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룡유회(亢龍有悔)
주역 육효 건괘에서 남성적인 기상을 승천하는 용의 기세에 비유해 네 단계로 표현했다. 이를 잠룡(潛龍), 현룡(見龍), 비룡(飛龍), 항룡(亢龍)이라는데 더위도 극에 달하니 후회가 있으려나. 하늘 끝까지 올라가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후회하게 됨을 항룡유회(亢龍有悔)라 한다. 극히 존귀한 지위에 올라간 자는 교만함을 경계하지 않으면 실패하여 후회하게 됨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어제가 입추였는데 그간 연일 계속된 폭염경보로 달구어진 대지의 열기를 식혀줄 태풍이 다가온다. 오키나와 근해 정체하던 태풍 카눈이 진로를 우리나라로 겨냥해 곧장 북상한단다. 전북 부안 새만금 간척지엔 세계 각국 4만여 명 청소년들이 잼버리 행사로 모였다. 미흡한 사전 준비와 미숙한 진행으로 곤욕을 치르는데 태풍까지 닥쳐와 순조롭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까 염려된다.
팔월 둘째 수요일이다. 하늘은 아침부터 구름이 뒤덮여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 기세는 한풀 꺾였다. 오후부터 태풍 영향권에 들어 내일 새벽 남해안에 상륙해 한반도를 종단해 북으로 치올라가는 경로가 예상되었다. 점심나절부터 강수가 예보되어 산행은 어려워 아침 식후 집 근처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어 퇴촌삼거리 반송소공원으로 나갔다.
그러고 보니 올여름 창원천 천변으로 산책을 나와 본 지가 제법 시간이 흘렀다. 장마가 진행 중일 때 비가 그친 틈새 다녀온 이후 처음이다. 그때는 큰물이 냇바닥을 할퀴고 지나간 뒤라 천변 식생들이 상처를 입은 모습이었는데 그새 복원이 다 되어 오히려 가뭄을 타 시들어 가고 있었다. 장마가 물러가고 스무날 정도 폭염이 지속된 날들이라 천변으로 나와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천변에는 인근 아파트와 주택지에 사는 이들이 아침 산책을 나와 걷기를 했다, 산책로 가장자리는 수크령이 이삭을 내밀었고 냇바닥엔 달뿌리풀이 무성했다. 달뿌리풀은 물억새나 갈대와 같이 하천에 잘 자랐다. 늦가을이면 좁쌀같이 자잘한 꽃을 피우는 고마리도 잎줄기를 불려 가고 있었다. 여뀌처럼 습지를 좋아하는 고마리는 한여름 이후 갑자기 세력을 불려 크는 특징이 있었다.
아침 먹잇감을 찾으려는 왜가리 한 마리는 목을 길게 빼다가 내가 폰 카메라로 피사체로 삼으려니 날개를 펴 어디론가 사라졌다. 녀석이 떠난 냇물에 둥근 잎을 펼쳐 자란 노랑어리연이 작고 앙증맞은 꽃을 피워 있었다. 한때 개체수가 늘어나 생태계 교란 밉상으로 낙인이 찍힌 황소개구리가 그렁그렁 울었다. 이제 창원천에 서식하는 황소개구리는 귀해 몇 마리 되지 않은 듯했다.
창원천 2교와 유목교를 지나니 전방 시야에 명곡 교차로 일대 높은 건물이 들어왔다. 산책로 길섶에는 봄에 씨앗을 뿌려 키운 백일홍과 황화코스모스가 뙤약볕에 꽃을 피워 눈을 즐겁게 했다. 이번 지나갈 태풍으로 비가 흡족하게 내리면 잎줄기는 생기를 되찾아 화사한 꽃을 더 볼 수 있을 듯했다. 시티세븐을 지난 파티마병원 근처 코스모스는 가뭄으로 생육 상태가 부진했다.
창원대로 용원 지하차도에 이르니 간간이 보이던 산책객은 모두 되돌아가고 내친김에 현대로탬을 지나 봉암갯벌로 향해 걸었다. 덕정교 못 미친 냇바닥엔 삼잎국화가 피운 노란 꽃이 무더기로 보였다. 남천이 합류하는 삼각지에 이르니 썰물로 냇바닥 일부가 드러난 봉암갯벌이 나타났다. 창원천으로 산책을 나서 삼각지 동원참치 회사까지 걸으면 이십 리 길이라 두 시간이 걸렸다.
용제봉과 불모산에서 흘러온 남천 천변 산책로를 따라 걸어 삼동교에 이르러 충혼탑 사거리로 향했다. 교육단지 차도와 보도는 방학을 맞아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아 인적이 끊겨 적막했다. 창원 스포츠파크 궁도장에서 보조경기장을 거쳐 만남의 광장에 이르니 참던 비가 흩날렸다. 원이대로를 건너 반송시장에 들어서니 노점은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덮개를 걷지 않은 가게들이 보였다. 23.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