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처 엑 소 시 즘 (exorcism)
예 담 ( 藝潭)
상처는 아픈 자리다. 아물지 못해 통증으로 남는 슬픔이자 피해. 자주 틈틈이 아리고 심란한 흔적이 바로 상처다. 아프다는 것, 잊을 수 없다는 것, 어떤 날엔 아랫입술을 깨물어야 하고 또 어떤 날엔 절로 나오는 한숨에 고개를 저어야 하는 것, 상처가 가져오는 헛헛한 심사는 우울증을 넘어 쓸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상처를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은 쉽사리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딱지가 앉을 겨를이 없이 시시 때때로 피가 나고 아파오는 하루 또 하루, 그러니까 결국 모든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결국 제일 빨리 치유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다.
울먹이는 그녀를 만난 것은 여관방이었다. 얻어맞은 파리한 얼굴과 함께 ..앙상하게 야윈 몸매는 상황은 이미 종료가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상처받은 영혼은 가늘게 물결치듯 떨고 있었고, 나는 그녀를 그저 꼬옥 안아줄 수 밖에 없었다. 세 달 전쯤의 일인가 싶다. 한밤중에 전화를 받고 “무조건 도와주어야 한다 "는 생각이 든 것도 그녀가 설자리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여관방에서 그녀는 자신이 맞은 조건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상황은 악조건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녀의 남편이 대화를 완전히 끊은 상태가 아니었고, 이성이 분명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싸움을 하면 아물지 않은 상처위에 다시 상채기를 내어 극단적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섹스적 요소가 강했다. 부부란 스킨터치가 어마어마한 영향을 준다. 즉 한번 의 키스가 열마디의 말을 대신을 할 수도 있으나, 한사람은 너무 강했고, 한사람은 그것을 받아드릴 수 있는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를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싸움은 13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두 사람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상처는 누군가로부터 온다. 혹은 누군가로부터 왔다고 믿는다. 길을 걷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져도 결국엔 길바닥이 무릎에 상처를 낸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자의에 의해 생긴 상처란 없는 법이다. 하물며 사람이랴.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이나 까맣게 타들어가는 속내, 이를 갈다가 미안해지고 다시 미안해 하다가 원망을 키우는 마음은 이런 법칙들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열두 번씩 기가 막히고 눈물이 나서 넋을 놓게 되고 마침내 궹궹한 북어의 눈으로 말라가는 것이다.
상처는 내가 키우며 산다. 잊을 만하면 무엇에 대이고 참을 만하면 가려워져서 붉고 서러운 상처는 다시 덧나게 되고 커져만 간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바람이 불어서, 날이 흐려서, 상처는 아리고 쓰리다. 원망이 쌓여 독해지다가도 어떤 날 어떤 자리에 아무 뜻없 이, 좋던 일 잘해주던 일만 생각나는 눈물바람이 속절없이 그렇다. 추억을 봉인해야만, - 아니 추억이라 부르기 싫다면 - 기억이라도 묻어야만 딱지가 않는 법인데 안그래도 아픈 상처를 도리어 내가 긁고 키우며 사는 일이라니.
무릇 상처란 허방을 딛고 견디는 일이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다만 견딜 수 있을 뿐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잊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참을 수 있는 것이다. 잊는 마음, 잊혀지는 사람이 전부인 세상. 어떤 슬픈 말보다 독하고 야멸 찬 단절이 있고 난 후에야 서서히 무뎌지는, 자기 자유를 확장하는 칸트의 법칙이자 보호본능의 쓸쓸한 발아다. 그러니까, 이제 아물어 가는 모든 슬픔은 더 이상 상처가 아니다. 잊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천천히 아물어 가고 어느 날인가는 아무렇지도 않을 하나의 흉터로 남게 되는 것이므로... .
마음의 상처가 외부로 드러나면 햇빛과 공기에 의하여 자연 염증이 생기므로 상처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잘 감추어 아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지는 상처를 만지거나 건드리는 것은 오히려 상처를 덧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기에 외식과 외부환경, 사람을 피하는 것이 상처를 조기에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때 다시 말을 덧붙이게 되면 날카로운 흉기로 변하게 된다.
말은 입으로 뿜어내는 바이러스성 세균과 같다는 것이다. 상대방과 그 시기와 때, 언성강약, 감정조절 및 얼굴표정에 따라 언어바이러스는 작용이 달라진다. 상처를 치료하는 백신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경우 마음의 상처에 저항력이 강해지지만, 그 반대로 바이러스로 받아들여 마음의 염증을 유발한다.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세균’을 남에게 옮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상처받을 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당장 내가 지랄맞게 아픈데, 스스로의 데미지와 치료법에 대하여 느긋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일단, 당장, 지금의 그 아픔들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 성급함이 때때로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힌다.
거듭 반복하지만, 내가 입은 그 상처는 어느 순간, 한 번에 나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상처는 관리되어야 한다. 지속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에 걸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지병과 같은 것일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어떤 상처라 해도, 시간 앞에서는 같지 않다.
상처는 누구나 받는다. 상처받고 아프지 않은 사람도 없다. 하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관리하고 그 아픔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상처 속에서 정체되어버리고, 어떤 이들은 극복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해낸다. 그렇기에 말하는 것이다. 그 상처는, 반드시 관리되어야 한다. 스스로에 의해서,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엑소시즘처럼 섞어서 분해해 버리는 거다
2009년 7월 17일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글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예담님..글이 좋아서..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