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의 클라시코와 20일 국왕컵 결승전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무리뉴가 대단한 감독이다'라는 게 아닐까. 무리뉴 감독은 4번의 클라시코를 하나의 발전적인 흐름에서 서서히 팀을 정비하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맞붙기 전부터 단계적인 준비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클라시코 1차전은 1-1의 무승부, 그리고 2차전이 된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는 연장 끝에 레알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를 1-0으로 꺾고 18년만에 우승컵을 손에 넣었다.
4월 2일로 거슬러 올라가 레알 마드리드가 스포르팅 히혼에 패해 무리뉴가 전에 말했던 8점차의 ‘역전 불가능한 차이’가 되었을 때, 팀닥터의 스톱 사인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마르셀로를 다음 5일 토트넘을 상대로 한 챔스 8강 1차전 출장을 강행했다. 그리고 4-0이라는 대승을 거둔 뒤 2차전에 여유를 확보한 다음, 이후 9일 아틀레틱 빌바오전에서 하나의 테스트를 했다.
그 테스트가 바로 페페의 수비형 미드필더의 기용이었다. 빌바오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페페가 두 센터백 앞에서 볼을 빼앗고 카카와 그라네로를 경유해 발빠른 디 마리아와 이과인에게 연결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이렇게 인터셉트로 시작해 세 번의 패스 이내에 슈팅을 시도하는 패턴으로 빌바오를 가볍게 무너트렸다(3-0). 특히 홈 산 마메스 경기장에서 격렬한 압박을 가하는 빌바오는, 볼을 잃은 뒤 공격적인 압박이 특징으로 가상 바르셀로나였다. 큰 체격을 이용한 인터셉트와 볼키핑, 나쁘지 않은 테크닉을 가진 페페에게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전망을 확인한 것 뿐만아니라 호나우두, 외질, 사비 알론소, 카르발류를 쉬게 하면서도 공백이 길었던 카카와 이과인을 다시 전력으로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을 알게 해 준, 빌바오전의 의미는 컸다.
이후 16일 무리뉴 감독은 페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트리보테(오른쪽부터 케디라, 페페, 사비 알론소) 전술을 선택했다.
서서 받는 과르디올라, 움직이는 무리뉴
레알 마드리드의 새로운 전술을 평가하기 전에, 무리뉴가 이 전술을 준비하는 동안 과르디올라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살펴보자.
일단 샤흐타르 도네츠크와의 챔스 8강 두 경기를 통해 센터백으로서의 마스체라노의 특성을 확인했다. 보통 푸욜의 대체 선수는 가브리엘 밀리토 또는 부스케츠였지만, 둘 다 스피드가 부족했으며 특히 부스케츠를 중앙 수비로 내리는 것은 미드필드에서 볼을 돌리는 과정에 정체를 가져왔다. 한편 전술 이해도가 높은 마스체라노는 다음 순간의 플레이를 읽어 앞지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클라시코에서 센터백으로 출장하는 것에 청신호가 들어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이외에 사비, 비야, 페드로, 아드리아누, 이니에스타 등의 주전 선수들을 쉬게 하는 것 뿐 새로운 포메이션이나 새로운 전술에 도전하는 일은 없었다. 당연하다. 과르디올라에게는 ‘4-3-3’으로 세상 모두가 다 아는 패스 축구 이외의 도전은 필요 없다. 평상시처럼, 평상시의 선수들로, 평상시의 방법으로, 작년 11월 캄푸 누에서 숙적 레알 마드리드를 5-0으로 격파했고, 무리뉴로부터 '세계 최고의 팀'이라고 일컫어진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서서 받는 과르디올라와 움직이는 무리뉴’가 이번 클라시코 4연전의 대결구도였던 것이다.
물론 ‘움직일래야 움직일 수 없는 과르디올라’라는 배경도 있다. (이것은 향후 두 차례의 챔스 경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선 두 경기를 통해 양팀의 벤치 오원을 비교하면, 레알 마드리드는 이과인, 아데바요르, 카카, 가라이 등이 있지만, 바르셀로나는 아펠라이, 티아고 알칸타라, 케이타, 막스웰, 가브리엘 밀리토 뿐으로 피로가 누적된 비야와 페드로의 대체 선수는 없으며, 코파 델 레이에서 부상을 당해 한 달을 결장하는 아드리아누가 선발 라인업에서 빠진다. 또한 보얀과 아비달이 장기 이탈해 바르셀로나는 만신창이에 가깝지만 라사나 디아라가 복귀할 레알 마드리드는 가고 이외의 부상자 다운 부상자는 없다. ※ 이후 케디라 부상
‘4-3-2-1’로 볼의 지배권을 포기하는 결단
이야기를 다시 16일 리가 클라시코로 되돌린다. 그런데 그 움직이지 않을 수 없던 무리뉴는 어떻게 움직였을까? 앞서 소개한 ‘4-3-2-1’이라는 트리보테 기용과 볼의 지배권을 포기하는 결단이 전부였다. 벤제마를 포함한 11명 전원이 자신의 진영으로 내려왔고, 그 구성은 ‘1.벤제마: 압박 요원 / 2.호나우두: 수비를 하지 않는 역습 요원 / 3.디 마리아: 수비를 하는 역습 요원 / 4.나머지: 모두 수비 요원, 다만 한 두 명은 역습 시 보충’이었다.
가장 큰 특징은 경기가 끝난 뒤 ‘바르셀로나는 사자, 레알 마드리드는 쥐’라고 디 스테파노를 분노하게 만든 잠그기 전술이었다. (볼의 지배권을 가져갈 수 없는 이상 문을 잠그고 역습을 펼치는 전술 이외는 답이 없으며, 너무 감정적인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최전방의 벤제마의 압박 담당이 ‘바르셀로나의 포백과 부스케츠’라고 말하면 설명이 될 수 있을까. 또는 지난 챔스 준결승 2차전으로 캄푸 누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한 인테르의 재현이라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이번 무대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게다가 레알 마드리드는 외질을 제외하면 베스트 일레븐이었다. ‘안티 풋볼’등의 욕을 각오한 무리뉴의 결단이었다.
그리고 이런 잠그기 전술은 두 차례의 일대일 찬스와 알비올의 퇴장을 포함하는 페널티 킥 골을 허용했지만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실점 직전에 호나우두의 프리킥이 포스트를 맞췄으며, 슈팅 숫자는 13대 11로 앞섰다. 코너킥은 8대0, 특히 공중전에서는 포스트플레이에서 아데바요르가, 세트플레이에서는 세르히오 라모스가 압도적인 힘을 보였다. 코너킥에서 과르디올라는 지역 방어를 채택하고 있는데, 아데바요르와 세르히오 라모스에게 맨마킹을 붙일만한 카드가 없기 때문에, 이후의 클라시코에서도 레알 마드리드의 제공권은 위협적일 것이다.
10명이 된 후 터진 레알 마드리드의 동점골에서 팀의 높은 정신력 느낄 수 있었고, 경기 내용 면에서도 1-1 스코어 그대로의 무승부였다. 캄프 누에서 당한 0-5의 패배를 생각하면 확실한 전진이며, 무리뉴에게는 수확이 많은 1차전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과르디올라로서는 최강의 멤버로 평상시의 전술이 문을 잠그는 상대에게도 어느 정도 적중하여 국내 리그 우승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일단 목표는 달성했다. 하지만 과르디올라가 준비한 유일한 깜짝 전술이었던 푸욜의 기용(전체 훈련에 단 1회 참여)은 부상 재발로 코파 델 레이에 출전할 수 없게 되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런 관점에서는 챔스 8강에서 호날두와 마르셀로의 출전을 강행해 성공을 거둔 무리뉴와는 명암이 나누어지게 되었다. 한편 벤치의 아펠라이와 막스웰도 공헌하지 못하고 실점의 요인이 되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압박에 깜짝 놀란 바르셀로나
이렇게 맞이한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임하는 무리뉴 감독은 4일전 클라시코를 발판으로 또 다시 팀을 진화시켰다. 다시 페페를 수비형 미드필더(이번에는 중앙이 아닌 왼쪽, 메시를 막기위함이라 추측.)로 기용하는 트리보테를 채택했고, 1차전에서 교체 출전해 팀에 활기를 불어 넣은 외질을 선발 출장시켰으며, 아데바요르, 벤제마, 이과인이라는 3명의 스트라이커를 벤치에 앉히는 사치(?)스러운 결정을 내렸다.
물론 트리보테의 기용이 의외였던 것은 나뿐인지도 모르겠다. 내 기대는 ‘컨디션이 좋은 외질과 아데바요르를 선발 기용하면서, 알비올의 퇴장으로 공백이 생긴 중앙 수비에 페페를 기용하는 일석이조’라는 것이었지만 편집장으로서 실수를 사과하고 싶다. 또한 ‘진화’라고 말하는 것은 휘슬이 울리고 뛰는 모습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다. 최전방 라인의 높이가 지난 클라시코보다 훨씬 높았던 것이다.
앞선 1차전에서 최전방 라인의 높이를 ‘벤제마의 압박 대상이 바르셀로나와 포백과 부스케츠’라고 설명하였는데, 이번 경기에서 최전방에 있던 호날두의 압박 대상은 ‘중앙 수비수 두 명 뿐’이었던 것. 그 뒤의 디 마리아, 페페, 케디라, 외질이 나란히 측면 수비수와 세 명의 미드필더를 압박했으며, 그 아래 사비 알론소가 대기하는 여러 겹의 트리보테, 진화 버젼의 ‘4-1-4-1’이었다. 특히 최종 라인은 지난 경기보다 20에서 30미터나 높았다.
역할 분담으로 보면 센터 포워드는 없이 역습 전문 요원은 호날두 뿐, 나머지는 수비라는 이전 이상의 수비 편중. 하지만 높은 위치에서의 인터셉트는 큰 찬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외질은 볼을 쫓는 습관이 없어 아니나 다를 까 제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이 경기의 새로운 전술은 마이너스보다 플러스가 컸다. 치열한 압박에 깜짝놀란 바르셀로나의 패스 돌리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것이다. 아마도 바르셀로나는 레알 마드리드가 라인을 올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무리뉴 감독이 라인을 올린 이유는, 지난 경기에서 볼 소유권을 회복하는 지점이 너무 뒤에 있어, 효과적인 역습을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반성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충분히 통하던 방법이었기 때문에, 더 전방으로 라인을 올린 것은 용기있는 결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두 경기나 남아있는 사치스러움
천천히 볼을 지킬 수 없으며 더 빠른 패스워크가 필요해진 바르셀로나는 경기에 임하는 방법에서 실수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격렬한 압박이 90분간 계속될리 없으니 평소처럼 공을 쫓게해 체력을 소모시켰어야 했지만, 공을 가진 선수의 움직임이 적은데다가 주심이 신체 접촉에 관대한 성향도 한 몫 했으며, 플레이가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저 리듬이 없었다. 한동안 전진이 없는 단지 볼 소유권을 유지하는 패스웍을 반복하며 후퇴했다. 당황하여 볼을 길게 차 볼을 빼앗기거나 메시, 이니에스타, 페드로가 무리한 드리블로 볼을 잃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전반 종료 직전의 페페의 헤딩슛이 포스트에 맞지 않고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면, 경기의 전개는 무리뉴 감독의 시나리오에 써진 그대로 였다.
하지만 후반전에 상황이 급변한다. 과르디올라의 능력을 칭찬할 만한 점이다. 바르셀로나는 원터치 패스를 적극 활용하면서 주변에 선수들의 보충이 빨라졌고, 결국 레알 마드리드의 압박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효과적이었던 것은 최전방부터 레알 마드리드가 압박하기 전에 볼을 빠르게 돌리는 방법으로 신체적인 피로를 유발시킬 뿐 아니라, ‘쫓아가도 빼앗을 수 없다’라는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 레알 마드리드의 발걸음도 멈추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가 평상시의 방식과 평정심을 되찾은 것이다. 느슨해진 압박을 빠져 나가 레알 마드리드의 미드필더의 압박을 제치면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에 침투하여 드리블, 상대 수비가 뛰쳐 나오면 패스의 반복으로 상대 진영 깊숙히 들어가고 마무리는 측면에서 대기하고 있는 페드로와 메시 또는 다니 알베스가 맡는, 바르셀로나가 자신있는 스타일로 찬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압박은 헛수고, 뒷걸음질의 연속, 세컨드 볼도 딸 수 없던’ 일방적인 수세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살아남은 것은 바르셀로나의 일대일 찬스를 모두 무산시킨 카시야스와 피로 누적으로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골결정력까지 떨어진 덕분일 것이다. 몇 주 전부터 확실히 페드로와 비야의 골 결정력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대체할 선수가 없었다. 물론 바르셀로나가 이런 기세를 계속 유지했다면 연장전의 분위기도 가져갔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먼저 발이 멈춘 것은 지칠 게 분명한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바르셀로나였다. 경기 내내 전력으로 질주한 호날두와 디 마리아의 스피드는 90분이 지나서도 전혀 줄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결승골 장면이다. 사비의 경솔한 플레이로 볼을 빼앗은 레알 마드리드의 속공. 마르셀로와 디 마리아의 원투패스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며, 물론 다니 알베스도 감지하여 마르셀로가 다시 볼을 주는 경로에 위치했지만 디 마리아의 스피드에 내쳐지고 말았다. 이후 디 마리아의 크로스에 점프한 호날두의 높이에 아드리아누가 닿을 리가 없었다. 멋진 역습, 높이를 살린 마무리. 무리뉴가 쓴 시나리오대로 레알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의 패권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감독이 뛰어날지라도 실행에 옮기는 선수들이 감독의 전술을 신뢰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직 챔피언스리그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무리뉴 감독을 헹가래 쳐주는 장면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가진 일체감의 폭발로 보고 싶다. 또 다시 무엇인가 보여줄 것 같은 레알 마드리드, 이젠 정말 자신들을 믿는 수 밖에 없는 바르셀로나. 4번의 클라시코 가운데 아직도 두 경기나 남았다는 사치에 감사하고 싶다.
원문: 기무라 히로시
일본 해외축구 주간지 <풋볼리스타> 편집장. 스페인 세비야 거주. 1994년에 스페인으로 떠나 2006년까지 살라만카에 있있다. 98,99년에 스페인 축구 연맹 공인 감독 라이선스(레벨 1,2)를 취득해 여덟 시즌간 현지 유소년 팀을 지도. 2006년 8월에 귀국해 <풋볼리스타> 편집장에 취임. 유로 2008에서 스페인의 우승에 눈물을 흘리며 다시 2008년 12월에 스페인으로 떠났다. 시차에 시달리면서 ‘해외 거주 편집장 및 기자’라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기사작성=레알매니아 뉴스 스태프 눈팅회원)
첫댓글 정말 좋은글이라서 스크랩해왔습니다. 칼럼 쓰신분 정말 눈이 정확하네요. 몇몇 제가 잘못봐서 몰랐던 부분도 다 캐치해내시고..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인가 봅니다;
대단합니다. 이 글 쓴사람도 대단하지만 그러한 전술을 생각해낸 무링요가 더 대단하네요...퍼거슨과 무링요 이 둘은 정말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뽑힐듯...
같은 감독에게 유일하게 2패를 당한 과르디올라가 어떤 반격을 할지가 기대되네요. 일단 비야와 페드로의 공격진의 부진과 완전 망가져버린 수비진의 부담도 장난 아니겠지만요.
5:0으로 개작살 날떄만 해도 이번시즌은 힘들거라고 예상했는데...;;;;ㅋ 무링요도 아마 레알 멤버정도면 맞불이 가능하지 않나 생각하고 들이댄걸텐데...;;;;;ㅋ
바르샤 챔스 4강 3년전 퍼거슨(맨유):패-맨유우승 2년전 히딩크(첼시):승-우승 작년 무리뉴(인터):패-인터우승 올해 무리뉴(레알): ?
챔스에서 또 다른전술로 응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선수비 후역습이 아니라 이번에 맞불놓지 않을까 하는 짐작도 드네요....무링요는 정말 대단그자체인것 같네요
일단 맞불은 안할거 같구요 무링요의 특징인 안티풋볼로 밀어낼거 같아요...결국 승자는 스페셜원이 될거 같은....;;;
어떻게든 결승진출할거 같습니다
안티풋볼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불편하네요 축구가 공격이 중요한 만큼 수비도 중요하고, 팀간 격차가 클수록 수비전술은 필수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