아니라 나 야훼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전본당에 장사의 하루 첫 수입을 하느님의 몫으로 모았다가 봉헌하는 교우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다운 봉헌이 아니겠습니까?
전적으로 주님께 의탁하는 자세요, 주님의 보호 하에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둘째로 봉헌은 주님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자유를 외치지만 주님의 법을 떠난 자유가 과연 자유입니까?
그것은 환상입니다
주님의 구원을 본 것은 주님의 법에 따라 의롭고 경건하게 살던 시메온과 안나였습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가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정한 법대로 정결예식을 치루었다고 합니다.
주님의 율법에 따라 아기를 주님께 봉헌하려 했다고 합니다.
주님의 율법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쳤다고 합니다.
주님의 율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쳤다고 합니다.
봉헌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구체적으로 지켜야할 주님의 법을 우리는 늘 점검해야 합니다.
첫째가 십계명, 둘째가 산상수훈, 셋째가 향주삼덕, 대신덕입니다.
십계명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흠숭과 사람끼리의 존경을 우리는 늘 묵상해야 합니다
산상수훈을 통해 이 세상의 참된 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욕심이 생기고 교만해지고
내 마음속에 하느님이 밀려나가고 세상 것이 들어찰 때마다 산상수훈을 소리내어 읽으십시오.
신덕, 망덕, 애덕이라는 향주삼덕을 늘 묵상하십시오.
신덕의 핵심은 믿음이 아니라 순명임을 늘 기억하십시오.
망덕의 알맹이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기쁨임을 명심하십시오.
애덕의 핵심은 사랑이 아니라 용서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법입니다
교우여러분 반드시 잊지 맙시다.
봉헌은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내 것의 일부를 띠어 하느님께 적선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하느님 겁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것은 없습니다.
내 인생, 영혼, 육신, 재산, 가족도 모두 하느님 것이기에 매일 겸손하게 봉헌하며 살아야합니다.
제가 교우들을 가르치면서 유난히 많이 썼던 말들이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혼란스러울 때는 전통으로 돌아가라’
‘인간의 기도에 하느님은 약해지시고 인간은 강해진다.’
주의 봉헌 축일 날에는 일 년 동안 쓸 초를 축성합니다.
교우들에게 초를 어떻게 봉헌했느냐 물으면 대부분 가족을 위해 봉헌했다고 합니다.
틀렸습니다.
대 데레사 성녀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초가 한 영혼’이라 했습니다
가톨릭 2천년 전통이 초 하나가 한 영혼이기에 집 식구가 셋이면 초 3개를 봉헌해야 합니다.
그리고 초 하나 봉헌하면서 ‘주님 내 남편 베드로를 봉헌합니다 .받아주십시오’
‘주님 이 죄인인 저를 봉헌합니다. 제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그러나 신자들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보니 초 하나 사서 사돈의 팔촌까지 넣습니다.
초를 올바르게 봉헌하는 것도 올바른 전통입니다
모르는 것은 배워야 합니다.
대 데레사 성녀 책에 보면 ‘초 하나가 바로 한 영혼입니다’ 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이 됩니다.
그때부터 우리 교회는 한 영혼이 초 하나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는 자기 살을 깎아서 주위를 밝힙니다.
내 가족 하나하나가 하느님 앞에 초로 봉헌될 때
뜨거운 성령의 열기로 봉헌이 될 때 그 얼마나 아름다운 초이겠습니까?
제가 초를 많이 팔려고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본당에서든 성지에서든 초 하나가 한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올바로 봉헌하자 제대로 봉헌하자.
우리 가족 식구 네 식구 봉헌하는 초 값이 아깝다면 할 말 없는 겁니다.
봉헌은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에게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겸손하게, ‘겸손’이 들어가야 합니다.
건방 떨면서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느님에게 되돌려 드리는 것이 핵심입니다
올 1년 동안 우리는 시간의 봉헌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 몸 움직여서 봉사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십시오.
썩어 없어질 몸, 아끼지 마십시오.
하느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여러분의 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물질적인 은혜를 받았으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느님께 봉헌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더 큰 물질의 축복이 들어옵니다.
사제는 사제대로, 수도자는 수도자대로, 평신도는 평신도대로 봉헌의 삶을 삽시다.
아침에 눈뜨면 제일 먼저 생명주심에 감사하면서 봉헌의 기도를 합시다.
‘주님 살려주시어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를 제 생애 마지막으로 알고 살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봉헌합니다. 제가 어둠으로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십시오.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서 주님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오늘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삶을, 2월 한달을 하느님께 봉헌하러 오신 분들입니다.
이 자리에 간절히 오고 싶었으나 몸이 아파거나 사정 때문에 못 온 사람들의 그 원의까지도
오늘 여러분이 대신, 여러분의 가족들의 마음까지도 봉헌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2018년 2월 은총의 밤 (2/3)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