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샨 왕조 (Kushan, 기원전78~기원후 226)와 간다라 미술



고대 유목 제국 중 처음으로 그 이름을 떨친 것은 스키타이였다. 스키타이는
서기 전 7세기경 아시아의 스텝 초원으로부터 홀연히 나타났다. 이들은 극동에서 시작하여 오늘날의 헝가리 지역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의 대초원을 주무대로 하면서, 그리스 도시국가나 페르시아, 혹은 중원의 趙, 燕 등의 국가들과 접촉하였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은 침략과 약탈을 일삼는 스키타이를 정복하려고 남러시아로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강인하고 거친 유목 기병들의 힘으로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주변 문명 국가의 영향을 받아들여 번영을 지속하던 스키타이의 문명은 서기전 4세기에 이르러 그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스키타이인들이 동유럽의 비옥한 흑토 지대를 차지하고 농경을 통해 식량을 자급하게 되면서 점차 그 호전성을 잃게 되었고, 그 결과 유목민족의 특성인 강인함, 빠른 속도, 정제되지 않은 탐욕과 문명에 대한 동경을 잃고 점차 쇠퇴해 갔다.
그 뒤를 이어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한 유목 민족이 바로 흉노족이다.
투르계에 속하는 흉노족이 서기전 210년경에 등장하여 그 독자적인 세력이 중원에까지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진시황은 대군을 동원하여 흉노를 격파하여 황하 이남의 영역으로부터 흉노를 몰아냈다. 이 후 만리장성을 건설하고 군대를 주둔시켜 흉노의 침입을 막으니, 흉노는 감히 秦을 넘보지 못 하게 되었다. 그러나 秦, 漢 교체기에 이르러 중원이 혼란에 빠지면서 秦나라의 북방 병력은 그 지휘 체계를 잃고 흉노의 침입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게 되었고, 흉노는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강성해졌다,
이 무렵 흉노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인물이 흉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우로 일컬어지는 묵특 선우이다. 묵특 선우는 그의 부친을 제거하고 선우 자리를 차지한 후, 남만주의 동호, 북방의 정령, 예니세이강 상류의 키르기스를 정복하면서 북방 지역에서 갑작스레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월지族 또한 흉노의 확장 정책의 희생물 중 하나였다. 월지族은 감숙성과 황하 상류, 중가리아 일대와 동서 투르키스탄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투르크계의 민족이었다. 이들은 흉노의 빠른 팽창에 위기감을 느끼고 저항했으나, 이들 중 대부분은 흉노를 피해 이리江 유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주한 민족이 박트리아 지역을 장악하여 대월지를 이루게 되고, 황하 상류 지역에 잔존한 이들이 소월지를 구성하게 된다.
이 당시 월지族은 기마 민족인 오손이라는 기마민족을 정복하였으나, 곧바로 대대적인 반란으로 인하여 이 지역에서 쫓겨나 서쪽으로 이주해야 했다.
월지族의 두 번째 피난처는 실江 유역이었다. 당시 그 곳에는 중앙아시아에서 남하한 스키타이族의 일부가 세력권을 이루고 있었다.
서기전 2세기경 사카族은 월지가 대대적으로 서쪽으로 이주해 오자, 이를 피해 박트리아로 건너갔다. 알렉산드로스의 대원정으로 인해 당시 박트리아는 그리스 계통의 왕조가 정권을 잡고 있었다. 사카族은 이들과 투쟁한 끝에 박트리아의 일부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곧이어 월지가 박트리아로 손을 뻗치기 시작했고, 사카族은 월지에게 굴복하면서 월지의 군대와 더불어 그리스-박트리아 식민왕조를 멸망시켰다. 이 후 월지는 직접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을 차지하고자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이에 사카族은 다시 남쪽으로 이주하여 인더스江 상류 지역으로 남하했다.
박트리아(大夏)를 정복함으로써 파미르 고원과 힌두쿠시 북부 등 아무라디야 북안의 넓은 영역을 차지한 대월지는 이 지역을 다섯 제후에게 다스리도록 하였다.
서기 1세기경 귀상(쿠샨의 음역)흡후였던 쿠즐라 카드피세스는 다른 네 흡후를 제거하고 월지 세력을 통솔하게 되었다. 이 후 귀상흡후가 이끄는 월지 세력은 남쪽으로 세력권을 확대하여 오늘 날의 북인도 지방의 일부인 간다라까지 그 세력을 떨쳤다.
그 후 카니슈카는 쿠샨 왕조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왕으로,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西로는 파르티아, 東으로 갠지스 강 유역, 西北으로 중앙아시아, 北으로는 중국의 後漢과 국경을 맞대고, 로마와도 사신의 왕래를 통한 활발한 무역 활동을 하던 시기였다. 쿠샨 왕조는 영역 범위로 인도, 오리엔트, 중국, 로마 등 여러 문화가 서로 만나는 곳에 위치하게 됨으로써 동서 문화 교류의 활성化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카니슈카 王은 쿠샨 왕조의 전성기를 이루어 간다라 미술 등 특색있는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대승불교도 이 때 성립 발전하였다. 카니슈카 왕은 불교를 적극 옹호하여 당시 약 20개로 분열되었던 각 종교 간의 상이점을 조화시키고 불교의 표준적 교리를 세우기 위해 종교회의를 소집하였다. 케시미르에서 열렸던 종교회의는 불교사에 새로운 기원을 열었는데, 대승불교의 기초가 여기서 이루어졌다.
그는 포교단을 조직하여 중앙아시아, 중국, 티벳 등에 파견하여 불교를 아시아의 대표적인 종교로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26년 사산 왕조가 이란에서 발흥하여 아프가니스탄을 병합하자, 쿠샨 왕조는 그의 번속국이 되었다. 사산 왕조의 세력이 이완되자 세력을 회복하였으나, 5세기 후반 에프탈에게 멸망하였다.
간다라 미술
간다라는 지금의 페샤와르 일대로 쿠샨 왕조 때 로마 미술의 영향을 받아 불교 미술이 꽃 피기 시작했으며 인도의 마투라와 더불어 최초의 불상이 조형된 곳이다.
간다라는 동서양을 잇는 길목으로, 서기전 4세기경에 있었던 알렉산드로스의원정과 문화 융합 정책으로 동서양 미술 교류의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서양의 문화와 서로 융화된 독특한 미술, 즉 헬레니즘이 생기게 되는데,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불상 조각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불상 조성이 본격화되고 간다라 미술 전통이 확립된 것은 기원 전후 1세기에 흥기한 쿠샨 왕조 시대에 들어서이다. 쿠샨 왕조에 이르러 그리스 신상 조각과 유사한 불상이 간다라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간다라 지방에서 그리스人들이 그들의 神을 인간의 형상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不像, 不표현의 원칙을 깨고 인간의 형태로 불상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