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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여불위(呂不韋)의 몰락 (4)
같은 해, 진(秦)나라에서도 웃지 못할 대규모 스캔들이 일어났다.
진왕 정(政)의 어머니인 조태후와 여불위, 그리고 노애(嫪毐)라는 사내와의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불위와 조태후가 옛정을 못 이겨 서로 밀통한 일은 앞에서 잠시 얘기했다.
그 후로도 여불위(呂不韋)는 계속 조태후의 방을 자기 안방처럼 들락거리며 조태후와의 관계를 유지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여불위의 나이 50줄로 접어들었다.
진왕 정(政) 역시 20세가 넘는 성인이 되었다.
여불위(呂不韋)로서는 진왕 정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여불위(呂不韋)는 진왕 정의 침묵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반면 조태후(趙太后)는 나이가 들면서 더욱 음욕이 발동했다.
하루라도 여불위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
낮이건 밤이건 때를 가리지 않고 승상부로 사람을 보내 어서 들어오라고 재촉하기 일쑤였다.
이것이 여불위(呂不韋)로서는 여간 큰 부담이 아니었다.
'끊자.'
관계를 더 지속하다간 무슨 화를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면에서 여불위(呂不韋)는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조태후의 손길에서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 무렵, 함양성 안에 노애라는 사내가 살고 있었다.
노애(嫪毐)란 행실이 바르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글자 그대로 노애는 바람둥이였다.
특히 음경(陰莖)이 큰 것으로 유명했다.
노애(嫪毐)는 시정의 음탕한 여인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과부는 물론 유부녀들까지 앞다투어 노애를 찾았고, 심지어는 먼저 그를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애(嫪毐)가 한 관리의 아내와 통정하다가 남편에게 발각되어 간통죄로 끌려 들어갔다.
마침 승상 여불위(呂不韋)가 이 문서를 접하게 되었다.
불러서 문초한 결과 관계한 여인들의 수가 무려 백 명이 넘었다.
여불위(呂不韋)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쳐갔다.
'이 자를 태후에게 내주면 그녀는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을꺼야.'
여불위는 노애(嫪毐)를 집으로 데려다가 몰래 숨겨두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를 어떻게 조태후와 붙여주느냐는 것이었다.
대뜸 그를 궁으로 데려가 이놈과 자십시오, 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조태후(趙太后) 쪽에서 먼저 그를 찾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여불위(呂不韋)는 자신의 방으로 노애를 불러 물었다.
"듣자하니 네 음경(陰莖)이 무척 크다고 하는데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한 번 볼 수 있겠느냐?"
노애(嫪毐)는 주저함없이 속바지를 내렸다.
순간 여불위(呂不韋)는 입을 벌렸다.
과연 컸다.
아니 큰 정도가 아니라 거대했다.
그는 노애(嫪毐)의 양물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물었다.
"네가 그것으로 능히 수레바퀴를 들 수 있느냐?"
"문제 없습니다."
"알겠다. 내가 너에게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노라."
가을이었다.
진(秦)나라에서는 매년 추수가 끝나면 삼일 동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기는 풍속이 있다.
사람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자신의 재주를 마음껏 발휘한다.
인기가 좋은 사람은 왕궁으로 초빙되기도 한다.
여불위(呂不韋)가 착안한 것은 바로 이 거리 축제였다.
축제가 절정에 이를 무렵, 여불위(呂不韋)는 미복 차림으로 노애를 데리고 거리로 나갔다.
그러고는 가장 번화한 복판에 서서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가져오게 했다.
노애(嫪毐)는 이미 자신이 할 일을 지시받은 터이라 대뜸 바지춤을 내리고 그 수레바퀴를 자신의 음경에 매달았다.
수레바퀴는 꽤 무겁다.
그런데도 노애(嫪毐)의 음경은 끄덕없이 버텼다.
버텼을 뿐만 아니라 허리를 움직여 수레바퀴를 빙글빙글 돌렸다.
때로는 걸음을 옮기면서 돌렸다.
그 날의 최고 인기인은 단연 노애(嫪毐)였다.
수천 명의 군중은 감탄과 함께 배를 움켜잡고 웃어댔다.
여불위의 이 계책은 성공했다.
마침내 이 소문이 왕궁 안에 있는 조태후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여불위(呂不韋)가 내궁에 들렀을 때 조태후가 물었다.
"양물(陽物)로 수레바퀴를 돌린 자가 있다던데 그게 사실이오?"
여불위(呂不韋)가 눈치를 살피니 꽤 관심이 깊은 표정이었다.
기회를 놓칠세라 대답했다.
"사실입니다. 마침 저도 잘 아는 자인데, 그 방면으로 꽤나 소문이 나 있는 모양입니다. 기회가 나면 제가 한 번 궁으로 데리고 들어오지요."
조태후(趙太后)는 살짝 미소짓다가 다시 슬그머니 물었다.
"외인이 어찌 내궁을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겠습니까?"
"그 점이라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과거 행적을 핑계로 그 자를 잡아다 부형(腐刑)에 처하겠습니다."
"그런 후에 형 집행관을 매수하여 가짜로 부형(腐刑)을 처리한 후 궁으로 들여보내면 태후께서는 그를 내관에 임명하여 궁 안에서 일을 보게 하십시오. 그러면 날마다 그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형(腐刑)이란 남자의 성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말한다.
궁형(宮刑)이라고도 한다.
음란한 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주로 많이 가했는데, 내시(內侍)가 되기 전에 거쳐야 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이미 노애에 대해 호기심이 발동한 조태후(趙太后)는 노골적으로 기쁨을 드러냈다.
"묘책이구려."
순간, 조태후의 눈빛이 묘한 광채를 발했다.
그 뜻을 모를 리 없는 여불위(呂不韋)는,
'이것이 마지막이 될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모든 기력을 다해 조태후의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식혀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여불위(呂不韋)는 즉시 노애를 불러 자신의 계략을 들려주었다.
노애(嫪毐)는 천성적으로 음탕한 자였다.
더욱이 왕의 어머니인 태후의 정부(情夫)가 되는 일이 아닌가.
"인생이란 묘하군요. 제가 왕궁에서 생활하게 될 줄이야."
이렇게 중얼거리며 뛸 듯이 기뻐했다.
다음날 여불위(呂不韋)는 노애를 형부(刑部)로 넘겼다.
- 이 자는 우리 나라의 미풍양속을 어지럽혔다.
부형(腐刑)에 처하여 내시로 일하게 하라.
그러고는 따로이 부형(腐刑)을 집행하는 관리를 불러 1백 금을 내주며 비밀리 부탁했다.
"알겠느냐? 자르는 척만 해야 한다."
그 날 저녁, 함양성 거리에는 노애(嫪毐)의 피 묻은 음경이 내걸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쳐다보며 한결같이 혀를 찼다.
"쯧쯧, 함부로 놀리다가 결국 저렇게 되었구만."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보고 있는 거대한 음경(嫪毐)이 당나귀의 그것인 줄을.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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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재 감사합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