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종단 태풍
평소 초저녁 일찍 잠드니 날짜 변경선이 바뀌기 전에 새날이 시작되기도 한다. 잠을 깨니 태풍 카눈이 제주도를 비켜 새벽녘 남해안에 상륙한다는 팔월 둘째 목요일이다. 태풍이 우리나라 해안에 다가오면 오른쪽으로 스쳐 휘어 동해로 빠져나감이 상례였다. 그런데 이번 태풍의 진로는 남해안에 상륙해 한반도 내륙을 관통해 북녘까지 수직 경로로 종단하는 특이한 행보를 보였다.
날이 밝으려면 시간이 한참 남은 자정 무렵은 태풍 전야라 그런지 바람이 세차지 않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정도였다. 노트북을 열어 인터넷으로 날씨를 검색해봤더니 우리 지역은 아침에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 듯했다. 오전에 남부 지역을 벗어난 태풍은 밤이면 중부 이북을 휩쓸고 지날 모양이다. 시간대별 우리 지역 기상 상황은 늦은 오후에는 해가 그려져 있었다.
아침이면 초등 친구들을 비롯해 몇몇 지기들에게 보내는 시조를 준비했다. “냇물에 둥근 잎이 귀엽고 앙증맞아 / 거기서 피울 꽃이 궁금증 더했는데 / 샛노란 꽃을 피우니 이름값을 하더라 // 물결이 일지 않는 수면에 동동 떠서 / 겉모습 부초 인생 그래도 그럴 수야 / 뿌리는 바닥에 닿아 심지 박고 산다오” 어제 아침 창원천 천변으로 나간 산책길에서 봤던 ‘노랑어리연꽃’이다.
한밤중 빗소리가 들려와 베란다를 내다보다 ‘말린 영지’가 보였다. “활엽수 우거진 숲 참나무 그루터기 / 고사목 밑둥치서 영지가 자라기에 / 장마철 비 그친 틈새 발품 팔아 따왔다 // 베란다 펼쳐 널어 여름내 햇볕 쬐어 / 연 닿은 지기한테 건재로 보내져서 / 약차로 달여 마시면 / 백세 건강 지킬까” 노랑어리연에 이어 내가 숲에서 찾아내 말리는 영지를 글감으로 삼아 남겼다.
아침 시조 두 수를 남겨 놓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한 뒤 일운 스님의 ‘마음 밥상’을 펼쳐 읽었다. 점차 시간이 흐르자 비가 많이 내려도 바람은 그다지 세차지 않았다. 태풍이 제주도 동쪽을 스쳐 우리나라로 가까이 다가옴은 느낄 수 있었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가 전등을 끄고 침대로 가 몸을 뉘어 휴대폰을 켜 평생 정신의학을 연구하고 진료했던 이근후 유튜브를 시청했다.
나이 아흔을 바라보는 이근후는 이시형과 같은 시기 동문 의대를 나와 이화여자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환자를 상담하다 은퇴한 분이었다. 소년기에 해방을 맞아 한국전쟁 혼란기를 거쳐 4·19와 5·16 혁명 때 학생운동으로 감옥에 갇혔고 이후 무의촌 군의관을 지내기도 했다. 일흔 중반 사이버대학에서 문화학을 공부한 학구열이 대단하고 봉사활동과 강연 저술로도 바삐 보냈다.
날이 밝아오자 태풍이 우리 지역으로 근접해 옴을 실감했다. 바람은 심하지 않아도 세찬 비가 베란다 창에 부딪혀 물방울로 맺혔다. 휴대폰에는 행정 당국이 전하는 안전 문자가 연이어 닿았다. 창원대로가 침수되고 몇 군데 지하도 차량 통행을 통제한다고 했다. 부산으로 통하는 창원터널과 마창대교와 거가대교를 비롯해 남해안 일대 대형 교량은 전면 통제에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서울 큰 녀석은 창원 태풍 상황이 궁금해 안부 문자가 와 바람은 심하지 않고 비가 많이 내리는 정도이니 염려 말라는 회신을 보냈다. 두 아들이 일터로 오가는 길이 안전하고 일찍 퇴근해 저녁에 그곳을 지날 태풍을 잘 대비하라 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각 세대 베란다와 계단 통로 문단속을 잘하고 종량제봉투와 음식쓰레기는 태풍 통과 이후에 내려주십사는 방송이 나왔다.
점심나절 가까워지자 비바람 기세는 누그러져 갔다. 거제로 상륙했던 태풍은 대구 대전을 거쳐 저녁 무렵엔 서울을 통과하지 싶다. 태풍은 고수온 해역에서 수증기를 공급받아 세력을 불려 키워서 육지 닿으면 약해진다. 내일 아침이면 개성을 지나 평양에 이르고 저녁에는 신의주에서 열대저기압이 되어 소멸할 테다. 이참에 태풍이 휴전선 너머로 남녘 사회 모습도 전해졌으면 ... 23.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