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유도사(邦有道仕)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벼슬을 한다는 뜻으로, 세상에 도가 있을 때와 없을 때를 분별하여 의리에 따라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邦 : 나라 방(阝/4)
有 : 있을 유(月/2)
道 : 길 도(辶/10)
仕 : 벼슬 사(亻/3)
출전 : 논어(論語) 第15篇 위령공(衛靈公) 6章
子曰: 直哉라 史魚여 邦有道에 如矢하며 邦無道에 如矢로다 君子哉라 蘧伯玉이여 邦有道則仕하고 邦無道則可卷而懷之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직하다. 사어(史魚)여!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에도 화살처럼 곧으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도 화살처럼 곧았도다. 군자답다. 거백옥(蘧伯玉)이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거두어 속에 감출 수 있도다."
(衛靈公 6)
혼란한 시대를 산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사람들은 현명한 처세술을 알기 원했다. '논어'에 나오는 몇 가지 처세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공자는 자신의 제자 남용(南容)에 대해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버려지지 아니하며, 나라에 도가 없으면 형벌을 면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자기 형의 딸과 혼인을 하게 했다(공야장 1)." 공자의 말을 통해 남용은 능력도 있으면서 동시에 언행에도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공자는 위(衛)나라 대부 영무자(寗武子)의 처세를 높이 평가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무자는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지혜롭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으니, 그 지혜는 따를 수 있으나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공야장 20)."
영무자가 문공(文公) 때에 관직에 올라 능력을 발휘했던 것은 당시 나라에 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성공(成公) 때에는 바른 도가 행해지지 않았다. 이 때 영무자는 목숨을 바쳐 임금을 섬겼다. 이러한 영무자에 대해 공자는 그의 지혜는 따를 수는 있을지언정 그의 어리석어 보이는 충성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이 밖에 공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으며,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세상에 나가 벼슬을 하고, 도가 없으면 숨어야 한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우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는 부귀한 것이 부끄럽다(태백 13)"고 말한다.
이것은 가급적 위태롭고 어지러운 곳은 피해야 하며, 세상에 도가 있을 때와 없을 때를 분별하여 의리에 따라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음모와 술수, 불법이 난무하는 혼란한 시대에 정계에 진출하여 무도한 지도자를 돕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더욱이 그들과 결탁하여 부귀한 생활을 누린다면, 이것은 역사의 부끄러움이 될 것이라는 경고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
공자의 처세법은 부끄러움에 대해 묻는 제자 자사(子思)의 질문에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 녹봉만 받아먹으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도 녹봉만 받아 먹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헌문 1)"고 말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공자는 나라가 혼란한데도 공직에 있으면서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월급만 받는 것은 한갓 자리만 탐내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공자는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말을 당당하게 하고 행실을 당당하게 하지만,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행실은 당당하게 하되 말은 공손하게 해야 한다(헌문 4)"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세태에 순응하고 아첨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혼란한 세상에는 언행을 조심하고 묵묵히 견뎌내 후일을 도모할 수 있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공자는 제(齊)나라의 권력자인 최저(崔杼) 일당이 임금 시해를 공모한 사실을 역사에 기록하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관(史官)이었던 사어(史魚)에 대해 '화살과 같이 곧은' 군자라고 칭송을 했다. 또한 매사에 신중했던 거백옥(蘧伯玉)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공자의 말을 통해 국가공직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처세가 같지 않음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즉 혼란한 시대에 군자가 국가의 공직(公職)을 맡는 것은 자칫 무도한 임금을 도와주는 결과가 될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 논어(論語) 第15篇 위령공(衛靈公)
衛靈公問陳於孔子, 孔子對曰: 俎豆之事則嘗聞之矣, 軍旅之事, 未之學也. 明日遂行.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공자에게 진법(陣法)을 묻자 공자는 "제사에 관한 일은 일찍이 들었거니와 군대에 관한 일은 배우지 못하였다"고 하고, 다음 날 드디어 떠났다.
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
진(陳)나라에 있을 때 양식이 떨어지니, 따르던 자들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였다.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竆乎.
子曰: 君子固竆, 小人竆斯濫矣.
자로(子路)가 성난 얼굴로 공자를 뵙고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고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진실로 궁한 것이니, 소인은 궁하면 넘친다."
제사에 관한 일은 나에게 해당되는 일이기 때문에 '일찍이 들은 적이 있다'고 하였으니, 겸사(謙辭)의 뜻이 있다. 군대에 관한 일은 남에게 속한 일이기 때문에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했으니, 직접 배척한 표현이다.
'맹자'에 "공자의 문도 가운데 제 환공(齊桓公)과 진 문공(晉文公)의 일을 말한 자가 없다"고 한 말과 같은 의미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공자가 군대에 관한 일을 어찌 모르겠는가.
대체로 군자는 진실로 곤궁한 시기가 있지만, 소인은 수많은 부정한 방법을 쓰기에 자연 곤궁할 시기가 없다. 혹 무덤가에 남은 음식을 구걸하여 술에 취하고 배를 채우는 경우도 소인에게는 잘 사는 모양새이니, 소인이 어느 때에 곤궁하겠는가.
子曰: 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공자가 말하기를,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는 자라고 여기느냐?"고 하자,
對曰: 然. 非與.
자공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曰: 非也. 予一以貫之.
공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이치로 모든 사물을 꿰뚫는다."
인재를 가르쳐 성취시킬 적에 득력할 수 있은 가능성을 보게 되면 그것이 즐거운 일이니, 참으로 '맹자'에 "천하에 왕 노릇함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산을 오르는 자가 한 걸음씩 가다가 정상에 가까이 이르러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위로 초월할 수 있는데 그때 내가 즉시 손을 잡아 끌어 올려 준다면 그 얼마나 쾌활한 일인가.
증자(曾子)와 자공(子貢)이 몸이 가벼워지고 힘이 경쾌해지며 정신이 맑아지고 뜻이 쾌활해져 마치 해가 솟아 나와 하늘이 열리는 광경을 본 정도뿐만이 아니었다.
공자도 정신이 화락하고 기분이 흐뭇해지며 행동이 가볍고 마음이 기뻐서 마치 비가 내리자 꽃이 활짝 핀 경치를 본 것과 같았으니, 무슨 즐거움이 이와 같았겠는가.
애석하게도 자공이 "예!"라고 대답하지 못했으니, 이는 그가 터득한 수준이 극진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공이 아는 수준은 증점(曾點)이 대의(大意)를 본 정도와 같다.
子曰: 由. 知德者鮮矣.
공자가 말하였다. "유(由)야! 덕을 아는 자가 드물다."
사람이 서로 비슷한 경지가 아니면 잘 알 수가 없다. 모든 장인의 기예 역시 그러하니, 더구나 현자에 대해서이겠는가. 사람의 재능도 서로 비슷한 이후에야 알 수 있으니,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재능 있는 자가 재능을 알아보는 정도는 참으로 아는 경지가 아니다. 대체로 안다는 것은 피차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고 빈궁과 영달에도 한결같으며 삶과 죽음이 서로 연관되어야만 참으로 아는 경지가 된다.
그러므로 한갓 재능만을 가지고 안다고 할 때에는 시기심과 괴리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반드시 덕이 재주보다 더 높아야 남과 자신이 하나가 될 수 있다.
대체로 덕의 경우 국량을 겸하기 때문에 서로 아는 것이 더욱 어렵다. 의리가 온전히 갖추어져 터럭 하나라도 흠결 없이 자득한다면 국량이 천지와 함께 광대하여 남과 자신이 융화되어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요(堯) 임금만이 순(舜)을 알아보았고, 순만이 요 임금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가령 구관(九官)과 십이목(十二牧) 모두가 요순을 성인으로 여겼지만, 덕이 조금 부족했기에 순이 요 임금을 알아본 것보다는 못했다.
공자의 삼천 제자 모두 공자를 성인으로 여겼지만, 공자를 제대로 알아본 칠십 명의 제자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칠십 명의 제자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섬겼지만, 공자를 진정 아는 안자(顔子)와 증자(曾子)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저 자로(子路)가 어찌 기쁜 마음으로 성인에게 복종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끝내 그의 거친 성품으로 인해 성인을 깊이 알 수가 없었다. 공자가 특별히 자로를 불러 덕을 아는 자가 드물다고 말해 준 것은 그 이유가 있다.
당시 거백옥이 60세에 60년 동안의 잘못을 알아 변화시켰으니, 어찌 현인이 아니었겠는가. 하지만 덕을 아는 자라고 일컫기에는 미진한 점이 있으니, 더구나 다른 사람에 있어서이겠는가.
중국 삼국 시대 영웅호걸 중 제갈공명을 알아본 사람은 오직 주유(周瑜) 뿐이었는데 주유가 덕이 없어 분통이 터져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자기를 제대로 아는 벗을 만나기 어렵다는 말이 어찌 진실로 맞는 말이 아니겠는가.
子曰: 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
공자가 말하였다. "무위(無爲)로 다스리신 분은 순 임금이실 것이다. 무엇을 하셨겠는가. 몸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남면을 하였을 뿐이다."
삼황(三皇) 같은 성인이라도 인위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혼돈의 초창기에서 다스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 임금의 경우 그의 성(聖)이 무위(無爲)로 다스리기에 부족하거나, 그의 덕이 몸을 공손히 바르게 하고 남면(南面)하기 부족한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인위적 행위에 연연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천지에 교화를 오히려 다 펼치지 못했고, 모든 사람과 만물이 살아가는데 오히려 막힌 측면이 있어 약간의 인위적인 행위를 했을 뿐이니, 요 임금 시대에 홍수를 대처하기 위한 내용을 보면 또한 알 수 있다.
순 임금은 요 임금의 뒤를 계승하여 전장(典章)이 구비되었고 팔원(八元)과 팔개(八凱)가 각기 직분을 담당 하였으니, 마치 오행(五行)과 사시(四時)가 하늘의 기운을 펼치고 있는데 하늘이 무위(無爲)한 경우와 같다. 만고(萬古)를 통틀어 무위한 자는 과연 순 임금이다.
쌍봉 요씨(雙峯饒氏)가 "근심이 없으신 분은 오직 문왕이라고 한 말과 서로 비슷하다"고 하였으니 제대로 안 것이다. 훗날 이를 본받고자 하는 제왕이 어찌 인재를 얻는 것을 급선무로 삼지 않겠는가.
子張問行,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 行乎哉. 立則見其參於前也 在輿則見其倚於衡也 夫然後行.
자장이 행해짐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말이 충신(忠信)하고 행실이 독경(篤敬)하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거니와 말이 충신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경하지 못하면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이라고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겠는가. 서 있으면 그것이 앞에 참여함을 볼 수 있고, 수레에 있으면 그것이 멍에에 기댐을 볼 수 있어야 하니, 이와 같은 뒤에야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충신과 독경은 아무리 경황이 없는 중에도 반드시 행하는데, 서 있는 경우와 수레에 있을 경우를 언급한 이유는 '행(行)' 자를 가지고 말했기 때문이다. 서 있는 것은 행할 때의 시작이고, 수레는 행할 때 사용하는 물건이다.
배우는 사람이 자기 몸을 지키는 데 독실하지 않으면 동(動)할 때의 공부가 늘 정(靜)할 때에 적용되지 못한다. 만약 충신과 독경을 잊는다면 비록 서 있거나 수레에 있더라도 어디를 갈 수 있겠는가.
서 있으면 참여함을 볼 수 있고 수레에 있으면 멍에에 기댐에서 볼 수 있다는 말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때에도 계신(戒愼)하고 공구(恐懼)함이 여기에 있다는 뜻이니, 이른바 "잠시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念念不忘, '늘 생각하며 잊지 않으려고 한다'는 네 글자는 설명이 극진하니, 정자(程子)의 말은 바로 성인을 배우는 온전한 공부이다.
子曰: 直哉. 史魚. 邦有道如矢, 邦無道如矢.
공자가 말하였다. "정직하다, 사어여!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도 화살처럼 곧으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도 화살처럼 곧도다."
화살처럼 곧다는 '여시(如矢)' 두 글자는 사어(史魚)의 사람됨과 성정(性情)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
君子哉. 蘧伯玉. 邦有道則仕, 邦無道則可卷而懷之.
군자답다. 거백옥이여!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거두어 감출 수 있구나.
거백옥이 처신하기 어려운 경우는 거두어 감추어 두는 데에 있었다. 거백옥은 결코 자신을 거두어 감춘 적이 없었지만, 그의 행동은 거두어 감출 수 있는 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可)' 자를 썼다.
대체로 행하는 것은 순조롭고, 거두어 들이는 것은 거스르기 때문에 사람의 근심이란 항상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 모르는 데에 있다.
子曰: 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知者不失人, 亦不失言.
공자가 말하였다. "말할 만한데도 더불어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 것이요, 말할 만하지 못한데도 더불어 말한다면 말을 잃는 것이니,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잃지 않고 말도 잃지 않는다."
차라리 사람을 잃을지언정 실언(失言)해서는 안 되니, 실언한 피해는 사람을 잃는 잘못보다 크다. 하지만 사람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야 실언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지혜로운 자라는 말로써 통괄한 것이다.
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공자가 말하였다.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살겠다고 인(仁)을 해침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경우는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는 인이기 때문에 인이 없어지면 산 사람도 죽은 것과 같다. 새나 짐승처럼 숨 쉬고 먹는다고 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인으로써 사람다움을 삼는 점을 어리석은 자는 의혹스럽게 여긴다.
사람이 사람다운 이유는 단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 오장육부와 혈육은 마음을 감싸고 있는 상자일 뿐이다. 마음을 상실하면 개나 돼지의 오장육부와 별반 차이가 없다. 인은 바로 마음이 마음답게 되는 원리이기 때문에 군자가 이를 중요시한다.
군자가 인을 상실하면, 개나 돼지 같은 고깃덩어리가 다니는 꼴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마음이 죽으면 죽은 것이지, 혈육이 살았다고 해서 산 것은 아니다.
또 혈육이 있는 몸뚱이는 반드시 한 번 죽기 마련이니, 군자가 차마 자신을 죽임으로써 개나 돼지 같은 육체를 살리려고 평생 동안 오명을 어찌 남길 수 있겠는가. 이 이치는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러므로 인을 해치지 않아야 인을 이룬다.
내 마음의 온전한 덕은 천지의 온전한 본체이다. 군자는 천지를 위해 그 마음을 아끼니, 인을 이루고 죽는다면 천지와 같이 유구토록 나도 죽지 않는 것이다. 군자는 오래 살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인을 이루고, 소인은 살려고 연연하는 욕구가 무겁기 때문에 항상 죽은 것과 같다.
'하나의 옳음을 성취할 뿐이다(成就一箇是)'고 하니, 훌륭하다, 이 말이여. 군자는 천지를 위해 마음을 사랑하고 천하를 위해 올바름을 아끼니, 올바름이 보존되면 내가 보존된다.
子貢問爲仁, 子曰: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居是邦也 事其大夫之賢者 友其士之仁者.
자공이 인의 실천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공인이 맡은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연장을 예리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니, 이 고을에 살면서 현명한 대부를 섬기며, 어진 선비를 벗 삼아야 한다."
공인이 연장을 예리하게 만들지 않으면 아무리 정교한 생각이 있더라도 기술을 제대로 발휘해서 그 일을 이룰 수 없다. 선비에게 스승과 벗이 없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자질이 있더라도 적절히 자질을 마름질해서 그 덕(德)을 완성할 수 없다.
현명한 대부를 섬기면 조심하고 경외심을 갖게 되며, 어진 선비를 벗하면 자신의 허물을 듣고 선에 대해 토론한다. 인이 예리한 연장이 되는 역할 중 어떤 것이 이보다 더 낫겠는가.
현(賢)은 지위를 가지고 말한 것이고, 인(仁)은 덕의(德義)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대부는 하는 일이 드러나고 지위가 높아 그를 섬기면, 조심하고 삼가며 감히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게 된다.
어진 선비는 덕의가 있고 학문이 익숙하고 정밀하여 그를 벗 삼게 되면 자신이 가까이에서 깊이 힘입게 된다. 이는 참으로 극기복례하는 예리한 연장이다. 지금 배우는 자는 권세를 좇아 말재주와 아첨만을 좋아하여 할 수 없이 말과 얼굴빛을 곱게 하니, 더구나 인을 제대로 행할 수 있겠는가.
顔淵問爲邦, 子曰: 行夏之時, 乘殷之輅, 服周之冕, 樂則韶舞, 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佞人殆.
안연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하(夏)나라의 책력을 행하며, 은(殷)나라의 수레를 타며 주(周)나라의 면류관을 쓰며, 음악은 소무(韶舞)를 할 것이요, 정(鄭)나라 음악을 추방하며 말재주 있는 사람을 멀리해야 할 것이니, 정나라 음악은 음란하고 말재주 있는 사람은 위태롭다."
안연이 나라 다스리는 방도에 대해 물었는데 공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방도를 말해 주었다. 스승과 제자 간에 진정 마음을 알아주었으니, 즐거운 일이다.
만약 안연의 질문이 없었다면 공자의 이러한 말씀도 없었을 테니, 사대(四代)에 덜고 더한 제도에 대해 후세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이른바 "만고토록 어리석은 자들을 깨우쳐 주네(萬古開群蒙)"라는 말이다.
하나라의 책력, 은나라의 수레, 주나라의 면류관이 어떻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하나라 정월은 인(人)을 사용한다. 인도(人道)의 원리는 충(忠)이기 때문에 하나라에서는 충을 숭상하였다. 충은 인생의 실리(實理)이니, 이 이치가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다. 모든 명령, 행사, 제도, 법률이 인(人)에서 중요한 의미를 취했기 때문에 인통(人統)이 된다.
은나라 정월은 지(地)를 사용한다. 지도(地道)의 원리는 질(質)이기 때문에 은나라에서는 질을 숭상하였다. 질이란 인도의 실체이니, 실체가 없다면 도가 그 어디에도 붙을 수가 없다. 모든 명령, 행사, 제도, 법률이 지(地)에서 중요한 의미를 취했기 때문에 지통(地統)이 된다.
주나라 정월은 천(天)을 사용한다. 천도(天道)의 원리는 문(文)이기 때문에 주나라에서는 문을 숭상하였다. 문이란 실체의 광채이니, 이 문이 없으면 실체를 꾸밀 데가 없게 된다. 모든 출령, 행사, 제도, 법률이 천에서 중요한 의미를 취했기 때문에 천통(天統)이 된다. 성인은 나라를 혁명(革命)에 마음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변경하려고 한 것이다.
당우(唐虞) 이전 시기는 혼돈 상태에서 겨우 열렸더라도 삼재(三才)의 도(道) 전체가 혼연하니, 대갱(大羹)과 현주(玄酒) 같았다. 우하(夏禹)가 천하를 다스리면서부터 더욱 하늘이 열리고 땅이 넓어지고 사람이 많이 살게 되어 인위적인 다스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소금이나 매실을 넣지 않으면 육읍(肉湆; 맛을 내지 않은 고깃국)을 평상시 먹을 수 없었고, 누룩이나 엿기름을 넣지 않으면 정화수(井華水)를 평상시 마실 수 없었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데 지향점이 없지 않게 되었다.
사람에게 보존된 것으로는 마음이 중요하니, 마음을 극진히 다한 뒤에야 인도가 확립된다. 그러므로 하나라에서 충(忠)을 숭상하였다. 충의 폐단이 지나치게 절박하고 경직되었기 때문에 은나라는 충을 바탕으로 하면서 그 폐단을 중후함으로 해결하고자 질(質)을 숭상하였다.
질은 참되고 소박하여 겉모습을 꾸미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촌스러운 폐단이 생겼기 때문에 주나라는 질을 바탕으로 하면서 거기에 문식을 더하였다.
실제로 충을 다 변혁하고 질을 숭상한 것이 아니고, 질을 다 변혁하고 문을 숭상한 것이 아니다. 그 근본을 바탕으로 말단의 폐단을 해결하였다.
만사와 만물에 문과 질이 갖추어져 찬연히 볼만하였다. 숨김없이 밝게 드날리는 천지인(天地人)의 도, 빛나고 밝은 해와 달, 우뚝 솟아나고 흘러가는 산천, 빼어난 정기를 머금고 살아 꿈틀거리는 초목, 벌레, 금수, 오랑캐가 모두 형체와 실정을 드러내고, 예악과 교화 가운데에서 문채를 드날리니, 이것이 이른바 "찬란하도다, 그 문화여" 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의 폐단은 너무 화려함을 추구하다가 충을 없애고, 너무 사치함을 추구하다가 질을 없애기에 도리어 충과 질의 폐단만도 못한 데에 이르렀다. 성인이 또 이를 이어 받았다면 앞으로 무엇을 숭상해야겠는가.
충은 삼재(三才)의 마음이고, 질은 삼재의 본체이고, 문은 삼재의 문채이다.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삼재의 도가 온전한 모습이 된다. 이외에 다른 방도는 없으며, 다만 삼통(三統)을 바탕으로 덜거나 더할 뿐이다. 그러나 위대한 성인이 아니라면 다시 덜거나 더해서 이치에 합치할 수 없다.
공자가 마침내 각각의 근본을 거론하면서 하나라의 책력을 행할 것을 말했으니, 그 의미는 바로 근본에 돌아가고자 충을 위주로 한 것이다. 충이란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충이 아니면 어떻게 질이 되며, 어떻게 문이 되겠는가.
다만 한쪽만을 숭상하여 폐단을 발생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통(人統) 중 가장 타당한 것을 취하여 하나라 책력을 사용한 것이다. 충과 관계된 법령과 제도는 덜거나 더해서 유추할 수 있다. 이미 충을 위주로 하였다면 거기에는 질이 있다.
그러므로 지통(地統) 중 가장 타당한 것을 취하여 은나라 수레를 사용한 것이다. 수레는 물건을 싣고 땅을 지나가는 물건이니, 질을 바탕으로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질과 관계된 법령과 제도를 덜거나 더해서 유추할 수 있다. 이미 질이 있다면 문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천통(天統) 중 가장 타당한 것을 취하여 면류관을 사용한 것이다. 면류관은 머리에 쓰고 제사를 행하는 복장이니, 문을 바탕으로 해도 좋기 때문이다. 문과 관계된 법령과 제도는 덜거나 더해서 유추할 수 있다.
책력, 수레, 면류관 세 가지 사물로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덜거나 더함을 유추할 수 있는 사람은 안연만이 공자의 취지처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책력으로 백성에게 질서를 이루게 하니, 인통이고, 수레로 땅을 다니니 지통이고, 면류관으로 하늘을 형상하니 천통이다. 성인의 말씀이 이치에 합치되어 역시나 이처럼 자연스럽고 구차하지 않다.
음악은 공덕(功德)을 형상하니, 정치가 안정된 이후에야 음악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소무(韶舞)가 뒷부분에 있다. 이는 '우서(虞書)'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기(夔)에게 명한 내용이 뒷부분에 있는 뜻과 같다.
천하가 이미 평안하여 화락이 극도에 달하면 사람의 마음이 쉽게 안일해지는데, 정(鄭)나라 음악이나 말재주 있는 자는 안일함을 틈타서 침입하는 도적이다. 반드시 이를 추방하여 멀리한 뒤에야 공업(功業)을 오랫동안 보전할 수 있다.
정나라 음악과 말 잘하는 자를 추방하거나 멀리할 수 없으면 아무리 삼대의 아름답고 밝은 제도를 덜고 더했더라도 제때에 실행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끝을 맺었으니, 바로 '우서'에서 순 임금이 끝에 신하인 용(龍)에게 명하였던 말과 '주역'에서 기제(旣濟)의 종결에 경계하는 뜻이다.
또한 삼대의 제도가 다 행해진 이후에야 비로소 아첨하는 이를 멀리하고 정나라 음악을 추방하라는 말은 아니다. 제(齊)나라 여악(女樂)이 노나라 교(郊)에 들어오자 공자가 떠나갔고, 장창(臧倉)이 군주 측근에 있으면서 맹자와 노나라 군주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 바로 극기와 복례의 공부가 두 가지를 나란히 행해야 하는 것과 같다.
子曰: 已矣乎. 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공자가 말하였다. "어쩔 수 없구나! 내 덕(德)을 좋아하기를 여색을 좋아하듯이 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어쩔 수 없구나'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표현으로, 통절한 뜻이다.
子曰: 臧文仲 其竊位者與. 知柳下惠之賢而不與立也.
공자가 말하였다. "장문중(臧文仲)은 그 지위를 도적질한 자이다. 유하혜(柳下惠)의 어짊을 알고서도 함께 조정에 서지 아니하였구나!"
공자의 말씀은 박절하지 않은데 '지위를 도적질한 자'라고 직접 지적해 말한 까닭은 어진 이를 등용되지 못하게 가리는 행위보다 더 큰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득이 직접 지적함으로써 세상을 깨우치려 한 말씀이다.
'함께 조정에 서지 아니하였구나(不與立)'라는 세 글자는 장문중의 샘내고 미워하는 심정을 제대로 표현하였으니, 부월(斧鉞)에 처한 형벌보다도 엄하다. 어진 이를 이끌어 등용하지 않는 이유는 단지 자신과 가까이에서 나란히 함께 서는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도둑질하여 몰래 차지하고 있다(盜得而陰據之)'는 주석은 못된 장문중의 심사(心事)를 그림처럼 잘 표현했다. 여기서 이 '지(之)' 자가 더욱 절실하다.
子曰: 躬自厚, 而薄責於人, 則遠怨矣.
공자가 말하였다. "몸소 스스로 책하기를 많이 하고, 남을 책하기를 적게 한다면 원망이 멀어질 것이다."
당연히 '자신을 많이 자책하고 남을 적게 책해야 한다(厚責於躬而薄責於人)'고 말해야 하는데 '몸소 스스로 책하기를 많이 하고(躬自厚)'라 하였으니 어째서인가.
군자는 자책할 뿐만 아니다. 힘써 노력하고 수신(修身)하면서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않는 까닭은 스스로 극진히 실천하기만을 도모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 '자(自)' 자는 인(仁)을 행하는 것이 자기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다. 이 '후(厚)' 자는 많이 자책할 뿐만 아니라 나의 덕성을 후하게 한다는 뜻이 그 안에 내포되어 있다.
군자는 오로지 원망을 멀리하기 위해서만 수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원망은 사람이라면 싫어하는 말이기 때문에 이를 언급하여 깨우쳐 주려고 한 것이다. 이와 반대라면 원망이 많을 것이다.
子曰: 不曰如之何如之何者, 吾末如之何也已矣.
공자가 말하였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하고 말하지 않는 자는 나도 어찌할 수 없을 뿐이다."
'어찌할까'를 거듭 말씀한 것은 눈 깜빡할 사이에도 마음속으로 잊은 적이 없고 감히 나태하지 않다는 뜻이다. 옛 성인이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날마다 부지런히 힘쓸 것을 생각하며,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하고 잠을 자지 않고 아침을 기다리며 밥 먹을 겨를도 없는 것이 모두 '어찌할까, 어찌할까'는 의미이다.
공자가 큰 허물은 이제 없게 할 수 있다는 말과 증자의 이제야 근심을 면하게 되었다는 말은 '어찌할까'의 최종적인 공부의 경지이다. '주역'에 "망할까, 망할까(其亡其亡)"는 말도 '어찌할까'는 의미와 같다.
몸을 수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경우에도 만일 '어찌할까, 어찌할까' 라고 하면서 애쓰지 않으면 혼란과 멸망이 즉시 들이닥칠 것이다.
子曰: 群居終日, 言不及義, 好行小慧, 難矣哉.
공자가 말하였다. "여럿이 종일토록 함께 지내면서 의리를 언급하지 않고 작은 지혜를 행하기 좋아한다면 환란이 있을 것이다."
의리를 언급하지 않으면 살고 있는 고장에서도 그 말을 실천할 수 없고, 작은 지혜를 행하기 좋아한다면 집안도 보전할 수 없다.
子曰: 君子, 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의(義)를 바탕으로 삼고, 예(禮)로써 이를 행하며, 겸손으로써 이를 내고, 신(信)으로써 이를 이루니, 이것이 군자이다."
인(仁)을 말하지 않고 의(義)와 예(禮)만 거론한 것은 실행을 위주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마음의 덕이 온전하지 못하면 의와 예가 어디에서부터 나올 수 있겠는가.
子曰: 君子, 疾沒世而名不稱焉.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종신토록 자신의 이름이 일컬어지지 못함을 싫어한다."
군자는 이름이 나는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이름만 나도록 힘쓰지는 않을 뿐이다. 내실이 있으면 반드시 이름이 알려지게 되는 현상은 이치상 당연하다.
만일 내게 내실이 있는데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다면 또한 어찌 덕(德)을 귀하게 여기겠는가. 그 덕 역시 쓸모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광채가 사방에 입혀지고(光被四表), 숨겨진 덕이 위로 올라가 알려지며(玄德升聞), 명성과 교화가 사해에 다 미친다(聲敎訖四)는 것은 요(堯), 순(舜), 우(禹)의 명성을 나타낸 말이다.
임금을 기다렸는데 오시고(徯后后來), 그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며(不隕厥聞), 화하(華夏)와 만맥(蠻貊)이 모두 따른다(蠻貊率俾)는 것은 성탕(成湯), 문왕(文王), 무왕(武王)의 명성을 나타낸 말이다.
벗이 멀리에서 찾아오고(有朋自遠), 입신양명(立身揚名)하며, 은은하되 날로 드러나고(闇然日章), 어질다는 이름이 알려진(仁聲入人) 것은 공자, 증자, 자사, 맹자의 명성을 나타낸 말이다.
성현이 인의와 도덕을 닦아 실제로 몸에 터득하였는데 세상에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고 초목처럼 썩어 간다면 진실로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에 사람들을 선(善)하게 할 수 있고, 세상을 구제할 수 있으며, 만세토록 전수하여 몽매한 사람들을 깨우칠 수 있다.
이름이란 참으로 성현이 소중하게 여기는 대상이다. 이름을 중시하기 때문에 도(道)를 더욱 독실하게 닦고 선을 더욱 힘써 실천하니, 모두 알려질 만하게 되기를 구하는 이유이다. 알려지면 이름이 난다.
이름만을 추구하는 소인은 한갓 남이 자신을 칭송하는 것을 기뻐할 줄만 알아 그 칭송을 빨리 취하려고 하니, 내실을 힘쓰면 이름이 저절로 찾아온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내실 없이 이름만을 추구하는 자는 이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이 있다고 하더라도 즉시 손상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만 추구하는 자는 이름이란 존귀할 만한 대상임을 참으로 모른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음을 참으로 싫어하는 사람은 남에게 구하지 않고 자기에게서 스스로 구한다. 불행히 성현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또한 마을에서 뛰어난 선비 정도는 될 수 있어 오히려 금수의 나락으로 떨어져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또 성현이 오래 살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당연한 이치이니 구차히 모면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또한 도교와 불교처럼 망녕되이 삶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오래 사는 방도로는 마음의 덕을 온전히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도는 없다. 마음의 덕이 온전히 보전되면 만고에 죽지 않는 것이다.
공자가 '종신토록 이름이 일컬어지지 못함을 싫어한다'고 말한 것은 나의 마음이 세상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싫어한 것이다. 마음은 이름의 주인이다.
子曰: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
군자와 소인을 서로 대비하여 거론한 대목이 많은데 그 마음을 미루어 지극히 논해 보면, 자신을 돌이켜 보느냐, 남에게 요구하느냐이다.
소인의 마음에는 효도하지 않으면서도 부모에게 자애로움을 바라고, 자애롭지 않으면서도 자식에게 효도를 바라며, 우애하지 않으면서도 아우에게 공경을 바라고, 공경하지 않으면서도 형에게 우애를 바란다.
생업에 힘쓰지 않으면서 남에게 재물을 바라고, 능력을 개발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관직을 바라며, 선행을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칭찬을 바라고, 잘못을 고치지 않으면서 남에게 험담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매사에 하늘과 사람을 어기면서 구차하고 간사하게 속임수를 써서 마침내 교만하고 편안하지 못하며, 패거리 짓고 보편적으로 친하지 못하며, 부화뇌동할 뿐 화합하지 못해 늘 원망하거나 탓한다.
군자의 경우 가까이 친족으로부터 멀리 만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들을 자신에게 돌이켜 구하고 남에게 바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이 온전히 완성되어 하늘이 곤궁하게 할 수 없고, 남이 굽힐 수가 없고, 만물도 그 사람에게 더해 줄 수가 없다. 몸은 죽더라도 도(道)는 죽지 않고, 몸은 부러져도 이름은 훼손되지 않아 천지와 더불어 유구하게 전해질 것이다.
子曰: 君子, 矜而不爭, 群而不黨.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씩씩하되 다투지 않으며, 어울리되 패거리 짓지 않는다."
군자는 공경하기 때문에 씩씩하고, 배려심을 행하기 때문에 다투지 않으며, 구비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어울리고, 사심으로 친애하지 않기 때문에 패거리 짓지 않는다.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공이 묻기를 "한마디 말로써 종신토록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고 하자, 공자가 말하였다.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의 도리는 인(仁)에서 극진해진다. 종신토록 실천할 만한 일을 물으면, 당연히 인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인은 심오하니, 어느 곳에서부터 착수하여 실천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배려심(恕)'이라는 글자를 끄집어내고 또 '서'를 행하는 방도를 말하였다. 만약 '서'를 제대로 실천한다면, 인을 극진히 다할 수 있다.
대체로 사람의 도리는 홀로 살아갈 수 없고 반드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해서 살아간다. 사람을 필요로 해서 생활해 가니, '서'가 아니면 하루도 살 수가 없다.
가까이는 부자, 부부, 형제로부터 멀리는 중화와 오랑캐까지, 세세하게는 금수와 초목까지 '서'를 행하면 모든 관계에서 그 합당함을 얻게 될 것이고, '서'하지 못하면 어긋나 동떨어지고 어지럽혀져 망하게 된다. 그렇다면 종신토록 행하는 것이 어찌 '서'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의 이익이 되더라도 하지 않는 사람은 홀로 사는 자이니, 어찌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정수리부터 갈아 발끝에 이르더라도 행하는 일을 인(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웃집의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와 동일하게 본다면 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이웃집 아버지같이 여기는 꼴이다. 이는 심하게 '서'하지 않는 경우이니, 어찌 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
공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도(道)를 넓혀 크게 할 수 있지, 도가 사람을 넓혀 크게 하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사람이 도를 넓힌다면 도가 자기에게 있어 그 사람이 군자가 되니, 그럼 도 또한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닌가"고 말한다.
도는 형체가 없으니 사람이 도를 행하지 않으면 도는 소리도 냄새도 없는 상태에서 은미해진다. 사람이 체득하여 마음에 싣고, 이를 확장하여 실제 일에 시행한 이후에야 도가 비로소 밝게 드러나니, 바로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다.
사람이 처음 태어났을 때 도와 함께 본체가 되어 조그마한 흠결조차도 없다. 사람이 도를 터득했다면 이는 태어났을 때의 본체를 온전히 할 뿐이고, 본분에 털끝만큼도 더한 것이 없으니,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성(性)은 그 마음을 검속할 줄 모른다(性不知檢其心)'는 구절은 공부하는 측면에서 말해 배우는 자를 깨우치게 한 것이다.
子曰: 過而不改, 是謂過矣.
공자가 말하였다. "허물을 짓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를 허물이라고 한다."
위의 '과(過)' 자는 착오라는 의미의 '과' 자이고, 아래의 '과' 자는 허물이 이루어져 잘못이 된 것이다. "이것이 잘못이다"고 말해야 하는데 "이를 허물이라고 한다"고 말한 이유는 어째서인가.
보통 사람의 생각은 언제나 제 허물을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고 싫어하여 잘못을 저지르고 만다. 그러므로 싫어하는 바를 통하여 극언하기를 "이를 허물이라고 한다"고 하였으니, 그 뜻이 매우 절실하도다.
'장차 고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將不及改)'는 네 글자가 매우 좋다. 또 허물을 고치지 않는 사람을 깨우쳐 추후에 고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다. 허물을 저지른 자가 만약 공자의 말씀을 통해 깨우치고 두렵게 여겨 이후에 고친다면, 허물이 잘못으로 되었더라도 도리어 허물이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장(將)' 자와 '급(及)' 자를 제시하여 사람을 경계하니, 마치 높은 낭떠러지 바로 옆에서 아슬아슬 떨어질 상황에서 주의를 주어 살펴 깨닫게 한 경우이다.
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以思, 無益, 不如學也.
공자가 말하였다. "내 일찍이 종일토록 밥을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생각해 보았는데, 무익하였다. 배우는 것만 못하였다."
배우지 않고 생각만 하는 것은 치지(致知)하지 않고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하려는 격이다. 공자 역시 세상에 선학(禪學)이나 육학(陸學) 같은 무리가 있을까 걱정했기 때문인가.
고요하게 마음을 보존하고, 묵묵히 사색하면 터득할 수 있을 듯 여기기 때문에 빨리 이루고자 하는 자는 성인(聖人)이 생각해서 터득했다고 잘못 여기고, 생각에만 마음을 쓰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므로 범범하게 말하지 않고 곧장 '나'라고 칭하였다. 또 '밥을 먹지 않으며 잠을 자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그 공력을 증명하는 한편, 무익하다고 단정했으니, 그 뜻이 매우 절실하다.
'다만 이러한 말씀을 남겨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였다(特垂語以敎人)'고 한 말은 바로 공자의 본뜻이다.
子曰: 君子, 謀道不謀食. 耕也餒在其中矣, 學也祿在其中矣, 君子, 憂道不憂貧.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도(道)를 도모하지 먹을 것을 도모하지 않는다. 밭을 갈아도 굶주림이 그 가운데 있고, 학문을 해도 녹(祿)이 그 가운데 있으니, 군자는 도를 걱정하고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는다."
'모(謀)' 자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리저리 생각함을 말한다. 농사지어 먹을 것을 도모하지만 굶주림이 그 가운데에 있고 - 원문 빠짐 - 먹을 것을 도모했는데도 굶주림을 혹 벗어나지 못한다면, 도(道)를 상실하고 먹을 것도 상실하니, 이는 둘 다 잃는 경우이다.
도를 도모하여 사리에 따라 녹을 받는다면, 이는 둘 다 얻는 셈이다. 간혹 이치가 변하여 녹을 받지 못하더라도 도는 나에게 있으니, 하나를 얻음이 둘을 잃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가난하지 않을 수 있는 방도는 원래 자기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다. 끝까지 가난을 면치 못하더라도 가난은 바로 선비의 일상사이니, 무슨 걱정을 하겠는가.
하지만 해진 솜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는 것은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일이고, 좋은 밥상과 가죽옷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이니, 어찌 가난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군자는 걱정하지 않으니, 과연 보통 사람의 심정이 아니다.
금수 같은 생존이란 모두 따뜻하게 살고 배부르게 먹는 일만을 추구한다. 단, 예의가 없고 식견이 없기 때문에 결국 금수에 그치고 만다.
사람답게 사는 이유는 마음에 하늘의 덕이 있기 때문이니, 하늘의 덕이 온전하면 사람이지만, 하늘의 덕이 없으면 금수가 된다. 하늘의 덕이 있고 없고는 따뜻하고 배부른 생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은 도(道)에 있지, 가난에 있지 않다.
만약 도를 보전하면서 따뜻하고 배부른 생활을 겸하게 된다면, 군자 역시 당연히 기뻐할 것이다. 다만 따뜻하고 배부른 생활은 천명(天命)에 달려 있으니, 사의(私意)로 아무리 구하려 해도 얻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나에게 달려 있는 마음의 덕을 추구할 뿐이다.
그리하면 군자의 계획은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정도의 말은 옛날 어진 사람의 경우에는 애당초 급급히 얽매이지 않았던 수준인데 말세의 풍조에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진 상황이기에 상세히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子曰: 君子, 不可小知而可大受也. 小人, 不可大受而可小知也.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작은 일로는 알 수 없으나 큰일을 맡을 수가 있고, 소인은 큰일을 맡을 수는 없으나 작은 일로는 알 수 있다."
군자에 대해 작은 일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은 공자가 "어느 한 가지로 이름을 낸 것이 없다"는 말이다. 소인에 대해 작은 일로는 알 수 있다는 것은 성탕(成湯)이 "사람을 인정하되 구비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과 상통한다.
子曰: 民之於仁也, 甚於水火, 水火吾見蹈而死者矣, 未見蹈仁而死者也.
공자가 말하였다. "백성들이 인(仁)에 대하여 그 관계가 물과 불보다도 심하니, 물과 불은 밟다가 죽은 사람을 내가 보았거니와 인을 밟다가 죽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
인(仁)이 물과 불보다도 필요하다는 말을 어느 백성이 믿겠는가. 하지만 인을 밟다가 죽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말하니, 그 증거가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살신성인(殺身成仁)과 함께 보고 그 의리를 살핀 이후에야 어리석은 자는 의혹을 풀 수 있을 것이다.
'물과 불이 없으면 사람의 몸을 해치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한 구절은 의리를 다 설명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살신성인의 의미가 있는 이유이다.
'불인하면 본심을 잃는다(不仁則失其心)'는 한 구절은 다른 말 필요 없이 '심(心)' 자를 높이 거론하여 천하에 바뀔 수 없는 사물을 만들었으니, 비속한 사람은 단지 깜짝 놀라 울면서 달아날 지경이다.
'단수화(但水火)'에서 부터 아래로 '무자야(無者也)'에 이르기까지 곧장 '인(仁)' 자를 설명함으로써 공자의 말씀에 드러나지 않았던 의미를 드러냈고, 특별히 '황(況)' 자를 써서 증거 자료로 맺었으니, 이는 바로 노파가 손자를 염려하는 간절한 마음이고, 진흙에 들어가고 물속에 뛰어들어서 사람을 건져 내는 말씀이다.
子曰: 當仁, 不讓於師.
공자가 말하였다. "인(仁)을 담당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군자는 일에 있어 끌어다가 스스로 담당한 것이 없고, 오직 임금에게 관직을 받으면 이를 자신의 임무로 삼는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을 헤아려 담당해야 관직 또한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치수(治水)를 스스로 담당했던 곤(鯀)과 같은 경우는 또한 불가하다.
인(仁)을 실천하는 경우는 나의 본분이니, 공력이 어떠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큰마음으로 곧장 앞으로 나아가 담당하여 행해야만 얻을 수 있다.
대체로 양보란 모두 다툼이 있는 사물이니, 외물이기 때문에 다툼이 있는 것이다. 인의 경우 원래 나에게 달려 있어 애당초 남과 관련이 없으니, 스승이라고 하더라도 어찌 양보하겠는가.
부자와 형제 관계라고 하더라도 양보해서 스스로 물러서는 의리는 없다. 또 양보란 내가 양보한다면 남이 취할 수 있는 사물이다. 인의 경우는 내가 양보한다고 해서 누가 내게서 취할 수 있겠는가.
師冕見 及階. 子曰: 階也 及席. 子曰: 席也 皆坐 子告之曰: 某在斯某在斯.
악사(樂師)인 면(冕)이 뵐 적에 섬돌에 이르자 공자가 "섬돌이다"고 말하였고, 자리에 이르자 공자가 "자리이다"고 말하였으며, 모두 다 앉자 공자가 "아무개는 여기에 있고 아무개는 여기에 있다"고 말하였다.
성인이 문하의 제자를 가르치는 방식도 봉사인 악사를 돕는 일과 같았다. 섬돌에 이른 뒤에 "섬돌이다"고 말하고, 자리에 가서야 "자리이다"고 말하며, 자리에 앉은 이후에 "아무개는 여기에 있다"고 말하였다.
만약에 문을 들어가자마자 말하기를 "여기에 섬돌이 있고 여기는 자리가 있으며 아무개는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면 도리어 미혹되지 않겠는가.
정치를 행하고 백성을 다스릴 적에도 의식(衣食)을 충분하게 한 이후에야 가르치고, 가르친 이후에야 일을 시켰으니, 이것은 바로 만물이 각각 제자리에서 잘 사는 방도이다.
그러나 만일 일할 적마다 유념하여 의도적으로 행한다면 또한 여유가 있지 못할 것이다. 충서(忠恕)로부터 모든 것이 나오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모두 합당하니, 마치 봄이 오면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붉고 희게 활짝 피는 것과 같다.
▶️ 邦(나라 방)은 ❶형성문자로 邫(방)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우부방(阝=邑; 마을)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경계(境界)를 뜻하는 글자 丯(봉, 방)으로 이루어졌다. 경계를 나타내는 우거진 수목(樹木)으로 이루어졌다. 경계 내(內)의 부족(部族)의 뜻이, 전(轉)하여 나라의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邦자는 '나라'나 '수도'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邦자는 丰(예쁠 봉)자와 邑(고을 읍)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丰자는 초목이 무성하게 올라온 모습을 그린 것으로 '우거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邦자를 보면 田(밭 전)자 위로 풀이 올라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밭에 농작물이 무성히 자라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사람들이 '터전을 잡은 곳'이라는 뜻이다. 금문에서는 田자 대신 邑자가 쓰이게 되었는데, 의미 역시 확대되어 '나라'나 '수도'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전에는 邦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하지만 한(漢)나라 때는 태조 유방(劉邦)의 이름과 겹치는 것을 피하고자 같은 뜻을 가진 國(나라 국)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邦(방)은 성(姓)의 하나 ①나라 ②서울, 수도(首都) ③제후(諸侯)의 봉토(封土) ④천하(天下) ⑤형(兄), 윗누이 ⑥제후를 봉하다 ⑦여지(輿地)를 주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라 국(國)이다. 용례로는 나라의 정치를 방치(邦治), 영토와 국민과 주권을 갖춘 사회를 방가(邦家), 영토와 국민과 주권을 갖춘 사회나 나라를 방국(邦國), 서울에 가까운 땅으로 서울 근교를 방기(邦機), 나라와 나라가 사귀는 관계를 방교(邦交), 나라의 근본을 방본(邦本), 나랏말을 방어(邦語), 자기 나라에서 제작된 영화를 방화(邦畫), 나라에서 금하는 일을 방금(邦禁), 나라의 풍속을 방속(邦俗), 나라의 형률을 방형(邦刑), 나라의 경계를 방경(邦境), 나라의 경사를 방경(邦慶), 나라의 길흉의 의식을 방례(邦禮), 나라의 사업을 방업(邦業), 자기 나라 사람을 방인(邦人), 다른 나라를 수방(殊邦), 동맹을 맺은 나라를 맹방(盟邦), 가까이 사귀는 나라를 우방(友邦), 나라를 합침을 합방(合邦), 모든 나라를 만방(萬邦), 우리 나라를 아방(我邦), 동쪽에 있는 나라를 동방(東邦), 각 나라 또는 여러 나라를 각방(各邦), 힘이 강한 나라를 강방(强邦), 내가 태어난 나라를 일컫는 말을 부모지방(父母之邦), 예의를 숭상하며 잘 지키는 나라를 일컫는 말을 예의지방(禮儀之邦), 위험한 곳에 들어가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위방불입(危邦不入), 많은 어려운 일을 겪고서야 나라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러모로 노력해야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다난흥방(多難興邦) 등에 쓰인다.
▶️ 有(있을 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 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𠂇(우; 又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有자는 '있다, '존재하다',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有자는 又(또 우)자와 月(육달 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月자는 肉(고기 육)자가 변형된 것이다. 有자의 금문을 보면 마치 손으로 고기를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가 고기(肉)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有자는 값비싼 고기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져 '소유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有(유)는 (1)있는 것. 존재하는 것 (2)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소유 (3)또의 뜻 (4)미(迷)로서의 존재. 십이 인연(十二因緣)의 하나 (5)존재(存在)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②존재하다 ③가지다, 소지하다 ④독차지하다 ⑤많다, 넉넉하다 ⑥친하게 지내다 ⑦알다 ⑧소유(所有) ⑨자재(資財), 소유물(所有物) ⑩경역(境域: 경계 안의 지역) ⑪어조사 ⑫혹, 또 ⑬어떤 ⑭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존(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이익이 있음이나 이로움을 유리(有利), 소용이 됨이나 이용할 데가 있음을 유용(有用), 해가 있음을 유해(有害),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세력이 있음을 유력(有力),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있음과 없음을 유무(有無), 여럿 중에 특히 두드러짐을 유표(有表),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우환을 당하지 아니함 또는 뒷걱정이 없다는 뜻의 말을 유비무환(有備無患),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뜻으로 변명할 말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구무언(有口無言),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한 모양이나 흐지부지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유야무야(有耶無耶),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천지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일컫는 말을 유상무상(有象無象),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명무실(有名無實), 머리는 있어도 꼬리가 없다는 뜻으로 일이 흐지부지 끝나 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두무미(有頭無尾), 다리가 있는 서재라는 뜻으로 박식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서주(有脚書廚), 만물은 조물주가 만드는 것이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일컫는 말을 유생불생(有生不生), 다리가 있는 양춘이라는 뜻으로 널리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양춘(有脚陽春),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라는 뜻으로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유지경성(有志竟成),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시작할 때부터 끝을 맺을 때까지 변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시유종(有始有終), 무슨 일이든 운수가 있어야 됨을 이르는 말을 유수존언(有數存焉),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있으나 마나 함을 이르는 말을 유불여무(有不如無), 말하면 실지로 행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함 또는 각별히 말을 내 세우고 일을 행함을 이르는 말을 유언실행(有言實行), 끝을 잘 맺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결과가 좋음을 이르는 말을 유종지미(有終之美), 입은 있으되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정이 거북하거나 따분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유구불언(有口不言), 행동이나 사물에 처음과 끝이 분명함 또는 앞뒤의 조리가 맞음을 일컫는 말을 유두유미(有頭有尾),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 융통함을 이르는 말을 유무상통(有無相通), 장차 큰 일을 할 수 있는 재능 또는 그 사람을 일컫는 말을 유위지재(有爲之才), 끝까지 일을 잘 처리하여 일의 결과가 훌륭함을 이르는 말을 유종완미(有終完美),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대로 있지 않고 인연에 의하여 변해 가는 것이라는 말로 세상사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유위전변(有爲轉變), 가기에 잎을 더한다는 뜻으로 이야기에 꼬리와 지느러미를 달아서 일부러 과장함을 이르는 말을 유지첨엽(有枝添葉),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유교무류(有敎無類) 등에 쓰인다.
▶️ 道(길 도)는 ❶회의문자로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首(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首(수)는 사람 머리와 같이 사물의 끝에 있는 것, 처음, 근거란 뜻을 나타낸다. 道(도)는 한 줄로 통하는 큰 길이다. 사람을 목적지에 인도하는 것도 길이지만 또 도덕적인 근거도 길이다. ❷회의문자로 道자는 '길'이나 '도리', '이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道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首(머리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首자는 '머리'라는 뜻이 있다. 道자는 길을 뜻하는 辶자에 首자를 결합한 것으로 본래의 의미는 '인도하다'나 '이끌다'였다. 그러나 후에 '사람이 가야 할 올바른 바른길'이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도리'나 '이치'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寸(마디 촌)자를 더한 導(이끌 도)자가 '인도하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道(도)는 (1)우리나라의 지방 행정 구역의 하나. 예전에 8도이던 것을 고종(高宗) 33(1896)년에 13도로 고쳤고, 다시 대한민국 수립 후에 14도로 정함 (2)우리나라의 최고 지방자치단체 (3)도청 (4)중국 당(唐) 대의 최고 행정 단위. 당초에는 10도로 나누어 각 도마다 안찰사(按察使)를 두었으며 734년에 15도로 늘려 관찰사(觀察使)를 장관(長官)으로 두었음 (5)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6)종교 상으로, 교의에 깊이 통하여 알게 되는 이치, 또는 깊이 깨달은 지경 (7)기예(技藝)나 방술(方術), 무술(武術) 등에서의 방법 (8)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길 ②도리(道理), 이치(理致) ③재주 ④방법(方法), 술책(術策) ⑤근원(根源), 바탕 ⑥기능(機能), 작용(作用) ⑦주의(主義), 사상(思想) ⑧제도(制度) ⑨기예(技藝) ⑩불교(佛敎) ⑪승려(僧侶) ⑫도교(道敎) ⑬도사(道士) ⑭교설(敎說) ⑮~에서, ~부터 ⑯가다 ⑰가르치다 ⑱깨닫다 ⑲다스리다 ⑳따르다 ㉑말하다 ㉒완벽한 글 ㉓의존하다 ㉔이끌다, 인도하다 ㉕정통하다 ㉖통하다, 다니다 ㉗행정구역 단위 ㉘행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길 도(塗), 거리 항(巷), 거리 가(街), 네거리 구(衢), 길 로/노(路), 길 도(途), 길거리 규(逵), 모퉁이 우(隅)이다. 용례로는 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든 길을 도로(道路),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을 도리(道理),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도덕(道德), 일에 쓰이는 여러 가지 연장을 도구(道具), 도를 닦는 사람을 도사(道士),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 상의 의리를 도의(道義), 일반에게 알리는 새로운 소식을 보도(報道), 차가 지나다니는 길을 궤도(軌道),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를 효도(孝道), 사람이 행해야 할 바른 길을 정도(正道), 차가 다니도록 마련한 길을 차도(車道), 도를 닦음을 수도(修道), 임금이 마땅히 행해야 될 일을 왕도(王道), 바르지 못한 도리를 사도(邪道), 사람이 다니는 길을 보도(步道), 일에 대한 방법과 도리를 방도(方道),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라가 잘 다스려져 백성의 풍속이 돈후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도불습유(道不拾遺),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뜻으로 거리에서 들은 것을 남에게 아는 체하며 말함 또는 깊이 생각 않고 예사로 듣고 말함을 일컫는 말을 도청도설(道聽塗說),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라는 뜻으로 남에게 버림받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도방고리(道傍苦李), 먼 길을 달린 후에야 천리마의 재능을 안다는 뜻으로 난세를 당해서야 비로소 그 인물의 진가를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도원지기(道遠知驥), 길에는 오르고 내림이 있다는 뜻으로 천도에는 크게 융성함과 쇠망함의 두 가지가 있다는 말을 도유승강(道有升降),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그것에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감을 일컫는 말을 안빈낙도(安貧樂道), 시장과 길거리에서 이루어지는 교제라는 뜻으로 이익이 있으면 서로 합하고 이익이 없으면 헤어지는 시정의 장사꾼과 같은 교제를 일컫는 말을 시도지교(市道之交), 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은 것으로 여김을 일컫는 말을 청빈낙도(淸貧樂道), 말할 길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너무나 엄청나거나 기가 막혀서 말로써 나타낼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언어도단(言語道斷) 등에 쓰인다.
▶️ 仕(섬길 사/벼슬 사)는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뜻을 나타내는 士(사)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선비(士)가 학문에 힘쓴 후 벼슬에 나아간다는 뜻이다. 士(사)는 관리(官吏), 仕(사)는 벼슬하는 일의 뜻으로, 본디는 士(사)와 仕(사)는 하나의 말이었으나 나중에 士(사)는 명사(名詞), 仕(사)는 동사(動詞)로 나눈 것이다. ❷회의문자로 仕자는 '섬기다'나 '벼슬'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仕자는 人(사람 인)자와 士(선비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士자는 고대에 형관(刑官)들이 차고 다니던 무기를 그린 것으로 '선비'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고대사회에서 '선비'는 학식과 무예를 겸비하고 있던 사람을 일컫던 말이었다. 仕자는 이렇게 학식을 갖춘 사람을 뜻하는 士자에 人자를 더한 것으로 임금을 모시던 관리를 뜻한다. 그래서 仕(사)는 ①섬기다, 일하다, 종사(從事)하다 ②벼슬하다 ③살피다, 밝히다 ④벼슬(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 또는 그런 일) ⑤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받들 봉(奉), 받들 봉(捧)이다. 용례로는 벼슬아치가 정한 시각에 사무를 마치고 퇴근함을 사퇴(仕退), 벼슬아치가 규정한 시각에 출근함을 사진(仕進), 벼슬아치의 출근을 기록하던 종이를 사기(仕記), 벼슬자리에 있던 날 수를 사일(仕日), 벼슬아치의 명단을 사판(仕版), 남을 위하여 일함이나 노력함을 봉사(奉仕), 자기가 맡은 일에 부지런히 힘써서 일함을 근사(勤仕), 벼슬을 하여 관직에 나아감을 출사(出仕), 벼슬자리를 구함을 구사(求仕),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을 치사(致仕), 벼슬을 시켜도 나서서 하지 아니함을 불사(不仕), 낮은 벼슬아치가 구실을 내놓고 물러감을 퇴사(退仕), 그 날의 일을 끝냄을 파사(罷仕), 벼슬아치가 임기를 마친 뒤에도 계속하여 그대로 근무하는 일을 잉사(仍仕), 아침 일찍 출근함을 조사(早仕), 규정된 시각보다 늦게 출근함을 만사(晩仕), 관리는 빈한해도 녹을 먹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관리된 사람은 덕을 천하에 펴야 한다는 말을 사비위빈(仕非爲貧), 배운 것이 넉넉하면 벼슬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을 학우등사(學優登仕), 남행으로 처음 벼슬길에 오름을 일컫는 말을 남행초사(南行初仕), 여러 해를 벼슬살이 함을 이르는 말을 적사구근(積仕久勤)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