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0대 A씨는 대기업을 다니다 그만두고 카페를 차렸다. 그는 목좋은 곳에 과감하게 퇴직금을 투자해 작은 규모로 카페를 열었다. 장사는 어느정도 됐고, 힘들지만 대기업에 다닐 때보다는 훨씬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더 규모를 키워볼 생각이 없냐는 친구들 이야기에 그는 "난 여기에 만족해. 이 정도면 됐어"라며 고개를 저었다.
#2. 1990년대 초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드물었던 시절, 금융위기로 허덕이던 멕시코에 `씨네맥스`라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섰다. 티켓 값은 2배 이상 비쌌고, 동시에 여러 다른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 외엔 기존 영화관과 차이도 없었다. 사람들은 금융위기에 처한 멕시코 시민들이 이를 받아들이겠냐며 비웃었다. 하지만 씨네맥스는 대박을 터뜨렸다.
A씨는 `기업가(Entrepreneur)`일까.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라고 답변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Entrepreneur`의 또다른 말인 `창업가`라고 바꿔 질문하면 거의 대부분이 "맞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댄 아이젠버그 밥슨대학교 교수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한다. 아이젠버그 교수에 따르면 A씨는 단순히 사업을 하는 사업가이지, 기업가나 창업가를 뜻하는 `Entrepreneur`의 정의와 맞지 않다. 그는 "Entrepreneur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고, 이를 장기적인 성장으로 이끌어 나가고, 리스크를 감내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단순 사업가와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단순 사업가를 기업가와 혼동해 쓰는 것은 기업가의 가치를 평가절하해 사회를 이끌어가는 동력인 기업가 육성에 방해가 된다. 정부가 지원해야 할 대상도 단순 사업가 보다는 기업가라는 얘기다.
또 기업가를 혁신을 일으키는 천재들로 보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둘째 사례에 언급된 씨네맥스의 창업자들은 아이젠버그 교수에 따르면 당연히 `기업가`다. 하지만 다른 영화관들이 하던 방식과 다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대로 모방해서 차리되, 대신 영화관 숫자를 늘리고 조금 더 고급스럽게 꾸민 것이 다였다.
하지만 이들은 당시 없던 `다양한 영화를 한꺼번에,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가치를 제공했다. 지금은 흔한 멀티플렉스가 1990년대 초엔 `새로운 가치`를 지역사회에 준 셈이다.
아이젠버그 교수는 "일반적인 기업가들에게는 `혁신없는 가치창출`이 오히려 답이 될 수 있다"면서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오는 것만이 창업가와 기업가를 만들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같은 차원에서 `Entrepreneur`가 혁신(Innovation)을 일으키는 젊은(Young) 전문가(Expert)에 한정된다는 생각을 버려라"고 조언했다. 창업을 통해 기업가가 되기 위해선 생각만큼 젊을 필요도, 전문가일 필요도, 혁신을 일으킬 필요도 없다며 기존의 관념을 파괴한 것이다.
다음은 그와 주고받은 수차례의 이메일 대화와 전화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Entrepreneur(기업가)`의 정의는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미국에서도 자영업과 `Entrepreneur`가 혼동돼 쓰이는 것을 경계했는데.
▶단순 사업가를 기업가라고 부르면서 두 단어를 혼동해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 두 단어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기업가에게는 `가치 창출`이 핵심이다. 그리고 기업가는 성장에 대한 욕구가 있어야 하고, 성장시켜야 한다. 단순 사업자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저 자기 가게를 여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면서, 현 상황에 안주하려고 한다. 모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사업의 규모를 키워 가려고 하는 기업가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그저 자기 가게를 열고 장사하면서 스스로를 `기업가`라고 칭한다. 잘못된 분류다.
-혁신(Innovation)은 보통 기업가정신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하지만 당신은 혁신 없는 가치창출이 기업가들에게서 더 많이 발견된다고 했다.
▶기업가에게 혁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혁신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해볼 필요가 있다. 혁신이 무엇인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나사(NASA)는 세계 최고의 혁신 집단이다. 이들이 그렇다고 기업가인가. 아니다. 혁신을 기반으로 성공한 기업가도 물론 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만이 창업을 성공하게 하고 기업가를 양성하진 않는다. 기존 시장에서 발견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존에 없던 `가치`를 창출하는 경우가 내가 본 기업가들 중 상당수였다.
복제약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이 아니다. 기존에 있던 기술이고, 제품이다. 하지만 이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함으로써 사람들에겐 어마어마한 가치를 부여한다. 이것이 바로 혁신은 없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가정신의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완전히 새로운 것만이 능사라는 편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런 편견은 기업가 육성의 큰 장애요인이다.
-복제약이 혁신 없는 가치창출의 대표적 예라는 것인데 흥미롭다.
▶복제약(Generics)의 정의를 보자. `Generics`라는 단어는 어쩌면 혁신적이라는 말의 반대말이다. 복제약은 특허가 만료돼 혁신성을 잃어버리는 지점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의 액타비스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복제약 업체다. 그런데 이 업체는 임직원을 7년 동안 99명에서 1만1000명으로 늘리면서도 그 어떤 새로운 일도, 혁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New)` 가치가 아니라 `더 나은(Better)` 가치를 창출했다. 저렴한 가격에, 비싼 원약과 비슷한 효능을 내는 약품을 공급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기업가정신의 핵심이다.
-당신이 제시한 기업가에 대한 세 가지 근거 없는 믿음 중에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는 부분도 있다.
▶주의할 점이 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전문가들은 그들만의 전문지식이 있기 때문에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무지(Ignorance)`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분야의 전문가만이 창업에 성공하고, 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 중 법률 서비스 대행업체를 만든 아비 샤라는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이 만든 `클러치그룹`은 400명의 변호사를 보유하고 있고, 3개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법률 서비스 대행회사이지만 창업자인 아비 샤는 놀랍게도 변호사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같은 사례를 두고 오히려 업계 밖의 사람들이 업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상에 잘 알려진 성공한 기업가들 중 상당수가 어린 나이에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마크 저커버그나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 등은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당신은 이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어린 나이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려야(Young)`만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건 일종의 미신과 같다. 그런 사례는 분명히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그만큼이나 많다. 한 연구에선 50세 이상의 기업가가 25세 미만의 기업가 숫자보다 2배 이상 많다는 걸 제시하기도 했다. 나는 `어려야, 일찍 시작해야 성공한다`는 편견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깨고 싶었던 거다.
-예를 들어 달라.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 중 하나인 맥도널드를 창업한 레이 크록은 당시 50대였다. KFC 창업자인 콜로넬 샌더스는 어떤가. 허핑턴포스트를 창업한 아리아나 허핑턴은 이미 60세가 넘었다. 나는 오히려 50대가 인생의 경험이 쌓이고, 좀 더 풍부한 지식을 가지면서, 수년간의 사회생활로 네트워크도 넓어 창업을 해 기업가로 성장하기에 정점에 있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은 어린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60대에 창업에 성공해 기업가로 성장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이들은 오히려 자신의 미래에 투자하는 데 어린 사람들보다 훨씬 더 제한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경험이 창업을 성공하게 하고, 성공한 기업가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인도의 비노드 카푸르는 70대에 성공한 기업가가 된 사례다. 그는 인도에서 가장 성공한 양계업자였다. 그는 70대에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닭고기와 계란을 생산하는 데 좀 더 적합한 닭을 계량해보기로 한 것이다. 이게 바로 `슈퍼치킨`이다. 비노드 카푸르가 계량한 닭은 일반 닭보다 2배는 빨리 자랐고, 2배나 더 많은 고기를 얻게 했다. 그의 슈퍼치킨은 우간다 등 아프리카로까지 수출돼 부를 창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창업에 성공해 기업가가 되는 분야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IT 분야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기업가정신은 특정 산업이 뜬다고 해서 그 산업에서만 꽃피워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IT업계이든 다른 산업에서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조언은 필수다. 하지만 그 다음 결정은 결국 자기가 내리는 것이다. 기업가정신은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는 얘기다. 또 좋은 아이디어라는 것이 결국 자기 안에 잠재돼 있을 수도 있다. 그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핵심이다. 특정 산업이 뜬다고 거기에 매몰되기보다는 많이 듣고 배운 후 자신이 판단해 결정하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우문현답이었던 것 같다. 백악관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인 `스타트업 아메리카`에도 참여했었는데, 당시의 이야기를 해달라.
▶아주 조심스러운데, 스타트업 아메리카는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정부 조직에 있는 사람들이 도무지 `기업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하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가정신에 대한 몰이해와 단순한 `스타트업`과 `기업가`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이 프로그램은 실패로 돌아갔다. 어젠더 세팅도 제대로 못했다. `스타트업 아메리카`는 이루고자 하는 최종 목적이나 지원 대상도 제대로 정하지 못했다. 어떤 일을 할 때는 일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아주 당연하고 기본적인 원칙을 백악관은 지키지 못했다.
-국가 정책의 실패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그렇다면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해야 창업을 활성화하고 기업가를 많이 육성할 수 있나?
▶너무나 큰 질문인 것 같다.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은 너무나 큰 나라다. 이 큰 나라에서, 연방정부가 일괄적으로 정책을 내고 기업가들을 일일이 만나러 다닐 수 없다. 결국 기업가라는 것은 작은 차원에서 시작되는데, 이것을 너무 큰 차원에서 접근하려고 하면 안 된다. 주정부, 시정부 등으로 내려오며 잘개 쪼개서 정책을 세우고, 어젠더를 세팅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 멕시코의 경우 100만명 단위로 나눴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하는 게 훨씬 더 바람직하다.
-현재 밥슨대학교에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그런 차원인가.
▶현재 밥슨대에서 `기업가 육성 생태계 조성 프로젝트(Babson Entrepreneur Ecosystem Project)`를 하고 있다.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그 도시의 창업 및 기업생태계를 만들어주고자 하는 작업이다. 덴마크의 코펜하겐, 콜롬비아, 브라질 등 세계 각국을 돌며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며, 최근엔 위스콘신주의 밀워키에서도 이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다(BEEP라고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2009년 밥슨대 주관으로 시작됐으며, 리더, 정부, 문화, 성공사례, 경영전문가, 기관, 교육기관, 지역, 네트워크, 기술전문가, 시장 등 여러 요소를 세분화해 창업을 돕고 창업생태계를 만들어 기업가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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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지켜주기보다 실업자 재기 도와라 창업을 붐업시키고 기업가를 양성하려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국가마다 상황은 다르고, 이 때문에 써야 하는 방법도 달라 일반화시키기는 어렵다. 댄 아이젠버그 밥슨대학교 교수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와 자신이 생각하는 해법을 이야기했다. 다음은 그의 이야기를 요약한 것이다.
프랑스와 같은 나라에서 파산은 낙인과 같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돼 있다. 과거 경영했던 회사가 파산상태에 들어간 상황이면, 다른 비즈니스를 시작조차 할 수도 없다. 심지어 은행계좌 개설도 불가능하다. 이런 게 바로 노동경직성이다. 그리고 이런 노동경직성은 결국 기업가정신 육성에 큰 장애물이다. 정부가 기업가정신을 막는 사례다.
덴마크는 반대다. 2000년대부터 고용보호보다 실업보험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꿨다. 일자리를 잃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기업가정신을 양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은 이런 일들이다.
▷ 창업자 격려는 선출직 공무원이 좋아
정부의 역할은 기본적으로는 `파이팅(Hooray)`을 외쳐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역할은 선출직 공무원이 해주면 더 좋다. 시장이 기업가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를 해주거나 언론이 있는 자리에서 함께 만남을 가지며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분명 힘을 발휘한다.
▷ 인센티브 정책은 아주 신중하게
인센티브 정책은 아주 신중하게 해야 한다. 일단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가 쉽지 않고, 멈출 타이밍도 잡기 힘들다. 그렇다고 인센티브를 평생 쓸 수도 없다. 얼마만큼의 인센티브가 적정수준인지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지원할 대상을 규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원을 중단하면 그 다음에 올 후폭풍도 감당하기 어렵다.
■ He is…
댄 아이젠버그는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밥슨대학교 산하의 밥슨글로벌 소속 기업가정신 과정 교수로 일하고 있다. 수십 년간 기업가정신을 연구해온 전문가이다. 2011년 백악관의 `스타트업 아메리카` 프로젝트에 자문역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2009년부터는 `BEEP(Babson Entrepreneur Ecosystem Projectㆍ기업가 육성 생태계 조성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 콜롬비아, 브라질, 덴마크 등을 돌며 도시 단위의 창업생태계 조성 모델을 적용하고, 육성에 힘써 왔다. 최근엔 이를 미국 내로 가져와 위스콘신주의 밀워키에 적용하는 거대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 중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에서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출판사를 통해 `Worthless, Impossible, and Stupid: How Contrarian Entrepreneur Create and Capture Extraordinary Value`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