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217장 (구 362장) / 출애굽기 3 : 1 - 12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217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출애굽기 3장 1절 – 12절 말씀입니다.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아멘!
전통적으로 신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입학 조건은 소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성적이나 품행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소명 없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는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명은 소위 성직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직업이 사실상 소명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명 없이도 직업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즐겁고 보람찬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부르심이 아닌 먹고 살기 위해 돈 때문에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소명에 따라 일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 구원의 지도자로 소명을 받고, 소명을 받은 모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언약의 장면입니다. 때는 모세가 40년의 애굽 궁중생활을 마치고 소명없이 스스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나섰다가 살인까지 저질렀지만, 자신의 민족들에게는 거절당했고, 바로는 그를 죽이려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여 거기서 40년간을 양치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명 시내산이라고도 하는 호렙산(현재 명,Jebel Musa / 모세의 산, 2,285m, 해발 1,530m 지점에 모세의 소명을 기념하는 성 캐터린 수도원이 위치함)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지도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습니다.
바로 이 모세가 소명 받는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도 어떻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명을 분별할 수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로, 일상적인 생활에 성실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하는 모든 이들이 일상생활에 성실했었다는 것입니다. 때로 그들은 세속적인 안목으로 보면 별로 성공적인 인생은 아니었어도,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모두 성실하게 일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그날도 밤을 지새우며 성실하게 고기잡이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한 허탈감속에서 새벽을 맞고 있었습니다. “내가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나” - 그만큼 베드로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도 한가롭게 놀다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실성은 모든 사역의 필수적인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가르치신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착하고 충성됨’ - 곧 성실함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경우도 동일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인 소명이 오기 전까지, 그는 그에게 맡겨진 일,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일에 성실했습니다. 그리고 십보라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도 성실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비록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나그네 생활을 했으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감사하며 성실한 삶을 살아 온 것입니다. 소명이 올 때 까지 모세는 묵묵하게 평범한 생활인으로 가장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 소명 받지 못했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삶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날마다를 사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반드시 소명주십니다.
둘째로, 우리가 소명받는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개방해야 합니다. 성실함은 모든 인생을 향한 가장 보편적인 요구입니다만 왜 성실한 사람들이 소명에 응답하는 일에 실패할까요? 소위 일상생활에 빠져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시는 손짓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시는 소명이 와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에 성실하면서도,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42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는 그의 다시 오심을 준비할 것을 가르치시며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깨어 있지 못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이겠습니까? 마태복음 24장 38절 -3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한마디로 바쁜 삶에 빠져버린 나머지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깨어 있는 영성을 준비하지 못한 삶을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삶의 자리에서 깨어 있었습니다. 그는 적어도 하나님이 그의 인생에서 새 일을 시작하시고자 신호를 보내실 때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깨어 있는 영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모든 깨어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범함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움을 본다는 것입니다. 사막에서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는 것이 그것입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고 있었음에도 나무가 타지 않고 있음을 주목한 것입니다. 아마도 자기 민족 이스라엘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모세에게 이 떨기나무의 존재가 자기 민족 이스라엘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애굽 땅 고센에서 모질게 살고 있는 민족의 모습 말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떨기나무에서 기구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태어나자마자 나일 강에 던져진 불행한 출생과 갈대상자의 섭리로, 아직도 이 척박한 사막에서 생존하고 있는 자신이, 불타고 있는 광야의 가시나무의 운명을 너무나 닮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며 깨어 있었습니다. 이런 그의 깨어 있음으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소명 받는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소명에 진지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는 지도자로 소명을 받은 모세는 비로소 하나님의 손짓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할 수 만 있으면 피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4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해서 내 백성을 설득하지 못하겠다고 변명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무슨 말입니까? 내가 너로 필요한 말을 하도록 돕겠다는 것입니다. 또 네 곁에서 너를 대변할 사람 아론을 함께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40년 전의 젊은 모세는 자신 만만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동족들에게 거절당하고, 바로에게 쫓기고, 미디안 광야 목자 생활 40년을 하면서 그는 많은 자신감을 상실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나이 80세에 하나님께서 부르시니 당황했을 것입니다. 첫 애굽의 궁중에서의 왕자로 살았던 모세는 자신이 굉장한 존재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에서 처가살이 목자로 살아가면서 비로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런 모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실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망가지 마십시오. 이제 솔직하게 응답하십시오. 내가 과연 할 수 있느냐 못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모세가 응답했던 것처럼 그냥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여 출애굽의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