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4월 마흔 나이에 딸 아이가 태어난 후 약 150일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간 것 같은데 이제서야 돌이켜보면서 겪고 느낀 것들을 주차별로 정리해서 육아 에세이를 끄적여 보고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알럽에 공유해 봅니다.
1주 차 : 탄생과 절망, 신생아중환자실(NICU)
OO병원 알림톡 도착 : OOO님,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2023년 4월 12일 18시 45분 -
분만실에서 유도분만 시작 후 약 20시간의 진통을 버텨내고 있던 아내가 자연분만을 포기하고 제왕절개 수술실로 들어가고 난 뒤 친절한 알림톡이 도착했다. 분만실에서 아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내가 대신 아플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의 고통 없이 제왕절개로 아기를 꺼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잠시 안도감을 느끼고 신생아실 입구에 기다린 지 약 20분이 지나던 찰나였다. 드디어 복도 한쪽 끝에서 의사 선생님과 신생아 카트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의사 선생님의 발걸음이 마치 비상 상황이라도 발생한 듯이 유난히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나와 마주한 의사 선생님이 급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님, 아기가 태어났는데 울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못 쉬었어요. 그래서 급하게 응급처치를 진행해서 일단 지금 숨은 쉬긴 하는데 우선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가서 계속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당황한 나머지 나는 아기의 얼굴도 제대로 볼 겨를이 없었고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아기는 황급히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가 버렸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아주 오랜만에 머릿속에서 절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단어는 내 몸 전체로 빠르게 스며들어 오기 시작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별 탈 없이 순산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도대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갓 태어난 아기의 사진을 찍으면서 뜨거운 감동으로 온몸이 전율에 휩싸일 준비를 하고 있던 나였었는데...
나를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힘든 문제나 상황이 생겼을 때 '큰일 났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한다. 그런데 바로 지금 이 순간 보통 큰일 난 것도 아닌 '진짜 큰일 났다'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되뇌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만큼 받아들이기 힘들고 괴로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었던 나였다. 또한 나는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 인생을 살아오면서 정말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를 의식처럼 하곤 했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의식을 행해야만 했다.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제발 우리 아기가 살아 있게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 다른 조건과 환경에 처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너무 풍족한 나머지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서 이를 버리는 것이 문제가 되는 반면, 지구 반대편 최빈국에서는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어린아이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처럼. 또한 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서도 국민들 사이에서 빈부 격차와 불평등이 점차 심화되고 있기도 하다. 뜬금없이 갑자기 웬 사회 문제 타령인가.(네가 왜 거기서 나와?) 지금 바로 OO병원 신생아실 앞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전혀 다른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의사 선생님과 아기를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여보내고 절망과 한숨 속에서 기도하고 있던 그 찰나에 갑자기 신생아실 창문을 가리고 있었던 커튼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OO병원 신생아 중환자실과 신생아실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커튼이 올라간 창문 너머로 평온하게 누워있는 신생아들이 보이고 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연신 사진을 찍는 아기 아빠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귀여워!", "아이고 내 새끼!", "까꿍!"
그 시간은 바로 매일 오후 7시에 진행되는 신생아실 창문 면회 시간이었던 것이다.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와 아빠인데 어찌 이렇게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왜 하필이면 평범하고 행복한 상황이 아닌, 평범하지 않고 불행한 상황 쪽에서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불행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입장과 처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불행한 누군가는 다름 아닌 내가 될 수도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고 있던 와중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나온 의사 선생님은 아기가 이제 움직이고 숨은 쉬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를 건넸다. 동시에 당분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하면서 각종 정밀 검사를 통해 혹시나 뇌와 심장 등에 손상이 가지 않았는지 확인해봐야 한다는 단서를 남겼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이 끝난 후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필요한 준비물, 주의 사항 등에 대한 안내를 해주셨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신생아 중환자실 입원 기간 동안 아기가 써야 할 기저귀와 물티슈를 준비해야 하고, 엄마가 유축한 모유를 모유팩에 담아서 냉동보관 후 배달해야 하며, 내일부터 매일 오후 2시에 영상 통화로 아기를 볼 수 있는 화상 면회가 진행될 예정이라는 등등... 이야기를 듣고는 있었는데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던 터라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아내는 수술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아내는 지금 이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만약 아내도 알았다면 내가 그랬듯이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을까? 아기가 들어간 신생아 중환자실 입구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을 영어로 NICU(Neonatal Intensive Care Unit)라고 하는구나. 오늘 같은 날이 아니라면 영원히 그 뜻을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용어였다.
친절한 알림톡을 받고 난 후 약 1시간 동안 사나운 폭풍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 아내를 다시 만났다. 아내에게 고생했다는 이야기 외에 추가로 설명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또한 순산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과 몇몇 친구들에게도 우선 아기의 탄생을 메시지로 간략하게 알렸다. 앞으로 걱정이 태산 같긴 하지만 어쨌든 40주간의 여정을 마치고 우리 아기가 세상에 나오긴 한 것 아닌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면서 지친 몸을 눕히고 잠을 청했다.
첫댓글
그럼 지금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거지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ㅜ
요즘은 다들 처음부터 제왕절개를 추천한다더라고요.. 출산 자체가 어려워진 시기라..
자연분만 하려다가 안돼서 제왕절개로 전환하면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한다고...
다행히 지금은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ㅎㅎ 저도 이제는 주변에 제왕절개 추천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자연분만이 잘 나올지가 복불복이고 옆에서 지켜 보는게 진짜 힘들더라고요.
예쁜 아가 건강하게 크기를 기원할게요.
사장님 잘 지내죠? ㅎㅎ 응원 감사해요^^
저도 종교는 없지만..아기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정말 건강만 하면 행복은 뒤따르는 것 같아요
재밌어요 계속 올려주세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준히 적어보려고요 ㅎㅎ
정말 고생 많으셨겠어요
살면서 정말 힘든 상황중 하나가
차라리 제가 힘든 상황이면 모르겠는데
자식이나 부모님이 힘든 상황일때의
그 힘듦과 절망스러움 그리고 도움이 못된다는 자책감등이 너무 너무 힘들더라구요.
너무너무 두분 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일단 먼저 인사드리고 싶네요
맞아요 제가 힘든건 그러려니 하고 괜찮은데 가족이 힘든건 너무 고통스럽더라구요 ㅠ
nicu 여긴 정말 근처도 가고싶지 않은곳이죠...군종합병원 근무자였다가... 아주 사소한 역아 돌리는거 때문에 중대병원 아들 둘 전부 돌렸는데 잠깐 그 nicu갈때 그 부모님들 표정 너무 선명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군부대 사망사건 부모님들 오버랩되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트라우마가 다시 시작되서... 둘째가 18개월인데 꿈에서 최근까지 나왔어요....
어휴! 그 마음 다는 아니더라도 이해가 많이 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니큐가 정말 부모는 너무 절박한 심정으로 찾게 되는 곳이고 근무하시는 분들도 힘들고 고생많으신 곳 같습니다
참! 이게 먼저인데 아기 출생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축하 감사합니다!^^
아이고..참..지금은 괜찮은거죠?
저도 첫 아이가 분만했을때 약1~2분 동안 울지 않아서 순간적으로 걱정했는데 다행히 의사가 심장마사지하고 그러니 그제서야 울어서 거기 있던 간호사 3명, 의사 그리고 저..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쉰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아무래도 첫 출산이다보니 계속 진통만 있었고, 자궁문에서 오래 끼었다보니 그랬던거 같아요..
다행히 지금은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분만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변수가 많이 발행하는 것 같네요. 1~2분간 마음 졸이셨겠네요 ㅠ 고생많으셨습니다.
@bigdog43 아휴..저야 찰나의 시간이었는데 빅독님이 더 마음 졸이셨겠죠;; 고생하셨어요..
아이고~ 아이와 첫 만남이 순탄하지 않았네요. 한 번은 겪을 시련이 조금 일찍 온거라 믿습니다. 아이와의 만남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육아 에세이를 저도 쓰고 싶었는뎌 게을러서 ㅠㅠ 좋은 아빠가 되실 거에요 ^^
축하와 응원 감사합니다. 붉은노을님 에세이도 기대하겠습니다^^
nicu가면 부모입장에서 참 마음이 아파요ㅠㅠ
진짜 건강하게만 나와서 자라다오라는 말이 괜한 말이아닌게ㅠ
진짜 건강하기만 하면 바랄게 없다는게 체감이 되더라구요. ㅠ
아이고 정말 너무 속상하셨겠어요. 저도 우리 애 만났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경험을 해서 더 공감이 되네요.
고생많으셨습니다 ㅠ 공감 감사합니다 나중에 주변에 물어보니 생각보다 니큐 갔다온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그전엔 잘 몰랐었습니다...
지금은 괜찮다니 너무너무 다행입니다!
아이가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길 응원합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예쁘게 키우겠습니다!
저희 둘째도 산부인과에서 출산 후 큰 병원 NICU로 트랜스퍼 해야한다는 소식을 듣고 대학병원으로 가는 앰뷸런스 안에서 숨죽이며 울면서 가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병원으로 가고 나서도 정해진 시간에 모유팩과 함께 멸균복으로 환복 후 잠시 만났던 둘째는 이제 건강히 잘 커 줬습니다.
(말은 지지리도 안 듣습니다ㅡ.ㅡ)
아가 괜찮다고 하시니 지금부터 더 좋은 시간 많이 가지시구요~~
저흰 그나마 다행히 대학병원이라서 바로 들어가긴 했었네요. 앰뷸런스에서 이동간 정말 힘드셨을텐데 고생많으셨었네요 ㅠ
이제 괜찮아졌다니 다행이네요. 아내분 회복되고 할 때까지 빅독님도 고생 많으셨겠어요. 뭐, 여전히 두 분다 고생중이긴 하시겠지만.
하지만 이게 다 두 분이 합심해 하늘 위 천사를 땅으로 내려오게 한 비용(?)이려니, 기껍고 즐겁게 치뤄내시길 바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
천사 착륙 비용 잘 지불한 셈 치고 앞으로 잘 살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이런 기록이 나중에 보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경험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는 정보였으면 합니다
좋은 일만 있길 빌께요. 모두 건강하세요.
응원 감사합니다!
저도 올해 40인 신혼부부입니다. 지금 2세준비중이여서 작성하신글에 너무 감정이입하게되네요. 경험공유 감사드리고. 와이프님과 이쁜천사님과 앞으로 행복한시간만 함께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준비 잘하기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