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의 문학 기행, 그 맛도 괜찮다
성병조
(최명희 작가의 혼불 문학관) 어제의 문학기행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 최명희(1947-1998) 소설가와의 두 번째 만남이어서다. 나보다 조금 일찍 태어나도 같은 시대, 비슷한 농촌 생활을 경험한 친구 같은 사람이다. 소설 ’혼불‘은 작가가 17년 동안 집필한 ’우리 풍속의 보고이자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전통문화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소설이다. 남원시가 사매면 노봉안길 노적봉 아래 혼불 배경지에 조성한 두 채의 한옥 문학관에는 유품 전시실, 집필실인 작가의 방, 주제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평생 혼불 집필에 전념하다 일찍 떠난 작가에겐 애잔한 맘이 든다. 입구의 그녀 앞에서 긴 묵념을 올린다.
(조선 최고의 민간정원 소쇄원) 작년 청와대 방문 때 담양 소쇄원이 떠올랐다. 하지만 청와대는 소쇄원(瀟灑圓)에 뒤진다는 점을 그제 확인하였다. 소쇄원은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양산보가 축조한 대표적인 민간 원림(圓林)이다. 자연에 대한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 시대 선비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소, 경관 탁월한 문화유산의 보배이다. 1400여 평의 내원(內園)에 대봉대, 광풍각, 제월당 등이 있다.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 있고, 북쪽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이루면서 담장 밑을 지나 중심을 관통한다. 주요 수목은 대나무와 매화, 소나무, 난, 동백, 오동, 배롱, 산사나무, 측백, 치자, 살구, 산수유, 황매화 등이다. 굵은 빗속에 둘러본 소쇄원의 절묘한 풍경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빗속의 문학기행, 그 맛도 괜찮다) 여행 계획을 잡아놓고 비가 온다면 좀 난감해진다. 더욱이 단체 여행일 경우 더욱 그렇다. 4월 5일 대구 펜 문학회의 문학기행은 몇 달 전부터 계획된 일이다. 날이 가까워지면서 비가 많이 내린다는 예보가 연속으로 나온다. 이런 때 집행부는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비가 오는데 강행하는 부담이 따라서다. 하지만 전혀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비가 무슨 대수랴. 회원들은 한마음으로 집행부를 위로한다. 비가 오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며 도리어 찬사를 보낸다. 극심한 가뭄으로 말랐던 광주댐이 만수위가 되었다. 산 아래 내려다보이는 안개들이 비행기를 탄 기분이다. 회원들의 성숙한 모습이 감동적이다.
(내 짝꿍은 어디에?) 요즘은 주로 승용차를 이용하지만 예전에는 버스와 기차가 주된 교통수단이었다. 이때 맘 설레게 하는 일은 여행길에 맞이할 미지의 짝꿍이다. 누가 내 옆에 앉을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기다림은 무척 설레는 일이다. 내 또래라면 누구나 경험했음 직하다. 예쁜 여성이라도 찾아오면 운 좋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연세 든 분이 앉게 되면 좀 거시기하다. 문학기행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앉은 옆자리에 여성 문우가 찾아오면 하루가 행복하다. 이번 문학기행 때는 잔꾀를 부렸다. 여회원이 올라와 악수를 청하면 내가 손을 끌어당겨 앉히겠다고. 내 생각은 주효하였다. 작전 성공의 기쁨을 듬뿍 누린 문학기행이었음을 이제 고백한다.
(말의 재치와 향기?) 말 잘하는 사람은 빛나 보인다. 게다가 내용까지 좋으면 더욱 그렇다. 내가 토론 프로를 즐기는 것은 패널들의 논리 정연한 말솜씨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다. 오래전 현대자동차 초청으로 우리 부부가 남해안을 여행한 적이 있다. 두 아이가 사회 진출 무렵 내 명의의 현대차가 4대나 되자 우수 고객으로 초청받은 것이다. 1박 2일 동안 우리를 안내한 해설사는 전남대 교수로 가는 곳마다 많은 명언을 남겼다. 해설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토록 큰 것인가. 지금도 기억나는 말이 있다. 진도를 여행하면서 그는 ’진돗개가 짖으면 창이 되고, 꼬리치면 휘호가, 똥을 싸면 낙관이 된다‘는 말을 던져 모두를 크게 웃게 하였다. (한국펜문학회 문학기행 4.5일 담양 가사문학관, 남원 혼불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