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열여섯 살 소녀의 왼쪽 금동 귀고리는 찰랑거렸다 귓불에 부딪치는 패금의 귀엣말은 달콤했다 누가 건네주었을까 바꽃의 독즙은 쓰디쓰다고 소녀의 금동 귀고리 하나는 진자 운동 하면서 누군가의 오른쪽 귀로 건너갔고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건 언젠가 나타날 아지랑이의 다른 이름이다 이환(耳環) 모양의 아지랑이는 아직 없다 처음 소녀가 설렘으로 귀고리를 감추었을 때 미열 봉지로 친친 감쌌겠다 왼쪽 금동 귀고리가 꿰찬 빈혈의 몸은 열두 줄 가야 하늘의 속청처럼 푸르다 그래서 봄이란 이름에는 허공으로 올라가는 아지랑이 발자국이 있다 아, 가야금의 기러기발과 비슷하겠다 여름에는 여름 또는 초록이라고도 불렸다 눈이라는 이름에도 고개 돌려 하하 웃었다 별이라는 이름도 실팍했다 금이라는 이름으로도 냉큼 달려갔다 지금 소녀의 명찰은 22-01. 고고학이 만든 숫자이다 아직 부식이 끝나지 않은 이름이기도 하다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4.09.27. -
우리나라에도 신라시대까지는 지위가 높은 자가 죽으면 그를 모시던 사람이 따라 묻히는 순장의 풍습이 있었습니다. 가야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순장 소녀는 무릎을 꿇고 펴고를 반복한 나머지 뼈가 어긋나 있었다고 합니다. 평생토록 고된 노동에 시달린 것도 억울한데 높은 사람이 죽었다고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따라 죽어야 했다니 너무 가혹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가기 위해 난생처음 “금동 귀고리”로 치장을 하고 “독즙”이 든 잔을 받아 마셔야 했던 소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주 아주 먼 훗날 어느 시인이 자신의 이야기로 시를 지었다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최형심 시인〉
HAUSER performing Caruso with London Symphony Orche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