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강 이남의 진산(鎭山)인 운제산(雲梯山)에 오어사(吾魚寺)라는 절이 있다. ‘나의 고기’라는 뜻이니 절 이름치고는 좀 생뚱맞다.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오어사는 보경사와 함께 포항을 대표하는 절이다.
이 절의 원래 명칭은 항사사(恒沙寺)인데, 불경에 나오는 항하사(恒河沙)의 준말이다. 항하(恒河)는 인도 갠지스강을 가리킨다.
즉 항하사는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무수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절에서 많은 수행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그렇다면 항하사는 어떻게 오어사가 되었을까?
운제산과 오어사를 이해하려면 ‘삼국유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운제산과 오어사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오어사에서 수행한 고승들이 ‘삼국유사’의 여러 대목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어사의 명칭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혜공)는 늘그막에 항사사로 옮겨 살았다. 이때 원효는 여러 불경의 소(疎)를 지으면서 항상 혜공을 찾아가 의심나는 것을 물었는데, 가끔씩 서로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원효와 혜공이 시냇가에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물 위에 대변을 보았는데, 혜공이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가 눈 똥은 내 물고기다.” 그래서 오어사라고 이름 지었다.
-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민음사, 2008, 443∼444쪽.
“자네가 눈 똥은 내 물고기다”의 원문은 “여시오어(汝屎吾魚)”다. 그래서 “너(원효)는 똥을 누었고 나(혜공)는 고기를 누었다”라고도 풀이할 수 있다. 어느 쪽으로 풀이하든 “너 원효는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항사’가 불가(佛家)의 전형적인 표현이라면 ‘오어’는 파격적인, 유쾌한 농담조다. 오어사의 명칭을 두고 다른 이야기도 전하지만 결국은 ‘여시어오’로 귀결된다. 가벼운 농담에 깊은 가르침, 곧 화두가 담겨 있는 것이다.
오어사 대웅전은 영조 17년(1741)에 중건되었고, 그 외 당우(堂宇)들은 대부분 근래에 들어섰다. 오어사의 대표 유물로는 대웅전에 있는 원효대사 삿갓이 있다.
오어사 경내에는 자장과 원효가 수행하던 암자가 있다. 자장이 머물렀던 암자의 근처에는 혜공의 수행처가 있었으며, 서쪽 봉우리에는 의상의 수행처가 있었다고 전한다.
자장암은 ‘삼국유사’에 “낭떠러지로 가서 바위에 기대어 집을 만들었다”라고 했듯이 해발 600미터 기암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다. 오어사의 정취를 한껏 느끼려면 자장암 앞에 서봐야 한다. 오어사 경내는 물론 운제산의 아득한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른 아침이나 인적이 드문 시간에 자장암 앞에 서보면 자장이 왜 이 가파른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었을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대웅전에서 서쪽으로 오어지(吾魚池)를 건너 야트막한 산길을 500미터 정도 걸어가면 원효암이 나온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길을 올라가야 하는 자장암에 비하면 한결 수월한 길이다.
원효암은 운제산의 부드러운 능선에 둘러싸여 찾는 이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