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있던 전 재산, 아파트는 어김없이 딸에게 들어갔습니다.
서울에서 고개 하나 넘으면 나타나는
경마장 길 건너에 자리한 거대한 비닐하우스촌
80년대 강남 개발로 인해
떠밀려온 이들이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해
지금은 약 200세대가 살고 있음
앞날은 모를 일인가 봅니다.
이듬해 그녀는 이 마을 주민이 됩니다.
암 진단 4개월 만에 남편은 떠났고
그녀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예순일곱.
이제야 노후를 준비합니다.
29년 전 할머니는 남은 여생을 보내러 파주에 옵니다.
그때는 할아버지도 함께였습니다.
장사를 하며 저축해둔 노후자금은
한 푼도 남김없이 치료비로 쓰였습니다.
여든다섯이면 셋 중 한 명이 앓게 된다는 병.
할아버지 부인도 치매입니다.
부부는 재작년까지 아들 내외와 같이 살았었습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찾아오던 치매 증상이 매일 더 심하게
되풀이되자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손에 끼는 장갑을 발에 싣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할머니의 세계.
기초 생활 수급으로 살아가는 할머니께 25만 원은
한 달 수입의 반이 넘는 거금.
올해 나이 여든아홉이 되셨습니다.
동생 보증을 섰던 그는 퇴직금까지, 전 재산을 잃었습니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동생을 대신 칠순 넘도록 빚을 갚았지만
깨진 가정은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가족관계 단절을 확인 시키고서야
간신히 받을 수 있었던 기초 생활수급비.
기뻐해야 할까요.
이만하면 호텔급이라는 고시원.
이 생활이 15년에 접어들었습니다.
60년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나오신 어르신.
10년 다니던 직장을 잃고 국내 들어와
전 재산을 가지고 건설업을 시작합니다.
국제 그룹 해체가 단지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면
그 뒤에 일어난 일은 그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놨습니다.
20년 전 그날 이후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14년 전 임대주택에 들어온 후로는 만나는 사람도 없습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복지사가 유일한 친구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이 짧은 대화가 그가 맺는 인간관계의 거의 전부.
그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요.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일했고 능력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과 함께 통장의 생명도 꺼져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첫댓글 진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느낌.. 엄마아빠 노후도 내가 책임져줄라면..
어느 정도의 노후는 애가 없으면 되는구나 ㅋㅋ
22… 나도 쭉 내리면서 이생각함 ㅎ..
333 나도…애가 없으면 살아 갈수 있구나
삭제된 댓글 입니다.
333 그게 젤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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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뭐 노답 부모님이었을지도 모르긴하지만 .. 뼈빠지게 일해서 해외연수까지 보냈는데 저렇게..
자식들이 아무도....안 도와주네...
그래서 차라리 노후에 혼자인게 나아
우리 고모 혼자 사는데 나라에서 잘 챙겨줘
물론 고모는 가족들도 자주 보러 가서 괜찮은데 안그런 노인들도 많아서 ㅠ
근데 내 미래는 고모만큼 보호 절대 못 받을 거같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