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여러분에게 나아갈 형통한 길이 열리기를 간구합니다.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떤 영적인 은사를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어 여러분을 견고하게 하려는 것인데 그것은 곧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며 여러분과 내가 서로의 믿음을 통해 서로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롬 1"10~12).
바울이 그토록 간절한 마음으로 로마교회를 방문하여 나누어 주고 싶었던 영적인 은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당시 로마교회 성도들 안에 결핍되어 있던 성령의 영적인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로마교회를 찾아가 로마교회 안에 결핍된 어떤 영적인 은사를 나누어 주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나누어 주고 싶었던 영적인 은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면 바울이 쓴 로마서 12장의 영적인 은사들과 고린도 전서 12장의 영적인 은사들을 비교해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6~8 :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고린도 전서 12장 8절~10절 :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들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린도 전서 12장 28절 : "하나님이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당시 로마 교회 성도들은 로마서 12장의 은사들을 이미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바울이 쓴 로마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고린도에서 썼습니다. 이를 근거로 고린도 교회가 소유하고 있던 고린도 전서 12장의 영적인 은사들과 로마서 12장의 은사들의 차이점을 알게 되면 바울이 로마교회를 찾아가서 나누어 주고 싶었던 "어떤 영적인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이 편지를 쓰기 전부터 로마에 세워져 있었던 교회 성도들이 소유했던 롬12장에 나열된 성령의 은사들은 신기한 것이나 영감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생명에 속한 것으로 주님의 은혜와 사람의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심지어 구제하고 긍휼을 베푸는 것까지도 은사이며, 이 때문에 거듭난 믿는이라면 누구든지 내주하시는 성령의 은혜로 취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은사들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전해주고 싶었던 영적인 선물은 바로 고린도 전서 12장에 나열된 "사람의 육체 위로 부어진 성령에 의한 초자연적인 은사"들이였습니다.
로마교회는 "믿을 때 그들 안으로 내주하신 성령에 의해 발현되는 일반적이며 생명에 속한 은혜의 은사들"은 획득했지만 고린도 전서 12장에 나열된 "사람 위로 부어진 성령의 능력 안에서 영감(靈感)을 얻을 때 받게 되는 초자연적인 은사"가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고린도 전서 12장의 은사가 중요시 하는 것과 로마서12장의 은사가 중요시 하는 점들을 비교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가 중요시 하는 것은 '능력'이고 로마서가 중요시하는 것은 바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 역사의 창세기라 할 수 있는 "사도행전"이 사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에 관하여는 말하지 않고 사람 밖의 육체 위로 부어진 성령에 대하여만 말하고 있는 이유를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교회들은 고린도 교회처럼 내주하시는 성령(생명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과 체험이 부족하고 로마에 있는 교회와 같이 육체 위로 부어진 성령(능력)에 대한 인식과 체험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원수 대적을 넉넉히 이기기 위해서는 내주하시는 이기는 생명과 육체 위로 부어지신 성령의 능력으로 균형이 잡혀야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인정할 것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주 예수를 믿고 영접하면서 피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생명을 덧 입었지만 부어진 성령(행 1:8)을 체험적으로 알 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위로부터 덧 입은 성령의 능력을 그들에게 옮겨 붓고자 했던 것입니다.
첫댓글 제가 처음 2006년도 소위 지방교회를 방문하여 형제자매들과 교통을 시작한 후 뭔가 모를 워치만 니 형제의 사역과 위트니스 리 형제의 사역에 대한 간극을 뒤늦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트니스 리는 거듭남과 성령의 옮겨 부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결과 거듭나고 성령의 내주하심에 의한 생명과 관련된 객관적인 진리의 방면에서는 층분했지만 워치만 니의 사역 속에 있는 사람의 육체 위로 부어진 성령에 관한 주관적인 방면의 진리가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을 저는 뒤늦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지방교회는 바울 당시 로마교회와 같이 객관적인 방면과 주관적인 방면의 진리가 균형이 잡혀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부터라도 수면 아래 두었던 워치만 니의 사역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재고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