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190장 (구 177장) / 출애굽기 3 : 13 - 22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190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출애굽기 3장 13절 – 22절 말씀입니다.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아멘!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첫 인간 아담을 창조하신 후 아담에게 처음으로 맡겨 주신 과제 가운데 하나가 모든 생물들에게 이름을 짓는 일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이름을 짓는다는 것도 창조 중에 하나입니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목회하면서 교우들의 자녀들의 이름을 많이 지어 주었습니다.
이름 지어주는 작업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맡기신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을 닮아서 이름을 가진 존재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이름을 가진 존재이시기에 하나님은 당연히 그가 만드신 만물도 이름을 갖고 살 것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은 다양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어느 한 이름으로 다 계시 하실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많은 하나님의 이름중 하나님 자신이 제일 좋아하신 이름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 이름이 바로 "여호와" 라는 이름이었다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자로 그 백성들에게 보내시는 장면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만일 그 백성들이 누가 너를 우리에게 보냈느냐? 너를 보낸 그 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하면 무엇이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 히브리어로는 "야웨, 혹은 여호와" 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5절에서 이것이 대대로 기억할 나의 영원한 이름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이름이 구약성경에만 무려 6,823번이나 사용됩니다. (엘로힘은 약 2,500여회)
그러면 여호와로 계시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첫째로,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스스로 있는 자!” - 야웨, 또는 여호와라는 이름은 나는 현재에도 있고 나는 미래에도 있을 자 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여호와는 영원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야 할 부분을 강조하는데,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너희도 나처럼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도 거룩해야 할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결코 닮을 수 없는 하나님의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입니다. 이것을 우리 인간은 닮으려고 해서도 안 되고 닮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영원성입니다. 하나님만이 영원하시고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인간은 유한하고도 순간적인 존재입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 인간은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 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것입니다. 이런 유한한 인간이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그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고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그래서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홀로 영원하십니다. 지상의 모든 이름이 다 잊혀 져도 영원히 잊혀 지지 아니할 그 이름이 바로 여호와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이름도 영원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여호와로 계시된 하나님은 불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홀로 불변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말라기 3장 6절에서 하나님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세상도 변하고 인생도 변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만이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아무것도 확실하게 믿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직장도 믿을 수 없고, 직장의 상사도 동료도 믿을 수 없고, 국민 연금도 믿을 수 없고, 은행도 보험도 믿을 수 없고, 일가친척도 형제도 믿을 수 없고, 심지어는 배우자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장미 인생일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의 불확실성과 늘 변한다는 것 때문에 우리 마음은 쉼을 모르고 방황하고 회의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의 인생이 여호와 하나님 안에 인생의 닻을 내린다면 그분 안에서 우리는 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아멘! - 왜 여기서 여호와하나님은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이 백성의 조상들과 한 언약을 잊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이름은 여호와, 어제도 계시고 이제도 계시고 내일도 계셔서 한결 같이 변함없이 존재하시는 이시기 때문입니다.(시 89:34) 세상에 아무도 믿을 이가 없다고 느끼십니까? 그러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에게 오십시오. 그를 신뢰하십시오.
세 번째로, 여호와로 계시된 하나님은 현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인생 저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의 방황과 고통을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 다가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죄와 고통을 보시며 마침내 한 날에 육신을 입고 인생의 마당에 동일한 인생으로 찾아오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적 사건을 성육신으로 이 세상 역사의 한 복판에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복음서의 기자들은 그분의 이름을 동일하게 “I AM – 나는” 이라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에 보면 7회에 걸쳐 예수님을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다.” 이때에 사용된 “나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두려워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바다위로 걸어오시자 이번에는 그를 유령으로 생각하여 더 크게 두려워합니다. 이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 -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내니” 라는 말이 “I am - 나는” 이라는 말입니다. 그냥 내가 아니라, 나 예수는 성육신하신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이 어제도 오늘도 동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내 인생의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어쩔 줄을 몰라 하실 때, 그가 곁에 다가와 “안심해! 나야”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분의 이름이 바로 여호와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인생 살아볼만한 인생이지 않겠습니까? 그분과 함께라면 내 인생의 풍랑과 맞서 싸워 볼만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과 함께라면 풍랑의 바다 저 건너편을 바라보며 아직도 인생의 항해를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야 할 삶의 자리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하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